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74화 (174/520)

0174 / 0419 ----------------------------------------------

9-10 눈에는 눈.

승합차가 출발하자 강찬은 가장 먼저 강대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이 엉뚱하게 끝났다.

창밖으로 시선을 준 강찬은 폭발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분명 2명에서 3명가량 있었을 거다.

인원이 많았다면 악착같이 기다려서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지, 그냥 저렇게 자폭하지는 않는다.

시한폭탄을 걸어둬서 단숨에 제압당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위민국은 살아있다.

찜찜함, 바지 끝단에 구정물이 묻어서 계속 냄새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불쾌함이 강찬을 붙들었다.

***

“국장 동지, 강찬이가 그렇게 강합네까?”

위민국이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남조선이래 이상해. 허하수 같은 간나 새끼가 있는가 하문, 비무장왕에서부터 전대극, 김태진이 같은 용사가 계속 이어지거든.”

강찬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엉뚱한 답이 나왔다.

“김태진이라문 국장 동지에게 물먹고 물러나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다. 김태진이 그거이 물건이었어. 내가 그 간나 부하들을 죽이고 나서 우리 쪽 초소 일곱 곳이 아작났어. 모조리 심장을 뚫려 죽었는데 쉬쉬해서 그렇지, 경비 책임자가 총살당하고 기랬다.”

위민국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강찬이랑 붙었을 때 꼼짝도 못했다. 기카고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겁이 나드만. 살면서 처음이었더랬지. 잊지마라. 남조선에서 반드시 둘은 제거해야 돼.”

위민국은 앞자리에 강찬이 앉아 있기로라도 한 것처럼 눈을 번득였다.

“지금까지 남조선에 용사가 나오면 우리도 기만한 인물이 나왔는데 이건 차원이 달라. 그러니까 이번에 무조건 흔들라. 주변을 사정없이 흔들어서 정신을 흩트려 놓고 한 방에 해결하는 기야. 몇 놈 되지도 않아. 내일부터 시작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

옆에 앉았던 부하는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

호텔에 도착한 강찬은 석강호와 헤어져 방으로 올라갔다.

카드 키가 있었지만, 그래도 벨을 눌렀다.

달칵.

문을 연 강대경이 검지를 입에 세웠다.

“엄마 잔다. 운동하고 사우나까지 했는데도 억지로 버티더니 네 전화받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말을 하는 강대경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TV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다친 곳은 없고?”

“예.”

소파에 앉은 강대경이 강찬을 살폈다.

“결심이 선 거냐?”

강찬은 시선만 들었다.

“전에 회사로 찾아와서 물었던 일 말이다. 네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던 거, 그때도 이런 일이었던 거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오전에 대사님이 유럽 몇 나라를 돌아보라고까지 하는데 아직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어요.”

“네가 하는 일이 혹시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일이냐?”

워낙 진지한 얼굴로 묻는 바람에 강찬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거 하려면 엄청난 훈련도 받고 해야 하는 걸 텐데, 대사님과 친분이 있다고 어린 너를 그 위험한 곳에 넣을 리도 없고. 용인에서, 그리고 어제 지하 주차장에서 보면 모르는 아빠가 봐도 예사롭지는 않고. 그것도 프랑스어처럼 인터넷에서 알아서 배운 거지?”

“죄송해요.”

강대경이 허탈하게 웃었다.

“세상에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잘나길 바랄 거다. TV에서 누가 금메달을 따면 내 자식도 저랬으면 싶고, 또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면 내 자식도 저렇게 사람들에게 박수갈채 받았으면 싶기도 하지. 너 발표회장에 있을 때 부럽다는 사람들 많았다.”

“아버지는 제가 어땠으면 싶으세요?”

“난 네가 좀 평범했으면 싶다.”

강대경은 강찬이 안쓰러운 얼굴이었다.

“대학 못 가도 좋고, 공부 좀 못해도 좋으니까 그저 평범하게, 네 또래 아이들이 즐기는 거 즐기며 살았으면 싶은 거야.”

말을 하고 미안했는지 강대경은 손을 뻗어 강찬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네 재능이 빛나는 일이 위험한 일일 거라는 건 짐작한다. 전에도 아빠가 얘기했었지? 그렇더라도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아빠는 반대하지 않는다.”

사람 죽이는 일이란 걸 강대경이나 유혜숙이 짐작하고 있는 건가?

“아빠랑 엄마,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

“아버지?”

“네가 우리를 지키느라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엄마가 큰 결심 한 거지. 그런데 사실 아빠는 공트 자동차 방문하는 거라 설레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뭐라고 답을 하기 어렵다.

