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52화 (1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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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뒤처리.

석강호와 백반으로 점심을 먹고 호텔로 움직였다.

여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느닷없는 공사로 길이 막혀서 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래?”

“집에 가 있겠소. 끝나고 움직일 때 전화하쇼.”

“그러자.”

현관에 들어선 강찬은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 요원과 함께 곧장 객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히죽거리는 웃음도 나왔다.

이 호텔에 와서 처음으로 주철범과 마주치지 않고 객실로 올라가는 거였다.

띠잉.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익숙한 복도를 지나 객실에 들어섰다.

“강찬 씨!”

라노크가 기다란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작전 중에 교신 한번 주고받지 않고 손발이 맞았던 사람이다.

강찬도 반가운 마음으로 라노크를 안았다.

“앉읍시다.”

테이블에는 이미 차와 찻잔, 그리고 담배와 시가가 놓여있었다. 차를 따랐고, 편안하게 시가와 담배를 들었다.

“정말 멋진 작전이었습니다.”

프랑스인답게 깊게 들어간 라노크의 눈에 감정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바실리의 멱살을 제대로 잡았습니다.”

“대사님께서 언젠간 잡으실 거였잖습니까?”

“바람을 피우다 들통 난 남편, 지금 바실리가 아마 그런 심정일 겁니다.”

라노크와 강찬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여유롭게 시가의 연기를 허공에 뱉어낸 라노크가 말을 이었다.

“영국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건데, 불행하게 강찬 씨 때문에 다 망가진 거지요. 거기에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게 된 영국이 본국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지금 바실리는 영국이 어떤 말을 우리에게 할지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재떨이에 시가를 돌려 재를 떨어내면서 라노크가 평소와 다른 웃음을 보였다.

“얼마나 급하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을 하겠습니까? 내게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강찬 씨. 러시아에 요구할 것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면 됩니다. 이럴 땐 뒤를 생각하지 말고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야 잘 모르겠고, 정부 관계자와 의논을 해봐야 알 것 같은데요? 대사님께서 추천해 주실 만한 건 없나요?”

“러시아에서 받을 거라곤 무기와 자원밖에 없지요. 교활한 바실리가 대통령을 이용해서 생선 어획량을 늘려주는 선심을 쓰려나 본데 그건 일단 받으세요. 그리고 핵무기, 혹은 석유의 개발권을 요구하는 게 좋습니다.”

“핵무기나 석유개발권이요?”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 강한 바실리가 다급한 모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배신당한 영국이 본국과 손을 잡거나, 아니면 강찬 씨와 손을 잡게 됐을 때 무언가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 말고는 저럴 위인이 아닙니다.”

이럴 때 라노크는 영락없이 구렁이의 표정과 눈빛이다.

“그러니 핵무기 정도를 내놓으라고 하고 반응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걸 겁니다.”

그런 걸 요구하면 차갑고 냉정한 바실리가 어떻게 나올까?

재미는 있겠다.

“강찬 씨.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냥 끝이었으면 싶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영국 정보국에서 드디어 강찬 씨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이 역시 요구 조건을 말해 달랍니다.”

마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제자를 대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라노크는 이야기를 전했다.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칼자루를 완벽하게 강찬 씨가 쥐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칼자루를 또?

지금까지 쥔 것만도 차고 넘쳐서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말이었다.

“대사님. 전 그런 걸 바라고 움직였던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찬 씨에게 더 감사합니다.”

“대사님께서 외인부대 전체에 비상령을 내리신 것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대사님과 함께한 것, 그리고 대사님께서 염려하시던 일이 잘 해결되어서 좋을 뿐이지, 그 외에 얻어지는 것은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일단 필요한 중재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대강 끝난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이번에 수고해 준 한국의 특수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겁니다. 본국은 이걸 러시아와 영국에서 받아낼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됩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라노크가 강찬을 장난스럽게 보았다.

“강찬 씨는 돈에 욕심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여자도 별로고.”

고등어 보고 싶어하는 것도 이 구렁이가 알고 있을까?

“이번 작전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은데 혹시 바라는 것은 없습니까?”

