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07화 (10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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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빨리 좀 끝나라.

국제호텔의 503호에 앉은 강찬은 재킷과 타이를 침대 위로 던진 후 셔츠의 목을 풀었다.

“후우! 살 것 같다.”

“푸흐흐. 커피 시킬 건데 뜨거운 거요? 차가운 거요?”

“시원한 걸루 시켜주라.”

“팀장님은요?”

“저도 시원한 거 한 잔 부탁합니다.”

석강호가 룸서비스에 전화를 하는 동안 강찬과 김형정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힘들었나 봅니다.”

“말씀도 마세요.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요.”

강찬이 말을 마칠 때 석강호가 탁자에 와서 담배를 집어 들었다.

찰칵. 찰칵.

“후우. 그래도 무사하게 하루가 넘어간 게 어디요?”

“그건 그렇지.”

공식일정이 모두 끝났고, 각국 담당자들은 모두 방에 들었다. 5층부터 7층까지의 입구를 606 대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느낌은 어떻소?”

“덤덤해.”

강찬이 심정을 표현할 때 ‘딩동’하고 벨이 울렸다.

“룸서비스입니다.”

철컥.

권총을 손에 든 석강호가 벽을 타고 걸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이익.

딱딱하게 굳은 남자 직원이 커피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주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발표는 내일 11시에 있습니다. CNN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참석합니다.”

“원래 계획에는 라노크가 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김형정이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급히 삼키다가 사레가 들린 것처럼 연신 기침을 쏟아냈다.

“대답 좀 천천히 하면 뭐 어떻다고 그러슈. 여깄소.”

석강호가 각 티슈에 손을 뻗어 화장지 두 장을 뽑아주었다.

“어헙! 헙! 무척 진하네요.”

기침을 연신 한 김형정이 붉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원래 발표는 라노크가 하기로 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어요.”

“허흠! 흠! 발표는 흠! 라노크가 하는 게 맞습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발표를 축하하는 의미로 참석하는 겁니다.”

김형정이 강찬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뭐지?

“라노크 대사에게 대통령님의 체면을 세워달라고 말씀 한번 전해 주시겠습니까? 행사는 유라시아철도 설립위원회에서 하는 것이지만,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현장이라 그저 서 있기만 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참석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최소한 관람객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면 싶다는 바람이 생긴 겁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먼저 내쉬었다.

이런 건 정말 아랫사람들이 오바하는 거다.

“난처하신 줄은 압니다. 직접 요청하는 것이 맞는데 라노크 대사가 업무와 관련해서는 강찬 씨를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일 정도로 냉정합니다.”

라노크가 그런 면은 있다.

“비선을 그렇게 바랐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거절하거나 냉정한 표정을 보면 저 사람이 과연 감정이 있나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인가?

강찬은 처음 보았던 라노크의 인상이 생각났다.

“내일 오전에 한번 이야기해 보죠.”

“고맙습니다.”

김형정은 답을 듣고 10분쯤 더 있다가 방을 나갔다.

“대검은 챙겼지?”

“옷장에 여분 하나 뒀소.”

“잘했다.”

교대로 씻은 후에 트윈 침대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프리카에서 얻은 교훈이다.

작전 중에는 잘 수 있을 때는 일단 푹 자고 본다.

살아나고 나면 생각할 시간은 많다.

***

새벽 5시 30분에 잠이 깬 강찬은 가볍게 몸을 풀고 푸시업을 비롯한 몇 가지 맨손운동을 한 후 샤워를 했다.

오늘을 넘어가면 끝이다.

국제호텔 2층의 그랜드볼륨에서 11시.

몽골 작전과 달리 책임자가 아니어서 마음 편한 구석도 있지만, 반대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을 단순히 끼어든 것 같은 갑갑함도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석강호가 탁자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푹 잤소?”

“응. 얼른 씻어라.”

“알았소.”

강찬은 옷을 꺼내 입었다.

세탁도 못 한 옷을 또 입는 거다.

이쯤이야 아프리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석강호가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김형정이 벨을 눌렀다. 석강호가 문을 열었는데 김형정은 낯선 남자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강찬 씨. 대통령 경호실 전대극 실장님이십니다.”

