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25화 (12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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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절대 안 했을 짓.

강찬은 심수진의 부친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갈라지고 힘겨운 목소리였지만 붕대 사이에서 분명 모친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로 중환자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뒤로 가세요!”

유헌우의 단호한 외침에 두 사람이 강찬의 곁에서 숨 막히는 얼굴로 심수진을 보았다.

10분이 훌쩍 지났다.

“후우!”

유헌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에서 물러났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왔는데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다.

“선생님!”

“일단 맥박과 호흡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오늘 밤을 지켜봐야 합니다.”

“저를 불렀어요! 들으셨잖아요!”

“여보!”

부친이 어깨를 잡아주었는데 두 사람 모두 기력이 다한 모습이었다.

“우선 사무실로 가시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침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유헌우를 따랐다.

“앉으시죠.”

소파에 두 사람이 앉았고, 맞은 편에 강찬이 자리했다.

드르륵.

유헌우는 바퀴 달린 의자를 중간에 가져다 놓았다.

지쳐 보이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부모님께는 어려운 말씀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기력을 차린 것인지 회복의 징조인지는 오늘 밤을 지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으흐흑!”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친이 한숨과 함께 “고맙습니다.”라고 답을 한 뒤에 강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맙네.”

강찬은 그냥 묵묵하게 있었다.

“강찬 씨, 내려갑시다.”

유헌우를 따라 강찬이 일어서자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목소리를 들었던 게 어딘가? 경황이 없으니 오늘 밤이 지나고 다시 인사할게.”

“마음 쓰지 마세요.”

인사를 마치자 유헌우가 걸음을 옮겼고, 강찬이 그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문이 닫힌 뒤에 유헌우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가 강찬과 눈이 딱 마주쳤다.

“왜요?”

“고마워서 그렇습니다.”

강찬이 피식 웃은 다음이었다.

“환자가 죽는 걸 견디지 못해서 개업하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충분히 대우받을 실력이 있는데도 피하는 거지요. 매일 죽어가는 환자를 바라보노라면 이 일에 회의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저도 살리셨잖아요?”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강찬이 내려서 병실로 향하는데 유헌우가 그대로 따라왔다.

드르륵.

석강호가 가슴을 싸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됐소?”

“오늘 밤이 고비란다.”

“원장님. 저녁은 드셨소?”

“아직 못 먹었습니다.”

“저런! 짜장면이라도 하나 시켜 드릴까?”

유헌우가 “좋지요!” 하고는 건너편의 빈 침대로 움직였다.

강찬은 커피를 탔고, 석강호는 짜장면을 시켰으며, 유헌우는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 양반은 원장씩 되는 양반이 왜 남의 병실에서 잠이 들어?”

말은 투박하게 했지만 석강호는 몸을 움직여  유헌우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어이구! 힘드셨었구만.”

강찬의 앞으로 다가온 석강호가 담배를 들었다가, 유헌우를 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대장은 희한하게 사람을 끌어요.”

“뭐?”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신 석강호가 픽 하고 웃으면서 유헌우를 또 보았다.

“대장 옆에 있으면 이상하게 의지가 되우. 아무리 힘들어도, 이거 어떻게 빠져나가지? 싶을 때도, 대장이 있으면 어쩐지 길이 있을 것 같은 거? 뭐 그런 거 아니겠수?”

“야! 나도 목에 구멍 나서 죽었어.”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처럼 유헌우의 코 고는 소리가 ‘가라랑, 가라랑’ 들려왔다.

“저거 보면 모르겠수? 저 양반도 지금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을 거요. 제라르, 그 새끼랑 비슷한 걸라나?”

“아휴, 됐다.”

위로가 된다면 좋긴 한데 담배를 못 피우는 건 지랄이다.

“그 이상한 옷이나 벗으쇼. 반도체 공장에 온 것 같소.”

강찬은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을 벗었다.

