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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성격대로 가자.
“유라시아 철도는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당장 사우디가 10월부터 원유생산량을 배로 늘립니다.”
강찬은 멍하니 라노크를 보았다.
철도를 막겠다는 뜻인 거 같은데 뭔 놈의 원유생산량을 늘린다는 건지, 당최 연결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러시아의 경제를 무너트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우디가 기름을 많이 생산하는데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나요?”
몰라서 묻는 거다.
창피하다거나 부끄럽지는 않았고, 라노크 역시 당연한 질문이라는 얼굴이었다.
“러시아는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입니다. 사우디가 무한정 기름을 싸게 팔면 러시아는 정권이 바뀔 정도로 경제가 휘청입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죽게 생기면 사우디가 기름값을 다시 올리는 거지요.”
“러시아도 계속 싸게 팔면 되지 않나요?”
“싸게 팔면 사우디는 견딥니다. 물량이 세계 1위니까요. 하지만 러시아는 한정된 물량을 가지고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라 견디지 못합니다.”
“대사님. 사우디가 기름을 많이 생산하는 것과 제가 정보국 연수를 가는 것이 관련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라노크가 눈꼬리를 길게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사우디가 원유를 무한정 공급하는 동안, 미국은 달러화로 한국을 무너트리려 할 것입니다. 수출해서 들어오는 달러는 줄고, 수입하는 데는 더 많은 달러를 써야 합니다.”
석유에 달러까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다 골치까지 아픈 이야기다.
“저들의 1차 목표는 러시아와 한국입니다. 악착같이 목줄을 물려고 달려들 겁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 협상밖에 없습니다.”
“그건 대통령이나 관료들이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보국의 협상이 먼저입니다.”
“결국, 제가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잖습니까?”
“러시아와 확실하게 손을 잡으면 됩니다.”
“바실리하고요?”
“그렇습니다.”
라노크가 재떨이에 시가를 돌려가며 재를 떨어냈다.
“그러려면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힘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소련의 정보국과 대등할 정도로 말입니다. 조직 전체가 짧은 시간 안에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지요. 이럴 땐 영웅이 필요합니다.”
작전 몇 개 성공했다고 영웅?
강찬은 어딘가에 정말 영웅이 될 놈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만 웃고 말았다.
“강찬 씨가 유라시아 철도를 실현하는데 가장 중심에 서는 게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실질적인 힘을 기르게 되지요. 정보가 먼저 앞서고, 다음으로 정치, 그리고 경제입니다.”
무언가 라노크의 바람이 가득 담겨 있는 눈치였다.
라노크가 나쁜 제안을 할 리는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강하게 밀어붙인 적도 없었다.
“강찬 씨. 이제부터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는 나라와 연결하지 못하는 나라가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력을 행사하던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 겠지요. 사우디는 유라시아 철도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자원이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철도 연결은 몽골과의 연결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몽골은 또 뭔가요?”
“광물 자원의 보고죠.”
갑자기 고등학교로 돌아가 수업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다 아는 말인데 뜻은 전혀 모른다. 마치 수학 선생이 공식을 읽어대는 것처럼 말이다.
“강찬 씨가 보여준 일련의 능력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프랑스도, 독일도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싸움입니다. 이럴 때 강찬 씨가 나서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요.”
“유라시아 철도를 구상하고 이뤄내신 분은 대사님이십니다.”
“강찬 씨는 각국에서 중재를 요청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직 그런 요청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얼마 가지 않아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전에 강찬 씨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제안은 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다.
위민국에 관한 정보를 얻을까 기대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유럽 정보국 연수를 돌게 생긴 거다.
“자!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라노크가 “서류와 전화기를 가져다주지?” 하고 방을 향해 말을 던지는 순간, 보좌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강찬과 석강호의 전화기, 그리고 커다란 종이봉투를 라노크에게 건네주었다.
“우선 전화기를 받으시죠.”
처음엔 벨이 울리는 게 싫어서 놓고 다니고 싶던 전화기다. 그런데 지금은 손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중국 작전에 잘못된 안내인을 보낸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준비한 것입니다.”
라노크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은 강찬은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봉투에 꽉 차는 크기의 사진이었고, 주인공은 위민국이었다.
도로에 세워놓은 회색 승합차의 앞이다.
열 장 가까이 되는 사진 뒤에는 약도가 있었다.
강찬은 라노크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위성을 세 개나 동원했습니다. 그 외에 본국 정보국과 정보총국이 다른 일을 멈추다시피 매달려서 찾아냈지요. 배신했던 직원의 제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아무렴 배신자가 순순히 제보할 리가 있겠나?
정보총국의 고문을 못 이겼다는 뜻이다.
확실히 라노크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물인 것만은 분명했다.
같은 편일 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적일 때는 반드시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인물.
“양범이 빠져나가고 강찬 씨가 중국에서 작전을 펼칠 때 안산으로 옮겼습니다. 심지어는 중국 대사관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런 걸 양범이 모를 수가 있나요?”
“양범은 아직 중국에서 완벽하게 권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대사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지요. 이 상태에서 양범이 다시 밀려나면 승부가 갈리겠지요.”
