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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제부터다.
월요일, 강대경과 유혜숙이 출근하자 강찬은 잠시 거실에 앉았다. 불현듯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일단 숙제부터 하자.”
강찬이 양진우를 처리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김형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강찬 씨. 괜찮으시면 제 사무실에서 뵐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흔한 안부 인사 한마디 없는 통화다.
반드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짐작한 강찬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파트를 나와 택시의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거리는 평화로웠다.
유라시아철도, 테러, 해저터널, 지진과 쓰나미.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엄청난 사건들을 일상이 꿀꺽 삼키고 모른 척 삶을 펼쳐낸다.
몽골에서 비통하게 죽은 특수요원들이 만들고 지켜낸 나라다. 그런 곳에서 허하수가 나라를 팔아먹고, 양진우 같은 놈들이 힘없는 사람을 죽여가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다시 태어난 이유가 개새끼들 틈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키라는 건가?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거창하기도 하다.”
“예?”
창밖으로 보며 무심코 뱉은 말에 기사가 반문했다.
“날씨가 좋아서 혼잣말한 거예요.”
“그렇죠. 이제 아침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납니다.”
나이가 제법 든 기사가 룸미러로 강찬을 힐끔 보았다.
“그런 양복은 비싸겠지요?”
“이거요? ”
강찬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미쉘과 산 양복인데 강찬의 생각에도 가격이 허술하지 않았다.
“아들이 이번에 취직합니다. 양복 한 벌 사주려는데 만만치 않네요. 저를 닮아 키 작고 뚱뚱해서 옷이라도 좋은 놈을 입혀주고 싶은데 좋은 양복은 어휴, 이 벌이로는 쉽지 않네요.”
비싼 옷을 사주지 못하는 아쉬움과 자식에 대한 뿌듯함이 얼굴에 가득 담겨 있었다.
“좋은 데 취직하셨나 보네요.”
“삼정이라고.”
답을 한 기사가 힐끔 강찬을 보았다.
그게 얼마나 좋은 직장인 줄은 몰라도 저런 눈초리를 모른 척하기는 어렵다.
“대단하네요.”
“남들이 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봐야지요. 허허허.”
기쁜 얼굴이었다.
기사의 자랑을 두 마디쯤 더 듣고 났을 때 삼성동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기사님두요.”
요금을 내면서 저 택시 기사가 양진우보다 천만 배쯤 훌륭한 아버지란 생각을 했다.
5층으로 올라가는 순간에 역시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강찬 씨.”
“저 오는 것만 보시는 건 아닐 텐데 어떻게 매번 직접 문을 열어주세요?”
“건물 감시하는 직원이 따로 있습니다.”
김형정이 강찬을 안내하며 답을 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커피를 직접 가져온 김형정은 문을 닫은 후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았다.
“우선 담배 하나 하시고.”
둘이 담뱃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솔직히 사표를 낼 생각이었습니다. 강찬 씨를 잃느니 아예 사표 내고 제 손으로 양진우를 처리할 생각이었지요.”
저런 말을 저렇게 사명감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을 하다니, 우직한 건지, 단순한 건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강찬이 풀썩 웃는 것을 본 김형정이 비슷하게 웃었다.
“원장님께 다 말씀 드렸습니다. 물론 강찬 씨가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단 핑계를 댔으니까 나중에 알아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뭔데 이렇게 서두가 길어요?”
“그랜드 써클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랜드 써클이요?”
“재벌과 재벌, 그리고 재벌과 정치권이 결탁한 세력입니다. 이용 목적에 따라 결혼 등을 통해서 친인척의 관계를 맺지요.”
중세 시대도 아니고, 참 지랄들 한다.
“끝없이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그랜드 써클에 들어갔다는 것은 대대손손 부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는 의미쯤 될 겁니다.”
“후우! 재벌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들 여유 있게 살지 않나요? 왜 꼭 그런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네요.”
“지키고 싶은 거겠지요. 새로운 정권, 깨어가는 국민들 사이에서 영원한 부를 누리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유라시아철도를 반대했던 거겠군요.”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였다.
