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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왜 그래?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난 강찬은 아파트의 공원 앞에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몸뚱이가 부상 흔적도 남았는데 좀 쉬자고 꼬드기는 것처럼 무거웠다.
왼손은 어제부터 붕대를 감지 않아서 홀가분한 상태다.
몸을 충분히 풀어준 강찬은 평소처럼 달려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가을이다.
청명한 하늘과 차가운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알아듣지도 못할 사건들에 중심을 잃느니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똑바로 서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후우. 후우.”
숨이 가빠질수록 가슴 속에 남아있던 탁한 기운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염병할, 블랙헤드.
그것 때문에 죽었는데 그것이 가진 에너지 때문에 살아난 거다.
아프리카에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까?
성격상 승진은 어려웠을 거고.
며칠 쉬었다고 숨이 쉽게 뚫리지 않았다.
강찬은 몽골에 함께 갔었던 병아리를 떠올렸다.
두건과 베레모를 가져간 놈.
제라르가 부상으로 빠졌을 텐데.
커피를 타올 때 보여줬던 눈빛으로 봐서 아프리카로 돌아간 다음에 지겹게 연습하고 연습했을 거다.
“헉헉. 헉헉.”
어처구니없게도 신병 중에는 강찬의 태도나 자세를 흉내 내며 연습하는 놈들이 있었다.
산을 지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강찬이 총을 겨눴던 모습을 떠올리며, 제 주둥이로 “부스럭.” 한 다음, ‘철컥’ 소리가 나게 총을 겨누는 거다.
그 외에도 많다.
‘피식’ 웃는 것을 온종일 흉내 내는 놈, 소총을 겨눠가며 달려가는 연습을 하는 놈까지.
만만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소총을 겨누고 달리다가 엎어져서 다치는 놈이 꽤 많았다.
살아라.
베레모와 두건 뒤집어쓰고, 시간 날 때마다 대검 거꾸로 들고 강찬을 있는 대로 흉내 내서라도 살아라.
“나 잘했죠?”
그 멍청한 새끼처럼 죽지 말고, 살아라.
악착같이 강찬을 흉내 내던 제라르처럼 말이다.
벌써 아파트 앞이 보였다.
아프리카를 생각하다 보니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으나 지금껏 끊어진 적은 없으니까!
강찬은 호흡만 셌다.
달린다! 달린다!
여기서 걸음을 멈추면 내가 인솔하는 대원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아파트에 들어선 강찬은 벤치 앞에서 무릎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달린 건데 정말 멍청하게 뛰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강찬이 날카롭게 시선을 들었을 때였다.
“물 드십쇼.”
물병을 내민 손을 타고 시선을 들던 강찬은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퇴원했어?”
최종일은 오른쪽 얼굴에 기다랗게 밴드를 붙였다.
“괜찮으시면 내일부터 같이 뛰어도 되겠습니까?”
“아후, 시원하다! 갑자기 왜?”
“부족한 게 뭔지 알았습니다.”
“푸흐흐.”
강찬은 최종일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 친해지면 이 새끼 죽지 않게 하려고 또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표시 내지 못하지만, 이 새끼가 죽으면 언제 잊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도 못한다.
‘빌어먹을.’
하필 물병을 건네주냐?
크기야 좀 작다마는.
“뛰고 싶으면 언제고 괜찮아.”
“감사합니다.”
최종일의 태도가 조금은 변한 느낌이었다.
물을 마저 마신 강찬이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35 여단의 동기 놈이 말씀 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지?
“모든 대원들이 내려올 때까지 끝까지 지켜주셨다고. 프랑스 대사와 러시아 정보 수장을 기다리게 하실 줄은 몰랐다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달랍니다. 특수팀으로 그렇게 대우해주시는 분이 계신 걸 알았으니 어떤 작전에서도 당당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개새끼!”
최종일이 전하던 감동이 한순간에 깨져버린 느낌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 있으면 악착같이 훈련해서 반드시 살아올 각오나 세우라고 해.”
강찬이 빈 물병의 뚜껑을 닫자 최종일이 손을 내밀었다.
