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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불곰의 방문.
금요일 오후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강찬은 곧바로 2층 안쪽에 자리한 국가 정보원 공항분실로 향했다.
인터폰을 누르자 신분증을 가슴에 단 여직원이 나와서 강찬을 안으로 안내했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들 사이로 복도가 있는 형태다.
어디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외부인은 알기 어려운 구조였고, 그 흔한 목찰 하나 달려있지 않았다.
똑똑똑. 달칵.
여직원이 가장 안쪽 방에서 노크를 하자 40대 중반의 남자가 강찬을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날카롭게 생긴 사내는 강찬에게 소파를 가리켰다.
“공항분실을 책임지고 있는 허창선입니다.”
“강찬입니다.”
소파의 테이블을 맞이한 상태에서 인사를 나눴고, 둘이 자리에 앉았다.
똑똑똑.
안내해줬던 여직원이 커피 두 잔과 물을 반쯤 채운 종이컵을 가져다주었다.
“김 팀장님이 꼭 재떨이를 준비해 드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시나요?”
“덕분에 사무실에선 처음 피워봅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권하는데 표정은 여전히 뾰족했다. 강찬이 담배를 받자 허창선이 불을 붙여 주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4시 40분에 라노크 대사가 도착하면 바로 VIP실로 자리를 옮길 예정입니다. 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은 강찬 씨가 도착하기 직전에 확인했습니다.”
보고에 가까운 대화다.
공항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은 보였지만, 친근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강찬은 반쯤 피우던 담배를 종이컵에 넣었다.
“현장을 둘러볼 수 있나요?”
“지금 말씀입니까?”
“예.”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허창선의 껄끄러운 태도를 보며 강찬은 빨리 사무실을 나서고 싶었다. 거기에 현장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거리가 꽤 됩니다.”
강찬은 시선만 들어 허창선을 보았다.
“실장님.”
“말씀하십시오.”
“현장을 보고 싶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거지?
허창선은 강찬의 요구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공항을 책임진다는 자부심 넘치는 놈이, 낙하산을 타고 온 듯한 고등학생을 상대하자니 갑갑해서 그런가?
강찬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대가리 급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국 정보원과 투닥거리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성질이 터지기 전에 빨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허창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올려두었던 출입증을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검은색으로 숫자 ‘0’이 쓰인 것이 전부다.
“이걸 가슴에 다십시오.”
강찬은 집게를 이용해 신분증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병신.’
허창선을 따라 공항분실을 나서며, 강찬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디나 그렇다.
김형정같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겸손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권위에 절어 모가지가 늘 빳빳한 새끼들.
저런 개새끼는 절대로 제 목숨이 헛되이 사라질 수 있는 몽골 작전 같은 곳에는 못 간다. 그러면서 그들의 숭고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앞서지 못해 속이 상한 꼴이다.
바실리와 라노크라는 거물이 등장하는 이런 순간에 주인공이 되고 싶다?
웃기는 소리다.
그들이 비밀리에 강찬과 만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허창선보다 월등히 높은 직급의 국가 정보원 간부들이 달려왔을 거다.
엘리베이터로 입국장으로 향한 허창선은 곧바로 활주로로 나갔다. 중간마다 경례를 붙이는 직원들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에도 거만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생각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활주로에 나가자 비행기들과 각종 장비들이 내뿜는 소리가 훅하고 달려왔다.
“타시죠!”
허창선은 대기하고 있던 위가 뻥 뚫린 산업용 지프를 가리키고는 냉큼 조수석에 올라탔다.
뭔 말이 필요하겠나?
이럴 땐 그냥 조용히 타주면 된다.
지프는 활주로에 그려진 선을 따라 공항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탑승객들의 시선을 완전히 피해 돌아가자 조립식 벽으로 양쪽 면을 막아놓은 주변을 35 여단 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지프는 10m쯤 거리를 두고 내렸다.
“여깁니다!”
강찬은 몸을 일으켜 지프에서 내렸다.
조수석으로 두 걸음을 옮기자 허창선이 바로 앞에 있었다.
“여기 있을 테니까 라노크 대사가 오거든 이리로 모시고 와 주세요.”
“예?”
“VIP실에 안 갈 거니까 대사님을 이리 좀 모셔달라고요.”
허창선이 강찬을 날카롭게 보았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언짢은 얼굴이었다.
강찬은 몸을 돌리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활주로에선 금연입니다.”
찰칵. 찰칵.
“후우.”
오늘 저 새끼한테 라노크를 소개해주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다. 고분고분 말을 들으려고 온 건 더더욱 아니고.
강찬은 곧바로 조립식 벽이 세워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35 여단이 작은 부대는 아니지만, 이런 업무에 선발될 특수팀은 빤하다. 그들은 강찬을 아는 눈치였다. 인솔자인듯한 대원이 짧게 경례를 보였다.
