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23화 (12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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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어찌해야 하나?

거짓말처럼 5일을 놀고먹었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상처가 나았다. 물론 석강호는 아니다.

다만 구멍이 메워진 왼손만은 아직 함부로 움켜쥘 정도는 아니어서 두툼한 붕대를 감아 두었다.

하루에 한 번 유혜숙, 김형정과 통화했는데 전대극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희생된 요원이 다섯이나 되었다.

특수팀의 사기 진작이 과연 다섯 명의 귀한 목숨과 바꿀만한 것이었을까?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대극이 빠진 것도 아니고 선두에 서서 칼질을 했기에 비난할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대원들의 목숨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던 강찬은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침 식사 맛있게 하고 상념에 잠길 순간에 석강호의 “푸흐흐”하는 웃음소리가 강찬의 생각을 잡아당겼다.

TV를 보면서 웃는 석강호의 모습이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물론 각진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단단한 체형이 한 성깔 하게 생겼다만 그런 게 강찬에게까지 먹히는 건 아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석강호가 힐끔 돌아볼 때 강찬은 전화기를 들었다.

쎄실이었다.

“여보세요?”

[“차니. 통화 괜찮아?”]

이년이 왜 목소리를 깔고 이러지? 손실이 많이 났나?

“응. 얘기해.”

[“어제 매도 주문이 들어와서 보유주식과 선물 매수물량을 전부 매각했어. 화요일에 인출 가능한 금액이 주식과 선물 합쳐서 2,300억 정도 돼.”]

어후, 무서운 새끼들. 모르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놈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차니, 아무렇지도 않아”]

“실감이 안 나서 그래.”

그러고 보니 차분한 게 아니라 아예 질린 목소리였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언제고 말해주면 돼. 우리 증권사 열 손가락 안에 드는 VIP라 지점장이 직접 계좌를 관리해. 그리고.”]

부탁할 게 있나?

[“나, 이번에 수당 받은 게 3억이 넘어. 차니, 이거 정말 내가 다 가져도 되는 거야?”]

“네 수당이라면서?”

[“아니, 차니 성격은 아는데 통상 이럴 경우, 계좌 주인에게 40% 정도 돌려주거든. 대개는 차를 사달라는 경우가 많아. 차니가 원하면 부모님 차를 한 대 사드릴게.”]

“왜 그러는 건데?”

[“계좌를 옮기지 않게 하려고.”]

강찬은 풀썩 웃다가 하마터면 코가 나올 뻔했다.

“주문한 사람과 의논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계좌 옮기지 않도록 해 볼게. 인출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거래를 계속하는 동안 계좌는 그대로 둘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차니. 그래 주면 나 승진해.”]

“잘 됐다.”

[“내가 저녁 살게. 고마워, 차니. 정말 고마워.”]

슬슬 제정신이 돌아오는 목소리여서 강찬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년들은 흥분하면 소리를 지르고 다음으로 몸뚱이가 뜨거워지는 버릇이 있다.

2,300억?

지랄들 한다.

어차피 라노크가 만든 돈이니까 그쪽과 의논할 생각이고 욕심도 없다. 통장에 들어있는 20억도 기껏해야 택시비, 밥값, 커피값, 그리고 옷 사는 데 들어가는 게 전부인 삶에 2,300억?

돈가스를 몇 개나 살 수 있다는 거냐?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에게 돈가스를 배달할 방법은 없을까?

“무슨 전화요?”

“라노크가 돈 보내준 걸 증권사에 넣으래서 넣었더니 이번에 주식과 선물인가 투자해서 2,300억이 됐단다.”

“돈이 많아지셨소.”

“그러게. 그런데 그게 어디 내 거냐? 라노크에게 전화해서 보내주려고.”

“아! 짜증 나겠소.”

석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TV로 고개를 가져갔다.

“푸흐흐.”

“어? 그 웃음은 뭐요?”

“야! 너도 솔직히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모르겠지?”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난 지난번에 김태진 대표가 준 돈에서 6억이 통장에 그대로 있소. 그것도 부담스러운 판에 2,300억? 아휴! 생각만 해도 정신 사납수.”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어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날 때 얼른 전화하는 게 맞다.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찬 씨.”]

