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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시간이 별로 없어서.
“팀장님. 허하수가 저를 만나자는 이유가 뭘까요?”
탁자에 시선을 둔 채로, 김형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짐작을 못 하겠습니다. 유치하게 힘을 과시하겠다는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대사관에 가서 사과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그러지도 않을 거 같고.”
“만나보죠.”
“예?”
“만나보시자구요. 전혀 만날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나온다는 건 저쪽도 무언가 아쉬운 게 있는 거니까요. 대신 총리 사임서의 처리를 월요일로 늦춰달라고 하세요.”
김형정은 힘들다고 여기는 표정이었다.
“전화해보세요. 안 되면 말죠, 뭐.”
“알겠습니다.”
답을 한 김형정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강찬 씨의 요구는 총리님의 사임 처리를 월요일로 늦춰 달라는 겁니다. 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김형정이 통화를 끝내고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전했습니다. 확인해 보고 연락해준답니다. 저 그리고, 강찬 씨.”
무언가 어려운 부탁이 있는 표정이었다.
“원장님을 믿어주십시오.”
이미 한번 안 된다고 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김형정은 또다시 황기현과 함께 움직일 것을 종용했다.
“사실 대통령께서는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도 찬성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허하수 의장과 같은 기득권의 대표를 잡으려면 우리도 프랑스 정보총국처럼 별도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김형정은 사명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북한의 도발과 러시아의 발표로 주말의 시간을 벌지요. 정 안 되면 제가 허하수를 암살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김태진이 놀라서 불렀으나 김형정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최소한 원장님의 지시는 있어야 합니다. 유라시아 특별팀의 구성을 좀 더 독자적으로 만들면 됩니다. 이후의 보고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삐비비. 삐비비. 삐비비.
김형정이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예.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5시, 한남동 안가로 움직이겠습니다.”
통화는 바로 끝났다.
그리고 허하수가 원하는 장소도 짐작이 갔다.
“허하수 의장이 총리님의 사임서를 월요일로 미뤄가면서까지 강찬 씨를 만나러 나섰습니다. 반신반의했는데?”
당장 2박 3일을 벌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허하수에게 이 정도 여유쯤 부담스럽지 않다는 뜻이 된다.
“강찬 씨. 이러면 더욱 원장님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유라시아 철도의 연결을 위해 국가정보원에 사표도 썼었고, 몽골 작전에도 갔었습니다. 내가 살인자가 되어서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면 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심이 가득한 김형정의 눈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거절하지 못했을 거다.
김태진도, 석강호도 이를 꽉 깨물고서 김형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조직 구성, 국가정보원과의 조율은 김 팀장님이 맡아주시고, 대표님께서 최성곤 장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전 실장님을 설득해 주세요.”
김태진의 신음이 깊었다.
“자네를 믿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런 조직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돼. 자신 있는 거지?”
강찬의 웃음에 김태진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점심 먹읍시다.”
“석 선생, 말씀 잘했소. 가뜩이나 아침이 부실했는데 밥 먹자는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방으로 주문이 될 텐데?”
석강호가 전화기 아래 있는 간이 메뉴판을 찾았다.
비빔밥을 주문해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처음부터 상황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이 방은 내일까지는 쓸 수 있지?”
“예. 허하수를 만나고 여기서 모일까요?”
“그건 상황 봐서 결정하자고. 늦게 모이거나 눈을 피하기는 괜찮은 것 같아서 확인하는 거니까.”
얼추 허하수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김태진은 전대극을 찾아 출발했고, 강찬은 김형정과 함께 석강호의 차로 움직였다.
남산호텔에서 안가까지는 고작 10분 거리다.
바로 안가에 도착하자, 요원들이 강찬 일행을 맞았다.
“석 선생은 저와 이쪽으로 가시죠.”
김형정이 석강호와 함께 건물의 왼편으로 돌았다.
대기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요원이 깍듯하게 강찬을 거실로 안내한 후에 나갔다.
프랑스 작전이 끝나고 아침을 먹었던 곳이다.
같은 장소인데 만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 거다.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가 차를 내주었다.
