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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하고 싶은 일?
저녁 전에 두 번이나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수진의 부모가 만나기를 청하는 바람에 강찬은 결국 유헌우를 따라 원장실로 움직였다. 부모의 마음도 걸렸지만, 세 번씩이나 찾아온 유헌우의 입장을 끝까지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유헌우를 따라 11층의 원장실로 들어서자 심수진의 부친과 모친이 소파에서 얼른 몸을 일으켰다. 피곤한 기색은 여전했지만, 눈과 얼굴 전체에 생기가 돌았다.
“학생!”
모친이 대뜸 마주선 강찬의 손을 잡았다.
강찬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 유혜숙의 표정이 꼭 이랬을 거다.
잘 됐다. 정말 잘 된 일이다.
“앉으시죠.”
소파의 상석에 자리한 유헌우가 손을 뻗어 자리를 권했다.
“수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강찬은 풀썩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했다.
“여기, 내가 명색이 대학교수네.”
부친이 ‘고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심민덕’이라 적힌 명함을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집사람 말대로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그게 오히려 마음 편합니다.”
“고마워요.”
모친이 미안한 얼굴로 얼른 답을 했다.
여직원이 차를 내왔는데 이미 할 이야기는 대강 끝이 난 다음이다.
“언제고 한번 들러주게. 사람이 살아가는 게 다 이렇게 만나서 서로 힘이 되고 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강찬은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를 받았다.
“우리도 모처럼 집에 가볼 생각이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 자네는 내일 퇴원이라지?”
“예.”
“고맙네. 정말 고마워.”
강찬이 멋쩍게 웃는 것을 본 유헌우가 얼른 끼어들었다.
“자! 인사는 이만하면 되신 것 같습니다. 두 분도 가셔서 좀 쉬셔야지요. 오늘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주무시고 내일 면회시간에 맞춰 오세요. 수진이에게도 부모님의 밝은 얼굴이 훨씬 좋을 겁니다.”
일어서서 몇 차례 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야 두 사람이 원장실을 나섰다.
“이제 되셨죠?”
“고생했습니다.”
보기 좋은 웃음으로 유헌우가 답을 한 직후였다.
“내일 퇴원인데 옷이 없습니다.”
“또요?”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세탁해 놓으신 것도 아니잖아요?”
“알겠습니다. 내가 내일은 기분 좋게 옷을 준비해 드리지요.”
“석 선생것두요.”
“그럼요!”
강찬이 일어서자 유헌우가 따라 나왔다.
“원장님은 가족이 없으세요?”
“왜요? 기가 막히게 예쁜 부인에 말 같은 아들이 셋이나 있습니다.”
“일요일에 이러고 계시면 불평 안 합니까?”
“성직자와 의사는 휴일 근무를 불평하면 안 됩니다. 전 그것 하나는 확실하게 가족에게 심어줬지요. 특히나 비밀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이요.”
강단 있는 척 말은 하지만 강찬이 보기에 능글맞게 설득했을 확률이 높았다.
***
월요일 아침에 유헌우가 사다 준 옷을 입고 병원을 나선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사거리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날씨 죽이우.”
“가을이라 그런가? 확실히 운치가 있긴 하다. 가 있어. 내가 사 갈게.”
강찬이 커피 두 잔을 받아서 테라스로 움직였다.
“너는 지금 몸뚱이 기억이 다 있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찬은 문득 생각나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게요. 대장이 생각해봐도 그렇지요? 사실 내가 한국말을 알아듣고 지껄이는 것만 해도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거라 이젠 당연하게 느껴지우.”
하기야 다예루가 한국말을 지껄이는 것부터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기는 하다.
“전에 감정이 어땠는지도 느껴지우. 그래서 마누라랑 딸의 의심이 덜하기도 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같이 공유하니까. 지난번에 집들이하지 않았소? 그때 온 친척들과 동료들도 다 알겠더라구요.”
강찬이 석강호를 힐끔 보았다.
