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22화 (122/520)

0122 / 0419 ----------------------------------------------

7-4 어찌해야 하나?

하고 싶은 말을 끝마친 황기현은 잊고 있었던 것처럼 요원에게 지시해 강찬과 석강호의 전화기를 건네게 했다.

분명 대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으련만, 의뭉스럽게 갑자기 생각난 척하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강찬은 한국에도 구렁이가 있었구나 싶었다.

“강찬 씨. 우선 쉬면서 천천히 생각합시다.”

“예, 원장님.”

말을 마친 황기현이 강찬을 다독이고는 병실을 나섰다.

“거, 편안해 보이는데도 묘하게 분위기가 있소.”

“그렇지? 아차!”

강찬은 아직 집에 처박혀 있을 스미든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대장!”]

“어! 그쪽은 어떠냐?”

[“경호인력이 깔리면서 요원처럼 보이던 놈들은 없어졌어요.”]

“아마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다. 조심해서 움직이고 절대로 외곽으로 혼자 나가지 마.”

[“그래요.”]

스미든의 어색한 답을 들은 강찬은 그동안 걸려왔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강대경이 세 번, 미쉘, 그리고 오광택의 전화가 있었다.

강찬은 우선 오광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찬. 후련하게 복수했다.”]

벨이 울리자마자 오광택의 통쾌한 음성이 들렸다.

[“개새끼들, 별 무기를 다 가지고 있던데? 권총도 다섯 자루 챙겨놨다. 어떻게 할까?”]

“뒤처리는?”

[“우리 식으로 깨끗하게 처리했다. 전부 합쳐야 스물도 안 되더라.”]

무서운 새끼.

어쨌든 권총을 가지고 있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나중에 말 나오면 귀찮으니까 권총 반납하고 어디에 처리했는지 미리 알려줘. 그래야 발견돼도 일을 바로 덮지.”

[“발견 안 돼. 뭐가 남아야 발견되지.”]

“뭔 소리야?”

[“내가 가진 공장이 하나 있거든. 거기 쇳물에 던져버렸어. 나중에 틀에 부을 때 찌꺼기가 남긴 하는데 철문 만드는 게 주종이라 그 정도 불순물은 문제도 안 된다.”]

끔찍한 이야기를 하도 시원시원하게 해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 새끼가 가진 회사 이름을 알아둬야겠는데?’

어쨌든 이렇게 일단락되는 느낌이었다.

“알았다. 하여간 사람 보낼 테니까 권총은 표시 안 나게 넘겨줘. 그래야 널 지킨다.”

[“그래. 어디냐? 저녁에 술 한잔 하자.”]

“병원이니까 퇴원하면 만나.”

[“어디? 방지병원이냐?”]

“야! 여자 올 거야. 그러니까 분위기 깨지 말고 퇴원하면 봐.”

[“알았다, 알았어. 꼭 연락해라. 그리고.”]

오광택이 잠시 멈칫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시끄러. 끊어.”

강찬은 전화를 끊은 다음 석강호에게 통화내용을 알려주었다.

“깡패는 깡패인 건가? 어째 평범하게 살기는 다 틀렸나 보우.”

“그러게. 일이 갈수록 커진다.”

황기현이 주고 간 커피를 마시는 동안 석강호가 담배를 꺼내 건네주었다.

“대장. 아까 싸울 때 보니까 지쳐 보입디다. 악에 받친 거 같기도 하고.”

석강호가 말과 함께 입과 코로 연기를 뿜어냈다.

“몸이 바뀌고 나서 계속 이런 싸움을 했던 거요. 우리 좀 쉽시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전투 끝나면 휴가도 가고 했잖소. 퇴원하면 최소한 반달이라도 좀 쉽시다. 바닷가도 좋고, 외국도 좋고. 하다 안 되면 제주도라도 다녀오게요.”

강찬은 신음처럼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싸우려고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칼과 총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국회의장이란 새끼가 우릴 가만 두겠냐?”

“에이! 그 새끼는 당분간 눈치 보느라고 아무것도 못 할 거요. 그러니까 일단 마음이라도 그렇게 먹고 있읍시다.”

“그래, 알았다.”

석강호의 말이 틀리지 않은 거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에 전화를 걸었다.

[“차니! 괜찮아? 괜찮은 거야?”]

