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53화 (153/520)

0153 / 0419 ----------------------------------------------

8-9 뒤처리.

“캬하!”

고기를 연신 집어넣던 석강호가 맥주잔을 단숨에 비워내고는 감탄사를 뱉어냈다.

저렇게 퍼먹고 속이 부대끼지 않는 것, 그리고 살이 찌지 않는 것도 재주다.

모처럼 술이 들어가니까 속이 후련했다.

석강호가 맥주 한 병을 더 주문하고 났을 때였다.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

“뭘요?”

강찬이 기껏 다 익은 고기를 불 바깥쪽으로 옮겨 놓았더니 석강호가 새 고기를 가운데 얹었다.

“건물 하나 사려고 알아보잖냐. 그러고 나면 아침에 둘이 사무실 나가는 걸로 하자. 같이 운동도 하고, 점심도 먹고. 좋잖냐?”

“푸흐흐흐.”

석강호가 잔을 들어서 강찬에게 디밀었다.

틱!

맥주잔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캬하! 좋다!”

젓가락을 놀리기 바쁜 것 같아서 이번에는 강찬이 술을 따랐다.

“난 지금 더 바라는 거 없수. 대장 만나서 외롭지 않고, 가끔 이렇게 작전 뛰고.”

둘이서 다시 폭탄주를 마시는 사이에 석강호가 올려놓은 고기에서 연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아휴! 고기 타요.”

직원 아주머니가 다가와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고 탄 부분을 잘라낸 다음, 먹기 좋게 불 바깥쪽에 놓아주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웃기는 말인데…….”

석강호가 강찬의 눈치를 슬쩍 봤다.

“나 요즘 불안할 때가 있소.”

“그런 놈이 왜 작전을 뛰어?”

“그게 아니오.”

강찬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갑자기 대장이 사라져버리거나 나쁜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요. 이렇게 지내다가 혼자 남으면 어쩌지? 저렇게 앞서 있다가 또 누군가에게 당하면 어떡하지? 뭐 그런 거요.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다가 헤어지면 걱정되는 거, 그런 거 알겠소?”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확!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헛소리하는 바람에 고기만 다 탔다.”

강찬이 고기를 뒤집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석강호가 입으로 가져갔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이번에 교전 벌어졌을 때 너 죽을까 봐 나도 걱정했었다.”

“에이! 그건 좀 오바다! 내가 그런 시시껄렁한 놈들한테 당할 것 같으쇼?”

강찬은 흐느끼는 것처럼 웃고 말았다.

스페츠나츠와 SBS 팀원들이 들었다면 전원이 죽을 때까지 달려들던가, 콱 절벽에서 뛰어내릴 소리였다.

“빨리 빌딩 사자. 그래서 같이 지내자. 그게 제일인 것 같다.”

“그럽시다.”

된장찌개와 공깃밥까지 먹고 난 석강호와 함께 근처의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끈한 커피 두 잔, 흡연이 가능한 테라스.

“참, 좋소!”

“왜? 이젠 안 불안하냐?”

“같이 있을 땐 괜찮다니까요! 거, 눈 좀 푸쇼. 다른 손님들 불안하겠소.”

“점잖은 척할래?

별것도 아닌 말이 웃겨서 함께 웃었다.

“이제 뭐 할거요?”

“글쎄. 당분간은 쉰다고 했는데?”

“그럼 우리 한 사흘 어디 도망갔다가 올까요?”

“도망?”

석강호가 히죽 웃고는 입을 열었다.

“한 사흘 사라졌다가 옵시다. 푸흐흐흐. 여기저기 벌컥 뒤집히지 않겠소?”

강찬도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당장 전대극은 병실 천장까지 뛰어오를 거고, 김형정은 아픈 몸을 이끌고 전국을 누빌 거다.

“아서라, 애꿎은 종일이만 뒈지게 혼난다.”

둘이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킬킬거렸다.

딱 아프리카에서 전투를 마친 다음 날 같다.

한 놈도 죽지 않고 돌아오면 이렇게 앉아서 술을 마셨다. 이럴 때 제라르가 끼어들었다가 다예루한테 욕 처먹고 한쪽으로 빠지는 것도 웃겼고.

