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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138화 (13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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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차원이 다르다.

최종일은 아직 들고 있는 K-7 소음기관단총을 한 발도 발사하지 못했다.

틈이 없었다.

‘11명.’

대한민국 특수부대를 안 거친 곳이 없는 최종일이다. 그동안 칼을 쓰는 강찬을 보며 맞붙으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죽으리란 생각은 안 해 봤다.

푸슝! 푸슝!

‘열셋!’

이건 차원이 다르다.

강찬은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엎드려서 기어가는 포복에, 옆으로 몸을 틀어 전진하고, 달려가며 쏘고, 한 바퀴를 구른 다음 쏘는 거?

다 배웠다.

그런데 강찬처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이건 숫제 소총을 든 게 아니라 팔이 세 갠데 그중 하나가 소총인 괴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건물의 모서리에 몸을 기댄 강찬은 자세를 낮추고, 검지와 중지로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석강호는 체격이 굵다.

그런데 그 석강호가 고양이처럼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쪼그린 채로 전진한다.

처음엔 저게 뭐하는 짓인지도 몰랐다.

앞에 있는 건물 유리창에 대고 거리를 뗀 채 조준경을 들여다보면 이중으로 비친다는 걸 최종일은 처음 알았다.

석강호가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였다.

하나, 둘!

강찬의 타이밍은 늘 반 박자 빠르다.

거미처럼 오른발을 쭉 내미는 순간, 강찬의 몸은 이미 모서리를 나가 있었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정확하게 네 발!

연사는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삐-. 삐-. 삐-. 삐-.

제자리로 돌아온 강찬이 고개를 짧게 움직였다.

석강호가 조금 전 특수팀이 사살된 자리를 점거했고, 최종일이 엄호한다.

‘열일곱!’

최종일은 석강호의 곁에 서며 사살된 대원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사살되면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고, 다음은 좌절했다가 마지막에 화가 치솟는다.

상대가 돼야 어떻게 하지.

실전이었으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강찬이 눈빛을 번득이더니 검지를 허공에 한 바퀴 돌리고 1시 방향의 건물을 가리켰다.

왜 저기 적이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아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는 분명하다.

1시 방향 건물에 대원들이 있을 거고, 잠시 후에 사살될 거라는 것!

군화를 신어도, 발 바깥쪽을 먼저 바닥에 대면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알았다고 흉내 내지도 못한다.

몸이 휘청여서 당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강찬이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다음, 왼쪽에 둘, 오른쪽에 셋이라는 표시를 했다.

하나, 둘!

푸슝! 푸슈슝! 푸슈슝! 푸슝!

씨익.

저 사람은 석강호가 아니다.

이중인격자도 아니고! 어떻게 된 사람이 눈빛부터 행동, 심지어 표정까지 완벽하게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석강호가 손짓을 하는 바람에 최종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차!

‘지금 다섯이니까 합해서 22명!’

이제 서른 남았다.

고작 20분에 22명이니까 1분에 한 명꼴이다.

최종일은 확실히 알았다.

칼을 들고 덤비면 부상이라도 입히고 죽겠지만, 총을 들고 덤비면 그냥 죽는다.

그것도 단 한 방에.

***

삐-. 삐-. 삐-. 삐-. 삐-.

“하아, 하하.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최성곤이 멍한 눈으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런 놈을 비무장지대에 풀어놓으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런 놈이 적군이어서 비무장지대를 설친다면…….

“흐흠.”

전대극과 김형정이 이제부터 후배도 아니라고 악쓸만하다.

사망자 22명, 소요시간 21분 26초.

이렇게 되면 1분당 한 명꼴로…….

삐-. 삐-. 삐-.

“흐허허허.”

무슨 생각을 하든 결과는 그걸 뛰어넘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무전을 쓰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하아!”

최성곤은 'S'자 버튼을 노려보았다.

저걸 다시 누르면 훈련이 끝난다.

지금만 해도 대원들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진 건데, 만약 7명에 52명이 전부 당하고 요인 암살까지 된다면……?

소문은 반드시 돈다.

소문이 문제가 아니다.

망가진 대원들의 자존심은 어떻게 할 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정예 특수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나?

최성곤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손가락을 'S'자 버튼 위로 움직였다.

***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목표물을 발견하고 다가가는 순간, 처음과 같은 사이렌이 울렸다.

4시 30분이 갓 넘어서 아직 해는 충분했다.

“훈련 종료! 전 대원, 증권사 건물 앞으로 집합!”

시골동네 이장의 방송처럼 모형 도시에 부관의 음성이 또렷하게 울렸다.

강찬은 자세를 세우고 최종일을 보았다.

“훈련이 끝난 모양입니다.”

들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훈련이 끝난 줄을 몰라서 바라본 거다.

주저앉아 있던 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날카롭거나, 혹은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강찬을 보며 건물 앞으로 향했다.

“강찬!”

