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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절대 안 했을 짓.
유헌우가 나간 다음이었다.
둘이서 동시에 담배를 집어 들었다.
“야! 너 어떻게 작년에 학교 그만둔 애, 이름을 다 기억하냐? 이호준이랑 허은실이 괴롭혔다는 것도 그렇고!”
“어?”
석강호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생각 못했냐?”
“그러게 말이오. 그냥 내가 알던 일인 것처럼 떠오른 거요. 그때 느낌,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올해 몸뚱이가 바뀌었다는 것도 잊어버렸었소.”
“흠.”
이건 또 강찬과 전혀 다르다.
서너 번 깊은숨을 내쉬어봤으나 생각이 떠오른다는 걸 뭐랄 것은 아니었다.
“워낙 심성이 여린 애란 기억이 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구려. 후우!”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뿜어낸 석강호가 텁텁한 표정으로 주둥이를 내밀었다. 면도기를 하나 구해 주든가 해야지, 당최 산적이 왕따 학생을 걱정하는 꼴이어서 공감이 가질 않았다.
“뭘 어떻게 했길래 그런 거야? 야! 그리고 애가 저 지경이 될 정도로 괴롭혔으면 이호준이하고 은실이 년, 학교에서 자르든가 해야지 왜 쟤만 저렇게 피를 보게 하지?”
“에이, 요즘 누가 표시 나게 때립니까? 차소연이나 문기진이 경우처럼 애들을 옥죄는 거요. 따 시키고, 돈도 바로 뺏는 게 아니라 빵 사오라고 시키면서 100원 주고 그런 거요. 여자애들이 둘러싸서 가슴 사진 찍고. 증거를 잡기 어렵다니까요.”
“에이!”
강찬이 커피잔에 담배를 눌러 끄자 석강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나마 대장이 와서 그런 애들 살려준 거요. 지금은 서울에 왕따 당해서 학교 다니기 곤란한 애들이 전학 오겠다는 문의가 몰려들 정도요.”
말을 마친 석강호가 강찬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왜?”
“대장. 이호준이나 허은실도 피해자요.”
뭐라는 거야?
강찬의 표정을 본 석강호가 얼른 뒷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학교가 제대로 환경을 못 만들어줘서 그렇게 됐다는 뜻이오. 지금은 걔들이 나서서 학교에 왕따나 빵 심부름 없애고 있어요. 허은실이가 여자애 셋 두들겨 팬 거 말고는 우리 학교 분위기 정말 좋아졌소. 진짜요.”
이상하게 짜증과 화가 뒤엉켜 올라와서 강찬은 인상이 풀리지 않았다.
석강호가 냉큼 커피를 탔다.
“커피 한잔 마시고 얼굴 좀 피쇼. 이런 건 하루 이틀에 고쳐지는 게 아닌 거요. 자! 내가 맛있는 커피를, 앗! 뜨거!”
커피잔을 바닥에 놓쳤고, 급하게 움직이다가 상처가 울렸는지 석강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괜찮냐? 저리 가 있어.”
석강호를 자리에 앉게 한 강찬이 바닥을 대충 닦고 커피를 탔다.
“여깄다.”
강찬은 봉지 커피 두 잔을 타서 하나를 석강호 앞에 놓아주었다. 환자복에 커피 얼룩이 묻은 채로 석강호가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차 마시고 얼른 저녁 먹읍시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자꾸 짜증이 나는 법이요.”
너무 처먹어도 짜증이 난다는 걸 이 새끼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야! 너 검사 한번 받아봐.”
종이컵을 입에 문 석강호가 시선을 들었다.
“전부터 너 구충제 사 먹일까 싶었다. 아무래도 먹는 게 평범해 보이지 않거든. 병실에 이렇게 누워서 너처럼 먹기가 쉽지 않다.”
“어허! 피를 많이 흘렸잖소!”
“너 집에서 자기 전에도 빵을 세 개씩이나 먹는다면서?”
“그렇긴 하우.”
“거 봐라. 구충제는 언제 먹었냐?”
“마누라가 챙겨줘서 다시 태어나고 한번 먹었소.”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한 다음, 바로 메뉴판을 노려보았다.
일단 먹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는 거다.
“대장. 매콤한 낚지 볶음 시켜서 밥 비벼 먹읍시다.”
“그래! 고기보다 낫다.”
“푸흐흐. 시뻘건 양념에다가!”