“살아 있으니까 좋다.”

“그렇지요!”

석강호가 히죽거리며 답을 했다.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예전의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와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얼추 9시가 다 됐다.

“들어가야지.”

“그러지 말고 미영이 학원에 가봐요.”

“뭐?”

“미영이 학원에 가보라구요. 앞에서 기다리다가 집에 데려다 주면 좋아할 거요. 덕분에 눈도 좀 풀고.”

강찬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갈 수는 있다.

못 만나도 상관없다.

그러나 보고 싶어서 가는 것은 몰라도 눈에 독기 빼고 싶다고 김미영을 만나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간 이렇게 이벤트를 몰라요!”

“너나 잘해.”

“어? 왜 날 가지고 그러쇼? 난 이래도 집에 가면 죽여줍니다.”

“알았으니까 일어나!”

술 냄새도 빠졌고, 이젠 정말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잔을 치우려는 순간에, 미쉘의 이름이 올라왔다.

“여보세요?”

[“차니. 오늘 드라마 봤어?”]

“아차! 미안하다. 지금 밖에 있어서 못 봤어.”

[“아쉽다. 오늘 반응 정말 좋은데.”]

“그래? 잘 됐다.”

[“어디야? 바쁜 거야?”]

만나고 싶어하는 건 알겠다.

그런데 어쩐지 이렇게 독기가 쌓여 있을 때 만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늘은 좀 그래. 무슨 일 있니?”

[“건물 좋은 게 나왔어. 내일 시간 되면 같이 보러 갔으면 해.”]

“내일 오전에 내가 전화할게.”

[“그럼 내일 봐.”]

전화를 내려놓은 강찬을 석강호가 힐끔 보았다.

“미쉘이란 아가씨요?”

“응.”

“오늘 같은 날은 데이트도 좀 하고 그러쇼. 어째 아프리카 때랑 똑같이 그래요?”

“됐다. 빌딩 좋은 거 있단다. 내일 보러 가기로 했어.”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그럽시다. 담배 하나만 피우고요.”

석강호가 담배를 들었을 때였다.

웅웅웅.

문자가 와서 확인했는데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보고 싶어.]

담배를 입에 문 석강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전화기와 강찬을 차례로 보았다.

강찬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디야?”

[“학원!”]

“저녁은 먹었어?”

[“응! 오늘 바빠?”]

“안 바빠.”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시선을 따른 곳으로 돌렸다.

[“나! 한 시간 있으면 수업 다 끝나. 오늘 불어 수업이거든. 멋진 선생님 보니까 생각나서 문자 한 거야.”]

“내가 갈까?”

[“응!”]

“후우!”

석강호가 들으란 듯이 연기를 세게 뿜어댔다.

나쁜 새끼!

그 와중에 석강호는 제 눈 끝을 검지로 찍고 위아래로 움직여 보였다.

눈에 독기가 빠진단 뜻처럼 보였다.

[“나 대치동이야. 그때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으면 그리 갈게.”]

“알았다.”

[“흐흐흐흐.”]

전화기를 내려놓자 석강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강찬을 보았다.

“왜?”

아직 시간이 있어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소. 내가 갈까? 아휴!”

석강호가 강찬의 흉내를 내며 커다랗게 웃었다.

“하여간 보기 좋소. 그래요. 그렇게 대장을 위한 시간도 좀 쓰고 사쇼. 얼마나 좋아요?”

불을 붙이고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전화하는 거 보니까 딱 표가 나는구만. 왜 먼저 보자는 소릴 못하는 거요?”

“뭘 못해?”

퉁명스럽게 대꾸하긴 했지만, 석강호 말이 맞다.

강찬은 피식 웃은 다음, 생각을 털어놨다.

“에이! 그게 뭐요?”

“왜?”

“하여간 안 그럴 것 같은데 여자 문제는 정말 고지식해. 미영이는 대장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데 한발 쑥 빠져서 너 내년에도 안 변하면 내가 받아들일게, 하는 거 아뇨?”

“그거하고는 좀 다르지.”

커피 찌꺼기에 담배를 꽂은 강찬은 남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다를 게 뭐 있수? 사람은 사귀다가 헤어질 수 있는 거요. 어떻게 지금부터 평생을 만난다고 확신하고 만날 사람이 있겠소?”

