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05화 (10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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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럴 필요가 있을까.

강찬이 라노크의 집무실에 들어선 것은 오전 9시 40분경이었다.

“대사님,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오히려 더 좋지요. 기분은 어떻습니까?”

책상에서 일어선 라노크가 중간에서 탁자를 가리켰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차를 한잔 할까요?”

말을 마친 라노크는 눈짓으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강찬을 안내해 탁자에 앉았다.

쪼르륵.

은으로 된 주전자를 기울이자 홍차 향이 강하게 풍겼다. 강찬은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신 뒤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시가를 하나 피워야겠습니다. 담배 하겠습니까?”

“저는 가져온 게 있습니다.”

강찬이 담배를 꺼내자 라노크가 시가의 끝을 절단기로 자른 후, 입에 물었다.

“오늘 새벽에서야 C4의 반입이 실제로 확인되었고, 다음으로 행사장에 테러를 시도할 거란 첩보가 세 곳 이상에서 들어왔습니다. 아직 테러의 핵심세력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렴 폭죽놀이를 위해 C4를 구입하지는 않았을 테니 테러 시도는 당연한 말인 거다.

“굉장히 어려운 행사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강찬 씨. 행사에 제가 전면에 나서게 됐습니다. 강찬 씨가 TV에 얼굴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되고, 다음으로 만약 내일까지의 행사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라노크가 강찬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느의 안전은 강찬 씨가 맡아주어야 합니다.”

이럴 이유가 있나?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사님. 짐작하시는 게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는 게 낫습니다. 경호는 잘 몰라도, 알고 대비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강찬 씨. 다만, 정보국의 모임이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아서 이런 자리 자체가 갖는 위험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구렁이가 조른다고 더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아서 강찬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쯧!

안느 이야기에 팔려서 TV에 얼굴이 나오는 일은 따지지도 못했다.

언제쯤 이 구렁이를 말로 한번 이겨볼까?

똑똑똑.

강찬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보좌관이 들어서서 “대사님, 시간 됐습니다.”하는 말을 전했다.

“옆방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강찬 씨가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죠.”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좌관을 따라 옆방으로 걸었다.

“봉쥬르, 무슈 강.”

루이와 요원 한 명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 이 옷으로 갈아입고, 무기는 원하는 대로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지.”

루이와 요원이 나가자 강찬은 우선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놓인 무기들을 살폈다.

‘뭘 고르라는 거야?’

권총은 베레타 93R과 글록의 두 종류뿐이다.

강찬은 허리띠에 끼우는 케이스를 이용해 오른쪽 허리에 한 개, 그리고 왼쪽 발목에 한 개, 모두 두 개의 글록19을 챙겼고, 다음으로 탄창 4개를 탄창 집을 이용해 등 쪽 벨트에 걸었다.

대검은 아예 준비돼 있지도 않았다.

‘정보전이라 권총으로 바로 끝난다는 건가?’

강찬이 피식 웃으며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던 루이가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젠장! 주려면 재킷을 입기 전에 주지.

강찬은 재킷을 벗고 왼쪽 허리에 무전기를 건 다음 소매 마이크와 이어폰을 걸고서 다시 재킷을 입었다.

후우! 준비가 끝났다.

“행사장 안에는 무슈 강과 저만 들어갑니다. 모든 정보국의 요원을 두 명으로 제한했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같은 행사는 많은 것보다 적은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었다.

강찬이 집무실로 가려는 순간, 라노크가 걸어 나왔다.

“준비는 됐습니까?”

“가시면 됩니다.”

라노크가 서양 가면 같은 웃음을 오랜만에 보이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대사관 마당에는 이미 엄청난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연달아 셔터 누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는데 라노크는 손을 들어 두어 번 상체를 좌우로 돌린 다음 바로 차에 올랐다.

강찬이 라노크의 옆자리에 탔고, 루이는 앞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승합차가 뒤를 따랐다.