바라는 것?

“글쎄요? 좀 더 고민해 보고 답을 드려도 됩니까?”

“하하하하.”

라노크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발전했군요, 강찬 씨! 전 같으면 일단 없다고 했을 텐데! 좋습니다! 좋아요!”

확 핵무기를 하나 달라고 해버려?

하기야 강찬이 이런 요구를 하면 라노크는 러시아에서 두 개를 뺏어서 하나만 건네줄 사람이다. 바실리가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원 두 명이 남았습니다.”

“그건 전혀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정보국에서 1급 경호를 하고 있고, 최고의 의료진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라노크가 강찬의 안색을 살폈다.

“우선 며칠 쉬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눈빛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보이네요.”

“예. 그렇지 않아도 여행이나 다녀올까 싶은데요.”

이후로 차를 마시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다음, 강찬과 라노크는 호텔을 나섰다.

현관에서 라노크를 배웅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안쪽에서 주철범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귀신같은 새끼!

늘 저렇게 고개를 돌리면 나타나 있다.

“강찬 씨.”

그저 이름을 부르고 손을 맞잡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본 강찬은 다시 로비로 들어섰다.

“오신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 새끼는 이런 걸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커피나 한잔 할래?”

“그럴 시간이 되십니까?”

“가자!”

저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어떻게 그냥 가겠나?

강찬은 주철범과 로비 라운지에 들어서서 커피를 주문했다.

“도석이는?”

“며칠 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도 먹습니다, 형님.”

지배인이 반갑다는 눈인사와 함께 커피를 놓아주었다.

“범인 얘기는 더 없어?”

외국인이 범인이라 그렇다는 답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주철범이 조심스럽게 강찬의 귀에 고개를 디밀었다.

“형님. 그날 CCTV 기록을 도석이 형님이 가지고 계신답니다.”

강찬은 물끄러미 주철범을 보았다.

그날이라면 샤흐란의 옆구리를 갈랐던 날이다.

중국놈들이 비닐에 싸서 세탁물 수거함에 담아 지하로 내려간 날.

알 놈은 다 알고, 뒷마무리까지 모두 끝났는데 여기서 더 남을 게 뭐가 있겠나?

심지어 세흐토 브니므와도 이야기가 끝났다.

“이젠 필요 없는 걸 거다. 상황 다 끝났는데 뭐.”

“혹시 형님이 필요하시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게 찍힌 것 없잖아?”

“도석이 형님도 제대로 못 봤답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당할 이유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차와 집이 온통 난장판으로 뒤집어진 것도 그렇구요.”

“됐다. 나중에 한번 갈 거니까 그때 들어보자. 참! 내가 돈 좀 보내줄 테니까 우선 도석이 병원비에 보태라.”

“어후, 형님! 광택이 형님 아시면 저 죽습니다.”

주철범이 마약이라도 건네받는 놈처럼 치를 떨어댔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권하기도 뭐하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눈 강찬은 택시를 타고 김형정에게 향했다.

가는 길이라고 전화를 했는데 우습게도 석강호와 함께 있다는 답을 들었다. 학교를 나가지 않으니까 시간이 남는 거다.

‘건물을 빨리 인수해야겠는데?’

석강호도 그렇고, 강찬도 매일 편안하게 나갈 곳이 필요하긴 했다.

거리는 완전히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참 바쁘게 살았다.

어쩌면 아프리카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사건들과 작전들을 치르면서 지낸 시간이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에 택시가 도착했다.

계산을 마치고 건물에 들어서 5층에 도착하자 김형정이 불편한 몸으로 직접 문을 열었다.

“왜 직접 그러세요?”

“이게 한번 움직이니까 그럭저럭 적응이 됩니다.”

김형정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자 석강호가 서 있다가 강찬을 맞았다.

“일찍 왔냐?”

“짬뽕 먹었소.”

재떨이며 커다란 음료수 컵, 그리고 커피를 담은 것이 분명한 종이컵이 테이블에 가득했다.

강찬과 헤어지고 바로 온 거다.

딸칵.

테이블에 앉을 때 직원 한 명이 음료수 석 잔을 따로 가져오고, 빈 잔들을 들고 나갔다.