김태진과 서상현, 그리고 우희승과 이두희가 소총의 총구를 아래로 하고 걸어왔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네요.”

“총소리가 계속 나던데?”

“25명 사살입니다.”

김태진의 질문을 최종일 빠르게 받았다.

“몇 명?”

“25명입니다.”

최종일이 재차 답을 하자 김태진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였다.

“가보자.”

증권사 건물에 다가갔을 때 최성곤이 부관과 함께 건물을 나섰고, 김태진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훈련을 중지하겠습니다.”

“그거야 여기 지휘관인 최 장군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저녁을 함께 드셔도 됩니까?”

김태진이 강찬을 보았다.

“상관없죠.”

“그렇다면 출발하십시다.”

최성곤이 성큼성큼 걷는 것을 시작으로 올 때처럼 모형 도시를 빠져나왔다.

막사 앞의 주차장이다.

“무기는 부관에게 반납하면 됩니다.”

이런 걸 구태여 몸에 차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나?

강찬은 몸에 걸고 있던 무전기와 무기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안으로 잠깐 들어가시죠. 자넨 예정대로 음식 준비해.”

“알겠습니다.”

부관의 답을 들은 최성곤이 막사의 문을 열었다.

김태진, 강찬, 그리고 석강호만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를 가리킨 최성곤은 손수 봉지 커피를 타왔다.

“담배 피웁니까?”

“예.”

“선배님. 담배 좀 피우겠습니다.”

김태진이 손을 내미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오랜만에 보는 대형 유리 재떨이다.

담배 한 보루쯤 피워야 꽉 찰 것 같은 크기였다.

최성곤은 국산 담배를 강찬과 석강호에게 권한 후, 하나를 꺼냈는데 석강호가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여주었다.

“후우. 선배님. 이 훈련의 진짜 목적이 뭡니까?”

최성곤은 예사롭지 않게 눈빛을 번들거렸다.

“국가 기밀이란 말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전에 대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잘못! 인정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새끼들이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는 알고 시키고 싶습니다.”

최성곤에게도 말을 해주지 않았구나.

강찬은 그때야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전 실장님만 답을 할 수 있어. 차라리 지금이라도 전화를 드리지?”

“그렇군요.”

최성곤이 강찬을 흘끔 본 다음,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잠시 후다.

“실장님. 최성곤입니다. 예. 훈련은 지금 끝냈습니다. 아닙니다. 잘 끝났습니다. 실장님. 이 훈련을 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뭡니까?”

최성곤이 재떨이에 피우던 담배를 콕콕 찍어가며 껐다.

“국가 기밀인 건 알겠습니다. 야전군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적어도 내 새끼들이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이 훈련의 뒤에 뭐가 있는지!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강찬이란 사람의 진짜 정체가 뭔지는 꼭 알고 싶습니다!”

강찬에게 따지는 것처럼 시선을 주었던 최성곤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최성곤은 강찬에게 불쑥 전화를 디밀었다.

“여보세요?”

[“뭘 어떻게 했길래 최성곤이 그렇게 독이 바짝 올랐어?”]

강찬은 힐끔 최성곤만 보았다.

[“자네 계획 얘기해 줘. 최성곤이는 자존심이 강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건 지키는 군인이야.”]

“제 정보가 전혀 없는 거 같은데요?”

[“그건 내가 설명할 테니까, 잘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강찬은 전화기를 다시 최성곤에게 건네주었다.

“네, 선배님. 예. 그거야 압니다. 예. 예에?”

전혀 다른 의미의 시선이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정말이십니까? 물론 봤습니다. 그러시면 먼저 말씀을 해주시지! 알겠습니다. 예. 예. 내일 보고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성곤이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다음, 강찬을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강찬 씨가 갓 오브 블랙필드 라는 분이오?”

어딘지 멋쩍어서 강찬은 풀썩 웃으며 “예.”라고 대답했다.

“몽골 작전 다녀온 그 갓 오브 블랙필드 맞소?”

“맞습니다. 둘이서 다녀왔지요.”

“자네가 몽골 작전을 다녀왔어? 언제?”

김태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선배님, 모르셨습니까? 김형정 선배님 구해온 한국 요원 코드명이 갓 오브 블랙필드잖습니까? 우리 대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

“이런! 그럼 그때 그 친구가 다쳤던 게? 자네가 멀리 다녀와야 한다고 했던 거? 그게 몽골 작전이었던 거야?”

“죄송합니다.!”

“야, 이 사람아! 석 선생! 어떻게 석 선생까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최성곤의 표정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그때 김 선배와 함께 갔던 대원들이 606과 비무장 특수팀 대원들입니다. 이번 훈련에 참여할 정도로 몸이 낫지 않았고, 그 임무에 대해 다들 비밀로 했지만, 갓 오브 블랙필드에 관한 이야기는 돌았습니다. 하아! 진작 말씀을 좀 해주시지!”

최성곤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여기 석 선생께서 그때 함께 가셨던 분이시구만!”

