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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104화 (10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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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럴 필요가 있을까.

지배인이 새로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기분이 한결 가라앉았다.

강찬은 잠시 미뤄뒀던 전화를 걸었다.

[“강찬 씨.”]

김형정은 다급한 음성이었다.

[“확인해 봤는데 아직 잡히는 게 없습니다. 현재 국정원 공항분실에서 수상한 입국자는 바로 출국시키고 있고, 경찰청 외사과에서 요시찰 동향 보고도 따로 받았는데 걸리는 부분은 아직 없습니다. 정보가 믿을만한 겁니까?”]

강찬은 라노크와의 통화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유럽의 동향 중 3개는 저희도 파악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C4가 들어온 정황, 그리고 밀입국의 정황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내일 경호인력에 석강호를 포함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근접 경호로 무기 소지하구요, 그리고 경호 계획서를 가지고 계시면 그것도 좀 보고 싶은데요.”

[“대통령 경호실 소관이라 제가 결정하긴 어렵고, 원장님과 통화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형정과 전화를 끊은 강찬은 창밖을 향해 몸을 기댔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어쩌면 내일 행사로 양진우를 꽁꽁 묶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렸다.

[“강찬 씨. 원장님께서 강찬 씨가 원하는 대로 지원하라는 허가가 내렸습니다. 마침 요원자격이 있는 분이라 다행이고, 석강호 선생이 원하는 권총이 따로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조치하겠습니다.”]

“베레타 m9과 글록 19, 이렇게 두 정, 탄창은 4개, 무전기. 그 정도면 될 겁니다.”

[“그게 다 석 선생이 사용할 겁니까?”]

“예. 저는 라노크가 준비해 준다니까 그쪽에서 해결할게요. 혹시 몰라서 그런데 대검 두 자루만 따로 준비해 주세요. 발목에 걸었으면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경호 계획은 삼성동 사무실에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남산 호텔이니까 바로 출발할게요. 괜찮으세요?”

[“그럼요. 석 선생께는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본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뭔 놈의 인생이 무기를 손에서 놓을 날이 없을까?

그나저나 조직 검사 의뢰를 정말 미국에 한 게 맞는 건가?

강찬은 우선 현관으로 나가 택시를 탔고, 출발과 동시에 유헌우에게 전화를 넣었다.

[“강찬 씨. 모임에 나와 있어서 병원에 가려면 1시간쯤 걸려요. 많이 다친 겁니까?”]

“원장님. 그런 건 아니고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한 거예요.”

[“다치진 않은 거구요?”]

어쩐지 실망한 말투 같아서 풀썩 웃음이 나왔다.

“저, 지난번에 조직 검사 한 거 있잖아요. 그거 혹시 미국에 검사 의뢰를 하신 건가요?”

[“예. 워싱턴에 있는 쌤플턴 연구소에 보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여서 그곳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신뢰할 수 있지요.]

염병!

이렇게 되면 라노크가 놀라서 지껄인 게 맞는다는 말이 된다.

[“왜요? 무슨 일 때문인데요?”]

“혹시 엉뚱한데 보낸 건 아닌가 궁금해서요.”

[“비용이 비싸게 먹혀서 그렇지 믿을 만한 곳입니다.”]

유헌우가 풀썩 웃으며 답을 했다.

“그냥 핑곗김에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드린 거예요.”

몇 마디 더 떠든 후에 전화를 끊었다.

한남대교를 지나자 길이 막혀서 택시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여보세요?”

[“나요. 뭔 일이요? 김 팀장이 꼭 좀 와달라고 하던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소.”]

“지금 말하긴 그렇고 만나서 얘기하자. 올 수는 있냐?”

[“지금 삼성동에 가는 길이요. 저녁은 어떡했소?”]

“안 먹었다.”

“잘했수. 와서 같이 먹읍시다.”

전화를 끊고 20분이 더 지나서야 삼성동에 도착했다.

5층으로 올라가자 김형정이 문을 열어주었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내용을 설명 들었는지 석강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왔소?”하며 강찬을 맞았다.

우선 비빔밥을 세 개 시켜 놓고, 낮에 라노크를 만난 이야기부터 샤흐트 브니므, 이지연까지의 일을 쭉 들려주었는데 이야기가 끝나자 밥이 왔다.

여긴 배달 하나는 정말 빠르다.

식사는 5분 만에 끝났다.

