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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성격대로 가자.
삼화유지는 도로에서 불쑥 올라앉았다.
패널로 만든 흰색 벽과 파란색 지붕의 간이건물, 앞쪽에 널찍한 주차장이 전부다.
승합차가 도착하자 버스가 입구를 열어주었고, 들어서는 순간에 완벽하게 차단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던 김형정이 강찬과 석강호를 공장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끼이이익.
커다란 문을 옆으로 밀자 안에 있던 특수팀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강찬과 석강호는 회색 군복에 방탄조끼, 두건, 헬멧을 걸치고, 평소처럼 무장했다.
철컥. 철컥.
탄창을 끼울 때면 늘 감각이 새롭다.
실탄 한 발이 사람 목숨 하나를 가져오는 거다.
김형정이 커다란 지도를 걸개에 걸었다.
“현재 대원들이 있는 지역이 이곳이다.”
지도의 한쪽을 손으로 짚은 김형정이 붉은색 표식으로 검지를 옮겼다.
“보다시피 외딴 지역이고, 뒤편에 낮은 산이 전부다. 작전 예정 시간은 14시 정각이고, 현재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감시 중이다. 지휘는 강찬 씨가 맡는다.”
대원들 사이로 묘한 안도감과 흥분이 떠돌았다.
“강찬 씨.”
김형정이 부르는 소리에 강찬이 앞으로 나갔다.
어느 틈에 특수팀을 이끌고 있는 꼴이다.
“오는 길에 전화가 왔었다.”
강찬은 먼저 대원들을 쭉 둘러보았다.
곽철호를 포함해서 모두 24명이었다.
“최종일과 차동균이 의식을 회복했단다.”
대원들이 서로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오는 길에 지형도를 보았는데 일단 조를 두 개로 나눈다. 석강호가 맡은 조가 산을 넘고, 내가 맡는 조는 도로를 타고 앞에서 접근하겠다. 주의할 게 있다.”
지도를 힐끔 보았던 강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원들을 훑었다.
“사명감이 불타면 자꾸 몸이 먼저 움직인다. 리듬을 깨지 마라. 위험한 곳에 먼저 들어서겠다고 무리를 하는 순간,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대원들까지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
대원들이 굳은 얼굴로 강찬의 말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런 가르침은 없었다.
무조건 달리고, 쏘고, 작전에 성공하는 법만 익혔지, 리듬을 깨지 말라는 조언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강찬이 대원들을 보며 피식 웃은 다음 말을 이었다.
“편하게 앉아 봐. 등받이에 등 기대고, 다리 편하게 하고. 저기 석강호처럼.”
끼기깅. 끼이잉.
대원들이 석강호를 흉내 내는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지금의 눈빛과 자세를 잊지 마라. 중국 공항을 폭파시키고 온 특수팀의 자존심을 지켜라. 정말 긴장하려면 러시아, 영국, 중국이 해야지.”
곽철호가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놈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말이 많아진다.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 싶고, 한 놈이라도 덜 다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자폭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발견 즉시 사살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물러난다. 도착과 동시에 저격수 배치가 가장 먼저다. 질문?”
강찬의 말이 끝나자 대원 중에서 피식 웃는 놈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강찬을 흉내 내는 놈들이 생긴 거였다.
***
대원들을 작전에 보낸 최성곤은 모형도시 앞에 지프를 세우고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전다운 작전에 보내본 경험이 없어서 이런 버릇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모의 전투에서 대원들의 자존심이 엉망으로 뭉개지고, 그다음 실탄 훈련, 그리고 그날 작전을 시작으로 어느새 오늘도 작전에 나서는 특수팀이 되었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페츠나츠를 전멸시키다시피 했고, 책상 맞은 편에 SBS 헬멧도 떡하니 올려놓았다.
그런데 사람 참 간사하다.
그토록 부러워했던 세계적인 특수팀을 상대로 엄청난 전과를 올린 대원들인데, 중국 공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온 자랑스러운 대원들인데도…….