“대사님. 별일 없으시죠?”

[“강찬 씨 때문에 일이 좀 있습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에 웃음까지 담겼다.

“증권사에서 전화가 왔던데요. 한국 돈으로 2,300억 정도 된다고. 계좌 알려주시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강찬 씨! 그 돈은 강찬 씨의 몫입니다. 그걸 제가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도 일주일가량 더 가지고 있었으면 최소 4천억은 될 걸 강찬 씨의 뜻대로 일찍 처분한 겁니다. 그러니 강찬 씨가 알아서 사용하세요.”]

라노크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강찬의 말을 받았다.

[“앞으로 돈이 필요할 일이 생길 겁니다. 정보전은 무서운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경비를 요구하기도 하지요. 유라시아철도 발표회장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강찬 씨가 필요한 곳에 사용하세요.”]

한숨이 푹 나오는 답이었다.

인상을 찌푸리자 석강호가 힐끔 보고는 커피를 타러 움직였다.

[“성의로 전한 선물을 고맙게 받는 모습도 필요합니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다음 주에 저녁이나 할까요?”]

이제 건조한 라노크의 음성에 담긴 감정들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지금의 제안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퇴원하면 전화 드릴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석강호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TV에서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작은 남자 둘에게 당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방청객들이 시끄럽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띠루룩.

석강호가 TV를 끄고 담배를 들어 디밀었고, 둘이서 불을 붙였다.

“한 푼도 안 받겠단다. 지난번 행사장에서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한 성의라는데 영 지랄 같다.”

“썩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면 되는 거 아니요?”

“그렇긴 하다. 너 돈 필요 없냐?”

“에이! 지금도 6억이나 있다니까요!”

석강호가 고개까지 저으며 거절한 다음이다.

“대장. 그걸로 우리 큰 건물 하나 삽시다.”

이 새끼는 건물을 장난감을 사고 싶다는 투로 말한다.

“알았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하기야 내가 몸이 나아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당장 급할 것도 없소.”

“땅값이랑 건물값이 몇 배로 뛰었다면서?”

“에이. 그래도 대장이 가진 것만큼 뛰겠소? 우리가 건물 사서 남기자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자는 거니까 충분할 거요. 여차하면 디아이랑 유비캅도 그리로 옮기라고 하지요.”

“오!”

점점 영리해지는 석강호를 보는 기분이라니.

이 새끼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이상하게 유쾌해진다.

강찬이 기분을 풀고 석강호와 떠들 때였다.

드르륵.

유헌우가 들어섰다.

아침에 회진을 돌았는데?

“강찬 씨.”

“왜 그러세요?”

유헌우가 무거운 표정으로 석강호에게 아는 체를 하고는 강찬 앞으로 다가왔다.

미안하니까, 얼른 담배를 껐다.

“후. 정말 미안한데 수혈 한 번만 합시다.”

“수혈이요?”

유헌우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에서 투신한 환자인데 이제 겨우 고등학생입니다. 경과가 심각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강찬 씨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입니다만, 안타까워서 그냥은 못 보겠습니다.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세요.”

“예?”

“심각하다면서요? 얼른 가시자구요. 피만 뽑으면 되는 거죠?”

“강찬 씨!”

“가시자니까요!”

“알았습니다.”

강찬이 일어서자 유헌우가 몸을 돌렸고, 석강호가 뒤를 따랐다.

병실을 나오자 국가 정보원 요원들이 뒤를 받쳤다.

유헌우가 향한 곳은 2층 검사실이었다.

“혈액 검사는 안 해도 되나요?”

“강찬 씨는 O형이라 따로 검사가 필요 없습니다.”

전에는 B형이었는데.

유헌우가 이끄는 대로 침대에 눕자 간호사가 바늘을 가져왔다.

따끔.

어떤 놈인데 또 뛰어내린 거지?

일단 살아라.

너는 네 정신을 온전히 가지고 일어나라.

비어있던 비닐 팩에 피가 가득 찼다.

유헌우가 바늘을 뽑으려 했다.

“그거 가지고 되나요?”