“침대에 앉으세요.”

“견딜만합니다. 이번 주 지나면 침대도 치울 참입니다.”

“좋은 일 있으세요?”

담배를 든 강찬의 질문처럼 김형정은 웃음을 바닥에 깔고 있는 얼굴이었다.

“러시아의 제안 때문입니다. 늘 고집을 피우던 러시아가 이번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그렇고, 이번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과 동시에 영국에서도 프로포즈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정보국과는 상호협조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구요.”

들어보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웃음을 깔고 있을 정도로 좋은 일일까?

“강찬 씨.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지금 말씀드린 세 가지만 가지고도 우리나라의 위상이 불쑥 올라갑니다. 거기에 특수팀의 명성이 더해지면……. 후우! 국가정보원의 일원으로 지금 같은 순간을 늘 꿈꿔 왔습니다. 유럽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우리 요원들이, 그동안 함부로 총질을 해댈 수 있었던 대상에서 지금은 대한민국 특수팀을 계산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겁니다.”

뿌듯한 얼굴로 김형정이 강찬과 석강호를 보았다.

“프랑스에서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영국의 SBS를 물리쳤습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요. 게다가 프랑스, 러시아, 영국이 화해의 손짓을 먼저 보입니다. 이후로 어떤 나라든 우리 요원을 살해하면 보복을 계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솔직히……, 감당 못 할 정도의 감동입니다.”

강찬은 웃는 얼굴로 김형정을 보았다.

한 작전에 담긴 의미가 나라별로, 그리고 대상별로 참 다르게 전해지는구나 싶었다.

“참, 팀장님. 러시아에서 중재 요청이 있었답니다. 요구조건을 내걸 수 있다는데 라노크 대사의 말로는 핵무기나 석유개발권? 뭐 그런 걸 요구하는 게 좋겠다는데요?”

말을 한 강찬이 놀랄 정도로 김형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핵, 핵, 핵무기요?”

이 양반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나?

“예.”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석유, 그러니까 석유 개발권 말씀이신 거죠?”

“예, 분명하게 그 정도는 요구하라고 하던데요?”

“러시아에 말씀이죠?”

강찬은 우선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입을 열었다.

“생선 어획량을 제안한 건 일단 받으시랍니다. 그리고 두 가지 중 하나를 요구해보자고 하던데요?”

김형정이 마른침을 삼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라노크 대사가요?”

강찬이 웃자 석강호가 따라 웃었다.

이거야, 주말에 하는 개그 프로를 흉내 내는 것도 아닐 테고.

“강찬 씨. 지금 말씀하신 제안이 가지는 의미를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핵무기를 가진다는 건? 후우.”

김형정이 고개를 저어댔다.

“그냥 제안만 하자는 건데요, 뭐! 주지도 않을 거 같은 일에 굳이 흥분할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석유 개발권을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그렇긴 하겠네요. 라노크 대사라면 분명 뒤를 생각해 두었을 테니까요.”

“하아! 러시아는 타국에 개발권을 양도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달려들어 지분 49%를 지켜낸 일 이외에 지금껏 그 어떤 나라도 개발권을 따낸 적은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되나요?”

김형정이 오히려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석유 개발권을 얻으면 우리나라는 중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유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우리나라 물가가……?”

김형정이 잠시 고개를 비틀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마 30% 이상 떨어질 겁니다.”

“오!”

석강호가 감탄사를 터트렸고, 강찬도 놀란 눈을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제안이 이런 효과가 있는 거구나.’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김형정은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정말 그런 제안을 하라고 했다는 거지요?”

“저기, 라노크 대사님께 알아서 해달라고 했는데요.”

“예에?”

김형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혹시 우리가 요구하는 것으로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그거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럼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이건 바로 보고해야 할 사안이라서요.”

“그러세요.”

강찬이 담배를 들자, 석강호가 얼른 라이터를 켜주었다.

둘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안, 김형정이 전화를 걸어 조금 전 나누었던 이야기에 관해 설명했다.

