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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누가 더 빠를까?
목요일 저녁부터 과열되는 분위기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유라시아 철도 이야기를 했고, 주식 급등부터 부동산 매물이 일제히 사라진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람들 참 빠르기도 하다.
해외에서 개인적으로 들여오는 송금의 규모가 평일의 몇 배가 어쩌고 하는 보도를 보며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때 송금하는 사람들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일 거다. 뭐 그렇게 더 벌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 건지.
토요일 오전부터는 그동안 전 국민을 유라시아 철도 전문가로 만들어 버린 보도가 방향을 틀었다.
발표일인 목요일에 참석 예상 인물에 대해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거다.
웃기는 건, 라노크를 제외하고 강찬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데 그거야 뭐.
석강호와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하는 참에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팀장님!”
[“강찬 씨. 통화 괜찮은가요?”]
그나마 활력을 회복한 음성이었다.
“예. 그런데 어째 많이 지치신 거 같은데요?”
[“정보원 전 직원이 비슷할 겁니다. 오늘 점심으로 맛있는 짬뽕 어떻습니까?”]
“좋죠! 그렇지 않아도 생각났었는데.”
[“그럼 오십시오. 석 선생한테도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예!”
강찬은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20분 만에 도착했고, 바로 5층으로 올라갔다.
딸칵!
입구에 서자 김형정이 먼저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강찬 씨. 석 선생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선 강찬은 김형정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쇼.”
“심심해서 점심이나 먹자고 할까 했더니 잘 됐다. 여기 짬뽕 죽여주거든.”
김형정이 풀썩 웃은 다음, 짬뽕 세 그릇을 주문했다. 며칠 사이에 얼굴의 상처가 아문 것만큼이나 눈에 담겼던 아픔도 많이 줄었다.
김형정은 몽골의 작전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상처를 이겨낸다는 의미다.
강찬은 적당히 듣기만 했다.
국가정보원이라 그럴까? 삼성동이라 그럴까?
짬뽕이 곧바로 배달되었다.
“어후! 정말 죽이네!”
석강호의 감탄사를 열 번쯤 들었을 무렵 식사가 끝났다.
얼음이 든 시원한 음료수를 앞에 두고 담배를 물었는데 그제야 김형정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유럽 정보국에서 이번 행사에 강찬 씨가 참석하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강찬은 로리암에서 만났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서 프랑스 대사관 초청 형식으로 강찬 씨를 참석하게 하려고 합니다. 총리님께서 강찬 씨께 부탁한다고 전해달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TV에 제가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 참석하는 각국 정보국 담당은 언제나 비공개를 원칙으로 모임을 갖습니다. 강찬 씨는 그분들과 따로 움직일 겁니다.”
그렇다면 뭐 나쁠 것 없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라노크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프랑스 정보 총국에서 넘어온 제안입니다.”
분명 라노크가 제안한 일일 거다. 아무렴 어떠냐? 로리암에서 보았던 루드비히나 반트를 만나는 맛에 참석하면 되는 거다.
“이번 행사는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각국의 정보 담당자들이 모이다 보니 보안이나 경호상의 충돌이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30분쯤 시간을 더 보낸 후에 강찬과 석강호는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헤어지긴 서운하다.
강찬은 어디 가서 차나 한 잔 더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자. 괜히 여기서 기웃거리다 마주치면 서로 불편하다.”
“그럽시다.”
둘이서 대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탔을 때였다.
삐리리리이. 삐리리리이. 삐리리리이.
석강호의 전화가 울었다.
“여보세요? 아! 사장님. 예? 지금요? 토요일인데 근무하세요? 아, 그렇지. 잠깐만요.”
석강호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강찬을 보았다.
“부동산인데 미사리 쪽에 급매물 하나 나온 거 있다니까, 잠깐 들렀다 갑시다.”
그게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고?
강찬의 의아한 얼굴에도 석강호는 바로 “지금 갑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택시 기사에게 테헤란 로에 있는 빌딩을 알려주었다.
“지금 유라시아 철도 발표가 나서 땅값이 미친 거요. 이럴 때 급매물이 나온 거니까 그냥 삽시다. 어차피 은행빚에 넘어가는 땅인데 예전 시세만 쳐주면 땅 주인도 그나마 덜 서운하다고 오늘이라도 계약하겠다고 했답디다. 우선 가서 보고 결정합시다.”