강찬은 멍한 눈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이 새끼가 정말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 한 말이 맞는 것 같은 이유도 있었다.

당장은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아무튼, 석강호의 말에 생각이 살짝 흔들리긴 했다.

“갑시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

테라스에서 바로 밖으로 나설 때 석강호가 강찬을 불렀다.

“행복해집시다. 우리도 그럴 권리쯤 있는 거 아니오? 부모님께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해 드리고, 미영이도 만나고. 그래서 대장이 행복해하는 얼굴도 한번 봅시다.”

이런 말을 진지하게 하니까 아까보다 좀 더 멍한 느낌이었다.

강찬은 피식 웃었고, 석강호는 히죽 웃었다.

“들어가.”

“알았소.”

“내일 다른 약속 하지 말고.”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도로를 향해 움직였다.

둘이서 차례로 택시를 탔다.

우리도 행복해질 권리쯤 있지 않냐고?

석강호도 나처럼 남의 것을 차지한 불편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었던 건가?

강대경, 유혜숙을 만난 이후로 가끔은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석강호는 왜 저런 소리를 지껄인 거지?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 택시가 대치동에 도착했다.

사거리에서 내려 천천히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섰다.

생각해 보니까 최종일이 따라오고 있는 거다.

불러서 저녁이나 먹일 걸 하는 생각과 김미영을 만나는 것도 따라다닐 거라는 불편한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에이!”

자리에 앉은 강찬은 고개를 털었다.

가뜩이나 오늘 생각이 많았는데 석강호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행복해지자고?

지금 적응하는 중이다.

술만 마시면 주먹질해대는 아버지 밑에서 돈가스 하나 사 먹을 돈 없이 살았고, 그 뒤로 아프리카에서 10년 가까이 전투만 치르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거?

기껏해야 이제 반년쯤 된 거다.

30년 가까이 살아왔던 지난 삶이 하루아침에 기억에서 없어질 수 있을까?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살면서 행복을 배워가고 있는 거다. 맞다. 그런 거다.

얼굴을 문대자 문득 담배 냄새가 풍겼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강찬은 세면대 앞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피식.

정말 눈빛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십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불과 이틀 지났다.

그런데 오늘 평온한 얼굴을 하는 게 더 이상한 거다.

손을 닦고 자리로 돌아온 강찬은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석강호가 지껄인 소리 때문에 머리만 복잡해졌다.

강찬이 숨을 커다랗게 마시고 털어낼 때 김미영이 들어섰다.

손을 흔든다.

빤히 가게 안에서 뭐 저럴 것까지는.

“아이스크림 먹을래?”

“응!”

가방을 의자에 내려두고 진열대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골라 자리로 돌아왔다.

“흐흐흐흐.”

플라스틱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뜨면서 김미영은 연신 강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 해!”

“응?”

강찬이 무슨 소리냐는 투로 눈을 떴을 때 김미영이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살면서 처음이다.

어색한 느낌으로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는데 김미영은 뭐가 좋은지 “흐흐흐흐.” 하고 웃으면서 제 입에도 떠 넣었다.

‘내가 정말은 몇 살인 거지?’

하고 다니는 짓은 전에 살던 나이 때인데 김미영을 만나게 되면 완벽하게 고등어 꼴이 된다. 어쩌면 김미영에게 미적거리는 가장 큰 이유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정하면 모든 게 간단하다.

과거의 나이를 따지면 미쉘이 어울리고, 지금의 나이를 정하면 김미영이 맞는 거다.

누가 더 좋은지가 중요하다고?

결혼생활을 하는 석강호조차 제대로 적응 못 한 문제인 거다.

“무슨 생각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

김미영이 눈을 크게 뜨고 강찬을 보았다.

작전 도중에 그렇게 보고 싶었던 표정이었다.

“나하고?”

이런 엉뚱한 질문도 그리웠었다.

“그래.”

“흐흐흐흐. 아 해.”

강찬은 아무 말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다.

20분쯤 같이 있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에 들어섰다.

김미영의 시선에 담긴 아쉬움을 애써 모른 척했다.

안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잘 가!”

“그래, 일찍 자.”