“양진우는 그랜드 써클의 정점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죽은 그의 며느리 둘과 사위 역시 전부 30대 재벌가의 자식이고, 그중 한 명은 전 국무총리의 딸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엿 같은 소리다.
“양진우의 처리를 함부로 결정하지 못한 데는 이런 사정도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기득권 전체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과 가진 재산을 일시에 해외로 옮겨 버리고, 그와 더불어 정치권에서 분탕질을 해대면 당장은 견디기가 어려우니까요.”
“기업을 그런 식으로 옮길 수 있나요?”
“그뿐만 아니라, 당장 실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공급 업체 등을 해외에 매각할 겁니다.”
솔직히 강찬은 못 알아들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회사들을 외국에 팔아버리면 가격이 급상승할 겁니다.”
“그럴 수도 있나요?”
“이미 전 정권에서 특혜로 민간에게 팔아버린 회사들은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독점이니까요. 도시가스처럼.”
“기가 막히는군요.”
“자기들끼리 외국에 회사를 만들어서 결국 해외에서 조정하려 들겠지요. 국내에서는 명분을 만들어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할 거구요.”
“후유!”
듣기만 해도 답답한 이야기라 강찬은 바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대통령님이나 총리님은 모르는 일로, 원장님 독자적 결정 사항입니다.”
김형정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랜드 써클 중에서 양진우와 같이 테러 지원을 하는 인물, 그리고 허하수처럼 우리의 군사기밀을 팔아먹는 정치인을 법적 테두리에 상관없이 처리할 특수팀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담뱃불을 붙이는 동안에도 김형정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책임은 제가 맡았습니다. 앞으로 이 일과 관련해서 스캔들이 생기면 제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행위이고, 원장님이 공동 책임지시겠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원장님, 저, 그리고 강찬 씨, 이렇게 셋뿐입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잘못되면 팀장님은 살인마의 누명을 덮어쓰고 죽어서도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찬 씨가 양진우를 죽이고 프랑스에 가겠다고 할 때도 그런 결심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걸, 이 사회와 태워다 주었던 택시 기사는 절대 모를 거다.
“이 일에 강찬 씨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강찬이 피식 웃자, 김형정이 비슷하게 웃었다.
“제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렙니다. 기업들이 수십조 원의 이익을 내는 동안 국민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전기세에 고통받는 것도 싫고,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를 몇몇이 나눠서 배불리 처먹는 모습도 싫었습니다. 최소한의 치료를 보장받고, 삶이 힘겨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전 지금부터 지옥 길을 걷겠습니다.”
뜻은 좋은데 강찬에게는 너무 거창하게 들렸다.
“유라시아철도를 반드시 연결해서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김형정은 긴장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도와주시는 거죠?”
답을 듣고 싶은 거다. 그래서 확신을 얻고 싶은 게 맞다.
“양진우 하나 죽이려던 일이 너무 거창해졌는데요?”
“그를 죽이면 어차피 고구마 줄기처럼 튀어나와 강찬 씨와 부딪쳤을 일입니다.”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일이고, 시작과 동시에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꿈은 모조리 강에 던지는 것과 같은 선택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지는 결정 못 했다.
하지만 적어도 강대경과 같은 가장이 되고 싶었다.
강대경, 유혜숙, 그리고 김미영이 이런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찬의 선택 때문에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살지도 모른다.
거기에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진다면?
불쌍하게 죽은 자매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강대경과 유혜숙이 맞게 되는 거다.
강찬은 김형정을 보았다.
저런 눈을 가진 남자의 뜻을 물리쳐?
바로 며칠 전에 이 자리에서 비겁하지 않냐고 따져놓고 정작 답을 가져오자 꼬리를 뺀다고?
이게 숙명이라면, 그래서 전투 중에 죽은 사람을 이곳에 처박은 거라면…….
오냐. 당당하게 맞서 싸워주마.
“석강호는 넣어주시죠?”
“제가 책임자 아닙니까? 이 일은 원장님께도 따로 보고드리지 않습니다.”
“양진우 이 새끼, 오늘부터 꿈자리 좀 뒤숭숭하겠는데요?”
