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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110화 (1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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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지금 어디 있나요?

총 다섯 명의 대원이 들어와 주변을 확인했다.

원래대로라면 저 작업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문재현과 라노크, 그리고 고건우를 빼는 일이 그만큼 급했다는 뜻이다.

급한 상황이다.

한시라도 속히 부상자들을 빼내고 추가로 있을지 모를 붕괴나 공격을 피해야 할 때였다.

천정에서 작은 돌들과 가루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전대극이 기가 막힌 눈으로 강찬을 본 다음,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강호가 강찬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라이터를 켰다.

찰칵. 찰칵.

“후우!”

몸을 꼼짝하기도 어려울 만큼 등과 허리가 아팠다.

대원들이 좀 더 들어와 부상자를 챙겼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부축을 받으며 사다리를 통해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벽이 막히다시피 했다.

뚫린 구멍으로 스며든 빛이 기다랗게 늘어졌고, 그 사이를 뿌연 먼지가 떠다녔다.

“실장님. 모시겠습니다.”

전대극이 강찬을 보았다.

“먼저 가세요. 저는 아무래도 의무팀에 의지해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연락합시다.”

“예.”

전대극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야전에서, 그것도 특전사만 돌던 지휘관에게 오늘의 일은 뼈아픈 패배로 받아들여질 거다.

담배를 끄자 온몸이 나른했다.

“움직일 수 있겠냐?”

“양진우를 잡으려고 그러는 거요?”

이 새끼만큼 마음을 척척 읽는 놈도 드물다.

“이대론 어렵소. 놈을 죽이기야 하겠지만, 굳이 그놈하고 같이 죽을 일이 뭐 있소? 오늘은 참읍시다. 그래서 완벽하게 죽여버립시다.”

염병!

이를 악물며 상체를 세운 강찬이 엉망인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진우를 그냥 두기가 너무 억울했다.

강대경의 기습, 몽골, 그리고 오늘까지 벌써 세 번이나 놈에게 당한 꼴이다.

겨우 막아낸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놈이 물불을 안 가리겠다면 이쪽도 사양하지 않는다.

환자가 연신 들려 나갔다.

치잇. “강찬 씨. 부모님껜 연락했습니다. 이제 나오세요.”

치잇. “팀장님. 다른 환자들 먼저 내보내고 갈게요. 그리고 저랑 석강호는 방지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치잇. “알겠습니다. 연락해 두겠습니다.”

***

유헌우는 강찬의 옷을 가위로 전부 자르고 아예 소독약으로 샤워를 시키다시피 했다.

엎드린 자세에서 의사가 셋이나 달려들었고, 간호사 한 명은 이상한 약품으로 머리까지 감겨주었다.

핀셋으로 피부에 박힌 이물질을 제거하고 소독하고 약 바르고 다시 붕대를 감았다.

다음은 X레이와 CT 촬영으로 허리와 척추, 목등을 찍었다.

“휴우. 큰 걱정은 없네요. 병실에 올라가세요. 전 옆 방에 석강호 씨 상태를 살펴보고 저녁때 올라가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강찬도 유헌우도 지쳤다.

병실에 옮겨가서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을 때였다.

드르륵.

“아들!”

유혜숙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괜찮아? 괜찮은 거니? 심하게 다친 건 아니야?”

“괜찮아요.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강찬은 얼굴과 몸을 살피고 매만지는 유혜숙을 침대에 앉게 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보세요, 어머니. 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흐흑. 그래, 다행이야. 흐흐흑.”

“울지 마세요.”

강찬이 손을 잡아준 뒤에서 한참을 울었던 유혜숙이 마침내 “후우” 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강찬은 강대경을 보았다.

하루 만에 십 년은 늙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식이란 이런 거구나.

이전의 삶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진한 사랑이 강대경의 늙어버린 얼굴과 유혜숙의 울음 속에 담겨 있었다.

“배는 안 고파? 점심은 먹었어?”

강찬이 풀썩 웃자 유혜숙은 조금 더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죄송해요.”

“아들이 미안할 게 뭐 있어?”

“아버지. 이리 앉으세요.”

“그래. 그러자.”

강대경은 정신이 퍼뜩 든 사람처럼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

강찬은 차디찬 유혜숙의 손을 주물러 주었다.

“힘들어, 얘!”

“괜찮아요.”

이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몸이 녹았으며 싶었다.

“엄마가 이제 좀 살아나나 보다.”

강대경이 조금은 안도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이제 좀 괜찮으세요?”

강찬이 얼굴을 들여다보자 유혜숙이 남은 눈물을 털어내며 숨을 커다랗게 쉬었다.

“넌 유학 못 가겠다.”

“그렇죠? 아버지?”

어쩐 일인지 유혜숙은 아니란 말을 못한다.