“도착하면 요원 10명이 강찬 씨를 찾을 겁니다. 오늘 코드명은 역시 갓 오브 블랙필드로 할 예정입니다. 괜찮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강찬 씨.”

강찬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정보국의 모임은 철부지 소년들의 모임과 비슷합니다. 기선을 제압당하면 정보 담당자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당장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지 강찬 씨라면 잘 알 거라고 믿습니다.”

강찬이 풀썩 웃으며 앞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뒤를 힐끔거리던 루이가 얼른 시선을 가져갔다.

***

“지금 각국의 유라시아철도 담당자들이 속속 발표회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각자 대사관에서 머물거나 혹은 새벽에 도착한 각국 담당자들은 우리나라 시간 오전 12시에 있을 첫 번째 모임을 위해, 이곳 국제 빌딩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 지금 러시아 담당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보. 나 이상하게 긴장돼.”

“그럴 게 뭐 있어? 역사적인 일이긴 하지만 긴장하기보다는 그냥 즐기는 마음으로 보면 되는 거야.”

의자에 앉은 강대경과 유혜숙의 주변으로 직원들이 의자를 가져다 앉거나, 그 주위에 쭉 둘러서서 함께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영업사원들 거의 전부가 오전 약속이 취소되거나 없어서 아예 오늘은 다 같이 TV를 시청하기로 했는데 심지어 재단 여직원이 함께 있을 정도로 업무가 한산했다.

“말씀드린 순간, 지금은 프랑스 대사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유라시아 철도의 핵심 인물로 설립위원장, 그리고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은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바로 프랑스 대사입니다.”

화면에 승용차가 멈춰 서고 오른쪽 문이 열리며 라노크가 내린 직후였다.

“어! 여보! 저기 우리 찬이 아니야!”

“어어? 정말!”

화면이 라노크를 가까이 당길 때 그가 강찬을 기다리는 듯 주변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잡혔다.

***

“와아-아!”

신묵고등학교가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개학과 동시에 벌어지는 행사라 수업을 대신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참이다.

가뜩이나 강찬이 프랑스 국립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에 프랑스 대사의 입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학생들이 강찬을 보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댄 거다.

“라노크 대사가 지금 동양인과 함께 입장한 것 같은데요, 아직 신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반 학생이에요!”

남학생 하나가 악을 쓰자 “맞아요!” 하는 외침이 합창처럼 터져 나왔고, 흥분을 참지 못해 책상을 두드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미영은 꼭 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숨이 막힐 것처럼 멋있는 모습.

김미영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가 홀린 것처럼 TV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몸에 꼭 맞는 양복.

라노크와 서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

거기에 프랑스 대사이고, 유라시아철도의 설립위원장 겸 초대운용위원장인 라노크가 기다렸다가 함께 입장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뜨거웠다.

“와아아-아!”

학생들이 또 한 번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프랑스 인이 내리는 것을 본 강찬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잡혔기 때문이다.

피식!

“와아!”

“저기서도 저렇게 웃어!”

아이들이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보며 소리친 최초의 순간이었다.

가장 뒤쪽에 앉은 이호준은 김미영만큼이나 붉게 상기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저런 남자가 돼 보고 싶어서였다.

***

“어머! 어머! 어머! 우리 대표님, 너무 멋있어!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 지른 코디 직원의 말이 아니어도 디아이 직원 전체가 넋을 잃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눅들만도 한데 마지막 순간에 피식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여직원들과 연습생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했다.

미쉘은 가슴에 가득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은소연은 그런 미쉘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꼭 쥔 두 손에 시선을 떨궜다.

***

국제빌딩을 향해 들어가는 순간, 라노크가 강찬을 향해 고개를 가져왔다.

“긴장 안 됩니까?”

“그래야 되나요?”

라노크가 ‘역시’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 다음 앞을 향해 걸었다.

‘대회의실’이란 푯말을 따라 걷자 운동장 규모의 널따란 공간이 나왔다.

원형 탁자가 놓였고, 입구에서 안내원이 라노크의 신분을 확인하고 자리로 안내했다.