가끔 생각이 깊어진 듯한 꼴을 보이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바실리가 온다는 것도 그렇고, 자비에란 새끼도 아직 한국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영국이니 미국이니 뒤엉기는 꼴이 심상치 않으니까 당분간은 몸조심하고 있어.”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소. 대신 하루에 한 번은 미사리라도 다녀옵시다. 집에만 누워있으면 갑갑해 죽수.”
“알았다.”
적당히 담배 피웠고, 커피도 마신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석강호는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 특히 택시를 탈 때 그랬다.
둘이서 아파트 앞에서 헤어졌고, 강찬은 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섰을 때였다.
“아들!”
유혜숙이 정말 반갑게 강찬을 맞아주었다.
“출근 안 하셨어요?”
“오늘 아들 온다고 했잖아! 보고 가려고 기다렸어. 손은 왜 그래?”
“조금 다쳤어요. 이번 주 지나면 괜찮을 거래요.”
“조심하지? 많이 안 아파?”
그날 이후로 처음 보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유혜숙의 몸짓과 음색에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
강찬은 툭 하고 다가가 유혜숙을 안았다.
이렇게 안으면 유혜숙의 머리가 강찬의 턱밑에 닿는다.
“괜찮으신 거죠?”
“그럼. 아들이 지켜주잖아.”
풀썩 웃는 강찬의 등을 유혜숙이 다독여주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서운하거나,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때는 안아주는 게 최고다.
“엄마가 아들 서운하게 했지?”
“많이 놀라셨었잖아요.”
“응.”
강찬이 팔을 풀었다.
“아들, 과일 좀 먹을래?”
“그럴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여서 강찬은 순순히 식탁으로 움직였다.
냉장고에서 멜론을 꺼낸 유혜숙이 먹기 좋게 자른 후에 껍질을 벗겨냈다.
“직원들이 설명해 줬어. 아들이 아니었으면 엄마 못 지켰을 거라구. 아니면 거기 있는 직원 한두 명은 잘못됐을 거라고도 했어. 여기!”
유혜숙이 포크로 잘라낸 멜론을 찍어 강찬에게 건넸다.
“유라시아철도 때문에 어떡해서든 아들을 막으려는 나라에서 아빠와 엄마를 노린다는 말도 들었어. 그걸 아들 혼자 막아내려고 애썼다는 말도 들었고. 먹어, 아들.”
“같이 드세요.”
“이거만 깎고.”
유혜숙의 표정을 보자 어쩌지 못해서 강찬은 멜론을 입에 넣었다.
“아빠랑 엄마도 강해질 거야. 아들이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 일에 방해되지 않게 기운 내기로 했어.”
뭔가 있는데?
강찬은 유혜숙의 얼굴에 담긴 자부심을 보았다.
궁금하긴 한데 물어보기는 어렵다.
“직원들도 그대로 다 있기로 했어. 유라시아철도가 연결되면 우리나라는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될 거래. 왜?”
강찬을 본 유혜숙이 말끝에 웃는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 누구 만나셨죠?”
“아니야.”
“푸흐흐. 거짓말하면 티 나는 거 아시죠? 하여간 아버지랑 어머니는 거짓말 정말 못 해.”
“티 많이 나?”
“예.”
멜론을 반이나 깎아 놓아서 강찬은 포크로 그중 하나를 찍어 유혜숙에게 건네주었다.
“모른 척해줘. 아빠랑 엄마가 비밀 지키기로 했어.”
“알았어요. 얼른 과일 드세요.”
유혜숙이 포크를 받아 입에 물고 난 다음이었다.
“어머니가 너무 힘드시면 이제 국가에서 하는 일은 그만할까 해요.”
“으으응!”
입에 과일이 있어서 유혜숙의 답이 이상했다.
“아들이, 아들이 좋은 일을 해. 아빠나 엄마 때문이 아니라.”
유혜숙이 과일을 얼른 삼킨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엄마나 아빠는 평범하게 살아서 잘 몰라. 그래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야. 대신 위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야.”
말끝에 유혜숙이 강찬의 왼손을 보았다.