올라가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나자 짜장면이 도착했다. 정말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기 뭐해서 석강호가 투덜대며 대신 먹었다. 전부 다, 하나도 남김없이, 말끔히.

30분쯤 더 자고 일어난 유헌우는 짜장면이 왔는데도 깨우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며 병실을 나갔다.

염병. 간호사에게 말해서 하나 더 시켜먹으면 되지.

토요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

아침 회진 시간에 들어온 유헌우의 표정이 밝았다.

“어떻게 됐어요?”

“반응은 좋습니다. 안정되는 것 같아서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지요.”

대답을 하면서 강찬의 왼손을 먼저 풀어낸 유헌우가 움직임에 따른 통증을 물어보았다.

“오늘부터 붕대를 얇게 맬 텐데 혹시 쥘 때 손이 떨리면 위험하다는 뜻이니까 바로 와야 합니다.”

“예. 그러죠.”

고개를 끄덕인 유헌우가 석강호의 붕대를 잘라냈다.

보기에도 신음이 나올 만큼 살점이 묻어났는데 다행히 상태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소독하고 약 바르고, 다시 붕대를 감았다.

“강찬 씨. 고맙습니다.”

뜬금없는 인사다.

이런 건 그냥 웃어주는 게 제일 좋다.

유헌우가 나가고 둘이서 편하게 늘어졌다.

일주일가량 휴가를 보낸 것 같았다.

“내일부터 뭐할 거요?”

“글쎄다. 당장은 김 팀장까지 전부 입원해 있어서 좀 한가해지지 않겠냐? 너는 어떻게 할 건데?”

“학교에 아예 기간제 교사를 임용해 달라고 부탁했소.”

강찬의 시선을 받은 석강호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임시직 교사라고 생각하면 딱 맞소. 아무래도 이 몸으로 달리거나 뛰기 어려우니까, 1년 정도 쉴 생각이요. 아직 군사 기밀 팔아먹으려는 국회의원 놈도 남았고. 아무래도 내가 좀 여유 있는 게 대장에게도 좋지 않겠수?”

생각해 보면 나쁠 것 같지도 않아서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에 베인 상처가 강찬처럼 빠르게 낫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휴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통장에 여윳돈도 있고, 국가정보원에서 급여를 받으니까 생활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고.

침대에 걸터앉은 강찬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김미영에게서 문자 한 통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놔두자. 고3이다.’

원래 생각이 이랬다.

여동생 같던 애가 최근 부쩍 성장한 느낌이었지만, 대학에 가서 어떻게 바뀌더라도 김미영의 선택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럼 남은 일은 하루를 푹 쉬면서…….

강찬이 침대에 등을 기댈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어딜 쉬려고 그래?’ 하는 것처럼 전화가 울렸다.

라노크였다.

퇴원하면 연락하기로 했었다. 급한 일인가?

“여보세요?”

[“강찬 씨. 몸은 좀 어떻습니까?”]

“내일 퇴원할 생각입니다.”

[“쉬는 날 미안하지만 바실리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전화로 말하기는 어렵고, 만나고 싶은데 병원으로 가도 될까요?”]

바실리면 유라시아철도의 러시아 담당자다.

고약하게 생긴 새끼.

“그러세요. 얼마나 걸리세요?”

[“1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네, 대사님.”

전화를 끊은 강찬은 석강호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옆방에 잠시 있으라고 했다.

종이컵 몇 개를 쓰레기통에 넣은 석강호가 병실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노크가 들어섰다.

가벼운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침대 앞의 탁자에 마주 앉았다.

“정말 퇴원할 수준으로 나았군요.”

“특이체질이랍니다. 이것 때문에 전에 조직 검사를 받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연구소에요.”

라노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루이가 시가를 준비해 주었고, 강찬은 담배를 물었다.

뻐끔. 뻐끔.

“바실리가 중재를 요청해왔습니다.”

불붙은 시가를 손가락으로 돌려가며 라노크가 입을 열었다.

