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7 / 0419 ----------------------------------------------
8-6 작전의 목표는
석강호와 차동균이 왼쪽, 최종일과 곽철호가 오른편을 맡았다.
강찬은 우선 2m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작전에서 지휘관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갖는 의미는 말할 것도 없다. 달려가며 방탄복의 심장을 맞추고, 현관 안 대원의 헬멧을 맞췄던 강찬이다.
실탄 훈련 덕분일까?
거짓말처럼 손발이 맞았다.
5m를 전진하자, 숲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위로 10m만 올라가면 다시 바위산이라 적들도 함부로 올라서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적들은 밤을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다 스페츠나츠와 전면전?
포위된 채로 외인부대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그럴 때 SBS가 합류한다면 그냥 죽은 목숨이다.
강찬이 굳이 사냥을 나선 이유다.
강찬이 돌아보자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들은 석강호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강찬은 다시 최종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종일이 강찬의 시선이 멈춘 곳을 향해 움직였다.
차동균은 석강호를 따르고, 곽철호는 최종일을 따랐다.
후욱. 후욱.
특수팀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세 사람에 강찬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아듣는 석강호가 있는 거다.
곽철호는 최종일이 살피는 뒤편과 옆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숲이다.
낙엽 사이로 빛이 떨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가 흔들렸다.
번득.
곽철호는 흔들리는 그림자 사이에서 검은 색 헬멧을 느꼈다.
본 게 맞나? 느낀 건가?
그것도 확신하진 못했다.
철컥!
곽철호의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었다.
푸슝!
털썩!
봤다.
피가 엷게 튀어서 붉은 안개처럼 피어나는 피보라를 말이다.
헬멧만 보였으니 미간을 뚫려 죽은 거다.
곽철호가 놀란 시선을 주었을 때, 강찬은 이미 총구를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곽철호는 사자 뒤를 따라 사냥에 나선 늑대가 된 심정이었다.
웃음이 삐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누가 사자에 대항하겠나?
실탄 훈련에서 강찬의 실력은 충분히 보았다.
스페츠나츠다.
전 세계 특수팀에 명성을 쩌렁쩌렁 울리는 특수팀!
그런 대원이 머리 살짝 내밀었다가 미간을 뚫려 죽었다.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쾌감이 소름처럼 퍼졌다.
보이면 쏜다.
이젠 의심할 게 없는 거다.
곽철호가 못 맞춰도 강찬이 미간을 뚫어줄 거다.
스페츠나츠?
존만아!
여기 갓 오브 블랙필드가 있다.
차동균은 이를 악물었다.
곽철호가 총을 겨눈 순간에 강찬은 이미 방아쇠를 당겼다.
놀랐다.
강찬도 그렇지만 석강호에게도 놀란 거다.
석강호는 강찬의 총구가 향한 반대쪽을 향해 총을 겨눴다. 한 조로 움직이는 대원이 해야 할 바를 새롭게 배우는 느낌이었다.
왼쪽을 맡으라는 의미!
됐다.
스페츠나츠고 지랄이고, 대가리든, 몸뚱이든, 내밀기만 하면 강찬이 잡는다.
그 짧은 순간을 지켜주면 되는 거다.
총소리, 그리고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는데도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럴 줄 몰랐겠지.
거점을 확보하라고 보낸 대원이 한방에 머리통을 뚫려서 죽을 줄 몰랐을 거다.
개새끼들!
훈련대로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강찬이 알아서 해줄 거다.
한처럼 가슴 한쪽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왼쪽만 맡는다.
몸뚱이를 던져서라도 강찬만 막아주면 되는 거다.
차동균은 더욱 매섭게 주변을 살폈다.
강찬의 동작이 바뀌었다.
미묘한 차이다.
먹이를 발견한 사자처럼 소리조차 내지 않고 움직였다.
‘왔구나!’
차동균과 곽철호는 본능적으로 주변에 적이 있음을 알았다.
강찬이 어떻게 아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꿀꺽.
어디지?
차동균? 석강호 앞쪽? 아니면 또 곽철호 쪽인가?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 순간이었다.
사아아악.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틈이다.
어른!
차동균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철컥!
푸슝!
털썩!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철호가 이랬던 거구나!’
무엇보다 확신이 서지 않았고, 다음으로 스페츠나츠를 한 방에 잡지 못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선이 마주쳤던 강찬이 앞을 보았다.
갓 오브 블랙필드!
적군에게는 죽음 신일 거다.
다음번엔 반드시 갈긴다.
맞든, 빗나가든, 다음번엔 반드시 방아쇠를 당길 거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갓 오브 블랙필드가 반드시 해결해 준다.
그리고 지금처럼 엷게 피어난 피보라를 보여 줄 거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로 20분이 지났다.
하지만 차동균과 곽철호는 힘들지 않았다.
강찬은 강약을 조절한다.
지금은 전진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떻게 아는 거지?
어떻게 적이 근처에 있는 걸 알아채는 거지?
그것도 스페츠나츠를 상대로?
차동균이 먼저 발견했던 적이다.
그런데도 한순간에 미간을 뚫었다.
