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69화 (16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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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산다는 거.

미쉘이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전대극이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면 나름 급한 일일 거다.

혹시 위민국의 위치를 알아챈 건가?

강찬은 군소리 않고 전화를 받았다.

얼간이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미쉘을 바라보는 앞에서 강찬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찬이냐?”]

“예, 실장님. 바쁘시다고 해서 인사 못 드렸어요. 전화기도 다른 곳에 있구요.”

[“부상은 어때?”]

위민국의 일은 아닌 듯싶었다.

“많이 좋아졌어요. 무슨 일이세요?”

[“찬아.”]

이름만 부른 사람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 양반이 이렇게 불러주는 게 정말 좋았다.

[“우린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혹시 너는 아는 게 있을까 해서 전화했다.”]

“무슨 일인지 먼저 말씀을 해주셔야죠.”

뭐지? 뭔데 그러는 거지?

[“최 장군이 전화했었다. 대원들의 눈빛이 풀리지 않는데 방법을 모르겠단다.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데 폭발 직전처럼 눈만 번들거린다고. 이런 거, 우린 경험이 없어서 모른다. 너라면 혹시 알고 있을지 몰라서, 그래서 전화했다. 짐작 가는 게 있냐?”]

강찬은 답을 하지 못했다.

한국인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지독한 훈련을 통해 끈끈해져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강찬과 이런 감정을 교류한 사람은 다예루와 제라르 정도였는데 말이다.

[“짐작 가는 게 있냐?”]

“예.”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제가 지금 갈게요.”

[“지금?”]

전대극의 음성에 반가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김태진 대표님이 시간 되실까요?”

[“그건 걱정도 하지 마라.”]

“사거리 커피 전문점이라고 하면 아실 거예요. 도착하시면 바로 출발할게요.”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가 최 장군에게도 전화해 놓으마.”]

통화를 끝낸 강찬은 요원에게 김형정 팀장의 번호를 물어보았다. 전화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메모리 해서 쓰는 버릇 때문에 외우고 있는 번호가 없었다.

[“여보세요?”]

“팀장님, 강찬입니다.”

[“예! 강찬 씨.”]

“석강호 번호를 몰라서 그런데요, 집으로 전화해서 사거리 커피 전문점으로 나오라고 해주세요. 갈 곳이 있다구요.”

[“알겠습니다.”]

대강 내용을 알고 있는 눈치여서 긴말이 필요 없었다.

요원이 전화를 받고는 깍듯하게 인사하고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미쉘은 묻지 않고 강찬의 눈치만 살폈다.

“가봐야 할 일이 생겼어.”

“응. 다리 괜찮겠어?”

이럴 때 미쉘은 참 편하다.

지금처럼 일을 인정해 주는 게 특히 그렇다.

“손님들 이리 오시는 거지? 그럼 난 먼저 일어날게.”

미쉘이 일어섰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벌렸다.

주변 놈들을 말려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다.”

강찬은 미쉘을 가볍게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갈게!”

미쉘이 사라지자 뮤지컬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끝난 것처럼 시선이 흩어졌다.

담배를 하나 피우고 났을 때 김태진과 서상현이 나타났고,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석강호가 등장했다.

일어나서 인사를 했고,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김태진은 아직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원들이 아직 전투를 털어내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가보려구요.”

“그런 게 있나?”

바로 알아들은 석강호와 달리 서상현은 의아해 하는 눈빛이었다.

“엄청난 성과 아닌가? 그런데도 그런 게 남나?”

“최종일과 차동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걸 겁니다. 제가 표정을 수습 못 했어요. 선임자가 모조리 빠진 꼴이거든요. 저, 석강호, 최종일, 차동균이 빠져버린 공백을 대원들끼리 억지로 메워야 하거든요.”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 거면 바로 가지?”

“그러시죠.”

석강호의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한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비무장 지대에서 활동할 때는 이런 일, 없었던 거 같은데요?”

“우린 대규모 전투가 아니었잖아?”

“그런가요?”

서상현은 이런 감정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전투가 치열하고, 규모가 클수록 상실감도 크다.

엄청난 전과를 기록했는데 기쁨이 생기는 만큼 대원들에 대한 죄책감이 생기는 거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기뻐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렇게 개새끼였나?

왜 막아주지 못했지?

내가 조금만 더, 제대로 했다면!

대원들이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짐작할만했다.

이 새끼들.

강찬은 대원들이 가슴에 담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놈들이 있다니.

