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21화 (1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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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이젠 지겹다.

경찰병원에서 나온 의료팀이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사이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달려왔다.

“강찬 씨! 정말 방지병원으로 가실 겁니까?”

“예, 실장님. 그러니 안심하고 먼저 출발하세요. 그나저나 비밀작전에 이렇게 요원들을 불러도 되나요?”

“일본 요원들이 있어서 이건 충분히 명분이 있습니다.”

김형정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실장님을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형정은 부축하려는 의료팀을 잠시 멈추게 한 다음, 힘겹게 말을 건넸다.

“몽골 작전으로 사기가 꺾인 특수전 대원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싶으셨을 겁니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해낸 작전만큼 우리도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하셨습니다. 기개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주십시오.”

“그 마음은 이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싸웠던 거잖아요. 그러니 얼른 가세요.”

엉덩방아를 찧듯이 주저앉았던 김형정이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의료팀이 준비한 들것에 몸을 실었다.

새로 나타난 요원 두 명이 강찬과 석강호의 뒤를 지키며 대기했다.

그냥 경찰병원에 갈 걸 그랬나 싶었을 때 유헌우가 달려왔다.

“강찬 씨!”

그는 마당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유헌우는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강찬과 석강호에게 다가왔다. 요원들과 구급대원 둘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몸을 눕히자 차가 곧바로 출발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참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군요.”

유헌우의 혼잣말을 삼키는 동안 차가 빠르게 달려나갔다.

***

유혜숙은 수척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 보자. 당신 아무래도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아냐, 여보. 너무 놀라서 그런 거야. 이제 정말 견딜만해.”

말을 마친 유혜숙이 강대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은 알고 있었지?”

이미 멈칫한 다음이다.

강대경은 말없이 유혜숙의 손을 잡아주었다.

“여직원들이 그렇게 싸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당신 그것도 알고 있었어?”

강대경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이 너무 뛰어나서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봐! 유라시아철도 발표회장에서 가장 나이 어린 참석자고, 국무총리에 대통령이 우릴 찾게 만드는 아들이잖아.”

“여보, 내가 아들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미안해. 내가 무서워서 우리 아들을 보고 떨었어.”

유혜숙이 입을 길게 늘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찬이가 서운해 하는 눈빛이, 내가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게 너무 가슴이 아파, 여보. 날 살리려고 그렇게 한 건데 내가 아들을 서운하게 한 거야. 나 찬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울지마.”

강대경이 손을 뻗어 유혜숙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찬이가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어딜 가든 당신이 걱정할 거라면서 내게 먼저 얘기했었다. 당신이 가슴만 두들겨도 혹시 체한 거 아닌지 챙기는 아들인데 찬이도 다 이해할 거야. 당신 아들 사랑하는 마음 변한 건 아니잖아?”

“아들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변해!”

“그럼 됐지, 뭐. 찬이가 집에 오면 그냥 안아주면 돼. 그리고 우리는 지금처럼 모르는 척하면 되고. 알았지?”

“우리 아들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겠지?”

“어이구, 사모님. 이 모습을 보면 찬이 마음 찢어집니다. 얼른 털구 일어나세요.”

“응. 그럴 거야. 내가 힘을 내서 우리 아들 지켜줄 거야.”

강대경이 작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서 찬이가 힘들 때면 언제고 안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 응?”

“알았어. 그래도 아들이 서운한 마음으로 밖에 있을까 봐 가슴이 너무 아파.”

울음을 터트린 유혜숙의 머리를 강대경이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

“원장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각하. 이건 요원들의 일입니다. 경호실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시잖습니까?”

국가 정보원장 황기현은 문재현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의리나 기개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법치국가에서 대낮에 재벌 총수가 살해당한 겁니다. 죄는 나도 익히 알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그걸 증명해서 법에 맞게 처벌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임무이자 내가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있는 이유입니다.”

문재현은 답답한 듯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경호실장이 칼을 들고 싸우다가 생사를 헤매는데 정작 대통령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원장이 전해준 사표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숨을 내쉰 문재현이 담배에 불을 붙일 때였다.

황기현이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문재현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저도 물러나겠습니다. 각하와 같은 분을 모시고 일할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일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지만,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각하. 가능한 한 빨리 제 사표를 수리해주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생겨도 제 선에서 끝낼 수 있습니다.”

문재현이 커다랗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쉰 다음이었다.

“각하.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황기현이 단호한 눈빛으로 문재현을 보았다.

“유라시아철도 한국 담당자로 강찬 학생을 임명해 주십시오.”

“휴. 아직 고등학생입니다.”

“각하. 유라시아철도 시행까지 3년입니다. 이후로 강찬 학생이 나이를 먹어 서른 살쯤 됐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에 라노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어린 학생을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 텐데 누가 나서서 강찬 학생을 지켜냅니까?”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인재가 나와도 나이 때문에, 학연, 지연 때문에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유라시아철도가 이어지고 강찬 학생이 이대로 10년만 성장한다면, 그때는 대한민국의 발언이 전 세계에 먹힐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현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담배를 재떨이에 꺾었다.