신이 나서 전화기를 드는 석강호를 보며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저 새끼 없었으면 참 빡빡한 삶이었을 거다.
강찬은 내심 건물을 하나 사서 석강호와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둘이 있는 게 좋아서 그런다기보다는 석강호가 정말 재미있어할 만한 일들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유비캅에 부탁해서 빡빡한 경호 업무를 부탁해도 되고, 김형정과 함께 작전을 뛰게 해도 좋고.
강찬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솔직히 석강호처럼 평범한 삶이 지겨울 수 있다. 안다.
하지만 작전에서 대원을 잃는 아픔을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 해도 넷이나 죽었다. 거기에 석강호나 김형정, 혹은 김태진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강찬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땐 강대경과 유혜숙이 보고 싶어진다.
지금쯤 회사에 새로 뽑은 직원이 요원들이라는 건 눈치챘을 거다. 하기야 얼굴을 제대로 얻어맞고도 악착스럽게 달려드는 여직원을 보고 ‘쟤가 그저 강단이 있는 거구나.’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원래대로라면 오늘 저녁에 TV에서 하는 영화 보면서 닭을 먹고 있어야 하는 건데.
거짓말처럼 일진 새끼들 때문에 뒤틀렸던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정장 차림의 강대경과 유혜숙은 긴장을 떨쳐내지 못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둥그런 탁자에 새하얀 테이블보를 씌웠다.
강대경과 유혜숙의 앞으로 대통령 문재현, 국무총리 고건우, 그리고 국가정보원 원장 황기현이 앉아 있었다.
아직 식사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세 사람이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아드님께 매달렸고, 그 바람에 두 분께 마음고생을 시켜 드렸습니다.”
“네에.”
유혜숙의 대답에 강대경이 슬쩍 눈치를 살폈고, 그 순간 남은 세 사람이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유라시아철도에서 우리나라는 아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문재현의 눈짓에 황기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브리핑을 하는 것처럼 라노크를 통해 유라시아철도를 끌어왔고, 마침내 혼자 힘으로 발표를 한국에서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전했다.
“대통령으로 강찬 학생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막상 포상을 하려고 하니까 세상의 시선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 분을 모시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강찬의 영웅담이 있어서인지 유혜숙의 얼굴이 한결 풀어졌다.
“다음 주에 서울대학교 특례입학 자격증이 학교에 도착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우리 강찬 학생을 어떡해서든 데려가려고 애쓰는 모양인데 우리가 잘 지켜내겠습니다. 어머님께서도 강찬 학생과 같은 인재를 외국에 뺏기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강대경이 유혜숙의 떨리는 손을 살포시 잡아 준 다음이었다.
“필요하거나 불편하신 일이 있으면 식사 후에 전해드리는 번호로 전화만 하시면 됩니다. 24시간 직원이 대기할 것이고, 어떤 일이든 여기 국가 정보원 원장과 국무총리인 제가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며, 그 이상의 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고건우가 나직하게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두 분께서 정말 훌륭한 아드님을 키워내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문재현이 고개를 기울여 유혜숙을 들여다보았다.
“강찬 씨와 다르게 어머님은 눈물이 좀 있으신가요?”
유혜숙을 제외한 네 남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고건우의 눈짓에 음식이 나왔다.
프랑스식의 만찬인 듯, 애피타이저가 먼저 나왔다.
“원래 저는 한식을 좋아합니다. 드세요.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면 됩니다.”
문재현이 털털하게 포크를 들어 음식을 콱 집었다.
유혜숙을 편안하게 하려고 과장되게 포크를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굴비나 갈비찜은 아무래도 두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 해서 곤란하더군요. 덕분에 총리님께 구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프리카에서 오셨던 분들은 참 편안합니다. 그날은 둘이서 정말 실컷 먹었었습니다.”
유혜숙이 조금은 긴장이 풀린 얼굴로 문재현을 볼 때였다.
“그날 갈비를 아마 6인분쯤 먹었나? 둘이 서만요. 아! 그때 총리님도 계셨었지요?”
“각하. 두 분이 드신 갈비가 8인분이었습니다.”
강대경이 푹 하고 터진 웃음을 가리느라 얼른 냅킨을 들었다.
흐느낌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기 갈비찜이 정말 맛있거든요.”
유혜숙이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었다.