안쓰러운 감정을 숨기고 이겨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유헌우가 병원을 못 옮기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가 유혜숙을 제대로 설득한 거다.
당장 무언가를 결정할 것은 아니어서 강찬은 그저 “알았어요.”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출근하셔야죠?”
“응. 엄마 이제 출퇴근용 차도 생겼어.”
이건 무슨 소리지?
“아빠가 사주셨어. 여직원 두 명과 함께 다니라고.”
“정말 잘하셨어요.”
진심이다.
경호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유혜숙이 받아들이고 나면 위험이 훨씬 줄어든다.
“점심 먹고 출근할게.”
시간이 얼추 11시여서 강찬은 그러자고 했다.
적당히 과일을 먹고, 샤워실로 향했다.
옷을 벗자 아직 벌겋게 올라온 새로운 흉터들이 보였다. 어떻게 칼자국이 연결 안 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갈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강대경이나 유혜숙과 수영장 가기는 다 틀렸다.
모처럼 개운하게 샤워를 하자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은 그야말로 모처럼 먹는 집밥이다.
된장국, 김치, 콩나물 무침, 오이무침 등등.
석강호와 있는 동안 먹는 양이 늘었나 싶을 정도로 배불리 먹었다.
설거지를 끝낸 유혜숙이 여직원과 통화를 한 후에 현관에 섰다.
“다녀오세요.”
“고마워, 아들.”
뭐가 고마운 거지?
오히려 이런 엄마가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유혜숙이 현관을 나서자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김형정과 통화를 해서 부탁 한 가지를 했다.
오후 중간에 서울대학교 특례입학증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석강호가 전해주었다. 수요일에 학교에 가서 받아와야 한다는데 또 시상이 어쩌고 해서 다시는 그렇게 안 한다고 딱 잘랐다.
6시 30분경, 강대경과 유혜숙이 동시에 들어와서 모처럼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배가 너무 부른데? 바람이나 쏘이고 올래?”
식사를 마치고 강대경이 건넨 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여서 강찬은 두말하지 않고 강대경과 함께 현관을 나섰다.
“손은 정말 괜찮은 거지?”
“예.”
겨우 한마디를 했을 때 아래층에서 사람이 타는 바람에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까지 다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저기 가서 앉자.”
정자 주변으로 놓인 벤치가 비었다.
강대경이 가리킨 곳으로 옮겨가서 둘이 편안하게 앉았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가 정보원장. 그렇게 세 분하고 엄마와 아빠가 식사했었다.”
이거였구나.
강찬은 풀썩 웃음을 웃었다.
“처음엔 정말 어렵더니 나중엔 엄마도 조금은 편해 하더구나. 그분들이 그렇게 대해주셨어.”
“어머니가 그래서 바뀌신 건가요?”
“엄마 눈치가 그렇지?”
“예.”
강대경이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널 유라시아철도 한국 담당으로 임명하고 싶다고 하시던데?”
“저를요?”
강대경이 입술을 모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립위원장인 라노크 대사의 추천이 있어서 우리 정부는 거절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실 생각이라더라. 네가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방해하고 싶어하는 나라에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텐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
“그걸 왜 물어봐? 정말은 네 생각이 중요한 거지.”
당연한 말인데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네가 싫은 걸 아버지나 엄마 때문에 하는 거 싫다. 아빠가 그랬잖아. 대학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엄마 짜증은 아빠가 다 감당할 거라고 약속한 거 같은데?”
둘이서 자그맣게 웃고 난 다음이었다.
“엄마와 약속했어. 너를 틀 안에 가두지 않기로. 네가 정말 큰 인물이 될 수 있는데 엄마나 아버지가 겁난다고, 네가 너무 걱정된다고 막지는 말자고. 하지만 솔직히 무서운 건 있어. 그게 뭔지 알지?”
습격을 당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강찬이 다칠 것이 무서운 것임을 왜 모르겠나.
“네가 보여준 모습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다만, 아빠나 엄마와는 다르게 네가 그런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겠구나 싶은 거야. 국가 정보원장님이 그러시던데? 네가 이대로 서른 살쯤 되면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물이 될 거라고.”