김형정이 음료수 석 잔을 가지고 와서 탁자에 놓아 주었다.

“우선 일정표를 먼저 봅시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책상으로 간 김형정이 서류와 도면을 잔뜩 들어서 탁자로 가져왔다.

“여기, 석 선생은 이걸 보시고. 그중에서 V자로 표시된 일정이 대통령 참석 일정입니다. 발표는 공동명의이기 때문에 참가자 전체가 모여선 가운데 라노크 대사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정을 쭉 훑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빡빡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시간 사이에 각국 담당자들끼리 개별 미팅을 하는 시간입니다. 즉석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경호에 특히 신경을 쓰이는 부분입니다.”

“정보국 미팅은 경호를 알아서 한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미칠 노릇입니다. 국제빌딩과 국제호텔이 같은 통로를 쓰는데 무장한 요원이 100명 넘게 옆 건물에 있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잠시 말이 있었는데 시일이 워낙 촉박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강해서 다들 이해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어쩌면 골치 아픈 싸움을 한국에 떠넘긴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강찬은 되려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팀장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정보국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각국의 정보 요원들이 총을 소지한 상황이니까 최악을 가정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경우 메뉴얼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요.”

“흠. 우선 경호실에서 요인 경호, 국가정보원에서 1차 저지, 다음은 606대원 투입의 단계를 거칩니다.”

“C4의 반입 가능성은요?”

김형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탁자에 놓인 도면을 먼저 손바닥으로 고르게 펼쳤다.

“여기 있는 환풍구, 이음새, 그리고 출입문 전체에 점검표지를 붙여놓았습니다. 현재 606대원이 배치되었고, 행사시간까지 계속 대기할 예정이라 건물에 설치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행사 중간에 반입한다는 뜻이겠네요.”

“그렇다고 봐야 하는데 내일부터 이틀간은 주방에도 대원들이 배치돼 감시하고, 모든 행사인원은 철저하게 검색대를 통과한 후, 탐지견을 거치기 때문에 반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건물 전체를 통제하는 건 아니죠?”

“그건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행사가 이렇게 급하게 잡히지만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나눠서 준비하지도 않았을 거고, 절대로 국제빌딩이나 국제호텔을 사용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강찬이 왜 그러냐는 뜻으로 지도에서 시선을 들어 김형정을 보았다.

“건물 내에 다른 이용객을 통제할 방법이 없거든요. 한 층이야 어떡해서든 막는다고 치더라도 그 외는 통제가 불가능하다시피 하니까요. 거기다.”

말을 하다말고 김형정은 한숨을 먼저 푹 내쉬었다.

“취재진이 상상 이상입니다. 지금 프레스센터에 공식으로 취재협조를 요청한 곳만 90개 언론사에 400명 가까이 됩니다. 그 외에도 예능프로그램까지 어떻게 해서든 취재에 끼어들려고 온갖 로비를 하는 통에 아주 죽을 맛입니다.”

“제가 너무 몰라서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였나 보네요.”

빈정거리거나 후회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강찬 씨.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김형정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담배를 집어 들었다.

“원래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대한민국이 러시아, 프랑스와 더불어 유라시아철도의 한 축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일입니다. 때문에 정부도 모든 불안한 면을 감안하고라도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구요.”

담배에 불을 붙인 김형정이 강찬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원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몽골 작전에 이어 이런 일에까지 강찬 씨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구요. 제 심정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할 기회를 잡은 것만도 강찬 씨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나라를 빼놓고 발표회를 한다면, 저는 또 특수팀을 끌고 달려갔을 겁니다.”

강찬이 피식 웃자 석강호와 김형정도 함께 웃었다.

“후우! 그럼 팀장님, 우선 하나씩 정리 하시죠.”

“어떻게요?”

강찬은 떠오른 것들을 우선 털어놓았다.

“라노크와 다섯 나라의 요원들을 제가 통제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정보 요원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면 우선 제 선에서 진압하고, 안 되면 요청을 하겠습니다. 이때 작전권은 제게 있는 걸로 하지요.”

“그거야 다른 정보국 요원들까지 뒤엉겨 있을 테니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김형정이 담배를 끄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 적의 침투나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의 작전권이 문제인데 이때도 외국 정보 요원들이 문제가 됩니다. 한 분을 정해 주셔야 그분의 통제를 제가 각국 정보 요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내일 오전 10시 전에 원장님께 의논 드려서 답을 드리지요. 아마 원장님께서 경호 실장님과 별도로 논의하셔서 답을 주실 겁니다.”