“에구! 우리 어머니 이제 웃네?”

“얘는!”

강찬이 손을 뻗자 유혜숙이 어깨만 닿는 자세로 강찬을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됐어.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무사한 거 봤으니까 이제 됐어. 아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무사하게 돌아왔으니까 엄마는 그걸로 만족해.”

유혜숙의 얼었던 몸이 녹았다.

어깨에 닿는 온기, 말투, 몸을 세워 강찬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어디 크게 다친 건 아니구?”

“등에 상처가 좀 있는데 심한 건 아니라던데요?”

“얼마나 다친 건데?”

“정말 심한 거 아니랬어요. 여기 원장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한시름을 놓은 얼굴로 유혜숙이 마지막 남았던 걱정을 한숨과 함께 털어낼 때였다.

드르륵!

미쉘이 눈물을 쏟아내는 얼굴로 병실 문을 열었다.

“차니!”

“미쉘?”

빠르게 달려온 미쉘이 강찬을 와락 안았다.

“걱정했어! 잘못되는 줄 알고! 다신 못 보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프랑스어다.

계산해서 나온 말이 아니라 편한 말이 먼저 쏟아져 나온 거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강대경과 유혜숙이 놀란 얼굴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여보. 우리 나가서 마실 거 하고, 과일 좀 사오자.”

“그래, 여보.”

강대경이 눈짓을 하자 유혜숙이 엉거주춤 침대를 내려갔다. 그 정도로 미쉘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염병! 얼마나 세게 안았는지 등 쪽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드르륵.

두 사람이 슬쩍 자리를 비켜주고도 5분쯤 지나서야 미쉘은 울음을 멈추고 강찬을 보았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담겼다.

미쉘이 키스를 하는 걸 알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몸으로 미쉘이 강찬을 파고들었다. 마음 졸였던 것을 모두 풀어낼 것처럼 미쉘의 몸은 열기를 뿜어냈다.

“이제 괜찮아?”

미쉘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발이 출렁였는데, 크고 파란 눈에 아직 눈물이 담겼다.

“차니. 일하지 마. 내가 열심히 벌게.”

“푸흐흐.”

석강호랑 너무 다녀서 그런지 비슷한 웃음이 나왔다.

“진심이야. 차니 하고 싶은 거 해. 대신 이런 일은 그만해, 차니.”

서양년들은 이런 말 안 한다. 절대로.

미쉘의 이런 면은 또 동양적인 사고다.

“회사는 어떻게 했어?”

“오늘 오후 촬영 들어갔어. 차니가 이렇게 돼서 다들 표정이 무거워.”

“그럼 가봐야지?”

“조금만 있다가 갈게.”

드르르르륵.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강대경과 유혜숙이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강찬은 풀썩 웃음을 터트렸고, 미쉘이 얼른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죄송해요, 아버님, 어머님.”

한국말이다.

“우리 아들 걱정해 주는 게 뭐가 죄송할 일이에요. 괜찮아요. 괜찮아. 앉아요. 커피 한잔 타 줄까?”

“아니에요. 제가. 제가 할게요.”

미쉘이 한사코 두 사람을 앉게 하고 온수기 앞으로 움직였다.

“한국말이 많이 늘었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빠르게 차를 타온 미쉘이 쟁반에 종이컵 네 개를 들고 와 강대경에게 먼저 권했다.

“아버님.”

“아! 예.”

“차니. 아버님께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전해 줘.”

프랑스어로 말을 하자 강대경과 유혜숙이 강찬을 보았다.

“오바하는 거 아니냐?”

“차니!”

“말씀 편하게 하시래요.”

“아휴! 어쩜 마음 씀씀이가 이렇게 예뻐요.”

“어머님. 차 드세요.”

“그래요. 미쉘도 얼른 여기 앉아요. 일하느라고 힘들 텐데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미쉘은 강찬에게 차를 건네고 쟁반을 한쪽에 올려놓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어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쯤 이야기를 나눈 미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가려구요? 저녁 같이 먹고 가요.”

미쉘이 통역을 부탁해서 “오늘은 편하게 계시고, 강찬 씨 나으면 제가 식사 한번 모실게요. 맛있고, 편안한 프랑스 레스토랑을 하나 알아뒀어요.” 했다.

“아버님. 다음에 뵐게요.”

미쉘이 팔을 뻗자, 엄한 아버지가 애교 많은 딸을 안아주는 것처럼 어색한 자세로 강대경이 미쉘과 허그를 나눴다.

“어머님. 다행이에요.”

유혜숙은 친숙하게 미쉘을 안고 등까지 두드려주었다.

미쉘이 나간 다음이다.

“아들, 저 아가씨가 몇 살이라고 그랬지?”

