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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120화 (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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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이젠 지겹다.

강찬은 전대극의 요청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멍청하게 당할 마음도 없었다.

꽉!

강찬은 양진우의 머리를 단단히 움켜쥔 채로 시선을 들었다.

“너희의 도발을 받아주지.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총을 전부 꺼내놓을 것, 또 하나는 내가 이 새끼를 죽일 때까지 잠시 기다릴 것.”

말을 지껄인 일본 요원 놈이 움찔한 것이 보였다.

한 마디로 이쪽을 완전히 바보, 병신으로 알았다는 뜻이다.

“꼴에 자존심이 있는 척하더니 결국 꼼수를 피워서 이 새끼를 빼내려던 거냐? 이 새끼가 뭔데?”

말끝에 시선을 내렸을 때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품은 양진우의 눈빛을 보았다.

퍼억!

강찬은 냅다 양진우의 배를 걷어찼다.

“개새끼가 어디서 잔머리를 굴려?”

“끄으응. 끄으으!”

허리를 숙이던 양진우가 부들거리며 몸을 곧추세웠다. 뼈가 부러진 허벅지의 통증을 어떡해서든 줄여보려는 몸부림이었다.

“병신이!”

퍼억!

“끄어어어!”

피에 젖은 채, 일그러진 양진우의 얼굴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양 회장을 건네주면 2조를 주겠다!”

다급한 외침이 건너왔다.

“이 새끼를 풀어주면 유라시아철도를 말아 먹을 텐데 그깟 2조? 너나 처먹어!”

퍼억!

“끄윽! 끄으응!”

“조용히 해, 이 개새끼야! 자꾸 이러니까 내가 돈 바라는 인질범 같잖아!”

강찬이 발을 드는 척하자 양진우의 몸이 움찔한 다음이다.

퍼억!

“크흐흐! 크흐흐흐!”

양진우는 망가져 가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피와 엉겼고, 비겁한 울음을 울 때마다 흘리는 침이 또 그랬다.

“양진우?”

“예에.”

너무 일찍 포기하는데?

강찬이 삐딱하게 고개를 틀어 양진우를 들여다보았다.

“다음번엔 이러지 마.”

머리카락을 잡힌 양진우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준다는 뜻인 줄 아는 모양이다.

“원하는 걸 말해!”

일본 요원 놈이 또다시 소릴 질렀다.

터억!

강찬은 양진우의 대가리를 꽉 움켜쥔 다음,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원하는 거? 이 새끼가 뒈지는 거!”

“안 돼!”

아드득!

강찬이 양진우의 목을 비트는 순간 세상 전체가 멈춘 것처럼 사방이 고요해졌다.

전대극과 김태진, 김형정조차 당황한 듯 멍한 얼굴이었다.

털썩.

양진우의 몸뚱이가 강찬의 왼편 옆으로 고꾸라졌다.

“어떻게 할래? 이래도 자존심 지키고 싶다면 붙어주지.”

“빠가야로!”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결정해.”

“요로시!”

놈이 강찬을 노려본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권총을 꺼내 한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주변에 서 있던 놈들이 모조리 권총을 꺼내 그 앞에 쌓았다.

석강호가 겨누고 있는 앞이다.

어설픈 동작이 나오면 바로 방아쇠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실장님. 저격수 출신 두 명은 권총을 가지고 있으라고 하세요.”

“알았다.”

“최종일, 가서 저 총들 전부 대문 앞 공터에 던져놓고 와.”

최종일과 우희승, 그리고 이두희가 움직여 권총을 대문 앞의 계단 밑으로 모조리 던졌다.

강찬이 고갯짓을 하자 석강호가 아군의 권총을 들어 역시나 대문 앞에 던져 놓았다.

강찬은 마지막으로 전대극을 보았다.

권총을 겨누고 있으니 이대로 빠져나가면 모두 끝나는 일이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안다. 하지만 이 미친 짓이 앞으로 우리 요원들의 가슴에 영원한 자부심으로 남을 거다. 이겨도, 져도 이 일은 대한민국 요원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일로 남는다. 고맙다, 강찬.”

강찬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발목에 걸어두었던 대검을 꺼내 거꾸로 들었다.

스응.

짧은 날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며 날카롭게 빛났다.

적들도 허리와 발목에서 비수를 꺼내 들어서 정원에 번쩍임이 가득했다.

거의 한 사람당 적 두 명이다.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싸워보면 한 사람당 열다섯 명을 상대하는 느낌이 든다.

남은 인원이 누구에게 달려들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약한 사람을 먼저 노려 숫자를 줄이려고 할 수도 있고, 강한 사람을 먼저 쓰러트려 편한 싸움을 만들고자 할 때도 있다.

강찬은 숨을 고르며 앞을 노려보았다.

말했던 대로 미친 짓이다.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양진우를 죽이는 일에 도움을 청한 대신에 일본 요원들을 상대하는 일을 돕는 거다.

“다예. 오른쪽.”

“알았소.”

“최종일. 왼쪽.”

“예.”