“예. 지금 강찬 씨와 함께 있습니다. 사실 여부는 프랑스 정보국이 아니고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 참! 아무렴 라노크가 거짓말을 할 사람인가?

“분명히 핵무기와 석유 개발권 맞습니다.”

김형정이 시선을 주어서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은 김형정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빨리 국가정보원의 능력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깁니다. 해외에 있는 요원들이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 환호성을 지를 겁니다.”

강찬은 석강호와 눈을 마주치고 잠자코 있었다. 여기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영국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더 말을 전하지도 않았다.

“참! 제주도 여행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두 분과 좋은 시간도 보냈고, 무엇보다 어머니께 무언가 해드린 것 같아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형정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웃었다.

“이번 작전으로 얻은 것을 제대로 보상하자면 호텔을 통째로 빌려 드려도 모자랄 겁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요원들의 입지를 올리려면 1년에 최소 300억을 3년 이상 집행해야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밖에 못 해 드린 겁니다. 국가정보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바라고 한 게 아닌데요. 그리고 라노크 대사를 위해 시작했던 일입니다. 전 작전 출발할 때 이미 받을 건 다 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김형정은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얼굴이었다.

몇 마디를 더 나눴을 때부터 갑자기 김형정의 전화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끊기 무섭게 벨이 울렸고, 심지어 책상 위에 놓인 유선 전화까지 김형정을 찾았다.

강찬은 적당한 순간에 석강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저녁 먹자.”

얼추 시간도 됐고, 갈 곳이 없어서 빌빌댈 석강호를 보자 강찬은 그냥 들어가기 싫었다.

“그럽시다. 스미든 새끼 부를까요?”

“왜?”

두 놈이 만나서 좋은 꼴을 보인 적이 없어서 강찬은 겁이 덜컥 났다.

“이번에 제라르를 보니까 외로운 얼굴입디다. 나도 그랬고, 그 새끼도 그렇고. 대장이 없었으면 혼자 떠돌았겠지요.”

이 새끼는 어째 이런 말을 하는데도 뭔가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강찬의 의심스러운 눈초리 앞에서도 석강호는 꿋꿋했다.

“스미든 그 새끼도 혼자 외로울 거요. 그러니 전화해서 같이 밥 먹읍시다. 지난번에 힘도 못 쓰고 잡혀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알았다.”

어디로 움직일지 몰라서 길거리에 선 채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 그 새끼! 그새 한국말이 또 늘었다.

무엇보다 발음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다른 사람이 대신 받은 느낌이었다.

“스미든. 나다.”

[“대장! 스미든이에요!”]

“어디냐?”

[“어학당에서 지금 막 나왔어요!”]

여자들한테만 말을 배우더니 말투만 들으면 아예 20대 깜찍 떠는 여자였다. 이놈 하는 짓을 몰랐다만 게이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간지러운 억양과 말투였다.

“저녁 먹을래?”

[“오우! 오늘 데이트 약속이 있어요. 음! 내일까지는 어학당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니까 모레 어때요?”]

강찬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알았다.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중에 따로 전화하자.”

강찬이 대답하는 사이, 옆에서 “누구야?” 하는 질문이 들려왔다.

[“그래요! 잘 지내요, 대장.”]

강찬이 전화를 끊는 것을 본 석강호가 의아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답디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학당 친구들과 내일까지 약속이 꽉 찼단다. 여자애랑 있는 것 같으니까 둘이서 밥 먹으러 가자.”

“에이! 개새끼!”

석강호가 대뜸 욕을 뱉었다.

그러길래 왜 잘 있는 놈을 외로울 거라고 생각해서는!

강찬이 킬킬거리자 석강호가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저녁은 뭐로 먹을래?”

“갈비 먹읍시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석강호가 먹고 싶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강찬은 석강호와 둘이서 근처에 규모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갈비 5인분만 주쇼.”

“손님이 더 오세요?”

“아니요.”

직원 아주머니가 석강호를 힐끔 살피고는 얼른 주방으로 향했다.

“맥주 한잔 하실라우?”

“소주도 한 병 시키자?”

“푸흐흐흐!”

모처럼 석강호의 만족한 웃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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