“응. 괜히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내가 좀 예민해졌나 봐.”

[“날 걱정해 준 건데 뭘. 걱정돼서 전화했다가 방해될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 고마워, 차니.”]

목소리가 끈적거리는 듯해서 얼른 전화를 끊으려 할 때였다.

[“지금 어딨어?”]

예상이 딱 맞아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 왜?”

[“오늘 우리 드리마 첫 방송이야. 8시 40분! 여기 다들 모여있어. 차니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알았다. 가능하면 나도 볼게.”

[“차니. 몸조심해. 당신 다치면 나, 은소연, 김미영, 이렇게 셋이 울어야 돼.”

“야!”

소리를 지르다 상처가 울려서 움찔했는데 미쉘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끊을게. 쥬뎀므, 차니.”

복잡한 전화가 끊겼다.

“디아이에서 제작하는 드라마가 오늘 방송이란다.”

“몇 시요?”

“8시 30분이라는데?”

“저녁 먹고 같이 보면 되겠소. 그런데 왜 집에 전화 안 하쇼?”

강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재단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푸흐흐. 대장이 또 이런 거에 약하셨구만. 다른 생각 말고 빨리 전화하쇼. 나중에 안아주셨다면서요? 지금쯤 그런 표정 보이셨던 게 마음에 걸려서 저녁도 못 드시고 있을 거요. 나도 나가서 전화하고 올 테니 얼른 전화 드리쇼.”

석강호가 인상을 쓰면서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잃지 않은 채로 병실을 나섰다.

저 새끼가 정말 이런 걸 잘 알까?

“후우.”

강대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받아들이려 애쓰는 얼굴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던 모습.

그래. 나중에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최소한 전화를 하는 것이 도리다.

강찬은 무거운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벨이 두 번 울린 직후였다.

[“아들!”]

기쁘고, 걱정돼고, 안쓰럽고, 안타까운 심정이 ‘아들’이란 한 마디 외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왜 그래요?”

뜻밖에도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가 미안해서 그래. 낮에 이상한 표정 보여서 아들 마음 아팠을까 봐. 어디야? 저녁은? 우리 아들 괜찮아? 다친 거 아니지?”]

웃음이 나왔다.

분명 처음에는 짜증 났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녁은요?”

[“아직.”]

“왜요? 얼른 저녁 드세요. 그리고 밤 8시 30분부터 디아이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한대요. 그거 보시구요.”

[“그래. 그럴게. 오늘 들어와?”]

“아뇨. 이쪽에 일이 있어서 며칠 걸릴 거 같아요. 어머니. 이번에 저 집에 가면 우리 며칠 놀러 가요.”

전화기 건너편에서 ‘으아앙’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사람이 왜 그래?” 하는 강대경의 소리가 들린 다음이었다.

[“여보세요? 찬이니?”]

“예, 아버지.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내가 궁금하다. 뭐라고 했길래 엄마가 저렇게 울어?”]

“이번에 집에 가면 우리 며칠 놀러 가자구요.”

[“엄마가 울만 했구나. 너 마음 상했을까 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찰싹 소리가 난 다음 강대경이 “아야!”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은 거지?”]

“예, 아버지.”

[“엄마 낮에 놀라서 그런 것도 다 이해하고?”]

“죄송해요.”

강대경의 나직한 숨소리가 들린 다음이었다. “전화 바꿔줘, 여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바꿔 달란다.”]

훌쩍이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들, 고마워. 엄마가 아들 사랑해.”]

이런 엄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나.

“엄마. 사랑해요.”

두 번째로 ‘으앙’하는 울음이 터졌다.

[“사랑해, 사랑해. 아들.”]

강대경이 “누가 보면 멀리 외국에 사는 줄 알겠다. 그래서 프랑스는 어떻게 보낼래? 아야! 알았다. 알았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너무 걱정말고 저녁 꼭 드세요. 알았죠? 집에 갔을 때 아픈 얼굴이면 저 정말 서운해할 거에요.”

강찬이 슬쩍 문을 보았다.

사랑한다는 말할 때는 몰랐는데 석강호가 들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알았어. 아빠 바꿔 드릴게.”]

차분해진 유혜숙의 목소리를 듣자 무거운 짐이 없어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찬아. 아빠랑 엄마가 영원히 네 편인 건 알지?”]

“그럼요.”