강찬을 바라본 채로 라노크가 나직하게 말을 덧붙였다.
“라누이 뚜리 샤슝 그리(La nuit tous les chats sont gris).”
‘밤에 보이는 모든 고양이는 회색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이다.
어둠 속에서는 매사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니까 어느 놈이 어느 편인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라는 충고이기도 했다.
“선물 감사합니다.”
“어제 아파트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은 주차장 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둘러댔더군요. 하지만 시내에서, 그것도 서울 근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현재 정권에는 좋을 게 없습니다. 현명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조언은 라노크이기에 가능한 거다.
강찬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차를 마셨다.
“강찬 씨.”
찻잔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들었을 때 라노크는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표정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삶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요. 잘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 강찬 씨가 그렇게 살았으면 싶습니다.”
대강 이야기가 끝났다.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좌관과 요원들이 안쪽에서 나와 문을 열었고, 복도에 대기하던 요원들이 경계 태세를 갖췄다.
“위민국을 정리하고 나서 찾아뵙겠습니다.”
“바로 볼 수 있겠군요.”
강찬은 라노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까지 움직였다.
라노크를 보낸 강찬은 바로 19층으로 움직였다.
치잇. “석강호. 방으로 올 수 있어?”
치잇. “방에 있소.”
이 새끼는 늘 한발 빠르다.
강찬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TV를 보고 있던 석강호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여기 전화기.”
“아흐! 정말 반갑네!”
석강호가 전화기를 받고는 통화기록을 살폈다.
“그 양반, 센스있게 충전까지 시켜놨소.”
“앉아 봐.”
강찬은 물 한 병을 들고 소파에 앉아 라노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뭐요?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바로 달려갑시다.”
“우선 김 팀장님하고 전화해보고 움직이자.”
전화기를 찾아서 가장 먼저 누른 번호가 김형정이었다.
[“강찬 씨! 전화기를 찾았습니까?”]
“예, 팀장님. 그리고 꼭 만나서 의논드릴 이야기가 있는데 이리 오실 수 있나요?”
[“급한 일입니까?”]
“위민국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고 오셨으면 싶습니다.”
[“지금 출발하죠.”]
강찬은 전화기를 탁자에 놓고 소파에 기댔다.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석강호가 리모컨을 들어서 TV를 껐다.
안산에 가서 위민국을 잡으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끝이다.
작은 물병으로 물을 반쯤 마셨을 때 벨이 울렸다.
아무리 일요일지만 너무 빠른데?
치잇. “강찬 씨, 김형정입니다.”
강찬이 일어나 문으로 움직일 때 무전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안심해도 되는 거다.
강찬은 그래도 구멍을 통해 확인한 후에 문을 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세요?”
“상황이 이럴 때는 또 나름의 방법이 있습니다.”
김형정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들어섰다.
“커피 좀 드릴까요?”
“좋지요.”
석강호가 움직여서 커피를 가져왔고, 셋이서 소파에 앉았다.
시간을 끌 게 없는 거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주었던 사진을 보게 한 다음, 라노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전했다.
“흐음.”
김형정이 마른침을 삼키며 사진을 노려보았다.
“바로 움직여야겠군요.”
“그렇죠.”
약도를 살핀 김형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지역이라면 인적도 드물고, 그나저나 이런 곳에 있는 걸 몰랐다니…….”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건가요?”
“원장님께 직보하고 특수팀을 출발시키겠습니다.”
“저하고 석강호도 같이 갈게요.”
김형정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겠습니다. 원장님께 답을 듣는 대로 전화 드리죠.”
김형정이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을 말리기도 그렇다.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김형정을 배웅하고 자리에 앉았다.
살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가정보원의 능력이 새삼 아쉬웠다.
한국에 숨은 적을 프랑스 정보국이 먼저 발견하다니.
훈련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되어 있는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특수팀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한 시간은 걸리지 않겠냐?”
“그럼 우리 아래층에 다녀옵시다. 미리 말이라도 해두고 다녀오는 게 좋지 않겠소?”
이런 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 11시쯤 된 시간이었다.
“점심은 어떡할 거요?”
“애매하긴 하다.”
엘리베이터가 서자 요원 둘이 바싹 다가섰다.
“아래층 내려갔다 올 거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돼.”
“명령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맡은 일이 있는 거니까.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요원들이 엘리베이터에 타기를 기다렸다가 버튼을 눌렀다.
피트니스 센터와 수영장은 3층에 있었다.
다행히 입구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터라, 마주칠 일도 없다.
“좀 이따 봅시다.”
석강호가 먼저 왼쪽으로 돌았고, 강찬은 오른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동하실 건가요?”
입구에 서 있던 여직원이 웃는 낯으로 강찬에게 다가왔다.
“부모님이 여기 계셔서 잠깐 뵈러 왔어요.”
“어느 분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강찬은 유리 안쪽을 둘러보았다.
호텔에서 제공한 똑같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갖가지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저기 계시네요.”