강찬은 좌우에 석강호와 최종일을 세웠다.

유혜숙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순간 강찬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왕 싸움이 시작된 거라면 한 놈이라도 더 해치우고 한 놈의 시선이라도 더 뺏어오는 게 맞다.

가장 먼저 부딪힌 놈이 비수를 찔러넣었다.

달려들어서 당황한 기색이었다.

피윳! 피윳!

부메랑 모양으로 대검을 휘두르는 순간 놈의 손목과 목에서 동시에 피가 튀었다.

터억!

강찬은 옆에 놈의 팔뚝을 왼손으로 내려치며 세 번이나 대검을 휘둘렀다.

핏! 피윳! 피윳!

석강호와 최종일 쪽에서 비슷한 소리가 울려 나왔는데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핏! 피윳!

얼굴로 피가 튀었다.

이런 거?

지겹게 해봤다.

전대극과 김태진, 김형정도 달려들었고, 그 뒤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대원들이 지켜준다.

“끄윽!”

비명이 처음 터졌다.

신기하게 소리만으로도 아군인지 적군인지가 구별된다.

지금 건 적의 비명이다.

강찬은 기계적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후욱. 후욱.

숨소리가 커다랗게 들렸고, 사방이 훤하게 보였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

앞에 놈이 눈알을 굴려 강찬의 옆구리를 보는 것.

대검이 비틀리는 것까지 모두 보였다.

쉬이잇! 파아악!

강찬의 대검이 지나가자 놈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이대로 적이 죽지는 않는다.

쉬이익! 피잇! 피이잇!

강찬은 연달아 놈의 겨드랑이와 목을 베었다.

“끄으윽!”

비명은 참아지는 게 아니다.

훈련을 아무리 받아도 마지막에 지르는 비명은 근성이 있어야 참는다.

콱!

적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근접격투술을 하다가 머리를 붙잡을 줄을 몰랐던 거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다.

목을 갈랐는데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놈도 있는 싸움.

머리칼 붙잡혔다고 놀라면.

피윳! 핏!

목을 베인다.

파악!

놈의 목에서 피가 뿜어질 때 강찬은 다른 놈의 옆구리를 갈랐다.

그때였다.

“큭!”

최종일의 비명이 들렸다.

피잇! 핏!

그리고 연달아 겨드랑이와 가슴에 칼을 맞는 것이 보였다.

퍽! 피윳!

강찬은 최종일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순간 목을 노렸던 비수가 얼굴을 가르는 것 같았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피윳! 피윳!

‘끄윽!’

강찬이 적의 겨드랑이를 갈랐다 싶은 순간에 왼쪽 옆구리를 베였다.

빠르다.

정말 빠른 놈이다.

콰작. 콰작. 콰악! 피윳!

강찬이 휘두르는 팔꿈치와 대검을 적이 막았고, 적의 박치기를 강찬이 손바닥 안쪽으로 밀쳐냈다.

최종일이 비었다.

그 바람에 왼쪽 등과 어깨 사이를 베었지만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놈이다.

콰자작! 콰작! 파악! 팍! 휘이익!

누가 빨리 앞을 휘젓는가의 싸움처럼 빠르게 손이 마주쳤다.

한 번이다.

꼭 한번.

손을 놓치면 그 순간 죽는 싸움.

빠르면 적을 죽인다.

파악! 팍! 팍! 파!

“크흑!”

악착같이 왼쪽을 막아서던 최종일 두 번째로 비명을 토해냈다.

소리에 신경을 뺏겼다.

피윳! 피윳!

목을 빼냈지만, 왼쪽 쇄골과 오른쪽 옆구리를 베었다.

콰작! 콰자작!

팔꿈치, 손날, 그리고 비수.

강찬은 악착같이 몸을 세웠다.

콰작!

팔꿈치끼리 부딪칠 때 놈과 시선이 똑바로 마주쳤다.

“개새끼!”

“빠가야로!”

겨드랑이에 칼을 맞아서 미세하게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강찬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후익! 파악!

놈의 날이 날아올 때 왼손을 놈의 칼에 디밀었다.

푸욱!

왼손바닥이 완전히 뚫렸다.

꽉.

강찬은 손가락을 구부려 놈의 칼날을 잡았다.

퍼뜩!

놀랐지? 이럴 줄은 몰랐지?

피윳! 피윳! 피윳! 피윳! 피윳!

놈이 왼팔을 들었지만, 이쪽은 칼을 들었다.

팔꿈치, 어깻죽지, 팔뚝, 겨드랑이.

그 사이 놈이 칼날을 비틀었다.

‘끄윽!’

그러나 강찬은 놈의 칼자루를 놓지 않았다.

푹! 피윳! 푹!

목덜미에 칼을 찍자마자 목을 갈랐고, 다시 목덜미에 칼을 박아넣었다.

파아아악!

하얗게 갈라지던 상처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졌다.

강찬을 마지막까지 노려보던 놈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파악!

칼을 뽑는 순간에 온몸의 신경이 찌르르하게 울렸다.