단상과 가장 가까운 자리다.

원형 탁자 당 4명의 담당자와 각기 2명의 수행원이 앉기 때문에 모두 12명이 자리할 만큼 커다란 탁자였다.

“강찬 씨!”

탁자에 있던 루드비히와 반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찬과 볼 키스를 나눴다. 바로 옆의 테이블에서도 두 명이 건너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바람에 시선이 일제히 강찬에게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전기 주파수를 별도로 맞추겠습니다.”

루이가 부하 직원처럼 다가와 강찬의 무전기 주파수를 맞춰 주었다.

“이 교신은 모두 12명만 듣습니다. 채널을 변경하시려면 이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앉은 테이블과 건너편의 요원들을 둘러보았다.

덩치가 큰 놈부터 눈매가 매섭고 날카로운 놈, 그리고 날렵하게 생긴 놈까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중 호텔에서 마주친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드는 요원은 없었다.

‘이래서 라노크가 나를 데리고 오려는 거였구나.’

강찬은 넓은 홀을 둘러보며 라노크의 말을 이해했다.

강찬을 따르겠다는 11명과는 달리 테이블별로 하나둘은 섬뜩한 느낌을 주는 요원들이 있었다.

타고난 재능에 수많은 실전을 거쳐야 가능한 눈빛들이었다.

아무리 타고난 놈이라도 21살부터 10년가량 현장에서 처절한 전투에서 실전을 거듭하다 보면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시 거기서 요원으로 나와 경험을 쌓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거기에 30이 넘으면 감각과 힘이 떨어진다.

강찬은 라노크가 왜 그토록 프랑스 귀화를 권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덜컥. 덜컥.

출입구 두 곳이 닫히고, 유니폼을 착용한 직원들이 샐러드, 스테이크의 두 가지 접시를 참석자들 앞에 놓아주었다.

원형 테이블만 모두 8개, 그렇다면 모인 사람들은 전부 96명이란 말이 된다.

그럼에도 실내는 조용했다.

다른 테이블에서 강찬을 힐끔거리며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상관할 건 없었다.

음식이 한창 준비될 때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노크입니다.”

무대 앞에 걸려 있던 마이크를 든 라노크가 입을 열었다.

의자에 걸려있는 헤드셋을 귀에 가져가는 이들이 서넛 있었는데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그대로 듣고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위해 모이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유라시아철도의 원만한 설립과 운영을 위한 협조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1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앉았음에도 간혹 기침 소리만 들릴 뿐, 나머지는 음식을 내려놓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영감들이 눈매 더럽게 매섭네.’

강찬이 주변을 둘러보며 느낀 느낌이었다.

주름 많고 살이 쪘으며, 두툼한 안경을 쓴 노인네까지 눈빛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번들거렸다.

강찬은 대각선으로 두 테이블 건너에 있는 날렵하게 생긴 세 명의 사내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하얀 피부, 갸름한 얼굴에 단단한 체형.

분명 러시아 쪽인 느낌인데 세 사람의 인상이 한결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꼭 아프리카에 용병을 지원한 후, 1차 훈련을 통해 탈락자를 떨어내고 모여 앉은 것과 같은 분위기.

양복 입고, 스테이크를 앞에 둔 것만 달랐지, 어디선가 다예루와 제라르 같은 놈이 툭 튀어나와서 눈알을 부라릴 것 같은 분위기는 정말 똑같았다.

“일정표에 나눠드린 것과 같이 대회의실로는 오후 2시에 이동하겠습니다.”

라노크가 주변을 둘러본 다음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그럼 다 같이 유라시아철도의 설립을 위하여 건배합시다.”

라노크를 따라 모두가 앞에 놓은 와인잔을 들었다.

“유니콘을 위해.”

“유니콘을 위해.”

이어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루드비히와 반트가 라노크에게 교대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중간중간에 마치 농담처럼 ‘영감’이나 ‘보물’ 등의 말이 섞여 있는 걸로 봐서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용어인 듯 보였다.

