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7 / 0419 ----------------------------------------------
8-1 여기서 뭐 하세요?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평상이다.
길 건너편으로 펼쳐진 저수지의 풍광이 속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강찬이 저수지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였다.
“부탁하자.”
밑도 끝도 없이 툭 하고 김태진이 입을 열었다.
“성에 안 차는 것도 알겠고, 실망한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런 대원들을 만드는데 전 실장님이나 여기 이 친구, 그리고 나는 인생을 바치다시피 했다.”
김태진이 김형정을 한번 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적국을 때려본 적이 없다. 내가 이 친구와 비무장지대에서 설칠 때도 북한의 초소를 휘젓고 다닌 게 전부였지.”
몽골 작전을 제대로 모르는 터라 김태진의 말은 어딘가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적국에 가본 경험이 있는 대원. 그런 부대 하나 만들어다오. 자네라면 얼마든지 프랑스나 러시아의 특수군을 부를 능력이 있다는 건 오는 길에 이 친구에게 들었다. 내 눈으로 본 걸로도 차고 넘치지. 그런 거, 저런 거 다 치우고, 전 실장님, 나, 여기 이 친구 얼굴을 봐서 시원하게 한번 도와다오.”
진지한 부탁이었다.
시선을 돌리다가 김형정과 눈이 마주쳤을 때, 강찬은 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저렇듯 진지하게 부탁하는 눈빛을 어떻게 모른 척하겠나?
자식을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군인과 함께 훈련하고 그들과 작전을 나가 달라는 부탁이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해 줄 거냐?”
“대표님 같으면 이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하실 수 있겠어요?”
김태진이 입술을 늘이며 넉넉한 미소를 그려냈다.
“밥 잘 먹었으니까 돌아가겠습니다.”
“지금?”
“제가 안 가면 전 실장님 여기 계속 계실 거잖아요?”
“그걸 뭘 또 그렇게 생각해?”
“얼른 병원으로 모시고 가세요. 왔던 길 그대로 훈련장으로 갈게요.”
“같이 가자.”
“간다니까요.”
“구경해 보고 싶어서 그렇다. 같이 가자. 한 차로 가고, 올 때는 상현이가 천안에 있으니까 그리 바로 오라고 해서 같이 올라오면 된다.”
김태진이야 이미 퇴원해서 활동하는 상황이라 강찬이 굳이 반대할 것도 아니었다.
결정 난 걸 길게 끌건 없다.
다들 일어나서 곧바로 전대극이 누워 있는 방으로 향했다.
“실장님. 일어나서 얼른 병원 가세요. 저는 이 길로 증평으로 가겠습니다.”
“뭐?”
전대극이 벌떡 일어나다가 인상을 와락 썼다.
“저도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상현이도 그리로 오라고 할 거구요.”
“그래도 되겠어?”
“구경할 겸해서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우리 원 한번 풀어보자. 자네가 좀 수고해라. 강찬.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드는 놈이 나오면 아예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라.”
강찬이 풀썩 웃고 말았다.
“죽이는 건 모르겠고, 팔을 부러트려서라도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볼게요.”
“고맙다.”
“대신 바로 병원으로 가세요.”
전대극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최성곤이에게 단단히 전화해.”
“알겠습니다.”
김형정이 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
석강호가 운전했고, 강찬이 조수석, 김태진이 조수석 뒷자리에 앉았다.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한 차, 그리고 전화를 받은 서상현은 곧바로 차를 돌려 증평으로 향한다고 했다.
강찬은 숫자를 세 보았다.
“대표님. 정말 다 나으신 거 맞죠?”
“그렇다니까.”
“그럼 우리끼리 한 팀 짜죠.”
김태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곧바로 말을 알아들었다.
“자신 있어? 그러다 지면 개망신이야.”
“해보죠.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 팀원 데리고 짜증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것 같은데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고개를 디민 김태진이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피가 뜨거워진 걸 거다.
1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서 다시 훈련장에 도착했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최성곤이 나왔는데 김태진을 보고는 느긋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는데 그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다.
강찬이 그대로 돌아선 것 때문에 충분히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는 옷 갈아입고 있을게요.”
“최 장군. 나하고 상현이, 군복하고 장비 줄 수 있지?”
“선배님이 직접 뛰실 겁니까?”
“요즘 애들은 어떤가 한 번 부딪쳐 보려고.”
최성곤이 이를 악물더니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강찬과 석강호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본 최종일이 곧바로 군복을 꺼내 입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최성곤의 질문에 김태진이 강찬을 보았다.
“팀장님과 서 이사님. 저, 여기 석강호, 최종일 쪽 셋. 이렇게 한 팀으로 짜겠습니다.”
“일곱 명? 그래서요?”
최성곤은 무시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침투조를 하겠습니다.”