“멋지게 죽는 놈은 필요 없어. 살아. 악착같이 살아서 다음 작전 때 내 앞에서 눈알을 부라리는 놈. 난 그런 대원이 좋아.”
“알겠습니다.”
“두희랑 희승이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찬은 아파트 입구를 힐끔 둘러보았다.
“같이 점심이나 먹을래?”
“시간 되십니까?”
둘이서 비슷하게 웃었다.
***
아파트로 들어서자 유혜숙이 맞아주었다.
“운동 다녀왔니?”
“예, 맛있는 냄새 나는데요?”
“김칫국 끓였어.”
“씻고 나올게요.”
이런 일상이 주는 행복을 맛본 것만으로도 다시 태어난 것에 충분히 감사한다.
샤워를 하고 나와 셋이 식탁에 앉았다.
“오늘 출근하세요?”
“쉬는 날이야. 왜?”
국을 한 수저 떠 넣으며 강대경은 궁금한 표정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경호해 주시는 분들하고 다 같이 식사나 할까 하구요.”
“그래도 되니?”
“어차피 다 아시는 거잖아요. 감출 것도 아닌데요, 뭘.”
강대경이 유혜숙을 돌아보았는데 딱히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강찬은 넥타이핀과 압정 형태의 발신기를 들고 나왔다.
“아버지. 이걸 하고 다니시면 어디 계시든 제가 바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요. 이건 어머니 거. 백에 꽂으시면 돼요. 대신 뽑으면 발신 장치가 중단되니까 늘 들고 다니시는 거에 꽂아주세요.”
강대경과 유혜숙은 신기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불편하실 줄은 아는데 사생활은 보장해 드릴게요.”
“이 녀석이!”
강찬의 말에 강대경이 과장된 반응을 보였고, 적당한 웃음도 있었다.
“알았다. 아들이 지켜준다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스위치를 켜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예, 아버지.”
강대경이 이리저리 둘러본 다음에 입고 있는 셔츠에 넥타이핀을 걸었다.
“엄마는 손지갑에 꽂아놓을게. 밖에 드는 건 아무래도 바꿔들 때가 많거든. 그래도 돼? 아들?”
“그러세요. 죄송해요, 어머니.”
“지켜주려고 그런 거라면서.”
유혜숙의 얼굴에 담긴 표정을 보며 강찬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종일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직원 전체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전원이 참석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뭐야? 토요일인데 데이트 같은 거 안 해?”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장, 양진우 사건, 이번에 시신 인수까지. 요원들과 국가정보원 특수팀에서 갓 오브 블랙필드 인기가 높습니다. 다들 자부심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점심 초대를 마다할 요원이 누가 있겠습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알았어. 고기로 할래? 회로 할래?”
[“고기 먹겠습니다.”]
“그럼 너무 허름하지 않은 곳으로 예약하고, 편하게 입으라고 전해줘. 토요일인데 정장 차림으로 모이는 건 좀 그렇잖아. 가뜩이나 눈빛들 살벌한데.”
[“알겠습니다.”]
오후 1시로 시간을 정한 강찬은 강대경과 유혜숙에게도 시간을 알려주었다.
“어떡하지? 아들? 엄마, 뭐 입지?”
강찬은 웃음이 나왔다.
“토요일이잖아요. 다들 편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제대로 입으시면 직원들이 불편해할 거예요.”
“그래?”
유혜숙이 방으로 들어간 다음이다.
TV에서는 보도 프로그램에서 해주는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심이 섰니?”
“뭐가요?”
“나랏일 하는 거.”
“글쎄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강찬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버지나 어머니께 발신기 드려야 하고, 경호 요원들에, 아버지 사업을 저 때문에 그만두셔야 할지 모르는 데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할까요?”
강찬은 처음으로 강대경이 무언가를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결정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첫 순간이었다.
“아빠 사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강찬은 물끄러미 강대경을 보았다.
당장 떠오른 정답은 ‘편한 대로 결정하시라,’는 거였다.
이런저런 고민하지 말고 정말 편한 대로.
강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강대경의 대답도 그런 게 맞을까?