“두 분께서 혹시 체면을 차리느라 못 드실까 봐 양식으로 했습니다. 거기에 혹시 집에 가셔서 대통령이 게걸스럽게 손과 얼굴에 다 묻히고 먹는다고 흉보시면 강찬 학생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문재현이 편안하게 대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다음 달에 시간을 한번 주시면 제가 그때는 정말 맛있는 갈비를 대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대경의 대답 후에,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화제는 주로 자식들이 속을 썩인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황기현은 망할 아들놈 때문에 부인이 속을 하도 썩어서 특전사에 뽑히도록 힘을 써 달라고 문재현에게 부탁까지 했다.
“권력을 남용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각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특전사에 좀 넣어주시면 됩니다.”
문재현은 그래도 딱 잡아뗐다.
아무렴 국가 정보원장이 그 일 하나 처리 못 할까?
유치한 수법이긴 한데 강대경과 유혜숙은 그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렸고, 메인 요리가 나왔을 때쯤엔 유혜숙도 간간이 대화에 끼어들고 있었다.
“강찬 학생을 보고 난 다음에 아들놈이 얼마나 밉던지, 한 1년쯤 강찬 학생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해볼까 했습니다.”
“큰일 날 말씀을!”
문재현이 화들짝 놀랐고,
“안되면 강찬 학생 부모님께 하숙이라도.”
황기현의 바람이 이어지자 다섯 명이 다 같이 웃었다.
***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유헌우가 들어왔다.
“어디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지요?”
석강호를 살핀 유헌우의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저, 강찬 씨. 수진 학생 부모님께서 괜찮다면 강찬 씨가 말했던 대로 해주길 바란답니다. 조금이나마 한을 풀고 갈 수 있다면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다고.”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가도 되나요?”
“강찬 씨만 괜찮다면 시간은 상관없습니다. 대신 담배 냄새 때문에 환자복 갈아입어야 하고, 중환자실이라 소독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죠.”
“나도 갑시다.”
석강호가 벌떡 일어서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넌 여기 있어. 부모가 봐도 설명하기가 그렇잖아. 우선 내가 다녀오고 상황 봐서 다음에 너도 가자.”
석강호가 유헌우를 보았으나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알았소.”
불만스럽게 주둥이를 뒤튼다고 해서 같이 갈 것도 아니어서 강찬은 유헌우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간호사실에서 옷을 갈아입었고, 세수를 한 다음, 소독제를 온 몸에 뿌렸다.
“수혈은 피가 급하게 모자란 상황이라 강찬 씨까지 나서서 도와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결과가 좋아져서 소문이라도 나면 서로 많이 곤란할 테니까요.”
“아예 말씀하지 마시죠.”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감추고 싶지는 않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자 입구부터가 일반병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왼편으로 대기실이란 패찰이 붙은 공간에 보호자들이 가득 있었는데 유헌우는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해서 맞은 편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말씀드렸던 강찬 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찬이 인사를 하는 순간에 심수진의 모친이 입을 가리며 곧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우리 딸을 위해 수혈까지 해줬단 말은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초췌한 표정의 부친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강찬에게 말을 건넸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고작 수혈 조금 한 것뿐인데요.”
아직 앉지도 못했다.
“학생이 우리 수진이 한을 풀어준다고…,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부탁해요.”
모친이 울음을 섞인 말을 겨우 이었다.
“소독을 하고 올라온 길이라 먼저 환자를 보고 나중에 말씀하시지요.”
유헌우의 말에 두 사람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모친은 애절한 눈빛이었다.
누구는 이런 부모를 놔두고 자살을 선택하는데 가해자는 반성했다며 새 삶을 꿈꾼다.
염병할!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걸까?
인터폰을 통해 중환자실의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 또다른 문이 있었다.
“강찬 씨. 이쪽으로.”
유헌우가 강찬에게 우측 공간을 가리켰고, 그곳에서 초록색 옷을 꺼내주었다. 한지로 만든 것처럼 얇고 가벼웠다.
“머리에는 이걸 쓰시고.”
유헌우 역시 같은 복장을 했다.
버튼을 누르자 위에서 소독약이 떨어졌고, 그다음에야 안쪽 자동문을 열었다.
좌우로 커다란 침대, 그리고 침대마다 엄청나게 많은 기계와 장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삐삐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마치 전투현장 같았다.
유헌우는 안쪽 왼편에 있는 침대에 강찬을 데려갔다.