그때까지 살아 있기나 할까?
“아빠는 네가 거물이 되는 거보단 행복하게 사는 게 기쁘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대신 네가 그런 삶이 행복하다면 엄마나 아빠 때문에 억지로 숨겨가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예.”
“그런 건 근데 안 다치고는 안 되는 거겠지?”
강찬을 바라보며 강대경이 멋쩍게 웃었다.
“서울대학교 특례입학 증서는 꼭 엄마 갔다 드려라.”
“알고 계셨어요?”
“그날 말씀하시던데? 오늘 학교로 보낼 거라고. 엄마, 그거 엄청 기다린다.”
꼼짝없이 수요일에 학교에 가게 생겼다.
“찬아.”
“예.”
“엄마, 너한테 서운한 얼굴 보인 거 만회해보겠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거야. 아들 모습을 무조건 다 받아들이겠다고 정말 애쓰고 있는 거고. 엄마 이해해줬으면 싶다.”
“그럼요.”
“어이구, 이놈이 언제 이렇게 불쑥 컸지?”
강대경이 손을 뻗어 강찬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에스컬레이터도 혼자 못 타서 울고불고하던 녀석이.”
“제가요?”
“기억 안 나는 척할래?”
실제로 기억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 사내자식이 자존심도 있긴 해야지.”
강대경이 “엇차!”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들어가자. 엄마 걱정하겠다.”
월요일이 이렇게 정리되었다.
***
화요일에 강대경과 유혜숙이 출근하고 나서 강찬은 삼성동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사무실에서 보자는 김형정의 전화를 받은 건데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움직였다.
달칵.
5층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모르는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팀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직원은 김형정의 방 문고리에 카드를 대고 문을 열어주었다.
“강찬 씨!”
방으로 들어서던 강찬은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면에 보이는 창 아래로 간이침대가 있었고, 김형정은 그곳에 누워 있었다.
몸의 삼분지 2 이상을 붕대로 감싼 모습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어요?”
“경찰병원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지 않습니까? 아후! 이게 차라리 낫습니다.”
어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이상해져 간다.
“김태진, 그 친구는 내일 퇴원합니다.”
“벌써요?”
“꾀를 피웠을 친구는 아닌데 그렇다더군요. 담배 하나 피웁시다.”
강찬이 탁자를 건너가 간이침대 옆에 앉을 때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커피와 재떨이다.
다른 건 몰라도 직원들은 이런 거 정말 싫을 것 같다.
강찬은 담배를 하나 물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물론 강찬도 피웠다.
“국가 정보원에서는 강찬 씨에게 죽은 대원들의 인수를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따르는 강찬 씨의 어떤 요구도 승인할 생각이고, 모든 지휘를 강찬 씨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어차피 할 거라면 차라리 이게 속 편하다.
“그리고 부탁하신 발신기는 제 책상 위에 두었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돌려보니 책상 위에 작은 상자가 하나 보였다.
“넥타이핀, 단추, 그리고 허리띠, 마지막으로 압정 세 개입니다. 압정은 구두 뒷굽 안쪽에 꽂아두면 됩니다. 한번 설치하면 3개월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신기는요?”
“강찬 씨 전화기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어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으네요.”
김형정이 붕대를 칭칭 감은 팔을 뻗어 뻑뻑하게 잔을 들었다.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흘리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죽은 대원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준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뱉은 말이다. 실제로도 김형정은 기분이 한결 좋아 보였다.
“바실리가 금요일에 입국하면 정보국은 1급 경계를 내릴 겁니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살해당하면 뒷감당이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쉽게 죽을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요?”
“그것도 문제입니다. 바실리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안 가리는 인물이지요. 한마디로 극단적인 사람입니다.”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본 김형정이 힘겹게 침을 삼켰다.
“하기야 강찬 씨를 안다면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 여기 계실 거예요?”
“병원보다 낫다니까요.”
병원보다 좋아서가 아니라 금요일의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서일 거다. 두고 왔던 대원들을 찾는 일이라면 강찬도 이랬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