미세하게 강찬의 자세가 낮아졌다.
그와 동시에 석강호와 최종일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인다.
적이다!
봐라! 속도가 줄었다.
감각으로 느낄 만큼 전진하는 속도가 줄어든 거다.
근처에 적이 있다.
이번엔 무조건 갈긴다.
차동균은 소총을 겨눈 채로 맡은 구역을 날카롭게 보았다.
어른거리면 갈길 거다.
믿자! 믿는 거다!
내가 못 맞춰도 바로 앞에 죽음의 신이 있는 거다.
어른!
그림자다.
푸슝!
차동균은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이 멈춘 느낌과 함께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털썩!
무언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빠르게 제 속도로 돌아왔다.
차동균은 얼떨결에 석강호를 보았다.
히죽!
칭찬이다.
당장에라도 차동균을 잡아먹을 것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칭찬을 보았다.
스페츠나츠를 잡은 거다!
개새끼들!
합동훈련 때 더럽게 거들먹거리면서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던 새끼들!
씨발 놈들! 얼마든지 와라!
차동균이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정신 차려!’
강찬의 매서운 눈초리가 그를 훑고 지나갔다.
차동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찬이 없었다면?
이렇게 들떴다가 한방에 갔을 거다.
***
책상에서 상체를 든 라노크가 전에 없이 무서운 눈빛으로 보좌관을 보았다.
“켈트해(Celtic Sea)에 러시아 잠수함이 나타났던 것을 정보국이 이제야 알았다. 이걸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바실리가 특수팀을 보낸 것으로…….”
“아니지.”
보좌관이 말을 멈추고 라노크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의 코앞에 러시아의 핵잠수함이 온 것을 몰랐다고? 정보국이? 위성을 다섯 개나 사용하고, 1년 예산으로 아프리카의 배곯는 아이들이 10년은 풍족하게 먹을 돈을 쓰는 정보국이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그 점에 대해서는 정보총국이 조사하겠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라노크가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라파엘.”
“예, 대사님.”
“내 앞에서 자네가 총을 꺼냈다면 말이지.”
“대사님!”
라파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라노크는 전혀 상관없다는 투였다.
“루이가 자네보다 늦게 방아쇠를 당길 수는 있지. 그런데 루이가 총을 꺼내지도 않았어. 그게 무슨 뜻일까?”
라파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는 말을 하면 안 되겠지?”
“그렇습니다, 대사님.”
“내가 무슈 강을 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도 국가의 안위를 개인적인 욕심에 던져서는 안 되는 거다. 이런 일이 그냥 넘어가면 이후에도 이런 짓을 보고 배우는 놈이 나오는 것이고.”
라파엘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총국에 연락해라. 내가 오늘 중으로 정보 부국장 둘의 사망소식을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바실리의 암살 팀을 꾸린다. 대사관의 경계를 1급으로 높이고, 외인부대 전체에 비상령을 내려.”
라파엘이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다음이었다.
“외인부대 특수팀은 당장 무슈 강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내게 알려. 무슈 강과의 연락은?”
“20시에 연락할 수 있다는 보고입니다.”
라노크가 입술을 길게 늘이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눈짓을 하자 라파엘이 급하게 방을 나섰다.
“바실리.”
라노크는 책상에 놓인 전화기가 바실라도 되는 것처럼 사납게 노려보았다.
“영국과 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시겠다?”
라노크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뱉었다.
“무슈 강에게 가진 것 전부를 배팅하게 만들어 주는군.”
그러면서 라노크는 시계를 힐끔 보았다.
***
푸슝!
털썩!
‘스물셋!’
최종일이 속으로 센 숫자였다.
9명이 한 구대를 구성하는 스페츠나츠의 특수팀 스물셋이 방아쇠 한번 당겨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정도면 이 작전에 나온 스페츠나츠 거의 세 개 구대가 죽은 거다.
스페츠나츠가 작전에 세 개 구대 이상을 파견한다고?
최종일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물론 스물셋 중에서 열아홉을 강찬이 쏘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황당한 상황이었다.
해가 머리 위에서 반대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꾸르르르! 삐익! 삐익!
기괴한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찔하는 최종일과 달리 강찬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작정한 듯 달려들던 적들이 지금은 모습을 감췄다.
어떻게 나올까?
언제까지 이런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멈칫!
최종일은 소총을 바싹 당기며 강찬을 살폈다.
작전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강찬이 멈춰 섰다.
뭐지? 무슨 일이지?
최종일과 곽철호, 석강호와 차동균이 눈이 뻐근할 정도로 주변을 살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헬리콥터에서 내리기 직전처럼 심장이 뛰었다.
강찬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적들도 이쪽의 움직임을 충분히 안다.
그런데 달려들던 적들이 한순간 보이지도 않는다.
강찬은 석강호를 향해 고개를 뒤로 밀었다.
후퇴다.
석강호가 빠르게 차동균을 지나가 섰다.
상황이 뒤집혔다.
석강호가 가장 앞, 우측이 차동균과 강찬의 순이다.
이게 맞다.