[“힘들면 언제고, 어떤 모습이어도 좋으니까 집으로 와.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아빠와 엄마는 네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싶다.”]

“그럴게요.”

이런 부모를 만났다는 것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언제 오니?”]

“며칠 걸릴지 몰라요.”

[“알았다. 하루에 한 번쯤은 엄마에게 전화해 줘.”]

“예.”

강대경과 통화가 끝난 직후에 “여보, 잠깐만.”하는 유혜숙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전화는 그냥 끊어졌다. 아마 시간이 끌릴 것을 걱정한 강대경이 못 들은 척 종료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개운해졌고, 이어서 시장기가 느껴졌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유헌우가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좀 어때요?”

“별다른 건 모르겠는데요?”

낮에 붕대를 감아서 그런지 유헌우는 피가 배어 나왔는지 정도만 살피고 자세를 바로 세웠다.

“왼손은 정말 조심하는 게 좋아요. 자칫하면 쥐는 힘을 못 쓸 수도 있어요. 뼈가 잡아줘서 길게 안 들어간 대신에 뼈가 갈려서 통증도 심할 거구요.”

“예.”

간호사가 링거줄에 주사액을 놓는 동안 유헌우는 물끄러미 강찬을 보고 있었다.

탁자에 약을 놓아준 간호사가 먼저 방을 나섰다.

“국가 정보원이라는 곳에서 다녀갔었습니다. 이후로 필요한 약품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청구하라고 하더군요. 조치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잘 되셨네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강찬 씨.”

“뭔데요? 누구 미운 놈이 있으세요?”

유헌우가 설마 하는 얼굴로 웃은 다음 입을 열었다.

“관에서 지원 안 해줘도 좋으니 깡패들을 치료하는 것만큼은 지금처럼 하고 싶습니다.”

강찬이 알아듣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다른 기관에서 조사를 나오거나 혹은 관심을 갖는 바람에 정말 치료해야 할 사람을 못할까 봐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혹시 누군가 막으면 제게 바로 전화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후에 유헌우가 나갔다.

그리고 10분쯤 지난 뒤에 석강호가 통증을 견디기 위해 인상을 찌푸려가며 병실에 들어섰다.

“전화했소?”

“응. 좋아하시더라.”

“거 보쇼. 그게 부모 마음이란 거요.”

이런 건 대꾸할 말이 없다.

“저녁에 고기 시켜 먹읍시다. 피도 많이 흘렸으니까 족발하고 쟁반 국수 좋다! 어떻소?”

“그래라.”

석강호가 주문을 하는 사이 강찬은 침대에 몸을 기댔다.

‘나중에 생각하자.’

강찬은 우선 편하게 쉬기로 했다.

프랑스로 귀화? 유라시아철도의 한국 담당?

우선 족발 먹고 TV 드라마 본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일이었다.

***

푸짐하게 먹었고, 둘이 늘어진 자세로 TV를 켰다.

배부른 데다, 커피 한잔 탔고, 담배 옆에 있으니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뉴스를 보자 편안한 마음이 싹 가셨다.

일본 요원들의 시체가 주르륵 놓인 화면을 배경으로 양진우에 관한 보도가 40분 내내 이어졌다.

양진우가 왜 그랬는가에서부터, 그렇다면 해저터널은 왜 설치하려고 했는가? 이어서 죽은 요원들의 신원을 파악 중이라는 보도가 제법 설득력 있게 나왔다.

대한민국 설립 이래 최악의 내란 사건이라 불렀고, 시민들의 인터뷰도 있었다.

양진우의 사진과 악수하는 모습도 간간이 나왔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완전히 역적을 꿈꾼 재벌로 판단하는 느낌이었다.

끝 부분에 이번 양진우 사건을 해결한 것은 국가 정보원의 이름없는 요원들이라는 보도와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이름없는 요원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멘트도 나왔다.

담배를 안 피울 수 없는 뉴스였다.

“저 정도면 그럭저럭 넘어갈 거 같은데요?”

“그런 거 같지?”

내용과 다른 부분이 상당수 있지만 뭐 그렇다고 떠들 것도 아니다.

뉴스를 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바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제목은 ‘진숙이는 예쁘다.’였다.

염병 제목하고는!

강찬은 미쉘의 안목을 살짝 의심하며 드라마를 보았다.