“전 실장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오늘내일이 고비라고 들었습니다.”

“흠.”

“그 친구, 몽골 작전 이후로 후배들의 사기가 너무 꺾였다고 제 원망 많이 했었습니다. 프랑스는 했는데 왜 우린 그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전화기에 대고도 엄청나게 퍼부어댔었습니다.”

문재현이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실장이라면 그럴만하지요. 완쾌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살아난다 해도 3개월은 못 움직일 겁니다.”

문재현은 사직서라고 적힌 봉투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경호실장이 이 중요한 시기에 3개월씩이나 유급휴가를 가다니 용서하기가 어렵군요.”

“각하?”

“게다가 강찬 학생을 지원하려면 국가정보원장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나중에 강찬 학생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 겁니까?”

황기현은 입을 열지 못했다.

“지켜줍시다. 한번 해 봅시다. 나도 온 힘을 다할 테니 정보원장과 전 실장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우리도 전화 한통으로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 경고할 정도로 힘 있는 인재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문재현이 사직서에서 시선을 들어 황기현을 보았다.

찌이익. 찌이익.

“앞으로 내가 해고할 때까지 사표 쓸 생각 마세요.”

“알겠습니다, 각하.”

“비밀 작전도 반드시 보고하시고.”

황기현은 답을 하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정보원장이라면 그 정도 각오와 강단이 있어야겠지요. 참! 강찬 학생 부모님께서 피습을 받았다면서요?”

“예, 각하.”

“안가에서 식사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미성년자를 임명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문재현이 느긋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정말 만들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그래야겠지요.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문재현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담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

병원에 도착해서 온몸을 꿰매고 병실에 옮겨졌을 때 뜻밖에도 라노크가 루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이동 침대를 멈춰 세우자 강찬이 몸을 일으켰다.

“대사님. 여기서 기다리셨어요?”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라노크는 강찬의 몸을 보며 입을 길게 늘였다.

“상황을 들어봐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했습니까?”

대꾸할 말이 없는 질문이었다.

강찬이 침대에 오르자 간호사가 등을 세워주고는 방을 나섰다.

“루이는 좀 나아졌어?”

루이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커피 한잔 타줘.”

라노크는 웃었고, 루이는 웃음을 참았다.

“미국 대사관의 일 때문에 많이 곤란한 건 아니세요?”

“곤란합니다.”

라노크는 부인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의 정보전에 러시아까지 얽혀있습니다. 국제 정세가 춤을 추는 미친 여자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뜻밖의 이야기라 강찬은 듣기만 했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까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후환을 남겨두면 곤란하지요. 허하수 국회의장과 허상수 의원을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강찬 씨를 노릴 겁니다.”

한국의 상황을 강찬 이상으로 잘 아는 라노크다. 강찬은 이참에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대사님. 일본에서 진행하는 해저 터널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루이가 종이컵에 커피를 가져와서 잠시 말이 끊겼다.

“양진우의 집에서 일본 요원들의 시체와 총기가 나와서 잠시 주춤하긴 하겠지만, 국회와 야당에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직 해저터널을 승인하지 않았으니 시간은 있습니다. 이럴 때 허상수가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는 것까지 밝혀지면 일이 쉬워집니다.”

“결국, 그 둘을 잡아야 하는 거군요?”

“그렇지요.”

라노크가 종이컵에 입만 대는 것처럼 커피를 마셨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요.”

라노크가 종이컵을 한쪽에 내려놓을 때였다.

강찬은 문득 담배가 하나 피우고 싶어졌다.

“루이? 담배 있어?”

라노크와 루이가 놀라는 얼굴을 했다.

“괜찮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허락받았거든요. 그래서 악착같이 이리로 온 겁니다.”

“그래서 병실에 공기정화기가 저렇게 여러 대 설치되었던 것이군요.”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가 담배와 라이터를 강찬의 앞에 놓아주었다.

“대사님!”

시가를 가져오지 않았을 거라 강찬이 담배를 권했고, 라노크가 받아들었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손가락에 담배가 꽂히자 담배가 짧아 보였다.

찰칵.

둘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찬 씨.”

“예.”

연기를 뿜으며 담배를 들여다보던 라노크가 시선을 들었다.

“프랑스로 귀화합시다.”

전에도 했던 권유다. 그러나 병실에서 이렇게 진지하게 꺼낼 정도로 급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강찬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구렁이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한국 정부는 강찬 씨를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강찬 씨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정보전에서 열세이고, 상황이 복잡하게 엉키고 있습니다.”

생으로 타는 담배 연기를 무시한 채로 라노크는 말을 이었다.

“본국의 정보국과 정보총국이 사활을 걸고 매달려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해도 강찬 씨를 위해 본국의 모든 것을 동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프랑스 국적을 취득합시다. 그래야 대외적으로 내가 강찬 씨의 후견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뭔가 확실히 있는 거다.