“고맙습니다, 강찬 씨.”
김형정이 손을 내밀었다.
낯간지럽긴 한데 거절하기도 어려워서 강찬은 김형정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후에 개략적인 의논이 있었다.
예산은 유니콘 프로젝트에 책정됐던 100억을 우선 사용한다고 들었고, 필요한 무기와 장비는 김형정이 비공식 루트를 통해서 조달하기로 했다.
몇 가지 사안을 먼저 알려준 김형정이 누런 종이봉투를 잡더니 사진과 서류들을 강찬 앞에 펼쳐 놓았다.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협조해 준 자료입니다. 양진우의 경호원으로 있는 열 명의 인적사항입니다.”
강찬은 서류를 하나씩 넘겨보았다.
러시아에서 위탁 교육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아라비아 등지에 파견되었던 요원들도 있었다.
“만만치 않겠는데요?”
“경력을 보고 놀란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참, 그리고 양진우의 남은 아들 셋이 모두 이혼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강찬이 남은 커피를 털어 넣는 것을 보며 김형정이 설명을 이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긴 거죠. 재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각기 정보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기들과는 관련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관계 끊을 테니 건드리지 마라, 뭐 그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개새끼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
양진우가 불만 가득한 두꺼비처럼 볼을 부풀린 채 창밖을 보고 있을 때였다.
뚜우우.
집무실에 마련된 소파의 인터폰이 울렸다.
달칵.
양진우가 버튼을 누른 다음이었다.
[“허 의장님, 의원님, 그리고 권 보좌관 모두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의원 사무실에선 외출했다는 답만 들었습니다.”]
간결한 보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들렸다.
양진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인터폰에서 손을 뗐다.
“해저 터널로는 안 된다고 보는 거다?”
손발이 잘리고 있다.
로비자금 10조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누군가 받아주어야 효과가 있는 건데 당장 자식들마저 이혼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문재현, 이 천한 놈 때문에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허. 허허허.”
웃음소리와 달리 양진우의 눈빛은 사납게 빛났다.
달칵.
양진우가 다시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네, 회장님.”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한 사람도 예외가 없도록.”
“알겠습니다, 회장님.”
버튼을 내려놓은 양진우가 손에 이마를 걸치고 문 앞을 보았다.
“가네마루 상에게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라고 전해라.”
“하이!”
코타로우가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한 직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애송이와 그 부모도 바로 처리해라. 가능하겠지?”
“아무리 설쳐봐야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경호하는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아. 방심은 금물이다.”
“회장님께 최정예 요원의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양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사거리 커피전문점에 들어선 석강호는 눈짓을 하고 곧바로 주문대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라 테라스가 붐벼서 긴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다.
“이거 정신 사나워서 제대로 말도 못하겠소.”
아이스 커피를 들고 온 석강호가 툴툴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옆자리에서 떠드는 말이 고스란히 들렸다.
“됐어. 좀 기다렸다가 오는 대로 밥 먹으러 가자.”
“그러면 되겠소.”
석강호가 말을 하고는 강찬을 넌지시 보았다.
“대장. 한 10억쯤 있소?”
이 새끼가 왜 돈 얘기를 하지?
“땅은 포기했고, 적당한 건물 하나 살까 해서 그렇소.”
“건물?”
“대장 있는 돈이랑 내 거 다 털어서 건물 하나 삽시다. 임대료 받은 걸로 용돈 하고 이렇게 커피 전문점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럴 거면 네 돈 쓸 게 뭐 있냐? 지난번에 땅 사려던 돈 그대로 있다.”
“어때요? 운동실 하나 만들고, 개인 사무실 하나 차리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거기서 다 해결 되잖겠소?”
“봐둔 게 있냐?”
“대충 알아보겠소.”
“지난번처럼 서두르다 또 훌렁 날려 먹지 말고.”
“에이! 그런 건 좀 잊어버리쇼.”
석강호가 계면쩍은 얼굴로 아이스 커피를 마실 때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스미든이 들어섰다.
“대장!”
“앉아.”
“커피 하나 사오구요.”