아는 얼굴이 나와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는 모습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석강호는 연신 “이거 재밌소. 잘 만들었는데?”를 연발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은소연의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만은 인정이다. 어려운 집안을 이끌어 나가려는 모습이 그렇게 보이게끔 한 느낌이었다.

드라마가 끝나자 석강호는 주둥이를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햐! 요거 뜨겠소.”

“그러냐? 난 잘 모르겠다.”

“내가 마누라랑 딸하고 드라마 보는 훈련을 받은 실력으로 말하는 건데 이건 이대로만 나가면 분명 되는 거요.”

잘 된다는데 꼭 아니라고 할 건 없는 거다.

“나 여기서 잘 거요.”

“왜?”

“굳이 따로 잘 거 뭐 있소? 그냥 이렇게 얘기나 나누다가 건너편 침대에서 자면 되는 거지.”

“야! 너 코 곤다니까.”

“어허! 우리 마누라는 그 소리 못 들으니까 잠이 안 온답디다. 그냥 며칠만 이해하쇼.”

에이, 지겨운 새끼.

말을 한다고 들어먹을 것도 아니어서 강찬은 마음을 접었다.

“제라르 새끼는 다 나았으려나?”

“어깨 제대로 뚫렸어.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걸린다.”

“그 새끼 한국에 한번 온다지 않았소?”

“오면 또 뭐할 거냐?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아. 그 새끼 어디 작전 갔다가 죽거나 포로 됐다는 소리 들으면 너나 나나 가만있을 수 있겠냐? 길길이 날뛰고 뛰어가야 할 텐데, 아후! 생각만 해도 정신 사납다.”

“푸흐흐. 새끼! 중닭 됐다고 폼 잡던 거 생각하니까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

석강호가 환자복 팔등으로 코를 닦았다. 웃다가 콧물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대장 유라시아철도 담당하면 나도 학교 때려치울 거니까 내 자리도 하나 만들어 주쇼.”

뭐라는 거야?

강찬이 힐끔 쳐다보는 앞에서 석강호는 혼자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다.

“대장이 오고 나서 싸움이 그친 적이 없소. 거기에다 점점 커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거요. 매번 이렇게 닥쳐서 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우리도 미리 준비합시다. 조직도 갖추고, 필요한 요원들도 뽑아오고.”

석강호는 아예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사무실은 하나 꾸며줄 거 아니오?”

“뭐하냐? 정신 차려.”

“어차피 허씨 형제 놈들 때려잡아야 마음 편할 거 아뇨? 매번 손 벌리는 것도 그렇고, 이 기회에 아예 제대로 된 조직 하나 만들어서 우리가 먼저 때립시다.”

강찬은 물끄러미 석강호를 보았다.

“대장. 나 진심이오.”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양진우 상대하다가 알았소. 세상에 못된 새끼들이 정말 많습디다. 이왕 시작한 거, 아예 끝장 한번 봅시다.”

강찬이 풀썩 웃음을 터트리자 석강호가 씨익 웃었다.

“다예.”

“예.”

강찬은 분명하게 짚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늘 같은 싸움을 계속 하고 싶냐?”

“피한다고 피해질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소.”

“가족들은? 오늘은 운이 좋았지만 언젠가는 사망통지서를 받을 수도 있어.”

“그거야…….”

석강호가 답을 하다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프리카에선 외로운 다예루였지만 이곳에서 가장이잖냐? 남은 사람들은 생각 안 해?”

잠시 시선을 떨구었던 석강호가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대장하고 싸울 때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걸 어쩌겠소? 몽골에 갔을 때, 함께 칼을 들고 섰을 때,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거요. 집에 가도 좋지요. 그런데 학교에 남아 있으면 사는 맛이 하나도 없수.”

말을 마친 석강호가 숨을 커다랗게 내쉬었다.

“대장 나이만 됐으면 나 벌써 아프리카 갔을 거요. 차라리 옛날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면 이 생활에 젖어서 살겠지만, 한번, 두 번, 대장하고 싸우고 난 뒤로는 계속 그런 긴장감 넘치는 삶이 그립소.”

말을 마친 석강호가 고개를 뚝 떨어트렸다.

‘하아! 쯧!’

저 새끼를 어찌해야 하나?

강찬은 심오한 표정으로 고개 숙인 석강호를 보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