최성곤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늙은 아버지처럼 대원들을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제도 차동균의 집에 들렀다.
소고기 두 근, 슈퍼마켓의 한쪽 진열대를 쓸다시피 담은 과자, 음료수, 그리고 현금이 담긴 봉투.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마누라가 속이라도 풀겠다고 지랄, 지랄해대겠지만, 차동균이 보고 싶고 그 녀석의 남은 가족이 눈에 치이는 걸 어쩌겠나.
프랑스에 남은 대원 두 놈의 집, 그리고 차동균의 집에 가져다주느라고 장군 월급이 남아난 것이 없다.
후회?
그런 걸 했을 거면 벌써 진급해서 다른 자리에 앉았을 거다.
‘이놈아, 제발 좀 일어나라.’
야전군 사령관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다.
얼마 전까지 작전에 내보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작전에 보내보고 나니, 이 짓도 오래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최성곤의 전화가 울었다.
마누라가 벌써 알았나?
카드 명세서와 출금 내역서가 전화에 찍혔을 테니까.
안 받으면 안 된다.
받을 때까지 벨이 울리고, 지랄로 끝날 일이 이혼 요구로 달려간다.
인상을 찌푸린 최성곤이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보았다.
뭔지 모르지만, 번호가 길었다.
최성곤은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장군님. 차동균입니다.”]
최성곤은 세상이 딱 멈춘 것 같았다.
[“장군님?”]
“들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힘없는 웃음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걸 보니까 죽지는 않겠구나?”
[“장군님이 가르치셨잖습니까?”]
이놈이 이렇게 넉살이 좋았나?
“집에 전화는 했냐?”
[“나중에 하겠습니다.”]
“얼른 전화해 줘.”
[“알겠습니다.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귀찮다. 번거롭게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서 와.”
[“예. 충성.”]
전화를 끊은 최성곤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푸흐흐흐.”
묘한 웃음이 모형 도시를 타고 돌았다.
***
치잇. “저격수 배치 끝냈소.”
석강호의 무전을 들은 강찬은 다시 한 번 목표 지점을 살폈다.
뒤쪽 산은 낮고 앞쪽은 뻥 뚫린 마당이다.
창고가 붙어있는 2층 단독주택의 형태라 무조건 경계병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강찬은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다음, 2층 베란다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 정도라면 밤에도 기습하기 어렵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북한군의 위력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격투술, 사격,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까지,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생각이 너무 굳었다는 것 정도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몸을 가릴 것이 전혀 없는 공간을 달려가?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건물 2층을 노려보았다.
***
위민국은 소파에 앉은 채로 잡아먹을 것처럼 허하수를 노려보았다.
그의 뒤에 각진 턱을 한 사내 둘의 시선 역시 다르지 않아서 허하수는 어느 정도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의장과의 약속을 믿고 중국과 교신도 끊었소. 이제 와서 모른 척한다면, 북조선과 나를 믿고 따라준 부하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요.”
“그건 위 국장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잘못도 있는 거요.”
위민국의 눈이 길게 찢어지자 허하수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정보를 믿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국정원 원장과 강찬이가 알고 있었소. 기카고, 의장도 지금 강찬이와 그 부모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않소?”
“위 국장. 지금은 내 형편이 꼼짝하기 어려우니까 당분간만 숨어 있읍시다. 내 조만간 약속했던 것들을 반드시 지킬 거요. 대신…….”
“대신 뭐요?”
허하수가 흘린 말꼬리를 위민국이 곧바로 잡아들었다.
“거사만 성공해 주시오.”
위민국이 볼을 씹었을 때였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그의 품에서 전화가 울어댔다.
위민국은 허하수를 노려본 채로 전화기를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번득.
위민국의 눈이 쭉 째졌다.
“몇 놈이나 왔네?”
볼이 몇 번 씰룩인 다음이다.
“잘 들으라. 명예롭게 가라우. 남은 식구들은 내가 잘 챙겨 주갔어.”