“전대극입니다.”

전대극이 손을 뻗었다.

군살 없는 광대,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장교를 연상케 하는 기름 바른 머리.

“강찬입니다.”

“너무 일찍 찾아왔습니다. 꼭 보고 싶은 것도 있고, 오늘 행사를 앞두고 얼굴을 익혀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모양으로 전대극은 석강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괜찮으면 여기서 아침을 같이 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러시죠. 전 상관없습니다.”

강찬이 말을 하자 김형정이 문을 열고, 고갯짓을 했다.

드르르르르르.

바퀴 달린 기다란 상자를 끌고 들어온 직원이 위를 펼치자 사각 식탁이 완성되었고, 아래에서 토스트와 베이컨, 계란 등이 담긴 접시가 네 개 올라왔다.

커피와 물, 주스도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전대극은 초면임에도 거침없이 식사를 했다.

거절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거짓말처럼 수북하던 접시 네 개가 5분 만에 깨끗해졌다.

“강찬 씨. 담배 하지요?”

“예.”

“다행입니다. 얼른 하나 피우고 가면 되겠습니다.”

김형정이 담배를 꺼냈고, 석강호가 모터로 움직이는 창을 최대한 열었다.

담배를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전대극이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특수여단만 빙빙 돌다가 경호실에 들어왔습니다.”

뜻밖에도 전대극은 담배를 바로 껐다.

“지난번 몽골 작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부의 공식입장은 그런 사실이 없는 거고, 내 개인 입장으론 대한민국 특수대원들을 대표해 감사를 표합니다.”

뻘쭘한 칭찬이라 강찬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내가 부러운 건 프랑스 외인부대 특수팀의 실력이 아니라 강찬 씨의 요구를 받아들인 프랑스 정보국의 정보력과 유연함입니다. 혹시 앞으로 그런 종류로 문제가 생기고, 강찬 씨가 반드시 움직여야 할 일이 있다면 내게 가장 먼저 전화를 부탁합니다.”

김형정은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여기 김형정 팀장이나, 유비캅의 김태진이, 다 나보다 두 기수 아랩니다. 이 사람들이 못 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나서겠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특수팀의 체면을 세워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이기도 합니다.”

강찬이 풀썩 웃음을 터트리자 전대극이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실장님. 담배 안 하시죠?”

“끊은 지 10년쯤 됐소. 아무래도 높은 분을 근접 경호하다 보니 냄새에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담배 피우러 자리를 비우기도 그렇고. 그냥 딱 끊었습니다.”

이 사람 괜찮다.

특히 나이 먹어도 활활 살아있는 눈빛이 좋았다.

“원장이 전화하더니 강찬 씨가 경호상에 원하는 바를 적극 수용해 달라고 하더군요. 원래 내 성격이라면 딱 잘라서 거절했겠지만, 강찬 씨는 받아들였고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하는 모습이 군인이더군. 그것도 야전 생활을 많이 거친. 프랑스는 일찍 알았고, 우리 정보원은 늦게 안 사실이겠지요. 오늘 잘 부탁합니다.”

전대극이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내밀었다.

정신이 쏙 빠질 만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는데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강찬이 편하게 담배 피우라고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던 배려를 갖춘 사람이다.

강찬이 손을 마주 잡은 순간이다.

“자주 봅시다.”

“알겠습니다.”

전대극이 야릇한 미소를 보인 다음, 석강호와 악수를 나눴다.

“김 팀장은 더 있다 올 거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방을 나선 직후였다.

“오랜만에 살아 있는 눈을 봤다. 절대로 프랑스 같은 나라에 뺏기면 안 돼.”

“알겠습니다.”

복도 밖에서 들린 대화에 강찬과 석강호가 풀썩 웃고 말았다.

김형정이 쩔쩔매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푸흐흐흐흐!”

결국, 김형정이 들어서는 순간에 석강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문을 닫은 김형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간이 식탁에 다시 앉았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저 양반, 저래도 대원들이 가장 작전 같이하고 싶어하는 지휘관입니다.”