“흠! 방어 인원은 몇 명으로 할까요?”
“장소가 어딘가요?”
최성곤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 산을 가리켰다.
“고지전은 앞산이 있고, 시가전은 이 길로 돌아가면 따로 건물을 준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강찬은 중국과 영국을 가정했다.
그렇다면 고지전보다는 시가전이 적당했다.
“시가전으로 하지요. 우리 팀을 제외한 인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질문을 던질 때 차가 빠르게 들어왔다.
서상현과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틈이 있었다.
“원래 팀을 짜려고 대기하던 대원이 스물두 명, 그리고 3공수 소속 대원이 서른 명, 대기 중입니다.”
“건물 크기는요?”
“5층 건물입니다.”
더 생각할 것도 없는 조건이었다.
“요인 암살로 하죠. 나머지 인원으로 지키시고 암살 대상자만 표시해 주세요.”
“끄으응.”
신음처럼 숨을 내쉰 최성곤이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요인은 내가 맡겠습니다. 나도 복장을 갖춰야 하니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선배님. 안에 군복이 있을 겁니다. 자네도 들어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해 하던 서상현이 김태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강찬은 최종일과 나머지 두 사람을 손짓으로 불렀다.
“저격수가 필요해.”
최종일이 시선을 돌리자 이두희가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나섰다.
강찬이 몇 가지 지시를 마쳤을 때 최성곤과 김태진, 그리고 서상현이 군복을 입고 막사를 나왔다.
오후 3시쯤 된 시간이었다.
“장비 가지고 나오라고 해.”
최성곤이 부관에게 지시하고는 허리춤에 손을 걸었다.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그의 온몸에서 철철 넘쳐났다.
강찬이 옷을 갈아입었던 막사에서 대원들이 나왔다.
부관이 무전기를 건네주었는데 대원들 전체가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본다고 무전기가 부서지는 건 아니니까.
눈빛은 나쁘지 않았다.
다음은 소총과 수류탄, 중화기 등이 앞에 놓였다.
K-1 소총을 개조한 종류가 세 가지다.
주·야간 조준경과 작은 계기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철컥. 철컥.
강찬과 석강호는 K-7 소음기관단총을 들었다.
김태진과 서상현, 그리고 최종일 등도 같은 소총을 챙겼다.
다음은 권총이다.
장탄수를 계산해서 글록 권총을 오른쪽 허리와 왼쪽 발에 찼다.
대검을 쓸 줄은 몰랐다.
강찬은 대검을 집어 날을 뽑아 보았다.
역시!
날은 서 있지 않았다.
그래도 무장은 하는 게 맞다.
강찬은 대검을 오른쪽 발목에 걸었다.
소총용 탄창 여섯 개, 권총용 탄창 세 개를 몸에 걸치자 부관이 다가왔다.
검사기 같은 기계로 강찬이 장착한 무기들의 인식한 다음, 기계에서 명함 크기의 카드를 뽑아 강찬에게 주었다.
“왼쪽 주머니 안의 장치에 끝까지 꽂아 주십시오.”
이런 게 있었나?
강찬은 왼쪽 상의 주머니를 보았다.
카드를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다.
달칵.
카드를 꽂자 착용한 장비 전체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서대로 장비를 인식하고 카드를 넘겨주었는데 얼추 20분이 소요되었다.
“총은 소리와 반동이 실제 총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총, 수류탄, 그리고 대검에 의해 사망했을 경우, 메인 컴퓨터에 입력되고 당사자에겐 카드를 삽입할 때 들렸던 경보음이 울립니다. 수류탄은 폭파되면 근방에 있는 대원들의 장치를 인식해 부상과 사망을 알려줍니다.”
엄청난 발전이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하겠습니다.”
지프에 나눠타는 동안 대원들이 트럭의 뒤로 올라갔다.
솔직히 무기를 다루는 자세만 봐도 어느 정도 실력은 가늠한다.
트럭에 오르는 대원들의 눈빛에 의아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거친 산길을 100m쯤 돌아서 가자, 산과 산에 둘러싸인 평지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건물이 제대로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마치 버스에서 막 내린 느낌이었다.
“서울의 한 지역과 똑같이 지었습니다. 나는 저 앞에 증권사 건물 5층에 있을 겁니다. 내부는 엘리베이터, 계단, 그리고 사무실 구역까지 똑같이 나뉘어 있습니다.”
최성곤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과 음성으로 설명했다.
“지금이 15시 50분이니까 16시 10분에 신호음이 울리면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선제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이점 염두에 두십시오.”
말을 마친 최성곤이 김태진을 향해 경례를 해 보인 다음, 바로 건물을 향해 출발했다.
20분 후에 작전 시작이다.
최성곤은 일부러 도시의 지도를 주지 않은 거다.