“어?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요? 왜요?”

“아니. 그냥 서글서글하니 너무 예뻐서.”

유혜숙의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모른 척했다.

드르륵.

문이 또 열렸다.

무심코 시선을 돌렸을 때 마른 중년 여인이 먼저 들어오고, 다음으로 근엄하게 생긴 중년 남자, 마지막으로 김미영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생각났다! 김미영의 모친이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았다. 가장 뒤에 선 김미영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초면에 실례합니다. 김관식입니다. 우리 딸 애가 얼마나 우는지 불편하실 걸 알면서도 이리저리 알아봐서 찾아왔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럽게 어색한 인사였다.

“이리와. 그렇게 울고 하더니 얼른 와서 찬이 봐야지.”

“으아앙!”

김미영이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렸다.

안심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한 심정이 그 울음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관식은 씁쓸하게 웃었고, 모친은 불편한 얼굴로 강찬과 김미영을 번갈아 보았다.

“괜찮아. 걱정 많이 했어?”

“응! 방송 보다가 잘못되는 줄 알았어. 흑흑.”

“봐! 괜찮잖아. 이제 그만 울어. 응?”

눈은 퉁퉁 부었고, 코가 빨갰다.

“잠깐 앉으세요.”

“아닙니다. 저 녀석이 학원도 못 가고 저렇게 울고 있어서 아비라는 사람이 무례한 짓을 했습니다. 그저 딸자식 키우다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식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지요.”

강대경과 김관식의 앞에서 김미영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얼굴이었다.

“많이 다치진 않았니?”

“예.”

김관식이 강찬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서 봤다. 아버님께서 소개해 주셨다는 보도는 봤다만, 나라를 위한 일을 하다 다친 거니까 너무 억울하거나 서운해하지는 마라.”

“예.”

그야말로 근엄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김미영이 강대경과 유혜숙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그래. 우리 찬이를 이렇게 걱정해줘서 고맙다.”

김미영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럴 게 아니라 차라도 한잔 하시고 가세요.”

김관식은 먼저 김미영을 보고는 답을 했다.

“그럼 잠시 폐를 끼치겠습니다.”

유혜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관식이 매서운 눈으로 김미영의 모친을 보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네요, 미영 엄마. 병문안 오신 건데요. 내가 얼른 할 테니까 앉아 계세요.”

김미영의 모친이 못 이기는 척 김관식의 옆에 앉았다.

“듬직한 아들을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다친 걸 보면 정말 저 녀석이 예쁜 딸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습니다.”

“허허허. 사내 녀석들은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김관식이 공손한 태도로 종이컵을 받았다.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대학은 아무래도 서울에서 다닐까 하고 있습니다.”

김관식이 무슨 소리냐는 투로 김미영과 강찬을 번갈아 보았다. 울고 매달렸을 김미영을 봐서라도 좀 더 공손하게 대하기로 했다.

“서울 대학교 특례입학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기본을 좀 더 쌓고 유학은 추후에 결정할까 싶습니다.”

이놈 봐라?

김관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강찬을 보았는데 그와 동시에 우습게도 김미영 모친의 표정에서 불만이 한 꺼풀 사라졌다.

“앞으로 뭘 해볼 생각이냐?”

“외교관이 돼보고 싶습니다.”

김미영의 옛날 희망이 떠올라서 툭 튀어나온 거다.

“흠.”

김관식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김미영을 슬쩍 보았다.

“이제 좀 안심이 됐니?”

“예.”

“여기 어른들 불편하시다. 이제 일어나야지?”

김미영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쉽게 일어섰다.

“벌써 가시게요?”

“폐를 끼쳤습니다.”

“별말씀을요.”

강대경과 악수를 나눈 김관식이 강찬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미영이 고맙다.”

김미영의 모친이 한결 수그러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나섰다.

“저분이 미영이 아버님인가?”

“나도 처음 봬.”

“참 바르게 사신 분 같네.”

“그렇지? 여보?”

유혜숙이 뱉지 않은 뒷말이 “그런데 엄마는?”이란 말인 것을 강찬과 강대경 모두 알았다.

잠시 후, 유헌우가 간호사와 들어왔다.

강대경, 유혜숙과 인사를 나눈 그가 강찬의 앞에 섰다.

“기분은 어때요?”

“괜찮습니다.”

“찌르르하게 울린 다거나 구토, 그 외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합니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인 유헌우가 몸을 돌렸다.

“저녁 식사 후에 주사약을 좀 강한 걸 쓸 겁니다. 깊게 잠이 들 거고, 지금은 그게 제일 좋습니다. 제가 최대한 신경 쓸 테니 두 분은 저녁 드시고 집에 가시는 게 좋습니다. 아무래도 환자가 푹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강대경과 유혜숙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유헌우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역시!