강찬의 손을 잡았던 최성곤이 다시 석강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꽉.

얼마나 세게 잡는지 보는 강찬의 손아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선배님. 강찬 씨. 저녁은 대원들 위로할 겸해서 돼지 한 마리 잡아다 놓았습니다. 그냥 여기서 저녁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야 좋지.”

“저도 그게 낫지요.”

최성곤이 만족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자! 남은 건 왜 이 훈련을 하느냐인데 그걸 듣고 저녁을 먹으러 가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전대극과 통화한 것도 있고, 김태진도 알고 있는 사항이라 숨길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테러를 감행했던 적국에 응징을 가할 생각입니다.”

최성곤의 미소가 단숨에 싹 사라졌다.

“중국이 첫 번째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1조와 2조로 팀을 나눴던 것은 그중에서 구대를 구성할 12명을 선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중국이라고 했습니다?”

“예, 중국 맞습니다.”

최성곤은 믿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이동에 필요한 비행기, 무기, 그리고 기타 정보는 프랑스에서 조달해 줄 예정입니다.”

“몽골 작전 때도 그렇게 갔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최성곤이 이를 꽉 깨물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승인하지 못할 텐데요.”

“그래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밀입국하는 겁니다.”

“미치겠군.”

야전에서만 살아온 군인답게 최성곤의 눈빛이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뭐야?”

“고기 준비됐습니다.”

“알았다.”

아직 해가 남은 시간이지만, 산이 드리운 그림자가 막사의 유리창을 반쯤 뒤덮은 시간이었다.

“선배님. 오늘 주무시고 가시죠.”

“나야 괜찮아. 강찬 씨는?”

“글쎄요?”

솔직히 강찬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오늘 훈련만 놓고 보면 제라르가 데려온 병아리들만 데리고 작전에 나가는 꼴이다.

이대로 가는 건 일종의 자살 행위와 같다.

“강찬 씨. 어차피 먼 길 온 건데 하루 시간을 주십시오.”

최성곤의 뒤에 마치 전대극이 있는 것처럼 걸걸한 말투였다.

하루쯤이라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저녁 들고 천천히 이야기하지요.”

최성곤을 시작으로 함께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 역시 산이 드리운 그림자가 반쯤 차지하고 있었는데 서늘한 기운도 꼭 그만큼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드럼통을 세로로 잘라 기다랗게 만든 화로 열 개에 커다란 고무통에 돼지고기가 수북하게 쌓였다.

“주목!”

최성곤이 외치자 삽시간에 시선이 달려왔다.

대원들은 계면쩍고, 분하고, 황당하고, 당황한 감정들이 뒤엉킨 표정이었다.

“오늘 함께 수고해 주신 분들을 소개하겠다. 여기는 비무장지대의 살아있는 전설, 김태진 선배님.”

대원들이 박수를 쳤다.

“저쪽으로 김태진 선배와 함께 비무장지대를 누볐던 서상현. 그리고 606과 비무장 특수팀을 모두 거친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모두 귀관의 선배 기수다.”

이름을 말할 때마다 박수가 울려 나왔다.

숯이 아니라 장작을 넣었는지 화로마다 불길이 넘실대며 올라왔다.

“이분은 강찬 씨.”

형식적인 박수가 나왔다.

“이름으로 하면 잘 모를 것 같아서 코드명을 알려주겠다. 강찬 씨가 바로 귀관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던 갓 오브 블랙필드다.”

순간, 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적이 막사 앞을 휘감았다.

타다닥. 타닥.

장작 튀는 소리와 ‘꾸르륵. 꾸욱.’ 하는 새소리가 지나간 다음이다.

“기밀 사항이라 다는 이야기할 수 없고, 갓 오브 블랙필드가 몽골 때와 같은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다. 외국 특전팀이 아닌 대한민국의 특전대원들을 선발하고 싶어한다.”

대원들의 눈빛과 표정이 삽시간에 달라졌다.

“그 옆에 계신 분이 석……?”

“석강호 입니다.”

“석강호 씨. 갓 오브 블랙필드와 함께 몽골 작전을 수행했던 분이다.”

짝짝짝짝짝짝.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우선 저녁을 먹는다. 이상.”

“장군님!”

중간의 대원이 손을 높이 들었다.

“뭐야?”

“우리 동료를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최성곤이 강찬을 힐끔 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차렷!”

착!

군화를 붙이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갓! 오브! 블랙필드에 대해 경례!”

이리저리 흩어져 있지만 일사불란하게 전해 준 경례다.

이런 건 무시할 수 없다.

강찬은 거수경례로 답을 했다.

“바로!”

착!

엄숙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느낌.

대원들의 표정과 눈빛이 복잡했다.

“이제 식사해!”

“잘 먹겠습니다!”

대원들이 악을 쓰고도 강찬만 보고 있었다.

김태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풀썩 웃었는데 강찬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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