달라고 할까 했으나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을 살필 노력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강찬은 가까운 3층 건물을 보았다.
“우선 저리로 올라가시죠.”
말뜻을 모를 사람은 없어서 모두 강찬을 따라 목표로 했던 3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모형 도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5층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100m에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어서, 마치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석강호, 최종일, 둘이서 2조.”
석강호와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이 이두희와 저격조를 담당해 주세요.”
“알았다.”
“서 이사님과 우희승이 3조.”
두 사람이 눈빛으로 답을 했다.
“무전으로 나를 부를 땐 1조라고 하면 됩니다.”
“작전은?”
김태진이 주변을 둘러본 다음 강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상황을 바꾸면 간단합니다. 우리 쪽이 방어군이라고 생각하세요. 저쪽은 반드시 신호와 동시에 우리를 잡으러 나올 겁니다.”
“흐음.”
김태진이 신음처럼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 요인은 팀장님입니다. 이두희.”
“예.”
“저쪽은 5층 건물 옥상에 반드시 저격수를 배치할 거다. 기회를 봐서 가능하다 싶으면 저격해. 거기서 1차 승부가 갈린다. 혹시 저격이 어렵더라도 가능한 한 시선을 끌어.”
“알겠습니다.”
“서 이사님과 우희승은 팀장님을 지킬 수 있도록 이 건물 입구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그럼 나는 여기 있으면 되겠나?”
“예. 여기서 적들의 시선을 끌어주세요.”
“알았다.
강찬은 석강호를 보았다.
“게릴라전 알지?”
“알았소.”
“내가 건물에 잠입할 때 엄호해.”
“바로 들어갈 생각인가?”
강찬은 씨익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차동균!”
“예, 장군님.”
“네가 구대를 인솔해서 나가. 가서 애송이한테 3공수의 실력이 어떤지를 제대로 가르쳐 줘.”
“알겠습니다.”
“곽철호.”
“예!”
“자네가 606과 특수팀 인솔해. 옥상에 저격수 배치하고 차동균이와 별도로 나가. 나가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적을 전멸시켜라.”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층 마다 경계하고.”
“알겠습니다.”
최성곤이 증권사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하아! 차-암 나!”
그는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고등학생에 체육선생이라니. 국가 기밀? 허허허!”
고개를 털어낸 최성곤이 이를 악물 때 보좌관이 노트북을 탁자에 올려주었다.
카드 번호와 이름 옆으로 생존, 사망, 부상의 칸이 나뉘어 있었고, 아래로 총원이 명시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모두 생존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었다.
“이 버튼이지?”
“예.”
최성곤이 'S'자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그러자 주변에 짧은 사이렌이 세 번 울렸다.
“기도 안 차는구만.”
버튼을 누른 최성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
신호음이 모형 도시 전체에 커다랗게 울렸다.
이두희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입구를 의지해 몸을 숨긴 채로 5층 건물을 겨누고 있었고, 그 뒤로 김태진, 서상현, 우희승이 삼각형의 형태로 옥상 담벼락에 몸을 붙였다.
“정말 이대로 있어도 되겠습니까?”
서상현의 질문에 김태진이 뭔 소리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방어군이 52명입니다.”
“우리 지휘자가 누구냐?”
“그거야…….”
“너는 왜 강찬이 나와 너를 여기에 끼워준 건지 모르겠냐?”
“모르겠습니다.”
서상현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김태진이 건물 주변을 빠르게 훑은 다음 짧게 서상현을 보았다.
“전 실장님과 김형정, 그 친구가 최성곤이한테 꽤 뭐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52명을 상대로 너와 나를 끼워 넣은 건 전 실장님과 김형정을 위한 배려다.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 거야.”
서상현이 고개를 끝까지 돌려 골목을 살핀 후 고개를 가져왔다.
“그렇게 얘기했습니까?”
“강찬이 어디 그런 걸 나불댈 사람이냐?”
김태진이 짧게 답을 했을 때였다.
푸슝! 푸슝!
소음 기관단총 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김태진과 서상현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봤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
삐이-. 삐이-
“뭐야? 이게?”
최성곤이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는 것처럼 상체를 앞으로 가져갔다.
사망이라는 칸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생존자 총원이 50으로 바뀌었다.
당연하게 사망자 총원은 2명 늘었다.
최성곤이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삐이-. 삐이- 삐이-.
연달아 세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사망 표시가 늘었다.
최성곤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창밖을 보는 순간이었다.
삐이-. 삐이-.
또다시 사망자 표시가 떴다.
“총구 앞에 줄이라도 서 있는 거야? 뭐야? 차동균이 무전 연결해!”
최성곤이 악을 쓰며 부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삐이-.
“야! 차동균이 연결하라고!”
“장군님. 차동균 중위는 이미 사망입니다.”
부관은 아예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