20m쯤 후퇴하자 가슴이 가라앉았다.
쯧!
강찬이 언짢을 때처럼 바람을 빨아들였다.
시선이 달려온 다음이다.
한 명씩 위치를 지정해 오각형의 형태를 취한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 아군을 향한 공격은 없었다.
끝까지 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수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거다.
해가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긴장 상태를 유지할 대원들에게 식사와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경험이란 이런 거다.
마음을 굳힌 강찬은 천천히 움직여 선두에 섰다.
저격수가 있는 곳과 대원들이 위치한 중간은 숲이 없다.
몸이 노출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적도 몸을 숨기기 어려운 곳이다.
더구나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더.
숲을 빠져나오기 직전에 강찬은 헬멧에 손을 올렸다.
치잇. “강찬이다. 복귀한다. 저격수 경계 확인.”
치잇. “이상 없습니다.”
답을 들은 강찬은 천천히 숲을 빠져나갔다.
***
벨이 다섯 번쯤 울리고 나서야 라노크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알로?”
[“라노크.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바실리.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원하는 것을 말하면 곤란해. 핵은 러시아만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해다. 라노크.”]
라노크가 빠르게 시계를 보았다.
등 뒤에 총을 들이밀었던 독사가 갑자기 화해의 제스쳐를 취한다.
이유가 뭘까?
스페츠나츠를 강찬에게 보낸 바실리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
무슈 강!
라노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책상에 올려두었던 오른손을 꼭 쥐었다.
“무슈 강의 능력을 너무 쉽게 보아선 곤란해.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강요할 위치가 아니야, 바실리.”
[“라노크. 영국의 속임수에 속은 거다. 여기서 자네와 내가 피를 뿌리게 되면 이득은 영국만 가져가.”]
“그건 무슈 강과 의논해.”
[“자네가 중재를 해준다면 쉽지 않겠나? 무슈 강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부탁하지. 더불어 프랑스에 함부로 들어간 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보상을 하겠다.”]
“바실리. 이미 알겠지만, 이번 일로 우리 정보국은 부국장 둘을 잃었어. 그리고 무슈 강의 성격상 섣부른 조건을 내걸었다간 나마저 신용을 잃을 수 있다. 자네가 이번에 잃은 스페츠나츠처럼.”
말을 뱉은 라노크가 시계를 노려보았다.
도박이다.
연락이 되지 않지만, 여기서 이 정도 도박을 하지 않으면 상황은 언제든 곤란해질 수 있었다.
[“SBS의 실제 위치를 먼저 알려주지. 무슈 강에게 자네가 전해주면 되지 않겠나? 그런데 어떻게 무슈 강과 연락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군.”]
“프랑스를 얕보지 않는 것이 좋아, 바실리.”
[“정보총국에 연락해 놓을 테니 확인해.”]
전화를 끊은 라노크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낸 거다.
무슈 강이 스페츠나츠를 이겨낸 거다.
라노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강찬이 대원들과 합류했을 때는 해가 45도 앞에 있었다.
털썩.
“후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섯 명 모두 다리를 쭉 펴고 바위에 기댔다.
대원들이 궁금함이 잔뜩 담긴 시선으로 눈치를 살폈다.
‘스물셋.’
우희승과 눈이 마주친 최종일이 입술만 움직여 전한 말이었다.
“예?”
“스페츠나츠 스물셋.”
대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최종일을 보았다. 그리고 차례로 강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식.
정말이구나!
대원들의 얼굴에 묘한 자부심이 흘렀다.
대치했고, 총질했고, 이겨낸다.
이러고 나면 기가 죽지 않게 되고, 그러면 훈련해서 익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차동균. 대원들 교대로 식사하게 해. 저격수 팀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식사한다. 절대로 긴장 늦추지 않도록 단단히 챙겨.”
“알겠습니다.”
차동균이 믿음직스럽게 답을 했다.
“저 새끼들, 어떨 것 같소?”
“이 주변에 클레이모어 설치했거나, 물러났거나, 둘 중 하날 거다.”
“아후! 담배 더럽게 피우고 싶네.”
“배는 안 고프냐?”
“왜요? 그렇지 않아도 배가 등에 딱 붙은 것 같소.”
석강호가 툴툴거릴 때 대원 하나가 시레이션을 가져다주었다.
“밥 먹고 한숨 자둬라.”
“야간에도 나갈 거요?”
시레이션 뚜껑에 손가락을 건 석강호가 강찬을 힐끔 보았다.
“클레이 모어가 깔렸으면 둘이 움직이기도 벅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좋아.”
“알았소.”
내용물의 비닐을 입으로 뜯어낸 석강호가 빵을 입에 넣었다.
강찬은 비스킷을 입에 넣었다.
김미영은 지금 뭐할까?
불쑥 성숙해진 얼굴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움푹 들어간 공간이라 사방이 막혔다.
바실리, 이 새끼가 뒤통수를 쳤다, 이거지?
뒤는 라노크가 있으니까 믿을 만하고.
강찬은 빵을 집어 들었다.
개새끼.
일단 다 죽여서 보내주고, 응징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