‘저 아줌마도 요원인 건가?’
동작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요리를 잘해서 훈련받고 요원이 된 건지, 요원 중에 요리를 잘하는 아주머니를 선발한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강찬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현관문이 열렸고, 요원을 앞세운 채로 정수리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허하수가 분명했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하수를 보았다.
키가 컸다.
머리카락이 없는 정수리를 왼쪽 머리로 길게 넘겨 가렸고, 얼굴에 윤기가 번들거렸다.
끝만 뾰족하게 올라온 코, 그리고 정말 작은 눈.
“강찬 학생?”
허하수가 강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말은 많이 들었지. 앉읍시다.”
자기 집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소파에 앉자 주방에서 차를 가져다주었다.
“자리 좀 비켜주지?”
허하수의 요구에 대기하던 요원과 아주머니가 현관과 주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듣기로는 아주 무서운 학생이라더니 인물이 반듯하네. 차 들어.”
검버섯이 올라와 쭈글쭈글한 손으로 허하수가 찻잔을 가리켰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강찬은 묵묵하게 차를 마셨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허하수가 왼팔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자네가 유라시아철도를 연결했고, 또 프랑스 대사와 친분이 두터운 것은 알지. 우리가 비록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더라도, 나라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같다고 생각해서 보자고 했네.”
동의를 구하듯이 시선을 든 허하수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설픈 꾐에 넘어가서 대사를 그르쳐서는 안 돼. 당장은 주변에서 잘했다, 이 기회에 나라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자고 꼬드기겠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제 놈들이 권력을 잡겠다는 얄팍한 속셈일 뿐이지.”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허하수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강찬을 보았다.
“그깟 유라시아 철도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굴어선 안 돼. 연륜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이고. 내가 오늘 자네를 만나자고 한 것은 그래도 인재를 아껴보겠다는 마음으로 기회를 주고 싶어서야.”
강찬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에 허하수가 바로 입을 열었다.
“유라시아 철도를 일본이 뚫고 있는 해저터널과 연결할 계획인데 설립위원장과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네.”
이 영감이 미친 건가?
국가정보원 안가에서 이런 제안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는 중국의 보호와 일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라야. 그러니 일본에 철도를 연결해서 그들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백 년, 이백 년 뒤의 우리나라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자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멀리 볼 수 있는 눈이야.”
강찬은 피식하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맞는 놈은 이유가 있어. 맞을 짓을 했든, 그놈이 약한 놈이든,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일본이 우리를 지배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콧물 흘리며 살고 있지 않겠나?”
강찬은 허하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지금 지껄인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정신병자 새끼도 아니고.
“우리에게 유라시아철도는 돼지 발에 편자 같은 거지. 가지고 있다가 중국과 일본에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백번 현명한 일이네.”
강찬이 나직하게 한숨을 뱉었는데 허하수는 의미를 오해한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 정부의 주요인사가 교체되면 공항과 도로, 철도 등을 민간에 팔 계획이네. 자네가 내 뜻을 따라준다면 인천공항과 해저터널의 운영 지분을 확실하게 챙겨주지. 그것만으로도 자네와 자네 부모,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네의 아이들까지, 대대손손 누리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지.”
강찬은 결국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허하수는 강찬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의장님. 그러지 말고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해서 중국과 일본에 당당히 맞서면 안 됩니까?”
기가 막혀서 나온 질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솔직히 무슨 생각인지 듣고 싶어서 불쑥 꺼내 든 질문이었다.
“국민들끼리 대결 구도를 만들면 안 돼.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두 조각,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
대결구도?
강찬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대통령은 야비하게도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켜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했네. 유라시아 철도 이전부터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명분으로 지금껏 나라를 위해 애쓴 사람들의 공을 가로채고, 그것도 모자라 재산을 몰수하려고 했어.”
“매국노의 후손이 떵떵거리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허하수가 날카로운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쓸데없는 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 돼. 당시에 일본에 안 붙었던 사람이 어딨어? 그래서? 다 죽이고 나면 누가 나서서 치안을 유지하고, 누가 경제를 일으켰겠나?”