강찬은 자전거 페달을 돌리고 있는 강대경과 유혜숙을 금방 찾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직원이 다가가서 강찬을 가리키자 유혜숙이 얼른 자전거에서 몸을 세웠다.
운동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눈치였다.
“아들!”
이마에 맺힌 땀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 잘하면 오늘 저녁에는 집에 갈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그래?”
반가운 얼굴을 했던 유혜숙이 곧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얼굴과 목에 맺힌 땀을 닦으며 강대경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잠깐 나갔다 오려구요.”
“그런데 당신 표정이 왜 그래?”
“그게…, 저녁에 집에 갈지도 모른다는데 찬이가 그일 해결하러 가는 건 아닌가 해서…….”
유혜숙은 강찬이 위험한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강대경이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이상하게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런 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 맞는 거 같은데 유혜숙이 이미 눈치챈 상황에서 빤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리는 괜찮겠니?”
“예. 참, 그리고 저 전화기 찾았어요.”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라. 엄마랑 점심 먹고 방에 있으마. 엄마 걱정하니까 일 끝나면 바로 전화하고.”
“예.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에요.”
유혜숙이 강찬을 안으려다가 주춤했다.
몸에 땀이 밴 것을 느껴서 그런 모양이었다.
강찬이 웃으며 팔을 벌리자 유혜숙이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강찬의 등을 쓸어주었다.
“조심해.”
“그럴게요.”
인사를 마친 강찬은 피트니스 센터를 나왔다.
“석 선생님은?”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바깥쪽 입구에 서 있던 요원의 답이었다.
혹시나 석강호가 가족과 같이 나오면 서로 불편하다.
“먼저 올라갈 테니까 그렇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강찬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두 명 중 한 명이 함께 움직였다.
어느 틈에 작전을 나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방에 막 들어왔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의 진동이 울렸다.
이런 게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다.
“여보세요?”
[“강찬 씨. 특수팀은 출발했습니다. 안산 요금소 지나서 삼화유지라고 공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합류하면 됩니다. 특수팀은 13시 도착 예정입니다. 차량은 지하에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예. 맞춰서 갈게요.”
답을 한 강찬은 석강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용을 전했다.
[“방에 올라갈 일이 뭐 있소? 바로 갑시다. 지하주차장에서 보면 되겠소.”]
“알았다.”
시간 끌 일이 아니어서 강찬도 바로 지하로 향했다.
이렇게 끝났으면 싶었다.
아직 오른쪽 정강이에 은은한 통증이 있는데 하루를 자고 난만큼 움직이기는 편했다.
요원 둘이 한 명은 운전, 다른 한 명은 조수석에 탔고 바로 출발했다.
“점심은 어떻게 할 거요?”
“길이 어떨지 모르니까 근처에 가서 먹자.”
승합차라 그럴 수 있는 건지, 딱지를 끊는 걸 상관하지 않는 건지, 요원은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했다.
“아직도 이렇게 막히나?”
석강호가 한가한 소릴 지껄였다.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서 말이다.
“그나저나 애들 실전 경험은 죽이게 쌓는 거요. 어째 아프리카보다 더 자주 나가는 거 같소.”
강찬은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외인부대 특수팀도 이렇게 자주 작전에 나서지는 않는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당분간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걱정을 가득 담고도 애써 태연한 척하는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조금은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안산엔 도대체 어떻게 처박힌 거지?”
“도와준 새끼가 있겠지.”
“난 누군지 대충 짐작할 것 같소.”
“개새끼. 이런 짓까지 했다면 모가지를 돌려버려야지.”
강찬의 말을 들은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또 조금씩 긴장을 처먹기 시작한 거다.
빠르게 달린다고 달렸는데 길이 막히는 건 방법이 없는 거다.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면 늦을 뻔했다.
안산 요금소를 빠져나온 시간은 오후 12시 40분쯤 되었다.
“어디서 김밥 하나 먹고 가자.”
배가 고파서는 힘을 쓰기 어렵다.
주유소가 딸린 휴게소에 차를 세운 요원이 삶은 계란과 김밥, 음료수를 사왔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돼?”
“10분이면 됩니다.”
시간은 딱 맞췄다.
10분 만에 점심을 때우고 차에 올랐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꽤 기다란 번호였다.
“여보세요?”
[“최종일입니다.”]
강찬은 그만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음이 나왔다.
아픈 사람의 목소리다. 그런데도 힘 있는 척하는 음성이었다.
[“아침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됐어. 고생했다.”
천하의 강찬도 차동균이 어떻게 됐는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어쩌면 최종일의 목소리에 힘이 빠진 것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는 거다.
[“차동균이 바꿔 드리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처럼 맥 빠진 소리다. 그런데 강찬은 그 어떤 외침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간호사가 전화기를 받아서 귀에 대주는 모양이었다.
[“차동균입니다.”]
“멍청이.”
["죄송합니다."]
"최장군께 전화드려."
[“알겠습니다. 아무튼, 저희는 살았습니다.”]
저렇게 있는 놈에게 작전에 나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 측에서 내용을 들을 수도 있고.
전화를 끊은 강찬이 내용을 알려주자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앞에 앉은 요원 둘이 기뻐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