“이 정도면 되겠는데요? 대신 정보 요원의 총격전이 벌어질 경우, 외부 병력의 투입은 반드시 제 결정에 따라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강찬 씨.”

김형정이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다.

“제가 당하면, 여기 석강호, 다음은 프랑스 요원 중 루이로 작전권을 인정하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더라도, 전체적인 개요를 머리에 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개운했다.

얼추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중국 측이 우리 정부에 은근슬쩍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난 테러 사건을 주도했던 자들이 마지막 발악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어쩐지 중국이 마지막까지 테러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테러가 실패하면 외교적인 채널로 사과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들 테니까요.”

강찬은 이지연의 언니 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당부를 마치고 석강호와 함께 김형정의 사무실을 나왔다.

“차 한잔 해도 되우?”

“그럼 그냥 가려고 그랬냐?”

히죽 웃는 석강호와 둘이 사거리의 커피전문점으로 움직였다.

여기서부터 다른 얘기다.

강찬은 김형정에게 하지 않았던 미국정보국의 이야기를 석강호에게 들려주었다.

“짐작 가는 게 있소?”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너랑 내가 이 몸뚱이로 다시 태어난 것과 관련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에효. 그거야 닥치면 다 알게 될 일이니까 그렇게 넘겨 둡시다. 당장 내일부터가 문제 아니오?”

“수업은 어떻게 할래?”

“대장 오기 전에 이미 얘기 끝냈소. 김 팀장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그런 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합디다. TV에 얼굴 나올까 봐 그게 걱정이지 다른 건 없소.”

말을 마친 석강호가 또 얼음을 버적버적 깨물어 먹었다.

“쯧! 전투는 몰라도 경호는 아무래도 우리 전문이 아니라서 좀 찜찜하다.”

“그렇긴 하우. 아!”

“왜?”

“얼음 깨물다가 혀 씹었소. 와아!”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이게 얼음을 먹다 보면 혀가 마비되는 건가?”

“적당히 해라.”

몇 번 혀를 입 밖으로 꺼냈던 석강호가 이번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병원엘 한 번 가봐야 하나 생각 중이오.”

석강호가 병원에?

강찬의 시선을 받은 석강호가 툴툴 거리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상하게 먹을 걸 밝히고 있는 거요. 거기에 자꾸 열이 뻗친 것처럼 몸이 더워지기도 하고. 처음엔 여름이라 그런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닌 거 같아서 병원에 가볼까 싶소.”

“아닌 게 아니라 너 요즘 먹는 것 좀 밝혔지.”

“이러고 집에 가서 빵을 두세 개씩 먹고 자우.”

“운동 시작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런가?”

척 보기에 석강호는 건강해 보여서 별달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일 11시부터 공식일정이오. 난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도착해서 봅시다. 감은 어떻소?”

“아직 아무런 느낌은 없어.”

“그럼 잘 끝나겠지요.”

강찬도 그렇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담배 하나 피우고 들어가자.”

강찬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덤덤함에 찜찜한 무언가가 묻은 느낌이었는데 이런 건 닥쳐서 헤쳐나가야 할 일이지 다른 방법은 없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얼추 11시였다.

강대경은 이미 잠이 들었고, 재단 출근 때문인지 유혜숙이 억지로 잠을 이겨내는 얼굴로 강찬을 맞았다.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막 자려던 참이야. 아들 온 거 보니까 안심하고 푹 잘 수 있겠다. 내일 행사에 가는 거 맞지?”

“예. 얼른 주무세요.”

“그래, 아들. 잘자.”

강찬은 간단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

새벽에 일어난 강찬은 평소와 다름없이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제는 새벽 공기에 찬 기운이 살짝 섞여 있었다.

“후우-우!”

숨을 조절한 후에 아파트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때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았다.

그렇다고 고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과 비할 바는 아니어서 마라톤을 한번 해볼까 하는 욕심이 들 정도였다.

아파트를 크게 돌아 입구에 도착하면 대략 12㎞쯤 된다. 11㎞는 조절해서 달리고, 나머지 1㎞는 전력질주를 하는데 이때의 고통은 컨디션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벤치 앞에서 숨을 고른 강찬은 이어서 가벼운 맨손 운동으로 땀을 식힌 다음,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직 7시가 되기 전인데도 교복을 입은 학생과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들! 운동 갔다 왔어?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지.”