허하수의 눈이 불꽃이 튀는 것처럼 반짝인 다음이다.
“크흠.”
짧은 침묵에 이어 머리를 쓰다듬은 허하수가 나직한 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놈들의 말에 현혹되어선 안 돼. 그렇게 나라를 위했다는 놈치고 끝이 좋은 놈이 있던가? 아닌 말로, 우리가 독립을 못 한 것도 아니고. 다만, 미국의 핵폭탄 덕분에 독립을 한 건데도 마치 자기들이 잘해서 그렇게 됐다는 양 떠드는 놈들이지.”
말을 마친 허하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철도를 포기하게 될 거다.”
피식.
강찬의 웃음을 본 허하수가 눈 끝을 떨었다.
몸을 일으킨 허하수를 따라 강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허하수가 눈을 찌푸리며 강찬을 보았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확실하게 마음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하수의 작은 눈이 강찬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넌 죽는다!
강찬의 다짐은 그랬다.
한순간 허하수가 몸을 돌려 거실을 빠져나갔다.
마음 같으면 쫓아가서 모가지를 확 돌려버리고 남았다.
강찬은 잠시 후에 밖으로 나섰다.
***
호텔에 돌아왔다.
강찬은 우선 허하수가 했던 말들을 전해주었다.
석강호가 몇 번이나 “개 매국노 새끼!”를 외친 후에야 이야기가 끝났다.
“총리 사임은 어떻게 됐나요?”
“확실히 주말은 일단 넘어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오늘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원장님과는 연락하셨구요?”
“아직 못했습니다. 직통 전화가 꺼져 있어서요.”
금요일 밤이다.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이틀 안에 무언가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무언가 답이 필요할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우.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반가워도 이렇게 반가운 전화가 있을까?
“대사님. 강찬입니다.”
[“강찬 씨. 차 한잔 마실 시간이 됩니까?”]
“예. 어디로 갈까요?”
[“1시간 뒤에 남산 호텔에서 뵙지요.”]
“알겠습니다, 대사님.”
어쩐지 강찬이 남산호텔에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는데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라노크 대사와 한 시간 뒤에 이 호텔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통화 내용을 설명하고 각자 편한 상태로 있었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데 떠들기도 뭐한 거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
“고생하셨습니다.”
삼청동의 응접실에 들어서는 허하수를 향해 허창선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앉아. 저녁은?”
“밖에서 하고 들어왔습니다.”
허하수가 상석에 앉자 허창선이 앞에 앉았다.
“어떠셨습니까?”
“어린놈이 기고만장이더군. 그런 철부지를 보내놓고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놈들이 나라를 이끌겠다니 기도 안 차는 일이지.”
불편한 기색으로 말을 뱉은 허하수가 시선을 돌렸다.
“무엇 때문에 프랑스 대사가 그렇게 싸고도는지 빨리 그 점을 밝혀내야 돼.”
“삼성동에서 특수팀이 관리하고 있어서 제 선에서는 접근이 되질 않습니다.”
“원장이 직접 챙기는 모양이지. 그러니저러니 해도 이틀 뒤면 모두 끝날 일이다. 주말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월요일에 추가 조치가 취해지면 그때는 버틸 생각도 못 할 게다.”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겁니다.”
허하수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라노크의 전화를 받고 19층으로 옮겨가자 요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강찬을 방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라노크가 강찬을 맞았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제 얼굴이 그래 보이나요?”
라노크가 소파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도 어쩐지 굳어 보였다.
“기득권과의 싸움이 쉽지 않지요?”
차를 권한 라노크가 시가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강찬 씨가 이렇게 기운 빠진 모습을 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솔직히 한계를 느꼈습니다. 대사님이 만들어 주신 석유 개발권부터 북한의 도발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강찬은 말을 하고는 쓰게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막막한 느낌 때문이었다.
“허하수가 정말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겁니다.”
이런 건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다.
“월요일에 일본도 중국과 같은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예?”
하나로도 정신이 없는데 일본까지?