강찬이 목례로 답을 하고 그의 곁에 서는 순간이었다.
부우웅.
지프가 그의 옆에 멈춰 섰다.
“강찬 씨. 라노크 대사와 친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소에 따라 최소한 지켜야 하는 예의가 있는 법입니다.”
이 새끼하고는 뭐가 이렇게 안 맞지?
“공항에 온 프랑스 대사를 바로 활주로로 안내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피식.
강찬의 웃음을 본 허창선이 이를 꽉 깨물었다.
잊고 있었다.
김태진, 김형정,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고건우, 최종일에 이어 전대극까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고 목을 내건 사람들만 만나는 바람에 이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던 거 맞다.
권위와 겉치장에 정신 돌아간 놈들이 싫어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도 말이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전장에서 피 흘려가며 싸우는 지휘관이 한 명이라면 고급 군복에 멋진 지휘봉 들고 여기저기 지도나 찍어대다 으스대는 놈들은 백이 넘었다.
강찬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이런다고 공항에서 사고 치는 건 정말 낯부끄러운 짓이다.
구렁이 같은 라노크와 독사 같은 바실리가 이런 눈치를 모를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요원들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어야 할 때였다.
그렇다고 이런 꼴을 계속 보이면 정말 라노크나 바실리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다. 이 병신은 분명 국가정보원 공항 분실장이라고 깝죽댈 게 분명했다.
강찬은 전화기를 꺼냈다.
4시 30분.
라노크가 도착할 시간이기도 했다.
강찬이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전화기를 대자 허창선이 고개를 삐딱하게 튼 채로 지켜보았다.
[“강찬 씨. 무슨 일입니까?”]
김형정이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35 여단의 지휘자가 지켜보는 앞이다.
“공항분실장님하고 불편합니다. 조치해주시지 않으면 시신 인도하는 일에서 전 빠지고 저녁을 먹는 자리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허창선의 표정에 ‘뭣이!’하는 글씨가 확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강찬 씨가 오늘 현장의 총 책임자입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전 활주로에 나와 있으니까 공항 분실에 연락하셔서 라노크 이리로 바로 안내해 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공항 분실장 혹시 옆에 있습니까?”]
김형정이 인내하는 것처럼 숨을 나직하게 내쉬면 던진 질문이었다.
“예. 저보고 바꿔 달란 말 마세요.”
[“강찬 씨가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였군요. 알겠습니다. 우선 공항분실에 연락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내리는 순간에 곧바로 벨이 울렸다.
“대사님.”
[“강찬 씨, 5분 후 도착입니다.”]
“저는 활주로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으로 바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해 놨습니다. 담배 피우기가 이곳이 좋아서요.”
강찬이 불어로 대화를 시작하자 허창선이 눈치를 살폈다.
[“강찬 씨답군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죠.”]
전화를 끊은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일을 하든, 작전을 벌이든, 성격대로 못하면 병이 나는 거다.
성질이 지랄 같아서?
그런 면도 있겠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일에 실패하는 것의 의미는 죽음이다.
지금은?
유라시아철도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 거다.
오늘 오는 요원들, 그날 발표회장에서 죽거나 다친 대원들, 양진우를 막기 위해 죽은 요원들의 모든 죽음을 대가로 만나는 오늘 같은 일에서 체면과 권위를 내세워?
공연히 바실리 앞에서 흉한 꼴을 보이느니 빨리 눈에서 치우는 게 좋다.
“네! 국장님!”
활주로를 보던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허창선이 전화기에 대고 다급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얼마나 세게 고함을 질렀는지 “개새….”하는 말이 강찬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허창선이 운전수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는 강찬을 돌아보았다.
죽은 대원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체면, 권위 따지고도 무사히 가는 거니까 저 새끼는 더럽게 운이 좋은 거다.
부우웅.
운 좋은 새끼가 그렇게 사라졌다.
35 여단 지휘자가 입 끝으로 웃는 것이 보였다.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쯧!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검은색 승용차와 군용 버스 여섯 대가 활주로를 달려왔다.
활주로라고 아무렇게나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웃기게도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도로를 그려놓았고, 중간에 신호도 있다.
승용차에서는 라노크와 요원들이, 버스에서는 의장대대원들이 내렸다.
강찬은 승용차로 다가가 라노크를 맞았다.
“바실리도 5분 후에 도착한다더군요. 그동안 차나 한잔 할까요?”
“여기서요?”
라노크가 눈짓을 하자 루이가 보온병과 커다란 종이컵을 들고 나타났다.
“프랑스인에게 와인과 홍차는 공기와 같지요.”
트렁크에 종이컵을 올려놓고 차를 따랐다.