“대사님. 무슨 일 때문인지 말씀해 주시면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거짓 정보를 뿌린 것인지 몰라서 진위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터무니없을 만큼 황당한 정보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정보전은 소문에 일어나서 죽어야 끝나는 싸움일 때가 많으니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구렁이가 말을 돌렸다.

그 정도로 민감한 문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선 몸을 먼저 회복합시다. 그동안 내가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확인해서 강찬 씨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루이가 인솔하는 요원들이 병원 외곽에 상주할 겁니다. 물론 한국의 요원들과 겹치는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 피운 담배를 종이컵에 담았다. 구렁이가 궁금해한다고 입을 열 것도 아니어서 지금은 그저 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프랑스 요원들까지 동원해서 경계를 세울 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

“강찬 씨. 그럼 또 연락하겠습니다.”

라노크가 일어나서 병실을 나가자 강찬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가 꼬이는 느낌이다.

좀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죽일 새끼들을 싹 죽여야 그렇게 되는 건가?

드르륵.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석강호가 들어섰다.

“라노크요?”

“어떻게 알았냐?”

“병실 문앞에 프랑스 놈 둘이 떡 버티고 섰었소.”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라노크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거 이왕 말할 거면 확 털어놓든가 하지 사람이 좀스러운 데가 있네.”

이 새낀 절대 정보 파트에서 일할 놈은 아니다.

둘이 담배를 하나 나눠 피웠다.

석강호도 그렇고 강찬도 그렇고, 상반신 전체를 붕대로 감다시피 했는데, 특히나 강찬의 왼손은 아예 권투 글러브를 낀 것처럼 커다랗게 붕대가 감겨 있었다.

“집에다는 뭐라고 할 참이오?”

“글쎄. 잠깐씩 생각하고는 있는데 잘 모르겠다.”

강찬은 겁에 질려있던 유혜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는 뭐라고 할 거냐?”

“나야 뭐, 통장에 들어있던 돈 중에서 한 5천만 원 꺼내서 수당이라고 건네줄 참이오. 유비캅에서 부탁받은 일 하다가 다쳤다고 둘러댈까 했소.”

“나쁘지 않겠다.”

“그나저나 승합차에 놔뒀던 전화기를 누가 가져다줘야 하는데…….”

드르륵.

석강호가 채 말을 마치기 전에 병실 문이 열렸다.

요원들이 분명한 남자 넷이 병실 안쪽에 붙어서고 그 뒤로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들어섰다.

50 후반쯤? 살이 약간 붙은 몸에 인상은 좋아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눈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강찬 씨?”

“예.”

“그렇다면 이분이 석강호 선생이시겠군요.”

“그렇습니다.”

석강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답을 한 직후였다.

“국가 정보원장 황기현입니다. 일찍 만났어야 했는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하다 보니 이제야 왔습니다.”

황기현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인사를 마칠 때 요원 한 명이 의자를 뒤에 놓아주었다.

“커피를 좀 가져왔는데 드시겠습니까?”

다른 요원 하나가 커피 전문점에서 사온 것이 분명한 일회용 컵 세 개를 앞으로 가져왔다.

이 양반도 병문안치고는 특이한 걸 들고 왔다.

“듭시다. 괜찮으니까 담배를 피워도 됩니다.”

“조금 전에 피웠습니다.”

황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전 실장은 내일이 고비랍니다. 제가 가서 귀에 대고 약 올려놨으니 반드시 살아날 겁니다.”

옆집 아저씨 같은 말투와 표정이 사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대로 죽으면 특수부대를 해체해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국가정보원에 특수팀을 새로 신설하겠다고 했지요.”

강찬과 석강호가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전대극이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아서였다.

“양진우의 건물 지하에서 다수의 무기가 더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밤에 합동수사본부 명의로 발표가 있을 거라서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강찬의 표정을 살핀 황기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강찬 씨. 유라시아철도의 한국 설립위원장으로 강찬 씨를 임명할 생각입니다. 대통령께서 이미 재가를 하셨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직책이 아니어서 국회 동의도 필요 없습니다.”

병실에 찾아온 사람마다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게다가 직책을 맡는 건 원하는 바도 아니다.

강찬이 입술을 오므리는 것을 본 황기현이 각오한 듯 입을 열었다.

“차관급 대우 이상을 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합니다. 외부적으로 처우는 차관급으로 하고, 국정원 부원장의 직급에 준하는 명령권을 드리겠습니다. 특수 임무라 제게 보고할 필요 없고, 1년 예산 천억, 예비비 무제한, 동원할 수 있는 직원 수 역시 무제한입니다.”

“잠시만요, 원장님. 전 그걸 맡을 마음이 없습니다.”

황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 씨라면 분명 거부할 거라고 김 팀장이 그러더군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했으면 싶습니다.”

쉽게 물러날 사람은 아니어서 강찬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보전이 오묘한 맛은 있어도 그곳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황기현의 제안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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