강찬이 탁자로 시선을 떨어트렸을 때였다.

침실 문이 열리고 유혜숙이 거실로 나왔다.

“일어나셨어요?”

유혜숙은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비비면서도 강찬을 보고 웃었다.

“깨우지?”

“피곤하실 텐데 좀 더 주무시죠.”

“아냐. 이 정도가 딱 좋아. 좀 자고 낫더니 피곤도 싹 풀렸어.”

강대경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는 강찬을 보았다.

“출출한데 우리 1층에 다녀와도 되겠니?”

“예, 괜찮을 거예요.”

호텔 안을 돌아다니는 거라면야.

“여보, 우리 빵 사러 가자.”

“이이는! 이렇게 하고 어딜 가?”

유혜숙이 다급하게 머릴 만졌다.

“빵만 사올 건데 뭘? 다녀오자.”

강대경은 강찬과 둘이서라도 다녀오겠다는 투였다.

“아들, 갈래?”

“그럼요. 같이 가세요.”

강찬의 답을 들은 유혜숙이 방으로 들어가 빗질을 하고 카디건을 입었다. 나서기 직전에 입술만 가볍게 발랐는데 10분을 훌쩍 넘겼다.

주철범이 나타나서 판을 키우지만 않았으면 싶었다.

***

전대극은 서서 세수하는 사람처럼 얼굴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원하셨던 일 아닙니까?”

“그랬지. 그런데 강찬을 너무 함부로 쓰는 것 같아서 그래. 나부터라도 지키고 아껴줘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느낌이라서.”

김형정도 공감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이 터질 것을 감각으로 알아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야말로 작전이나 경호에 특화된 인물인 거지. 하지만 이제 강찬은 그런 일에 쓰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야. 요사이 국가정보원에 정보 교류 신청이 쌓인다면서?”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야. 외국 특수팀에서 합동훈련 신청이 계속 들어와. 위탁교육 신청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나라도 생겨났어. 이게 모두 강찬 혼자서 해낸 일이다.”

“듣고 보니 모두 강찬 씨가 해낸 일들입니다.”

전에도 국가정보원과 특수팀은 있었다.

하지만 강찬이 활동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린 제대로 대우해준 게 없어. 고작 세금 문제 해결해줬고, 호텔에 피하게 한 게 전부 아닌가? 운동으로 치자면 혼자 세계무대를 뒤흔들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를 밥만 먹여주는 꼴이지.”

전대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데다 경호까지 맡기려니 염치가 없다. 청와대에 하는 행사만 돼도 충분히 감당하겠는데…….”

“허 의장이 제안한 행사라 그런지 이상하게 께름칙합니다. 대법원장, 국무총리, 그리고 대사관 관계자까지 모두 참석하는 행사인데 장소도 내키지 않습니다.”

“일단 부탁한 일이니까 이번까지는 도움을 받지.”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대극과 김형정 모두 조금은 안심되는 얼굴이었다.

***

“이게 이렇게 비싼 거였구나.”

케이크 조각을 들여다보던 유혜숙이 놀란 표정으로 상체를 세웠다.

일요일이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유혜숙을 힐끔거리며 빠르게 조간 케이크를 사가고 있었다.

“드실래요?”

먹고는 싶은데 짐작했던 가격이 아닌 거다.

마치 가정형편을 잘 아는 착한 딸이 먹고 싶은 과자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모처럼 온 건데 내가 사 줄게. 걱정하지 말고 당신 먹고 싶은 거 골라.”

“애들한테 미안해서 그래, 여보.”

“찬이랑 같이 있잖아. 내가 더 벌어서 애들도 이런 거 맛보게 할 테니까 오늘은 기분 좋게 사 먹자. 나 출출하다.”

유혜숙이 마음의 결심을 내린 순간이었다.

세 조각 남았던 케이크를 앞에 나섰던 손님이 모두 주문해 버렸다.

유혜숙은 미안한 얼굴이었다.

“어머니, 저쪽 진열대에도 있어요.”

벌써 진열대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강찬은 유혜숙과 함께 호두 파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강대경이나 유혜숙 모두 호두 파이는 별로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블루베리가 올라간 케이크 종류를 고르다가 호두 파이를 보니까 강찬도 목이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단팥빵은?”

강대경이 고개를 돌렸는데 빈 바구니만 ‘단팥 앙금’이란 명찰을 차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안해, 여보.”

“우리가 늦게 온 거야. 당신이 미안할 일이 뭐 있어? 그나저나 여기 빵이 맛있긴 맛있나 보다. 그렇지?”