전화를 끊은 위민국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핏발이 곤두선 눈으로 허하수를 노려보았다.
“위 국장……?”
“의장이 만들어 준 아지트를 어케해서 남조선의 특수팀이 알았갔소?”
허하수도 분명 놀라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의장이 어떤 방식을 택하든 상관없소. 일본의 손을 잡든, 중국에 꼬리 치든 상관없단 말입니다.”
언짢다는 표정으로 허하수가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우리와의 약속만 지켜준다면 자폭이라도 하겠단 말이오. 2주의 시간을 주갔소.”
“그건 약속과 달라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하지 못하는 게 있는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정할 수는 없는 거요.”
허하수는 의외로 완강하게 나왔다.
“그리고 약속은 윗분들과 정한 거지, 위 국장과 한 것도 아니요. 내 지킵니다. 지켜요. 그러니까 우선 들키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게 좋겠소. 그리고 안산에서 다른 증거가 나오지는 않겠소?”
위민국이 계속해서 볼을 씹었다.
“절대로 증거가 나오지는 않을 거요. 가갔소.”
위민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허어, 그것참.”
허하수는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강을 향해 탄식을 쏟아냈다.
남양주에 있는 허하수의 별장이었다.
***
포위망을 좁히고 10분이 지나도록 강찬은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가장 교과서적인 방법은 엄호사격을 가하고, 두 명이 달려가 문을 부수는 것이다.
창이라고 1층과 2층 베란다 창과 방에 달린 두 개의 창이 전부여서 엄호사격을 하면 적들이 반항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대원들이 빠르게 살피는 눈초리도 안다.
공장 건물에서 무전기를 켜놓고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김형정의 애타는 마음도 짐작한다.
그런데 오물통을 향해 뛰어드는 것처럼 찜찜한 느낌 때문에 강찬은 건물을 노려보기만 했다.
비가 온 직후다.
젖은 땅에서 올라오는 척척한 느낌이 한층 더 불쾌한 기분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쯧!’
토요일 밤에 아파트에서 떨쳐내지 못했던 불쾌함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기도 했다.
강찬은 대원들을 둘러보고 다시 건물을 노려보았다.
‘죽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약 적이 저따위 말을 했다면 숨도 안 쉬고 달려들었을 거다.
총이면 총, 칼이면 칼.
저렇게 도발하는 적을, 그것도 강대경과 유혜숙을 노리는 적을 절대로 그냥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건물이 강찬을 도발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물을 뒤집어쓴 귀신이 강찬을 끌어들이기 위해 끈적이는 느낌이었다.
피식.
강찬은 매섭게 건물을 노려보았다.
안산의 귀신 대 죽음의 신.
듣기에 거창한데 실제로는 강찬이 건물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는 거다.
5분쯤 더 흘렀다.
그리고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다.
만약 이동 중이었다면 무조건 멈추게 했을 거다.
치잇. “다예. 저격수만 놔두고 10m만 뒤로 빠져.”
치이잇.
멈칫한 다음이다.
“알았소.”
석강호의 답이 들렸다.
강찬이 있는 곳에서 건물까지는 충분히 20m가 넘어서 굳이 뒤로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무전은 김형정도 다 들었다.
상관이라면 반드시 질문이 있었겠지만, 김형정은 잠자코 있었다.
이런 건 설명이 안 되는 거다.
그저 석강호 정도 돼야 뭔가 있나 보다 할 정도?
강찬이 집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건물의 유리창이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자자자자자작.
헬멧을 바닥에 처박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바람과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강찬과 대원들을 덮쳤다.
수류탄 하나만 터트려도 바닥이 울리긴 한다.
그런데 지금 폭발은 아예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후아악!
폭발이 강렬할수록 가장 뒤에 부는 바람은 폭발 현장으로 빨려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허공에 떠 있던 잔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다. 지금처럼.
강찬은 고개를 털어내고 건물이 있던 곳을 보았다.
건물은 뼈대만 남았다.