전과를 기뻐하기 이전에 쓰러진 전우를 가슴에 담고 강찬처럼 아파하는 놈들이 있었다니.

서상현은 사이렌을 켜고 자동차 전용차선으로 달렸다.

“좀 쉬었소?”

“응. 푹 잤다. 너는?”

“집 무너지는 줄 알았답디다.”

무섭게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바리케이드를 지나 산길을 돌자 익숙한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 멈추자 최성곤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문을 열고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강찬 씨.”

오후 6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대원들은요?”

“식사 중입니다.”

“그럼 저희도 식사부터 할게요.”

“그러시겠습니까?”

최성곤은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강찬을 말리지는 않았다.

강찬을 시작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갇혀 있던 침울한 분위기와 대원들의 시선이 훅하고 달려들었다.

강찬은 대원들을 훑어보고 식판을 든 다음, 밥을 떴다.

아직은 걷는 것이 불편했다.

국을 떴고, 돼지고기 볶음을 잔뜩 쌓았고, 김치, 그리고 나물도 얹었다.

딸각.

곽철호의 앞에 식판을 내려놓은 강찬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분하고, 갑갑하고, 무언가 응어리진 눈빛이었다.

그러면서도 강찬과 석강호, 김태진, 서상현이 반가운 표정이기도 했다.

“스페츠나츠, SBS, 그리고 중국의 스노우 울프와 공수부대를 전부 상대했다.”

식판을 들고온 최성곤이 조심스럽게 탁자에 올려놓고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런 작전을 치르면서 아무런 희생이 없을 거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라고 믿는다. 너희 중에 죽는 걸 두려워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최종일과 차동균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교육을 받는 것처럼 대원들의 상체가 꼿꼿하게 올라왔다.

“경험은 내려간다. 작전에서 겪었던 모든 것이 작전에 참가하지 못해 억울해 하는 대원과 너희의 후배에게 모두 내려간다. 그리고 지금처럼 털어내지 못하는 감정까지도 전부. 곽철호.”

“예!”

“다음 작전에 나가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남은 대원들을 원망할 거냐?”

“아닙니다!”

대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를 깨물었다.

“멋지게 싸웠다.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작전에 성공했다. 지금 살아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바라는 건 너희의 이런 모습이 아니다!”

대원들의 표정을 살핀 최성곤이 김태진을 힐끔 보는 순간이었다.

“오늘 밤, 아니면 지금 밥을 먹다 말고 달려나가야 할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팀이 이런 모습이라면 최종일과 차동균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서상현은 강찬의 지금 같은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팀을 움켜쥐는 모습을 말이다.

저런 줄 모르고, 처음 봤을 때 학생이 건방지다고 했었다.

“윤상기!”

“예!”

“오늘 밤 작전이 있다면 나갈 수 있겠나!”

“나가겠습니다!”

“죽을 수 있는데도?”

“나가겠습니다!”

“살아남은 대원들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절대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윤상기의 쇳소리 섞인 대답이 처절하게 터져 나왔다.

“경험이란 이런 거다! 모의 전투에서! 실탄 훈련에서 얻을 수 없는 처절함! 스페츠나츠가! SBS가! 스노우울프가 눈을 부릅뜨고 너희를 노려보고 있다! 쓰러진 대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남아라!”

최성곤의 눈가가 붉어졌다.

“대한민국을 책임질 특수팀이라면 그 어떤 것에도 지지 마라. 절대 물러서지 마라.”

대원들의 얼굴이, 눈빛이 붉게 상기되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구호!”

강찬의 외침이 떨어지자.

“나의 피로!”

식당 칸막이가 울릴 만큼 강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국가를 지킬 수 있다면!”

어느 틈에 최성곤과 서상현까지 목청껏 구호를 따라 외친다.

“나는!”

으르릉.

“행복하다!”

강렬한 외침 뒤에 전해지는 침묵이다.

가슴이 뜨거운 만큼 쑥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거 봐. 이렇게 잘할 거면서!”

강찬이 자리에 앉아서 수저를 뜨자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다.

“선배님.”

감정을 추스르려고 젓가락을 들던 김태진을 최성곤이 나직하게 불렀다.

“고맙습니다.”

김태진은 보기 좋은 미소만 지었다.

***

“이 새끼들이 서운하게 어딜 가?”

최성곤이 넉살 좋게 종이컵과 담배를 들고 막사 앞 공터로 다가왔다.

“이리와! 쉬는 시간에 뻣뻣하게 왜 이래?”

최성곤의 마음을 대원들이 모를 리 있겠나.