시가를 꺼내 입에 문 라노크를 보며 강찬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 행사가 끝나면 정보총국에서 강찬 씨의 전화기로 수신 프로그램을 보낼 겁니다. 주의할 게 있습니다. 강찬 씨가 내 위치를 확인할 때마다 강찬 씨의 위치 또한 정보총국에 알려집니다.”
“그렇군요.”
공항 활주로에서 맡는 홍차의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대사님. 정보국의 능력으로 한국은 어느 정도입니까?”
갑자기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는데 라노크는 짐작했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입을 열었다.
“인적 자원은 늘 인정받았습니다. 열정, 투지, 근성은 최고점인데 반대로 시스템이 늘 약점이 되었지요.”
강찬이 차를 마시며 시선을 들자 라노크가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정보전에 강세를 보이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정보원을 안정시켜야 하고, 그들이 배신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데다, 첨단 장비를 계속 구매해야 합니다. 미안하게도 한국은 부정과 부패가 늘 요원들의 열정과 근성을 꺾곤 했습니다.”
라노크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은 능력보다 정권에 충성하는 요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국가정보원에서 사용하려던 위성을 뒷돈을 받는 조건으로 싼값에 팔아치우기도 했지요.”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요원들의 희생과 근성으로 버티는 형국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정보원의 능력은 전 세계에서 40위쯤 될 겁니다.”
“별로라는 말이네요.”
라노크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어서 강찬은 쓰게 웃었다.
차단막의 한쪽에서 의장대대원들이 도열을 마쳤고, 비행기 유도사와 화물을 나르는 장비들이 속속 도착했다.
시끄러워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라노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중국항공사 표식을 탄 보잉737 기종이 유도차를 따라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중국과 협의가 끝났다는 뜻이겠군요.”
“시신을 인수하려면 어차피 중국 측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바실리는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중국 민항기를 끌고 왔다는 것은 중국 정보국에서 제공했다는 뜻입니다.”
라노크가 피식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중국이 강찬 씨에게 호의를 보낼 일이 뭐가 있을까요?”
유도차가 차단막을 지나가자 유도사가 양손에 든 표식을 움직여 비행기를 인도했다.
엔진의 굉음이 차단막에 갇히는 순간이다.
유도사가 두 팔을 머리 위에서 겹치자 비행기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장비들이 달려가고 마지막으로 계단이 연결되었다.
“가볼까요?”
강찬은 라노크와 함께 계단 아래로 움직였다.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바실리가 곧바로 내려왔다.
오늘은 눈빛 날카로운 놈들 천지다.
바실리 뿐만 아니라, 뒤에 내리는 요원 세 놈도 평소에 연습하던 것처럼 눈빛이 더러웠다.
“라노크!”
바실리가 과장된 표현으로 라노크와 안은 다음, 볼에 키스했다.
불편했지만 이런 인사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강찬 씨!”
강찬은 바실리를 가볍게 안은 다음, 볼 근처에서 소리만 나는 키스를 나눴다.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인사를 마친 바실리가 라노크를 보았을 때였다.
“시신이 다 내려오면 움직이시죠. 대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하고 싶습니다.”
총책임자로 시신의 인수는 알아서 처리하게 두고 바실리를 챙기는 것이 걸맞는 일일 거다.
하지만 강찬은 당장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모른다.
뭐든 좋다.
이국땅에서 죽은 대원들의 귀환을 홀대할 수는 없는 거다.
대전의 묘지에 이미 묘비까지 서 있는 마당이다.
총에 맞은 상처를 보일 수도 있어서, 오늘 중으로 국군병원으로 옮겨져 신원을 확인한 후, 가족에게는 화장을 마친 다음 돌아간다.
첫 번째 관이 내려왔다.
양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의 의장대대원이 절도있게 태극기를 펼쳐 관 위에 덮었고, 정면에서 지켜섰던 장교가 손바닥만 한 태극기 배지를 관의 머리에 대고 움켜쥔 손날로 내리쳤다.
쿠웅.
저런 죽음이 대한민국을 지킨 거다.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때리고 맞으며 사는 이 나라를 실제로는 저런 죽음들이 지켜내고 있는 거다.
관을 지켜보는 35 여단 대원들의 눈빛 역시 비장했다.
어디선가 구슬픈 나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드르르륵.
두 번째 관이 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펄럭!
태극기가 펼쳐져서 관을 덮었고,
쿠웅.
손바닥만 한 배지가 관 위에 박혔다.
지켜봐 주는 것만 할 수 있지만, 꼭 지켜주고 싶은 예의였다.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강찬을 바실리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저 친구는 정말 독특하구만.”
“괜찮다면 저쪽에서 차 한잔 하지, 바실리.”
바실리가 고개를 묘한 각도로 끄덕여서 두 사람이 승용차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