“괜찮아요. 이걸 거르면 오히려 몸이 무거운 걸요.”

유혜숙의 말대로 운동을 거르면 1년 중 운동할 수 있는 날이 30일이 채 안 될 거다. 처음이라면 짜증 냈을 저런 말들이 지금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셋이서 아침을 먹었다.

“그럼 오늘은 호텔에서 함께 지내는 거지?”

“예. 내일 공식 발표 끝나고 프랑스 대사관에 들렀다가 집에 올 테니까 많이 늦을 거 같아요.”

“이번 전 일정을 TV에서 생중계한다더라. 무슨 월드컵 경기처럼 다들 모여서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당장 오늘 저녁 만찬에서 대통령 환영 연설에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걸 기대해요?”

오늘따라 콩나물국이 입에 맞아서 유혜숙이 반가운 얼굴로 국을 더 가져다주었다.

“이 일로 우리나라가 상상도 못 하던 부자 나라가 된다는데 당연히 관심이 가지.”

“아버지는 어떠세요?”

“글쎄. 아버진 다른 건 모르겠고, 엄마 건강하고 너 이렇게 든든하게 옆에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당신은 어때?”

“나? 나도 당신이랑 똑같지.”

이젠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익숙하다.

강찬은 빨리 행사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 식사를 마쳤다.

유혜숙이 당분간 매일 출근하게 되면서 아침 식사가 이전보다 20분쯤 빨라졌다. 아무래도 화장하는 시간이 그만큼 더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5분쯤은 늦게 출발한다.

“무리하지 말고, 좋은 경험을 쌓고 오면 돼. 알았지?”

“아들! 조심해.”

“예. 그럴게요.”

아침 배웅을 마친 강찬은 느긋하게 거실에 앉았다.

9시 10분에 차가 온다고 했으니 아직 40분쯤 여유가 있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서둘 필요가 없는 시간이다.

예전에도 이랬다.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은 씻고 먹는 것 외에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늘 유언을 쓰는 놈.

개인 소지품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놈.

요란스럽게, 혹은 경건하게 신께 기도하는 놈.

그런 놈들 틈에서 강찬은 그저 편안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늘 다예루나 제라르가 커피를 가져오곤 했다.

강찬은 무심코 옆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아침마다 강대경이 보던 뉴스 전문 채널을 볼까 해서였다.

찰칵.

버튼을 누르자 TV의 아래에 파란색 LED 등이 빛을 밝히며 화면이 시작되었다.

“오늘 역사적인 유라시아철도 발표를 위한 각국의 대표들이 도착할 국제 호텔 앞입니다. 현재 군 특수팀이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잠시 후면 이리로 각국의 대표단이 모여 합의서를 체결한 뒤 내일 발표하게 됩니다.”

“네. 허민영 기자.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평일이고 출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환영인파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모두 이번 행사를 환영하고, 유라시아철도에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잠시 인터뷰 보시겠습니다.”

화면이 툭 바뀌었다.

- 윤소라 (대학생).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 10년 뒤면 제가 37살인데요! 그때 1인당 국민소득이 20만 불시대가 열린다잖아요!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발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대한민국 만세! 화이팅!”

- 정현태 (사업).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꼭 돈이 많이 생겨서가 아니라, 이런 역사적인 일의 중심에 우리나가 있는 거잖습니까. 중국과 일본이 눈치 보는 나라, 미국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통을 맡겨야 하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네! 현재 시각 오전 8시 50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유라시아철도 발표를 맞는 각국의 표정이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주상인기자.”

“주상인입니다.”

“내일 중대발표를 앞두고 외국의 반응은 어떤가요?”

“네. 우선 유럽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흥분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 중국의 반응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는 분위기.”

달칵. 띠루루룩.

강찬은 TV 스위치를 껐다.

준비할 시간이다.

셔츠와 양복을 입었다.

옷장 한쪽에 걸린 교복을 보자 문득 학교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풀썩 웃음이 나왔다.

나가봐야 빤히 운동부실에서 죽치다가 점심 먹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수업 시간에 앉아 교과서 오묘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것 말고는 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갈 시간이었다.

강찬은 안방을 슬쩍 들여다본 후에 문을 닫았고, 베란다 창문이 잘 잠겨 있는지 확인한 후, 현관을 나섰다.

때앵.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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