“전에 몽골 작전에 나갔던 한국 대원들의 시체와 이번에 양진우의 집에서 발견된 일본 요원들의 시체를 교환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찬은 담뱃재를 종이컵에 털며 고개를 갸웃했다.

극비리에 했기 때문에 알아도 모른 척하던 일인데 대놓고 시체를 교환한다고?

“바실리가 나선 겁니다. 러시아가 중재했기 때문에 목적과 결과, 국적 따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라노크가 병실을 한번 둘러본 다음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바실리는 그런 일을 중재할 위인도 아닐뿐더러, 만약 중재할 생각이 있더라도 절대로 전면에 나설 위인이 아닙니다. 이번 중재는 바실리가 한국에 올 핑계를 만드느라 필요한 일일 겁니다.”

“그냥 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실리 정도 되면 어떤 핑계라도 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러시아와 바실리는 그럴 능력이 있지요. 그런데 왜 그가 이렇게 구차한 핑계까지 대면서 올까요? 어쩌면 이번 시신 교환도 바실리가 먼저 제안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구렁이가 모르는 일을 강찬이 알기는 어렵다.

담배를 끄면서 강찬은 라노크가 답을 주기를 기다렸다.

“바실리는 아마 강찬 씨를 만나러 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짐작해봐도 러시아나 바실리가 한국 정부에서 당장 얻을 것이 없거든요. 더구나 중국이 보관 중이던 한국 특수팀의 시신까지 직접 가져온다면 이미 일본과도 이야기가 끝났다는 말이 됩니다.”

“왜 저를 만나러 온다고 생각하세요?”

“바실리가 내게 부탁한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에 시신의 교환을 중재해 달라, 다음으로 강찬 씨와 함께 만나고 싶다.”

“바실리가요?”

“강찬 씨를 저의 후계자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자 루이가 종이컵에 차를 탔다.

“수요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동의한다면 금요일에 자가용 비행기로 들어온다고 하구요. 시신의 교환은 공항에서 바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대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라노크가 잠시 컵을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프랑스인 특유의 갸름한 얼굴에 눈매가 매서워서 이럴 때면 정말 강단 있어 보인다.

“강찬 씨가 결정하는 대로 함께하겠습니다. 이번 시신 교환도 강찬 씨를 만나고 싶어서 만든 일종의 핑계 같은 것이니까 시신만 교환하겠다고 하면 일이 성사되기 어려울 겁니다.”

“대사님.”

“말씀하세요, 강찬 씨.”

“대사님은 짐작하시는 일이 있으신 거죠?”

담배를 짚으며 툭 던진 질문의 끝에서 강찬은 라노크가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있음을 확신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라로크의 작은 반응들이 이제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본 이후로 부쩍 그랬다.

“짐작은 합니다만,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바실리는 만나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위인이 한국에 와서 강찬 씨를 만나려 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에는 제가 이야기할까요?”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라노크의 미소를 보며 강찬은 이번 대답에도 무언가 다른 노림수가 있음을 알았다.

하아! 정말 피곤하게들 산다.

“수요일 정오까지 답을 주세요. 답이 나오는 대로 바실리와 일정을 짜도록 하지요.”

라노크가 종이컵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강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정부가 과연 받아들일까요?”

“굉장히 고마워할 겁니다.”

“그렇군요.”

전투가 아닌 정보전의 분석과 결과 예측은 아무래도 라노크가 한 수 위다. 강찬은 순순히 라노크의 뜻을 받아들였다.

“강찬 씨. 러시아까지 개입되면 진심으로 한국 정부는 강찬 씨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본국의 정보국과 정보총국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뜻은 러시아, 중국, 미국, 영국이 하나로 뭉쳐서 강찬 씨를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자칫하면 일본과 북한이 가세합니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 영국이 왜?’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나직하게 숨을 뱉었다.

“바실리를 만나 봅시다. 그 후에 저와 의논하지요.”

“대사님. 저 때문에 대사님도 위험해 지시는 건가요?”