철컥.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잇. “다예. 상황보고.”
치잇. “다친 사람 없소.”
“곽철호, 현장 살펴보고 철수해.”
“알겠습니다.”
강찬은 곧바로 공장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뿌옇게 떠 있는 시멘트 가루와 귀청이 얼얼한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람 허리 높이의 언덕을 내려오자 김형정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폭했습니다. 건물이 뼈대만 남았을 정도니까 건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김형정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대원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무전이 있은 직후에 폭발이 있었다.
강찬을 몰랐다면 적과 내통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 일이다.
찰칵.
“후우!”
공장 건물로 들어온 강찬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철커덕거리는 총기 소리와 함께 석강호와 대원들이 건물로 들어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다르게 말하면 오늘 한방에 갈 뻔한 거다.
담배를 피워문 석강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커피 없냐?”
“이쪽에 있습니다. 한잔 타드릴까요?”
“부탁하자.”
대원 서넛이 봉지 커피를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갔다.
“위민국이 저 안에 있었겠소?”
“잘 모르겠다.”
대원 한 명이 종이컵을 들고 와 건네주었다.
비 오는 날, 담배와 봉지 커피.
거기에 가을, 그리고 허탈함까지.
궁합이 짝짝 맞아 떨어지는 날이다.
잠시 후, 김형정이 공장건물로 들어왔다.
“말씀대로 증거랄 게 아예 없습니다.”
멀리서 “커피 드시겠습니까?” 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에 김형정도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강찬 씨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커피를 마신 김형정이 뒷북을 쳤다.
“아무래도 한발 늦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강찬 씨.”
강찬은 담배를 종이컵에 던지고 김형정을 보았다.
“오늘도 정말 감으로 안 겁니까?”
이 질문하고 어떻게 전투 능력과 프랑스어를 익혔냐는 질문에는 정말이지 할 만한 대답이 없다.
“저희는 이만 철수하랍니다.”
곽철호가 다가와서 짧게 경례를 했다.
“고생했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대원들의 눈빛에 조금 더 노련미가 쌓여 있었다.
대원들이 모두 나가고 셋만 남았다.
“전 실장님께서 전화가 있었습니다. 강찬 씨만 괜찮다면 함께 밥이라도 먹자 하시던데요.”
호텔에 강대경과 유혜숙이 걱정하며 있는 참이다.
“오늘은 그냥 갈게요.”
“강찬 씨. 지금 실장님이 머리털이 빠지기 직전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다고 하지 마시고 강찬 씨가 도움을 좀 주면 안 되겠습니까?”
“전 실장님을요?”
“돌아오는 수요일에 대통령께서 삼부요인과 주요국 대사들, 그리고 관련인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잡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허하수 의장이 의심스러운 상태고, 참석자들이 워낙 많아서 경호가 쉽지 않습니다.”
“허하수가 참석하면 오히려 안전하지 않나요?”
“폭발이야 없을지 몰라도 무기를 들여오는데 협조한다면 쉽지 않지요. 솔직하게 강찬 씨에게 이런 부탁하지 말자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폭발을 보고 우리 교육받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게 뭡니까?”
질문은 석강호가 했다.
이 새끼도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다.
“비무장왕이 했다는 말입니다. 감각이 살아있는 적을 만나면 한 가지만 생각해라.”
“도주겠지요.”
“맞습니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비무장왕이란 사람이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
“전 실장님 살려주신다고 생각하고 도와주십시오, 강찬 씨.”
경호는 대통령을 하는 건데 살리는 건 전대극이란다.
“그렇게 하죠. 대신 오늘은 일단 호텔로 갈게요.”
“고맙습니다, 강찬 씨. 그럼 제가 실장님께 전화 드리겠습니다.”
강찬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다.
“참! 석 선생. 내일 점심때 출국입니다. 여권은 아침에 가져다 드릴 거고, 호텔과 일정은 현지에서 요원이 나와 준비할 겁니다.”
건물을 나오자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