빙그레 웃던 강대경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직원들에게 그렇게 반말해도 괜찮은 거니? 아빠가 보기에 나이도 많아 보이던데?”
“아! 그거요!”
솔직하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인 거다.
“제가 직급이 높아서 일부러 그렇게 연습하는 거예요. 프랑스 대사나 다른 나라 요원들 앞에서 제가 앞에 서니까 자꾸 익숙해지려구요.”
“그런 게 필요하기도 하겠구나.”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댄 건데 의외로 강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래도 어른들께 너무 버릇없이 굴면 못 쓴다.”
“예, 아버지.”
강대경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았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서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차니! 어디야?”]
“집.”
[“점심 같이 먹을까? 조금 뒤에 집 앞에 갈 수 있어.”]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직원들이랑 함께 먹기로 했는데?”]
[“나도 갈게.”]
얘는 낯가림이란 게 없나?
“여쭤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는데 직원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식사할 때 미인이 함께 있으면 밥맛이 좋아져.”]
“끊어 봐. 내가 여쭤보고 전화해 줄게.”
[“곤란하면 점심 먹고 나서 차 한잔 해.”]
드라마도 시작했고, 굳이 거절할 일은 아니어서 강찬은 우선 전화를 끊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최종일과 통화해서 식당을 들은 다음, 미쉘에게 알려주었다.
***
커다란 방에 칸막이를 따로 해 주었는데 모인 인원은 거의 스무 명에 가까웠다.
“아버님! 어머님!”
“미쉘, 어서 와요!”
미쉘은 강찬보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더 반가운 듯 달려들었다. 덕분에 직원들 앞에서 어색해 하던 유혜숙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을 했다.
모인 요원들에게 미쉘을 먼저 소개했고, 다음으로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를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인사시켰다.
점심이나 먹자는 뜻이었는데 딱딱한 회사 회식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중앙에 앉았고, 맞은 편에 강찬과 미쉘, 그리고 주변으로 최종일을 비롯한 직원들이 쭉 앉았다.
누군가 한마디 해야 할 분위기였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 잘 부탁합니다.”
강찬은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얼굴을 제대로 얻어맞았던 여자 요원은 아직도 얇게 접힌 거즈를 콧등 위에 붙이고 있었다.
“괜찮아?”
“다 나았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코에 거즈를 붙인 여직원이 손을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여서 그런지 시선이 단박에 달려갔다.
“지난번 일 이후로 대표님과 이사장님이 저희를 불편하게 대하십니다. 좀 더 편하게 대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강찬이 웃는 낯으로 시선을 돌렸고, 모두의 시선이 유혜숙에게 향했다.
“그게, 나는 여러분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 우린 경호를 해줄 만큼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유혜숙이 당황한 얼굴로 변명처럼 답을 꺼냈다.
이런 건 뭐라고 끼어들기가 참 어렵다.
“차민정!”
그런데 그 순간에 최종일이 단호한 음성으로 요원을 불렀다.
코를 다친 여자 요원의 이름이 차민정인 모양이다.
“너 606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606 구호!”
“나는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코에 거즈를 붙인 여직원이 당차게 구호를 외쳤다.
“황석기!”
“예, 황석기.”
영업사원으로 들어온 남자 요원이 큰소리로 답을 했다.
“너는 특수대원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호!”
“나의 피로 국가를 지킬 수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
밥 먹기 전인데 이럴 필요가 있나?
최종일을 아는 터라 강찬은 잠자코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저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최종일이 오른쪽 볼에 밴드를 붙인 채로 강대경과 유혜숙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드님 덕분에 들으신 구호대로 살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철도를 연결하는 엄청난 임무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겁니다.”
최종일이 좌우를 둘러본 다음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아드님께서 두 분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유라시아철도의 일을 마무리하게 하는 일. 그것은 저희에게 정말 영광스러운 임무입니다. 이름이 남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파한단, 라면 한 개를 사는 일도 저희에게 맡겨 주실 때, 저희는 보람을 느낍니다.”