“더는 무립니다.”

“괜찮으니까 한 번 더 하죠. 그런다고 제가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부상을 입은 지 얼만 안 돼서 쇼크가 올 수도 있어요.”

말과는 달리 유헌우는 바늘을 뽑지 못하고 있었다.

“칼에 맞아 피를 쏟는 거나 이거나 다를 게 뭐 있어요? 얼른 한 번 더 하죠.”

“고맙습니다. 강찬 씨.”

요원이 나서려는 것을 석강호가 손짓으로 막았다.

피가 가득 담긴 비닐 팩을 간호사가 들고 나갔고, 잠시 후에 두 번째 비닐 팩에서 피가 가득 찼다.

“원장님! 다른 이상은 없어요.”

간호사가 달려와 전한 말에 유헌우가 “얼른 투여해.”라고 말을 하며 새로 뽑은 혈액을 건네주었다.

“조금만 더 누워 있읍시다.”

팔뚝에 솜을 눌러준 유헌우는 일어서려는 강찬을 말렸다.

유난 떠는 것처럼 느껴져서 풀썩 웃음이 나왔다.

3분쯤 지난 후에 강찬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한 유헌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위로 올라갔다.

“회복이 빨라서 그런 거요?”

“응. 내가 특이체질이니까 혹시 피를 수혈하면 위급한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한다고 전에 말했었거든.”

“어후. 그거 소문나면 위급한 환자 가족들이 다 몰려들 텐데 살아도 걱정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듣고 나니 그럴 법도 했다.

“유 원장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건 그렇고 어떤 놈이 또 뛴 거지? 그 새끼도 우리처럼 이상한 몸뚱이에 태어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푸흐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몸에 이상은 없었다.

“이래서 점심은 또 고길 먹어줘야 하는 거고.”

“야! 좀 질린다.”

“어허!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읍시다.”

한참 성장하는 십 대도 아닌 놈이 하루에 한 끼 이상을 꼭 고기를 처먹으려고 든다.

석강호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흥얼거렸다.

“나는 월요일에 퇴원할 거야.”

“그럽시다. 그럼 나도 집에 가 있으면 되니까.”

“너는 좀 더 있어야지?”

“그냥 하루에 한 번 붕대 갈고, 주사 맞는 게 전부요. 그 정도는 통원하겠수. 대장도 없는 병실에 혼자 처박혀 있는 것도 그렇고.”

하기야 일주일을 꼬박 있는 꼴이라 지겹기도 할 거다. 거기에 석강호 말대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게 낫지, 병실에 혼자 있어서 또 뭐할 거냐?

“요놈! 요게 좋겠다. 점심은 우리 갈비찜으루다가 푸짐하게 먹어줍시다.”

“밖에 요원들 것도 시켜줘.”

“경호 중에는 같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고 지난번에 시켜준 보쌈두 못 먹던데요?”

“저 짓도 지랄이다.”

“그러게 말이오.”

둘이서 점심을 먹었고, 다시 늘어졌다.

일주일가량을 놀고먹었더니 살이 피둥피둥 찌는 느낌이었다.

오후 내내 TV를 보며 지냈다.

중간에 석강호가 코를 박박 골며 낮잠을 자는 동안, 간간이 보도 방송에서 전하는 뉴스를 본 것 외에는 주로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그래도 디아이에서 노력하는 연기자들과 직원들을 생각해서 악착같이 보았는데 그러다 보니 개중에 재미있는 것도 있었다. 물론, 시간을 내서 따로 보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구구!”

칼칼한 음성으로 기지개를 켠 석강호가 침대에서 일어나 링거대를 끌고 강찬의 곁에 앉았다.

“아훕! 자도 자도 졸리네.”

“회복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그러게 말이오. 아!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요. 배부르면 졸리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배고프고. 이제 저녁은 뭘로 먹어준다?”

기가 막힐 일이다.

실컷 처잔 놈이 일어나자마자 메뉴판을 들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드르륵.

석강호가 사냥하듯 메뉴판을 노려볼 때 유헌우가 간호사와 함께 들어섰다.

“강찬 씨. 괜찮아요?”