김형정이 편안한 얼굴로 담뱃불을 붙이면서 말을 이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자료를 받았고, 몽골 작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이후로 몇 번이나 강찬 씨를 만나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김태진 그 친구가 유일하게 반항 못 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복도에서의 대화를 변명하는 것처럼 떠들어서 강찬과 석강호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강찬 씨를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관리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우리도 인재가 나오면 인정하고 키워야 발전이 있다. 그걸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웃음이 터졌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발표회는 외신 기자가 모두 참석합니다. 그랜드볼륨 내부는 경호실이, 외부 2선은 우리 국가정보원 특수팀, 그리고 외곽 및 3선 경비는 606이 맡기로 했습니다.”

업무로 이야기가 돌아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는 밖에서 지원합니다. 강찬 씨는 내빈석에 라노크 대사 옆자리를 지정해 두었고, 석 선생은 내빈석 뒤쪽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개운하게 끝내고 술 한잔 하지요.”

김형정이 방을 나가자 강찬과 석강호는 무기를 챙겼다.

“오늘은 느낌이 어떻소?”

“글쎄. 그냥 좀 갑갑해. 그리고 자꾸 그렇게 물어보지 마라.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로 살아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묻게 되나 보우.”

마지막으로 오른쪽 발목에 대검을 차고, 무전기의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재킷을 입자 이상하게 커다란 한숨이 나왔다.

발표회만 끝나면 된다.

경비 철저하고, 전대극 같은 경호 책임자 있고, 606 특수팀 대기하는 장소다. 아무리 세계의 경제 판도를 바꿀 엄청난 사건이라고 해도 테러를 저지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찬은 석강호가 무기를 챙기는 것을 보았다.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이따 보자.”

“그럽시다.”

강찬은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오전 9시경이었다.

***

라노크의 방은 강찬의 방보다 3배쯤 넓었다.

함께 투숙했던 각국 담당자와 늦은 밤까지 연달아 면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라노크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강찬 씨. 기분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별로입니다. 대사님은 어떠세요?”

“나도 그렇군요. 홍차와 시가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보좌관이 탁자에 홍차를 준비해 주는 동안 라노크가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발표만 남았군요.”

“그렇습니다, 대사님.”

강찬은 마신 홍차잔을 내려놓으며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뻑뻑할 정도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대사님.”

“말씀하세요, 강찬 씨.”

라노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사님은 믿어주실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혹시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해도 오늘만큼은 제 뜻에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라노크만큼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알았습니다.”

잠시 강찬을 바라보던 라노크의 답이었다.

“혹시 표정이 평소와 다른 것이 그것 때문인가요?”

“눈이 좀 번들거렸습니까?”

“나에게 언짢은 일이 있었나 했습니다.”

라노크가 가면 같은 미소로 한 대답이었다.

“전에도 이랬습니다. 적의 매복, 기습,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이 닥칠 때 꼭 이렇게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꼭 맞지는 않더라도 이런 순간에 더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습니다.”

“신기한 일이군요.”

이것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긴 마찬가지다.

“참. 대사님. 오늘 대통령과 국무총리께서 참석할 예정이랍니다. 그래서.”

라노크의 표정이 일순간에 바뀌는 바람에 강찬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문재현과 고건우가 참석하겠다는 것이 이 구렁이를 이렇게까지 놀라게 할 일인가?

“강찬 씨. 지금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참석한다고 했습니까?”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고, 오늘 발표하시기 전에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시길 부탁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후우-우!”

라노크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대사님?”

“내가 이 발표회를 주재하면서 어제 대통령 만찬에 국무총리를 참석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오늘 발표회장에 국무총리만 초대한 것은 한국의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강찬은 라노크의 말뜻을 짐작하지 못했다.

“강찬 씨. 유라시아 철도는 향후 몇백 년간의 세계 경제사를 뒤흔들 일입니다. 만약 프랑스가 이 계획에 빠졌다면 나는 외인부대가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테러를 저질렀을 겁니다.”

이런 비슷한 말을 김형정도 했었다.

“한국은 대통령 유고시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총리가 업무를 볼 수 없으면 다음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권한이 이양됩니다.”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 이민우는 허하수 국회의장과 양진우가 키워내다시피 한 인물입니다. 이번 정권에서 의석수가 부족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대신 넘겨준 장관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C4가 폭발할 경우……?”