미안해하는 유혜숙이 안쓰러워 보였다.

방법이 없나?

강찬이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찬아. 우리 파이 하나 사 가지고 올라갈래?”

강대경이 고개를 빼며 강찬을 불렀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다.

곧 저녁을 먹기도 해야 해서 강찬은 두말하지 않고 호두 파이를 하나 주문했다.

계산은 방으로 돌리기로 하고 사인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온 세 식구가 소파에서 파이를 먹었다.

“이것도 맛있다!”

유혜숙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따끈한 차, 호두 파이, 그리고 가족.

빌어먹을 샤흐란 새끼가 흔들어 대더니 이제는 위민국이 지랄이다. 그 새끼만 없었으면 어제 치킨 먹어가며 영화 봤을 거고, 오늘 집에서 행복했을 거다.

가고 싶지 않은 외국 여행을 결심한 유혜숙의 심정은 어떨까?

강찬은 파이를 꼭꼭 씹어서 삼켰다.

“저녁은 뭘 먹을까?”

“이이는, 파이를 먹으면서 저녁 생각이 나?”

유혜숙이 석강호를 보면 뭐라고 할까?

“참, 아들! 아빠랑 엄마, 프랑스에 다녀와도 돼?”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러엄. 엄마 기분 좋게 다녀올게.”

강대경이나 유혜경이나 거짓말은 진짜 못한다.

눈에 ‘절대 가기 싫음!’이라고 딱 쓰였다.

“어머니.”

“응? 왜, 아들?”

“가지 마세요.”

유혜숙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같이 있어요. 저 안 불편해요. 그냥 아버지랑 어머니가 이러고 계신 게 죄송해서 그렇지 전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내키지 않으시면 같이 있어요. 제가 저녁에 치킨도 사올게요.”

유혜숙이 강대경을 보았다.

“찬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도 당신이 억지로 프랑스 가는 거 별로다. 그러니까 편한 대로 하자. 오늘 둘이 운동해 보니까 나쁘지 않던데?”

유혜숙은 그래도 답을 하지 못했다.

“가지 마세요. 혼자 심심해요.”

강대경이 먼저 웃었고, 유혜숙이 따라 웃었다.

“그러자, 여보! 우리 제주도에서 호강했던 것처럼 또 아들 덕에 한 일주일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실컷 운동하며 지내자.”

“미안해, 여보.”

“뭐가 자꾸 미안해? 내가 고맙다!”

가족이란 이런 거구나.

두 사람과 있으면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결론은 호텔에서 함께 지내는 거였다.

***

월요일 오전까지 그럭저럭 평화롭게 흘렀다.

석강호가 부인과 딸의 출국을 지켜주러 요원들과 함께 공항에 다녀온 것이 가장 특별한 일이었다.

수요일에 행사가 어떤 것인지, 또 어디에서 하는지 아직 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전대극과 김형정이라면 분명 계산이 있을 거다.

강찬은 먼저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월요일 오후 1시경에 미쉘이 세실과 함께 출금 신청서에 사인을 받으러 왔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있다고 하면 분명 객실로 올라가겠다고 할 거고, 그다음부터 아예 호텔에 죽칠 것 같아서 강찬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로비 라운지다.

주철범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어딜 다쳤나?’

소리도 없이 늘 나타나던 놈이 보이지 않으니 심지어는 걱정도 됐다.

“여기에 사인하면 돼.”

강찬은 세실이 내민 세 장의 종이에 사인했고, 미쉘이 데려온 변호사가 내민 여덟 장의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변호사님. 먼저 출발하세요.”

“알겠습니다. 서류 처리 끝나면 연락 드리지요.”

디아이를 인수할 때 보았던 최영 변호사가 깍듯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건물 인수는 이걸로 다 된 거야. 축하해, 차니.”

“나도. 지점장님도 꼭 축하한다고 전해 달래.”

“고마워.”

미쉘이 강찬의 표정을 살폈다.

“걱정되는 일 있어?”

“아니.”

강찬은 미쉘과 세실에게 미안했다.

건물 인수가 정리되는 날이라 밥 먹으면서 와인이라도 사는 게 맞다. 그런데 찜찜함이 점점 심해져서 당최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강대경과 유혜숙 앞에서야 어떡해서든 표정을 관리했는데 지금은 눈빛도 그렇고, 표정도 말을 듣지 않았다.

혹시 위민국이 미쉘을 알고 있을까?

강찬의 시선을 느낀 미쉘이 장난치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 정말 크다.