닭살이 돋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던 강찬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요원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한 건 알겠는데 미쉘이 감동해서 눈이 붉어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두 분께서 저희를 가족으로, 동생으로, 조카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쉽게 쓰십시오. 그래서 누군가 파고들 수 있는 빈틈이 없게 해 주십시오. 차민정이 편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저희도 좀 더 편하게 두 분께 요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제대로 먹혔구나.
강대경의 볼이 씰룩이고, 유혜숙의 눈가가 젖은 것을 보며 강찬은 최종일의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었음을 알았다.
“여러분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원래 성격이 이래서 한 번에 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편하게 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누군가 박수를 치자 다른 요원들이 그 뒤를 따르는 바람에 제법 커다란 박수가 울려 나왔다.
“배고파. 뭐 먹을 거야?”
“저희는 갈비로 먹겠습니다.”
“그럼 우선 갈비 시키고, 중간에 먹고 싶은 거 마음놓고 시켜. 그럼 되지?”
“정말 마음껏 먹습니까?”
“계급장 떼고 먹자. 능력을 보여줘 봐.”
“알겠습니다.”
누군가가 나가서 주문을 했고, 조금 있다가 엄청난 양의 고기가 들어왔다.
술은 맥주 몇 병이 전부였다.
방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 술을 더 권하기는 어렵다.
한 사람당 꼭 한 잔씩 돌아갈 양이어서 잔을 다 채우자 술은 끝났다.
강찬의 잔은 강대경이 직접 따라주었다.
아들을 대견하게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다.
강대경과 유혜숙의 잔은 경쟁자가 많았다.
고기를 굽는 동안 가위바위보까지 해서 강대경은 영업사원 중 한 명이, 유혜숙은 미쉘이 채웠다. 물론 승부에서 이긴 또 다른 영업 사원의 양보를 받아서였다.
“잘 부탁합니다.”
강대경이 잔을 내밀었고,
“잘 먹겠습니다.”
직원들이 대답했다.
강찬과 미쉘까지 몸을 돌려서 반 잔쯤 마신 다음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었다.
계급장을 떼라는데 눈치 볼 멍청이는 없어서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아버님, 여기요.”
미쉘이 잘 익은 고기를 작은 상추에 싸서 강대경에게 건네주었다.
위험한데?
없는 동안 찾아왔었나 싶을 정도로 강대경의 표정에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어머님.”
“음! 미쉘이 싸주니까 더 맛있네.”
미쉘은 확실히 이런 자리에 능숙했다.
굽기도 잘 굽고, 고기 모양도 예쁘게 자르고, 심지어 먹기도 잘 먹는다.
어느 틈에 머리를 뒤로 묶은 데다, 밑반찬으로 나온 게장을 불판에 구워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건네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미쉘, 드라마 재미있어요.”
“어머님 친구분 딸은 다음 주에 나와요.”
한국말이다.
그런데 강대경과 유혜숙은 미쉘이 이렇게 빨리 한국어가 늘었다는 것을 의심조차 않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분위기 좋고, 고기 맛있고.
그런데 강찬은 전화기를 슬쩍 보았다.
왜 이렇게 찜찜하지?
“그래서 그 여자애는 어떻게 돼요?”
“그건 비밀이에요, 어머님.”
“나한테도?”
시끌시끌한 분위기에서 한 걸음 밀려나는 느낌.
소란이 한 뭉치로 뭉뚱그려져 강찬에게서 멀어지는 느낌.
뭐지?
식당에서 폭탄이라도 터지나?
강찬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이 날카롭게 섰다.
젓가락에 들린 고기.
불판에서 올라오는 연기 자락.
웃음, 소곤대는 소리, 부르는 소리, 물잔을 잡은 손가락까지 다 보였다.
“아들? 왜 그래?”
갑자기 모든 것이 확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배가 불러서요. 잠깐 바람 쐬고 더 먹을게요.”
강찬은 최종일을 보았다.
눈빛으로 안다.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후! 저도 너무 먹나 봅니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강찬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 점심이다.
식당 안에 손님이 제법 있었다.
강찬은 빠르게 안을 훑고는 밖으로 나섰다.
“왜 그러십니까?”
정문의 바깥에 섰을 때, 강찬의 눈빛을 본 최종일 역시 날카롭게 주변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