석강호도 이미 피투성이였다.

이런 짓을 또 할줄 몰랐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거 아니다.

다른 몸뚱이를 받고 싶어서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두 번의 삶 모두 이런 살육을 피하지 못한다.

콱!

적의 목덜미에 대검을 찔러넣으며 강찬은 갑자기 유혜숙이 떠올랐다.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모가지를 돌린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해 힘겨워했는데 적의 목에 칼을 쑤셔 넣는 모습을 보면 어떤 얼굴을 할까?

피윳!

염병할!

딴생각을 하다가 죽을 뻔했다.

피이잇! 피잇! 피잇!

더는 앞에 만났던 것 같은 지독한 놈은 없었다.

그래! 이왕 싸우는 거!

내가 하나라도 더 죽여야 내 편이 산다.

어딜 노려?

강찬은 최종일을 향하는 놈의 어깻죽지를 잡아당겼다.

푹! 푹! 푹! 푹!

독기가 완전히 올랐는지 왼손은 욱신거리기만 할 뿐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콱악!

“끄아악!”

목덜미에 대검을 찍어 넣는 순간에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파아악!

피가 튀는 순간에 강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강호를 노리던 놈이다.

왼쪽 팔뚝에 칼을 맞은 것 같은데 아프지도 않다.

푹. 푹. 푹. 푹.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받아주마.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아 주마.

유혜숙이 버리더라도, 강대경이 외면하더라도, 살아남을 거다.

석강호랑 둘이서 가평 가서 닭 다리 먹어가며 끈질기게 살아남을 거다.

파악! 파악! 파악!

강찬은 세차게 대검을 꽂아 넣었다.

왜 나한테 이러는데?

나는 왜 남들처럼 살 수 없는 건데?

왜! 왜!

피윳! 피윳! 피윳! 푹. 푹. 푹. 푹.

와락! 움찔!

“대장!”

다예루였다.

피투성이인 팔을 뻗어 강찬의 몸을 끌어안은 다예루가 악을 쓴 거다.

“끝났소.”

“후욱. 후욱.”

이 새끼가 나를 막아?

“끝났소, 대장. 다 끝났소.”

“허억. 허억.”

강찬의 눈을 똑바로 보며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몸 곳곳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담배 있냐?”

석강호가 히죽 웃으면서 강찬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는 끙 소리를 내며 담배를 꺼냈다.

상반신이 갈라진 상처로 가득했고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여깄소.”

찰칵. 찰칵.

강찬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 있는 사람은 다섯밖에 없었다.

김형정, 최종일,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대원 셋.

“강찬 씨.”

김형정이 힘겨운 얼굴로 다가왔다.

“병원에 연락했습니다.”

그리고는 엉덩방아를 찧는 것처럼 무너졌다.

그의 뒤에서 오른쪽 얼굴을 누른 채로 최종일이 다가왔다.

“고망습니다.”

목에 피가 걸려서 발음이 이상했다.

“담배 줘?”

“예엥.”

강찬이 피식 웃을 때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주었다.

파란 잔디에 낯빛이 하얗게 변한 놈들이 피를 뒤집어쓴 채로 이리저리 자빠져 있는 모습이라니.

아직 꿈틀거리는 놈도 있었다.

“전화기 있어? 있으면 방지병원에 전화 좀 걸어줘.”

최종일이 남은 요원에게 전화를 달라고 한 뒤에 번호를 눌러주었다.

[“여보세요?”]

“원장님. 강찬입니다.”

[“강찬 씨. 전화기 바꾼 거 자랑하려고 전화한 거면 화낼 겁니다.”]

“원장님. 저랑 석강호가 칼에 베였는데 상처가 심각해서 도저히 그냥은 못 가겠습니다.”

[“어딥니까?”]

뜻밖에도 유헌우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여기가 평창동인데요, 주소는 모르겠고, 양진우의 집이랍니다.”

[“내가 바로 갑니다. 필요하면 근처에 도움받을 의사를 먼저 보낼 수 있어요.”]

“그냥 원장님이 와 주세요.”

[“알았습니다.”]

전화가 바로 끊겼다.

“담배 하나 더 주라.”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주었다.

라이터가 피에 젖어서 피우던 담배로 불을 붙였다.

“우리 저쪽에 좀 앉읍시다.”

“그러자.”

둘이 억지로 걸음을 옮겨서 정원수에 기대앉았다.

나른했다.

“후우.”

담배 연기가 허공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대장이 열 이상 죽인 거 아쇼?”

“내가?”

“모르는 거 같았소. 저쪽에 독사 같은 놈 죽이고 나서 완전히 정신을 잃은 사람 보입디다. 끄응.”

석강호가 상체를 움직이려다 신음을 쏟아냈다.

“몸 나으면 가평이라도 한번 다녀옵시다.”

강찬은 풀썩 웃으며 “그러자.” 하고 답을 했다.

이상하게 누가 죽었는지, 쓰러진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는 걱정되지 않았다.

염병.

어쩐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기분이었다.

멀리서 엠블런스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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