“담배 있어?”

“잠깐 나갔다 올까?”

“그러자.”

세실이 눈치껏 자리에 있겠다고 해서 강찬은 미쉘과 함께 현관으로 움직였다.

“여기!”

찰칵. 찰칵.

담배를 피우자 숨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이었다.

19층의 빈방으로 가면 좀 더 편하겠지만, 그랬다가 강대경이나 유혜숙과 마주치면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다.

“미쉘. 내가 하는 일 짐작하지?”

미쉘이 커다란 눈으로 강찬의 말을 기다렸다.

“일이 복잡하게 꼬여서 당분간 조심하는 게 좋아. 혼자 다니지 말고, 늦게 다니지 말고. 알았지?”

“혹시 내 걱정하는 거?”

강찬은 웃고 말았다.

“알았어. 조심할게. 대신 일 정리되면 세실이랑 신디랑 같이해서 시간 좀 내 줘.”

“그럴게. 오늘은 미안하다.”

“괜찮아. 어딘지 불편한 얼굴이어서 걱정했었어. 차니는 괜찮은 거야?”

“나야 뭐. 하여간 당분간은 혼자 다니지 마.”

“로드 직원도 있고, 연기자들 지내는 곳에서 함께 있어도 돼.”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둘이서 담배를 하나씩 더 피우고 자리로 돌아왔다.

강찬과 미쉘의 표정을 살피던 세실이 안심된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맞았다.

“오늘은 미안해, 세실. 내가 일이 좀 있어서 표정도 그렇고, 시간도 그래. 이 일 정리 되는 대로 밥 살게.”

“많이 힘든 일이야?”

“그냥.”

사회생활하는 사람답게 두 사람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찬은 로비 라운지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두근거리는 것도, 그렇다고 쿵쿵거리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조금씩 주변을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20분을 창밖을 보며 있었다.

미쉘부터 시작해서 아는 모든 사람을 경호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김태진의 회사에 부탁하면?

총을 들고 달려드는 놈들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꼴이다.

위민국이 노리는 게 뭘까?

김형정이 놈을 조금만 빨리 찾았으면 싶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디쇼? 나 지금 호텔에 도착해요.”]

“로비 라운지인데 방으로 와라.”

[“알았소.”]

전화를 끊은 강찬은 방으로 움직였다.

일단 주변을 지킨다.

김형정이 위민국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

하루가 마감되는 시간이었다.

최성곤은 온종일 정신이 없었다.

합동훈련이 쇄도하는 통에 위에서 내려온 전화와 서류들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군대에도 서류는 있다.

최성곤의 의견이 결정에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모든 신청마다 의견서를 첨부해야 했다.

살다가 이런 날이 있다.

엄청난 폭발이 있었는데 다친 대원 하나 없고, 차동균은 살아났다.

특수군을 맡으면서부터 꿈꾸던 모든 것이 이루어진 날이다.

“이걸로 끝이지?”

“예, 장군님.”

“대원들은?”

“저녁 식사 중입니다.”

“그럼 난 잠시 나갔다 오마.”

“알겠습니다.”

부관이 무전을 했다.

잠시 후, 막사를 나선 최성곤은 번호판이 가려진 승용차를 타고 부대를 빠져나왔다.

산길을 빠져나와 시골 길을 300m쯤 달리면 국도다.

그곳에서 터미널 쪽으로 10분이면 군인 아파트가 나온다.

최성곤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차동균이 살았다.

집에 전화하라고 했어도 녀석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해준 다음, 모처럼 마누라를 찾아가…….

부아아아앙!

최성곤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트럭이 코앞에 있었다.

콰아앙! 콰작! 콰자작!

누군가 몸을 집어 던진 것 같았다.

물에 빠진 것처럼 사방이 흐릿했다.

피범벅인 채로 꺾인 운전병의 머리가 보였다.

“끄응.”

왼팔로 겨우 몸을 일으킬 때였다.

번득이는 칼을 든 사내가 부서진 유리창으로 상체를 디밀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푸욱!

“끄윽!”

목덜미를 노린 칼이 쇄골 바로 옆을 깊게 파고들었다.

콰악!

최성곤은 적의 손목을 꺾었다.

힘이 모자랐다.

적의 왼손 엄지가 눈을 파고들었다.

“끄으응!"

퍼석!

그때 반대쪽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푸욱! 푸욱!

“크르륵!”

최성곤은 그래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푸욱! 푸욱!

칼이 박히는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빠르게 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강찬의 모습도 보였다.

‘강찬 씨……!’

그리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