붕대로 온몸을 감아놓다시피 해서 보이는 거라곤 눈, 코, 그리고 손과 발뿐이었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TV에서 보았던 기계가 위아래로 선을 그으며 심수진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유헌우의 눈짓을 받은 강찬은 심수진의 얼굴 쪽을 향해 걸어갔다.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막상 마주하고 있으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여자아이에게 뭐라고 해야 악착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강찬은 붕대에 틈으로 빼꼼히 드러나 심수진의 눈을 보았다. 두꺼운 관이 목 아래를 뚫고 박혀 있어서 코도 드러났다.
“심수진.”
강찬은 심수진의 손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냉장고에 담겼던 것처럼 차가웠다.
“듣고 있을 거라고 믿어. 나도 여름방학 전에 옥상에서 뛰어내렸었거든. 더럽게 아프더라만 누가 떠드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라구.”
유헌우가 침대 발치에서 떨어져 지켜보았고, 뒤로 수술복 차림의 의사와 간호사가 서 있었다.
“내 피를 네 몸에 넣었어. 내가 살아난 기운을 전해줄까 해서.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는데 나도 왕따 당해서 옥상에서 뛰었던 거야. 그런데 거짓말처럼 살아나고 나서 깡이 생겼다. 그 뒤에 미친놈처럼 싸웠고, 거기에 이호준하고 허은실도 포함되어 있어.”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 신묵고등학교 3학년 강찬이야. 3학년 초까지 지겹게 돈 갖다 바치고, 빵셔틀 했다니까 혹시 너도 알지 모르겠다. 그래. 그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거다.”
죽어가는 애한테 석강호나 함 직한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억울하지? 정말 절박한데 도움 못 받아서 분하고 억울했던 거지? 내 피를 받아서 넌 못 죽어. 그러니까 얼른 털고 일어나. 일어나서 나랑 학교에 가자. 내가 너 속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걸리는 놈들 다 두들겨 패 줄 테니까.”
강찬은 말없이 손을 다독여 주었다.
“기운 내 인마. 심덕 일진 놈들에 그 위에 있다는 이상한 대학교 놈들, 또 그놈들을 조정했다는 주차장파 박기범이까지 내가 다 두들겨서 없애버렸어. 석강호 선생이라고 체육 선생도 아래층에서 기다리니까 확인시켜 달라면 그렇게 해줄게.”
강찬은 이어서 밖에서 만난 부모에 대한 이야기와 강대경, 유혜숙의 몰랐던 모습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안 하던 짓이다.
전이라면 절대 안 했을 짓이다.
그런데 강대경과 유혜숙의 사랑을 느꼈고, 차소연과 문기진 같은 아이들을 보고 난 지금은 어떡해서라도 심수진을 돕고 싶었다.
이왕 시작한 이야기라 강찬은 차소연과 문기진의 이야기, 학교 식당에서 있었던 일, 심지어 허은실과 이호준이 트론스퀘어에서 죽도록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했다.
대략 한 시간에서 조금 모자란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유헌우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강찬을 지킨다기보다는 언제 심수진의 숨이 멎을지 몰라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간다. 내 이름 기억해. 병원에서 연락해 줄 테니까 네가 깨어났다고 하면 바로 달려올게. 내 피가 들어갔으니까 해볼 만할 거야. 버텨. 버텨서 살아나. 뒤는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알았지?”
삐. 삐. 삐. 삐. 삐.
강찬이 말을 마치는 순간에 기계음이 달라졌다.
와락.
유헌우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급하게 심수진에게 달려들었다. 못 알아들을 지시를 내리자 의사와 간호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주사액이 급하게 링거에 들어갔고, 잠시 후에, 다급한 얼굴로 심수진의 부모가 달려왔다.
유헌우가 강찬을 보고 짧게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화가 났지만, 지금은 부모에게 비켜줘야 할 때다.
비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모친이 강찬의 맞은 편에서 심수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굴을 싸맨 붕대가 맨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친이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친이 다가오고 있어서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의 울음이 정말 아파 보였다.
그때였다.
꿈틀.
강찬은 퍼뜩 고개를 들어 유헌우를 보았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유헌우가 놀란 눈으로 기계와 강찬을 번갈아 보는 순간이었다.
꿈틀!
심수진의 손이 분명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어…마.”
“수진아! 수진아!”
“엄……마.”
“수진아! 수진아아!”
모친이 실성한 사람처럼 심수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