게다가 강찬과 석강호가 뻔뻔스럽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마당이다.

“다리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윤상기의 질문에 강찬이 답을 했다.

아직 감정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하루이틀사이에 제 자리를 찾을 거다.

“장군님! 전화입니다.”

그때 부관이 막사 앞에서 최성곤을 찾았다.

“누구지?”

최성곤이 가자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더 나았다.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대원 한 명의 어깨를 두드려 줄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날카롭게 사이렌이 울렸다.

대원들이 종이컵과 담배를 내던지고 막사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최성곤이 묵직한 얼굴로 나타났다.

“왜 그러세요?”

“비상 대기랍니다.”

위민국인가?

“위치를 알았답니까?”

“그 이상의 정보는 받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숨어있는 근처를 파악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뜻일 거다.

“이 상태에서 작전에 나서도 되겠습니까?”

“괜찮을 거예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최고의 대원이니까요.”

최성곤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강찬 씨는 어디에서 이런 경험을 쌓았습니까?”

“제가 국가기밀이잖아요.”

“허허.”

이런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럼 저희는 출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대원들은?”

“이대로 가는 게 좋습니다.”

최성곤이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차를 타려고 할 때, 완벽하게 무장을 갖춘 대원들이 튀어나왔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만큼의 각오도 보였다.

강찬은 손을 들어 윤상기의 헬멧을 툭 때렸다.

김태진과 서상현이 주위에 있는 대원들의 헬멧을 한 번씩 두드려주었다.

이럴 땐 입을 열 필요가 없다.

툭 하고 헬멧이 울릴 때, 떠나는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 모두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

확실히 빠져나오는 것보다는 서울로 향하는 도로가 한가했다.

김태진의 전화로 두 번 걸었는데도 전대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일이 있는 거다.

라디오에서 중국의 경제조치가 완전히 풀렸다는 보도와 함께 오해가 있었던 점에 관해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대원들이 안정돼서 다행이다.”

“빨리 위민국을 찾아야지요.”

“아무리 북한 특수군이라고 해도 경호실이 있는 한 함부로 도발하기는 어려워. 더구나 전 실장님이 만반의 대책을 세우고 있어서 더 그렇지.”

“예.”

“그나저나 대원들을 보니까 자네한테 완전히 의지하고 있던데?”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상하게 대원들을 만나면 피가 뜨거워진다.

어쩌면 이미 가슴 속에 담겼는데 혼자 부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서울에 가까울수록 고속도로가 조금씩 막혔지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주차장에 강찬과 석강호를 내려주고 김태진과 서상현은 곧바로 출발했다.

당연하게 석강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화가 없으니까 정말 갑갑하우.”

“내일 찾아준다고 했으니까 하루만 참아. 혹시 문제 생기면 집으로든, 김 팀장님한테든 전화하고.”

“알았소. 그나저나 다리는 괜찮은 거요? 거, 유 원장님한테 가 볼걸, 하기야 오늘은 시간도 없었소.”

“들어가. 내일 보자.”

“알았소.”

석강호와 헤어진 강찬은 집으로 들어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강대경은 이미 집에 들어와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미쉘이랑 저녁 먹은 거야?”

“아뇨. 일이 있어서 일찍 헤어졌어요.”

“일? 전화도 없이?”

“우연히 만났거든요.”

답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니 엉뚱한 답변만 계속 나왔다.

“모처럼 함께 영화 볼 수 있겠다. 오늘 보고 싶었던 영화 하는데?”

강대경이 눈치껏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바꿔주었다.

“치킨도 시켜야죠?”

“그래야지.”

둘이서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유혜숙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는 정말 알지 못했던 것들이 강찬의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늘어날수록 작전에 나섰을 때 떠오르는 것들도 많아졌다.

최종일, 차동균은 어떤 각오로 가족과 지낼까?

1년에 열 명이 넘게 희생된다는 요원들은?

치킨을 시키고, 중국의 발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강찬은 묘한 느낌에 고개를 틀었다.

우선 거실 창문을 보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빌어먹을!

하필이면 전화도 없는데, 그리고 거실에 함께 앉아 있는 건데.

설마 아파트 맞은 편에서 미스트라나 이글라를 쏘는 건 아니겠지?

띵동띵동.

벨이 울렸다.

유혜숙이 움찔할 때 강찬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들?”

눈빛을 본 유혜숙이 놀란 소리를 냈다.

시선을 돌렸던 강대경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다.

“사장님! 김 대리입니다!”

강대경을 경호하는 요원의 음성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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