“예.”

강찬의 안색을 살핀 유헌우는 다행이란 표정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석 선생님은 붕대 갑시다.”

“지금이요?”

“강찬 씨와 달라서 지금 한참 살이 아무는 때라 붕대를 자주 갈아줘야 합니다. 얼른 준비하세요.”

20분쯤 걸려서 석강호의 치료가 끝났다.

인상을 봐하니 분명 붕대 가느라 힘들어서 저녁에는 고기를 처먹어야 한다고 우길 상이었다.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위험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고무장갑을 벗어낸 유헌우가 지친 듯 뒷목을 주무를 때였다.

“그런데 왜 원장님이 모든 환자를 다 보다시피 하십니까?”

석강호가 메뉴판에서 시선을 들며 질문을 던졌다.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 학생의 경우엔 우리 병원에 꽤 오래 다닌 경우라 더 안타깝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건물에서 투신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번엔 강찬이 끼어들었다.

“하아! 환자 이야기는 원래 전하는 법이 아닌데 강찬 씨야 도움을 주었으니까 말씀드려도 되겠다 싶네요. 이 친구는 작년 초에 학교 폭력 문제로 심각한 외상과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그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지금껏 우리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병행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지요.”

염병할 일진 새끼들!

강찬은 자연스럽게 눈에 독기가 올라왔다.

“강찬 씨가 처음 우리 병원에 왔을 때 왕따 당하는 학생들을 챙겨야 해서 퇴원한다고 했었지요?”

당연히 기억하는 말이다.

강찬은 “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가 끝까지 말리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지금 환자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참 좋은 분들인데, 후우. 참 안타깝습니다.”

“응? 원장님. 혹시 지금 말씀 하신 학생이 혹시 여학생 아닙니까? 심, 심, 어! 심수진!”

유헌우의 놀란 표정이 곧 답이었다.

솔직히 강찬은 더 놀랐다.

저 새끼가 어떻게 작년 일을 기억하는 거지?

다시 태어난 건 분명 같을 텐데?

“이상한데요? 그때 부모님께서 대안 학교로 가신다고 하셨는데요?”

“그곳에서도 적응을 못 했지요. 정신적 충격을 본인이 털어내야 하는데 그걸 끝내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아!”

의아해 하는 강찬의 앞에서 석강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쯧!

이래저래 혼란한 강찬은 덜컥 짜증이 올라왔다.

“누가 그렇게 괴롭혔냐? 어떤 새끼야? 작년이라는 거 보니까 아직 학교에 남아 있겠구만.”

“그게…….”

“누구냐구!”

“허은실이하고 이호준이요. 심수진이 2학년 때 걔들과 같은 반이었어요.”

이런 엿 같은 일이!

강찬이 이를 악물었다.

“선생님이 그럼 수진이 학교 선생님이시라는 겁니까? 정말 선생님이셨습니까?”

유헌우가 고개를 디밀어 살피다가 석강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자세를 고쳤다.

“원장님. 가해 학생들이 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도움이 좀 될까요?”

“글쎄요. 지금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서 당장은 도움이 안 될 겁니다.”

“하여간 깨어나면 말씀해 주세요.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한번 올라가 보죠.”

“강찬 씨가요?”

“전에 저도 떨어졌던 경험 있잖습니까? 의식은 까무룩 한데 옆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는 거의 다 들렸거든요. 이대로 죽는 건 좀 억울하잖아요. 속이라도 풀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속을 풀어주는 게 정신의학상에서도 좋은 치료는 됩니다. 그런데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 속을 어떻게 풀어줍니까?”

강찬은 유헌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제가 이호준하고 허은실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겼거든요. 그 얘기라도 듣고 마지막을 맞이하면 덜 억울하지 않을까요?”

유헌우는 기가 찬 얼굴이었다.

“그것들 요즘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버둥댑니다. 아마 와서 사과하라고 해도 진심으로 사과할 겁니다.”

거기에 석강호가 거들자 유헌우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후우. 우선 부모님과 먼저 의논하겠습니다. 어쩌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수진이 상태가 워낙 위급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유헌우의 말이 끝나자 셋이서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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