강찬은 우선 식사를 말끔하게 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지겨웠다.

전장과 다르게 저 밑에 은밀하게 깔린 신경 거슬리는 긴장감, 마치 라노크의 용병처럼 자리에 앉아있는 모양새, 그리고 이런 자리가 내일까지 지속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

골프장에서 있었던 경호도 숨 막혔지만, 알게 모르게 조여오는 상대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몽골 작전을 서너 번 더하라면 정말 잘할 것 같아서 강찬은 혼자 풀썩 웃고 말았다.

지금쯤 석강호는 어떻게 있을까?

무전에 대고 ‘씨발.’ 이란 욕만 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강찬에게 잘하는 것을 보고 어쭙잖게 달려들던 놈치고 두들겨 맞지 않은 놈들은 하나도 없다.

지루하니까 별생각이 다 든다.

식사를 끝낸 강찬이 간간이 반트가 건넨 농담과 건너편 탁자에서 날아든 농담에 작게 미소를 지을 때였다.

“강찬 씨. 러시아 정보국을 조심하세요. 지금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강찬 씨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중의 절반은 몽골 작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라노크가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며 말을 건넸다.

“입술로 말을 읽어내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대개 말을 할 때는 습관처럼 입술을 가립니다.”

참 불편하게들 산다.

강찬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라노크!“

가장 멀리 있는 테이블에서 뚱뚱한 영감이 오른손을 반쯤 들고 라노크를 불렀다.

“노인이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군요.”

라노크가 냅킨으로 입을 닦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이가 강찬을 보며 따라 일어섰다.

확 그냥 앉아 있어버려?

아서라.

여기서 라노크 망신줘서 이로울 게 뭐 있겠나.

강찬은 말없이 루이를 따라 라노크의 옆을 걸었다.

러시아 요원들은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대놓고 강찬을 향한 순간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장쟈크.”

라노크가 다가가자 요원 하나가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강찬은 영감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가 막혔다.

철도설립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이 되어서도 자신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공치사를 떠들고 있었다.

염병. 초등학생들이 모인 것도 아니고.

프랑스, 러시아, 독일, 스위스.

세계의 가장 앞에 선 나라들의 정보 담당자가 모여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라노크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특유의 서양 가면 같은 웃음으로 쟝자크라는 영감을 달랬는데 그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작 라노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지?

“그럼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걸로 하지요.”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쟈크와 악수를 교환하고 걸음을 옮겼다.

웃기기는 하지만, 정작 분위기는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나라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렸기 때문이다.

옆 건물에서는 공식적인 얼굴마담들이 정해진 틀을 가지고 합의서를 작성한다면 지금 이 자리는 비공식적으로 모여앉아 실질적인 결정을 하는 자리다.

세상에는 확실히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일들이 많다.

“라노크.”

라노크가 걸음을 옮겼을 때 강찬이 눈여겨보았던 러시아인이 손을 들었다.

“바실리(ВАСИЛИЙ) !”

라노크가 테이블로 걸어가 ‘바실리’라는 사내와도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철도가 확정됐다고 나를 너무 멀리하면 곤란해.”

능숙한 프랑스말이다.

“바실리를 무시할 수야 있나? 다음대 운영위원장에게 잘 보여야 살아서 그 자리를 물러날 테니까.”

“흥. 날카로운 혀는 그대로구만. 저 친구가 자네의 비밀병기라는 그 친구인가?”

“바실리의 관심을 끌었다면 영광인데? 인사하지. 이 라노크가 친구로 인정한 강찬 씨. 강찬 씨, 이 친구는 러시아의 악랄한 KGB 출신 바실리입니다.”

바실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손을 뻗었다.

“바실리요.”

“강찬입니다.”

꽉.

한번 강하게 잡았다 놓은 것이 끝이다.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다.

거기까지였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루이는 긴장을 살짝 푸는 얼굴이었다.

대충 분위기는 알았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우 2시간밖에 안 지난 이 지겨운 일정이 내일 저녁까지 꼬박 남았다는 것과 그 안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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