발음은 어색했지만, 뜻이 통하는 데 전혀 지장 없는 한국말이었다.
잠시 후, 스미든이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양진우가 온다는 소식이 없네요.”
“지금 거기 갈 정신 없을 거다.”
“원래도 1년에 한두 번 온다고 했어요.”
스미든의 대답을 들은 석강호가 놀란 눈을 했다.
“한국말 많이 늘었다?”
“너보다 똑똑해.”
“이 개새끼가?”
“욕 나쁜 거라고 했지?”
“그만해라.”
서양놈 하나와 투박하게 생긴 한국놈이 욕을 해대는 모습에 시선이 단박에 달려왔다.
“저녁 안 먹었지?”
“그래요.”
이런 답은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알아듣는 데 문제는 없다.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돼지갈비요.”
이 새끼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지?
강찬이 의아한 시선으로 볼 때 스미든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튼, 식당으로 향했고, 메뉴는 스미든이 정한 돼지갈비였다.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미국놈이 돼지갈비를 상추에 싸서 입에 가득 처넣고 폭탄주를 마신다.
“아줌마. 여기 매운 고추랑 고추장 좀 주세요.”
거기에 손까지 들어가며 주문을 하는 바람에 손님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한국말을 잘하시네.”
“고마워요, 예쁜 아줌마.”
“어쩜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하셔. 더 필요한 건 없고?”
“이따가 된장국 주지요?”
강찬이 심오하게 한숨을 내쉬는 앞에서 스미든이 연신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런데 여기 이분은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혹시 탤런트 아니에요?”
“닮은 사람이 있나 보네요. 맥주 한 병 더 주세요.”
강찬은 관심을 떼기 위해 주문을 했다.
“스미든.”
“그래요.”
주둥이에 고기를 가득 처넣은 놈이 또 이상하게 답을 했다.
“이제 됐으니까 양진우 여자들 안 만나도 돼.”
스미든이 난처한 얼굴로 입에 남은 음식을 꿀꺽 삼켰다.
“대장. 단번에 정리 안 하고, 두 달 정도 시간을 가져도 되지요?”
“그건 너 알아서 하고.”
“다행이네요.”
여자에게 말을 배워서 그런지 여성스러운 말투였다.
“다예. 술 없어.”
석강호가 인상을 버럭 썼다가 강찬의 눈치를 살피고는 술을 따라주었다.
“대장. 알고 싶어요.”
“뭘?”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굵직한 음성으로 하는 여자 말투가 슬슬 짜증 나려는 참이다.
“그냥 이대로 털어버릴까 해.”
“털어?”
“그만두겠다고.”
“예.”
석강호는 놀란 얼굴이고, 스미든은 못 미더운 눈치였다.
“편하게 살자. 이거저거 귀찮다.”
적당히 배가 불러서 식당을 나가고 싶었는데 스미든은 꾸역꾸역 된장국에 밥을 다 처먹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가요.”
“그래. 적당히 하고 정리 잘해.”
“알았어요.”
스미든이 아쉬운 얼굴로 떠난 뒤에 강찬과 석강호는 다시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보다는 많이 한가했다.
“정말 양진우 건에서 손을 뗄 건 아닐 테고 뭐요?”
음료수를 두 잔 들고온 석강호가 바싹 다가앉았다.
“스미든 때문에 그런 거고, 사실은.”
강찬은 낮에 김형정과 나눈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완전히 특수팀이 아니오? 김 팀장, 그 양반이 또 그런 배포가 있네.”
“방법을 찾는 대로 양진우는 바로 제거할 생각이다. 그렇게 알고, 느낌이 안 좋으니까 당분간 조심해서 다녀.”
“알았소.”
석강호가 만족한 듯 히죽 웃을 때였다.
“다예.”
“예.”
강찬이 나직하게 부른 소리에 석강호가 바로 웃음을 지웠다.
“감이 안 좋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변 경계하고 다녀.”
“그 정도요?”
“오후부터 그래. 영 찜찜하거든.”
“조심할 테니 염려 마쇼. 대신 빨리 해치워 버립시다.”
“그러자.”
석강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