라노크가 날카롭게 강찬을 보았다.

“정보국에 철칙처럼 내려오는 교훈이 있지요. 사람에게 끌리는 때가 오면 무조건 손을 떼라.”

“손을 안 떼면 어떻게 됩니까?”

“한국 정부에 연락하셔서 답을 주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수요일 정오까지입니다.”

답을 피하는 것을 알았지만, 강제로 들을 방법은 없는 거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봤을 때 방에 들어온 지 꼭 20분 만이었다.

강찬이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석강호가 병실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오?”

“앉아.”

감출 게 없는 거다.

강찬은 라노크와 나눈 이야기를 모두 전해주었다.

“아, 그 새끼들.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시원하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까 이렇게 하자, 그러면 얼마나 좋아?”

듣기에는 시원한데 정보전을 담당하는 놈들은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거요?”

“우선 김 팀장한테 전화해서 결과를 달라고 해야지. 라노크 말로는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데?”

“하기야.”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들을 거부하는 건 강찬의 생각에도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강찬은 전화를 걸어 김형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원장님께 직보해서 가능한 한 빠르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정오까지, 교환은 공항에서, 그리고 바실리가 서울에 들어오는 조건입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함께 갔던 대원들을 찾는 일이다.

김형정의 나직한 음성에 담긴 비통함을 들은 강찬은 조용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희한하긴 하우.”

“뭐가?”

“아니 러시아에서 대장을 찾을 일이 뭐가 있겠소? 거기에 굵직한 나라들이 다 대장을 노린담 서요? 프랑스는 그걸 지켜주기 위해서 자꾸 귀화하라고 하고, 내용은 안 알려주고. 도대체 뭐지?”

“쯧!”

어쨌든 만나보면 알 일이다.

모처럼 맘 편히 쉴 생각이었는데 오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럴 땐 맛있는 걸 먹으면서……?

강찬은 석강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일주일 내내 먹는 걸로 훈련을 받고 났더니 기분이 안 좋으면 먹는 게 먼저 생각난다.

점심을 시켜먹고 커피, 담배를 즐긴 다음 침대에 늘어졌다.

유혜숙과 전화통화를 해서 내일 집에 들어간다고 했고, 이어서 미쉘과 통화를 했는데 드라마 반응이 예상외로 좋다는 말을 들었다.

[“양 회장 사건이 없었다면 드라마 성적이 훨씬 더 좋았을 거야.”]

개새끼가 뒈지면서까지 재를 뿌린 꼴이다.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한쪽에 내려놓을 때 문이 열리며 유헌우가 들어섰다.

“강찬 씨.”

점심에는 회진이 없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심수진의 결과를 알려주려고 온 걸 거다.

“수진 학생이 깨어났어요.”

“정말요?”

석강호가 화들짝 상체를 든 앞에서 유헌우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증을 호소하긴 하는데 심박이니, 체온이니 모두 안정권에 들어섰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잘됐네요.”

“그럼요. 이럴 때 정말 의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말을 마친 유헌우가 미안한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그런데 강찬 씨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는 모양입니다. 먼저 말하지도 않고, 딱히 물어보기도 그래서 모른 척했습니다.”

“차라리 그게 낫지요. 괜히 이리저리 엉기면 불편합니다. 이대로 얼른 나아서 건강하게 퇴원했으면 좋겠네요.”

“1년은 저 상태로 있어야 할 겁니다. 뼈가 워낙 잘게 쪼개져서 치료 시에 고통도 상당할 거구요. 그래도 살아서 저렇게 웃어주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오후 면회가 끝나면 수진이 부모님이 인사하려고 할 텐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끝나는 게 제일 좋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전해 주세요. 그냥 맘 편히 있다가 내일 퇴원할게요.”

“알았습니다. 그건 저녁 회진 시간에 다시 의논하지요.”

기쁜 소식을 남긴 유헌우가 병실을 나섰다.

강찬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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