“그들의 요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라시아철도겠군요.”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해저터널을 부숴버리든가 해야지!
“월요일에 일본의 경제조치가 취해지면 한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총리가 필요하지요. 해저터널을 인정하고, 유라시아철도를 연결하겠다는 1차 서류에는 국무총리가 서명하기 때문입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뱉었다.
적이 누군지 아는데 어떻게 죽여야 할지를 모른다.
마치 눈을 가린 채 전투에 뛰어든 느낌이었다.
“허하수는 오늘까지 총리 교체를 요구했는데 실제로는 월요일까지 놔두어야 했던 겁니다.”
이젠 웃음도 안 나왔다.
총으로 싸우는 거라면 방아쇠에 손도 못 대보고 이마가 뚫린 꼴이다.
“중국의 경제조치, 일본의 유라시아철도에 대한 욕심, 그리고 허하수. 강찬 씨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도 월요일이 밝기 전까지 말입니다.”
“막막한데요?”
라노크는 시가를 빙글 돌린 후에 입을 열었다.
“양판이 중국에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중국에 들어갔나요?”
“강찬 씨와 헤어진 후, 바로 입국했습니다. 상황이 치열한 모양인데 아직은 반대파가 힘을 쥐고 있어서 양판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없답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해야 할 일이 뭔가요?”
“베이징 시내에 위장 정보국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리시콴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베이징을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성공확률도 희박할 거고 성공한다고 해도 귀환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양판이 도움이 있다고 해도 실패하거나 생포됐을 경우 뒤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라노크가 최악을 짚어주었다.
말 해봐야 입만 아플 일이다.
“리시콴이 주범입니다. 한국의 경제조치, 대통령 암살을 실제로 기획한 인물이고, 나를 납치하라고 지시한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그가 정보국의 수장이 되면 아시아는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겁니다.”
“성공하면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양판이 정보국을 장악할 경우, 경제 조치의 해제, 한국에 들어온 북한 특수군의 위치, 그리고 중국에 있는 허상수의 체포, 세 가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처럼 폐에 숨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출발은요?”
“베이징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늦습니다. 화물 비행기로 위장할 거고, 적정 시간은 오늘 밤 11시입니다.”
결정하고 출발하는 데까지 3시간?
이래서 호텔까지 찾아왔던 걸 거다. 시간을 줄이려고.
그래도 이만한 기회는 없다.
“대사님. 바로 움직여서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그러시죠. 출발은 오산에서 합니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라노크의 방을 나왔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니 김태진과 전대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역시나 침울했다.
“오셨어요?”
“고생 많지?”
걸걸한 음성이 다독이는 것처럼 강찬에게 와 닿았다.
지금은 시간이 급한 때다.
“실장님.”
강찬은 라노크와 의논했던 내용을 전대극에게 전했다.
“어후!”
천하의 전대극이 고개를 젓고 뒤로 물러났다.
이해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조건이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내가 지금 달려가도 대통령께 재가받는데 한 시간은 걸릴 거고, 그렇다고 재가도 없이 병력을 움직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성공 확률이 너무 희박하다.”
“다른 방법은 없으신 거잖아요? 그렇다고 우리나라 현실에 허하수를 암살할 것도 아니구요.”
김형정이 시선을 뚝 떨궜다.
“알았다. 우선 내가 대통령께 움직이마. 김 팀장. 정보원장 지금 어딨어?”
“직통 전화가 계속 꺼져 있습니다.”
“알았다. 최성곤이한테는 가면서 전화하면 되고. 참! 몇 명이나 필요한 거야?”
“저하고 여기 석강호 포함, 9명이요.”
전대극은 이미 방문을 열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힘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겪는 비애쯤?
차라리 속이 편했다.
강찬은 흘깃 시선을 돌려 석강호를 보았다.
히죽 하는 웃음을 보자 마음이 든든했다.
“아! 답답하우. 우리 나가서 밥 먹고 옵시다.”
“호텔을 나가는 건 그렇고, 1층에서 먹고 오죠.”
강찬의 말에 네 사람이 식당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