김미영을 들여보낸 강찬은 아파트 현관으로 향했다.

정말 사흘쯤 사라져버려?

아서라, 일 커진다.

강찬이 집으로 들어섰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은 잠이 들었는지 온 집안이 조용했다.

제주도 여행이 힘들었던 거다.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간단하게 씻고 나왔는데 뜻밖에도 유혜숙이 잠을 떨치지 못한 얼굴로 거실에 서 있었다.

“주무시던 거 같던데 저 때문에 깨셨어요?”

“아냐. 아들이 보고 싶어서 나왔어. 엄마가 못 기다리고 먼저 자서 미안해.”

강찬은 물끄러미 유혜숙을 보았다.

이런 거. 행복이 이런 거 아닐까?

그냥 처음부터 이런 집에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지!

“제가 늦었는데요. 얼른 주무세요. 저도 잘게요.”

“그래.”

유혜숙이 다가와서 강찬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잘 자, 아들.”

“안녕히 주무세요.”

유혜숙이 잠꼬대처럼 웃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

새벽에 일어난 강찬은 최종일과 달리기와 맨손 운동을 함께 했다.

“안 쉬어?”

“예?”

“가만 보면 24시간 옆에 있잖아. 집에도 가고 해야지.”

“지금 쉬겠다고 하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겁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최종일이 슬쩍 아파트 입구 쪽을 본 다음 입을 열었다.

“모시고 싶어 하는 놈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차동균이가 요원 지원할까 하다가 최 장군님께 엄청 혼난 모양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답이었다.

“아시지만 특수팀은 다 연결됩니다. 이번 작전에 다녀온 대원들하고 지난번 몽골 작전 다녀온 대원들 사이에서 정말 신처럼 떠도는 분이 되셔서 잠시 쉰다고 하면 대신하겠다는 놈이 당장 열 놈 넘게 나타날 겁니다.”

가지가지 한다.

“들어갈게. 아침 꼭 먹어!”

강찬은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다.

운동을 끝내고는 항상 계단을 이용했다. 엘리베이터에 땀 냄새가 갇히는 게 싫어서였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유혜숙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운동 다녀와?”

“예, 피곤은 좀 풀리셨어요?”

“엄마, 어제 흉했지?”

“에이! 어머닌 살짝 졸리실 때 더 예뻐 보이시던데요?”

유혜숙이 밉지 않은 얼굴로 눈을 흘기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씻고 나오자 강대경이 기다리고 있어서 셋이서 밥을 먹었다.

평화로운 아침이다.

“어머닌 요즘 어떠세요?”

“응?”

꺼내놓고 보니 뜬금없는 질문처럼 들렸다.

“뭐 바라시는 거 없으세요?”

“음! 아들 좀 더 자주 보는 거?”

“아빠는 안 물어보냐?”

“아버지는 어떠세요? 뭐 바라시는 게 있으세요?”

젓가락에 밥을 뜨면서 강찬이 강대경을 보았을 때였다.

“엄마가 아빠한테 좀 더 관심 갖는 거다.”

“이이는! 꼭!”

셋이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두 사람을 기다리며, 강찬은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았다.

뉴스는 여전히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방에서 유혜숙의 전화가 세 번이나 울렸다.

확실히 재단 일이 바빠진 모양이다.

오늘은 미쉘과 만나서 빌딩을 확인하고, 다음은 축제를 어떻게 도와줄 건지를 고민한 다음?

강찬이 할 일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전화가 울렸다.

번득!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심장이 내려앉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독기가 눈뿐만 아니라 머리끝까지 뻗치는 느낌이었다.

‘어떤 개새끼들이!’

누군지, 어떤 내용의 통화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견딜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강찬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방을 향해 걸었다.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를 보았다.

‘안느.’

통화버튼을 누른 강찬은 바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알로!”

[“차니! 아빠가! 아빠가 납치된 거 같아!”]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차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와줘! 도와줄 거지?”]

“안느.”

울음을 터트린 안느가 강찬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사님은 무조건 구한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지금 갈게. 어디야?”

[“대사관, 대사관에 있어.”]

“알았다.”

[“고마워. 고마워, 차니.”]

전화를 내려놓은 강찬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