라노크에게 필적할 만한 구렁이를 꼽으라면 당장은 이 사람밖에 없다.

저녁은 셋이서 보쌈을 시켜 먹었다.

마음이 가라앉은 유혜숙이 간간이 웃었고, 강대경은 여유를 찾은 얼굴이었다.

미쉘 얘기, 김미영 얘기, 그리고 행사장을 TV로 볼 때 자랑스럽고, 걱정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자 저녁 8시쯤 되었다.

드르륵.

간호사가 약을 건네주고 링거줄에 주사를 놓았다.

“보호자 분들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으세요.”

친절한 한 마디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 푹 자. 엄마가 아침에 올게.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아니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강찬을 안는 유혜숙의 뒤에서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나서 5분쯤 지났을 때 문이 열렸다.

석강호였다.

온몸이 불편한 것처럼 링거대를 끌고 뻣뻣한 동작으로 걸었다.

“좀 살아났소?”

강찬은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넌 좀 어떠냐?”

“말도 마쇼. 등짝이 아파서 꼼짝도 하기 힘드우. 내가 원장님께 부모님 좀 가시게 해달라고 부탁했소. 아후!”

의자를 가져다 앉으며 석강호가 인상을 버럭 썼다.

“자! 담배요.”

강찬은 몸을 돌려 침대에서 내려섰다.

“어? 왜요?”

“앉아 있어. 화장실 가는 거야.”

몸을 움직이자 등이고, 허리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강찬은 커피를 탔다.

“내가 탈게요.”

“됐다. 일어선 김에 내가 타 갈게.”

커피를 두 잔 타서 쟁반에 올린 강찬이 링거대를 끌고 침대로 움직였다.

찰칵.

아! 역시 병실에선 봉지 커피와 담배다.

“운이 정말 좋았소. 이글라가 총 셋이었는데 둘을 저격하는 바람에 C4를 먼저 터트렸고, 남은 한 놈도 2층과 1층 사이를 맞췄다고 합디다. 거기에 2층이 먼저 무너져서 방어막이 됐고.”

강찬의 시선을 받은 석강호가 “김 팀장이 낮에 다녀갔소.”라고 하며 연기를 뿜어냈다.

“부모님 계신다고 나중에 다시 들르겠다고 전해 달랍디다. 그나저나 이거 꾸민 놈들 그냥 둘 거요?”

강찬이 피식 웃자 석강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아! 오광택이가 전화 여러 번 했었소. 대장이 전화 안 받는다고 지랄하길래 지금 그럴 사정이 있다고 했고. 그 새끼가 보기보다 정이 있다니까.”

석강호와 둘이 있자 뒤로 밀려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망자는 얼마나 된다던?”

“어? 뉴스에 나왔는데 몰랐소? 사망자는 하나도 없어요. 중상자가 5명인데 생명에 지장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벌써 발표했소. 김 팀장도 그렇게 말하고.”

다행이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내일이라도 김 팀장 만나서 정보 얻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자. 개새끼들, 받은 건 돌려줘야지.”

“그럽시다.”

둘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

다음날 병원에 들른 강대경과 유혜숙이 아쉬운 얼굴로 10시쯤 출근을 했다. 어제 하루를 꼬박 비워서 도저히 안 나갈 수가 없는 사정이었다.

“미안해, 아들.”

그럴 리가?

“괜찮아요. 전 정말 괜찮으니까 편안하게 일 보세요.”

“저녁에 올게.”

“그러세요.”

유혜숙은 앓고 난 사람처럼 핼쑥했지만, 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병실을 나가고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김형정이었다.

석강호까지 불러 셋이 앉았다.

“테러범들의 신원은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지문, 인상착의, 몸에 난 상처나 문신까지 뒤졌는데 중국 쪽 특수팀이란 심증만 있지, 다른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다.

“이글라에도 연번이 모두 지워져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물론 총기도 그렇구요. 현재는 양진우와 허하수가 가장 중심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 아침 둘 다 출국했습니다. 참! 강찬 씨.”

강찬은 종이컵에 피운 담배를 끄며 김형정을 보았다.

“이지연이라고 남산 호텔에 근무하는 아가씨 말입니다.”

강찬은 말없이 김형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늘 오전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됐습니다. 어제 행사로 최종일까지 모두 동원됐던 터라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동향파악 중 확인했고, 현재 영안실에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콰직!

강찬이 종이컵을 움켜쥐자 남았던 커피가 담뱃재와 섞여 시커멓게 흘러나왔다.

“양진우, 그 개새끼! 지금 어디 있나요?”

김형정이 고개를 들어 강찬을 본 다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 뉴욕에 있습니다. 내일부터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소유 주택에 머물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답을 마친 김형정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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