“다음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허하수와 우양젼우이 뜻대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였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일 때문에 본국 정보총국에서 은밀하게 정보를 흘려주기까지 했는데.”

기가 막힌 일이다.

“허하수가 국회의장이다 보니 분명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참석할 수밖에 없도록 모종의 조건을 걸었을 겁니다. 당장은 국가정보원 원장과 국무총리의 교체를 주장하던 야권이 입을 다물겠다는 것 정도가 되겠군요. 현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테니까요.”

강찬은 이해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대사님. 이 일이 잘못되면 허하수와 양진우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할까요?”

“우양젼우는 미국 국적자입니다. 거기에 중국과 일본이 허하수와 우양젼우를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는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강찬 씨가 몽골 작전을 지휘한 것을 알지만, 대놓고 항의할 증거가 전혀 없는 것과 같지요.”

라노크의 눈 끝에 당황한 기색이 살짝 달려 있었다.

“강찬 씨가 오늘 이 회담을 무조건 저지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어쩌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든다면 과연 이 회담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어떨까?

“한국으로 장소를 정한 것은 한국이 무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두 번째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뜻이 같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국무총리 고건우라면 대통령의 유고 시에도 유라시아철도를 지지할 테니까요.”

강찬은 긴 숨을 털어낸 다음 담배를 들고 불을 붙였다.

“지금 취소하긴 어렵습니다.”

라노크가 굳은 얼굴로 덧붙인 말이었다.

“지금 해주신 말씀을 경호실이나 국가정보원에 전해도 될까요?”

“상관없습니다. 회의가 진행되기 전에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오히려 좋지요.”

벌써 9시 40분이다.

라노크의 말에 강찬은 바로 무전기를 눌렀다.

치잇. “김형정 팀장님. 강찬입니다.”

강찬이 담배를 끄는 순간에 답이 들어왔다.

치잇. “김형정입니다.”

치잇. “급한 일입니다. 서둘러서 만나는 게 좋습니다. 지금 라노크 대사님 방에 있습니다.”

치잇. “바로 가겠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치잇. “더 서둘러 주세요. 1분이라도 줄여야 합니다.”

김형정이 알겠다는 답을 하고나자 강찬은 다시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치잇. “전 실장님. 강찬입니다. 무전 들으셨을 텐데 같이 뵐 수 있겠습니까?”

치잇. “알았습니다.”

강찬이 소매의 마이크를 내려놓자 라노크가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됩니다.”라며 뜻을 전했다.

***

라노크와 정식으로 인사를 마친 전대극과 김형정은 강찬의 설명을 듣고 낯빛을 굳혔다.

라노크가 직접 앉은 자리이고, 중간에 통역을 하며 그의 의견을 더하자,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두 분의 참석을 취소하실 수 있나요?”

“이런 이유로는 곤란합니다. 아마 대사도 참석한다고 할 겁니다. 어떤 행사든 정황만 가지고 참석하지 않으면 VIP가 참석할 수 있는 행사는 없습니다.”

강찬이 말을 전하자 라노크도 그 부분에서는 같은 생각임을 밝혔다.

“일단 우린 일어서겠습니다. 기자들을 뒤로 좀 더 물리고 공간을 확보한 다음, 다른 방법이 없나를 살피겠습니다. 이미 10시가 넘어서 이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나머지 사항들은 무전으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대극과 김형정이 먼저 나가자 라노크가 가면 같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이 정도만 해도 반은 막은 것과 같습니다, 강찬 씨.”

강찬이 피식 웃자 라노크가 홍차를 더 따라주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몽골에서 한 대 맞았으니 중국이 독하게 달려들 것입니다. 이번엔 우리가 막아봐야지요.”

“대사님은 두렵지 않으십니까?”

진심으로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의 삶이 이렇습니다. 이런 공포와 긴장을 이기지 못해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지요. 죽음을 두려워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노크가 반쯤 남은 시가를 재떨이에 꾹 눌렀다.

“전투에 나가기 전에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강찬의 답을 들은 라노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나는 전투에 나서는 것입니다, 강찬 씨.”

그의 말에 강찬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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