“그럼 난 근처의 커피전문점에 있을 테니까 올라가서 보고 와. 그런 다음에 필요하면 계약하고 송금해주면 되잖냐.”
바쁜 일은 없지만, 강찬은 굳이 그런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았다.
“흠. 그럽시다. 그런데.”
석강호는 택시 기사를 흘끔 본 다음, 강찬의 귀에 대고 “땅값이 25억이요.” 했다.
25억? 고작 운동하고 커피 좀 편하게 마시자고?
강찬의 시선을 본 석강호가 고개를 저어댔다.
“에이! 거기 지금 부르는 게 값이니까 일단 삽시다. 정 안 되면 내가 주식 팔아서라도 돌려드릴게.”
쯧!
하긴 또 그렇다.
쓰지도 않을 돈, 통장에 백날 넣어두면 뭐할 건가?
차라리 2학기에 마음 놓고 운동하고 석강호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준비하는 게 백번 현명한 짓일 거다.
토요일이라 길이 꽤 막혀서 강찬은 그저 창밖을 보았다.
간판이 엄청나게 현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덜컥 ‘단 하나의 가치! 서정’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맞다!
서정그룹 사옥이 테헤란로에 있었다.
‘사람 더럽게 많네.’
어쩐 일인지 건물 앞에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형의 사내들이 가득 서 있었다.
“뭘 그렇게 보슈?”
“저거.”
강찬이 턱으로 가리키자 상체를 있는 대로 기울인 석강호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어? 저게 여기 있었소?”
“그런가 보다.”
강찬의 시선을 따라 석강호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람들이 모여선 것을 보았다.
“자살한 여직원 때문에 피켓 시위한다더니 그래서 저런가?”
강찬이 무슨 소리냐는 투로 돌아보자 석강호가 말을 이었다.
“짤막하게 보도 나온 적 있소. 유족은 억울하게 죽은 증거가 있다고 했는데 경찰이 자살로 결론 냈다고 합디다.”
“저래서 꿈쩍이나 하겠냐?”
“에효! 어쩔 거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저러는 거 아니겠소?”
말을 하는 동안, 차가 천천히 움직여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 커피점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올라갔다 와라.”
“알았소.”
강찬은 편하게 앉아 커피를 한잔 놓고 담배를 피웠다. 석강호는 거의 40분이 지난 후에 돌아왔다.
“어후! 뭔 놈의 건물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해?”
놈은 툴툴거리며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계약금 1억 오늘 입금하고 월요일에 은행 대출금 16억 상환한 다음, 3억에서 혹시 나갈지 모를 연체이자 제하고 잔금 치르기로 했소.”
“계좌번호 가져 왔냐? 카드 있으니까 은행에 가서 바로 입금할게.”
“우선 나한테 있는 걸로 보내줬소. 이게 계약서요.”
석강호가 품에서 부동산 상호가 찍힌 봉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야! 20억씩이나 하는 땅을 가 보지도 않고 덜컥 사도 되겠냐?”
“어허! 은행에서 16억을 빌려줄 정도의 땅이오.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에 위성사진까지 쫙 떠서 속일 수도 없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쇼. 다음 주에 3차 경매라 5억이나 깎은 거요. 이런 땅 찾기 쉽지 않아요.”
어째 불안했지만, 석강호가 워낙 자신 있어 하는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나저나 월요일엔 학교 꼭 나오쇼.”
“안 가. 거, 애들 보는 앞에서 무슨 망신이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 못 가니까 그렇게 알아.”
“그러지 말고 월요일만 나와요. 그래야 서울대학교 건은 집으로 슬쩍 보내주지요. 나중에 그 일까지 터지면 영 피곤해져요. 졸업식이구나 생각하고 하루 나왔다 갑시다.”
이 새끼가 왜 이러지?
“너 뭐 있지?”
“내가 담당 선생 아니오? 그냥 나 한번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고 나오쇼.”
강찬은 웃음이 풀썩 나오고 말았다.
“정말 표창장도 준다던?”
“이미 다 찍어놓고 왔소.”
“팔 부러트린 거 말고는 생각나는 것도 없는데 정말 모범이 어쩌고 하는 상을 나보고 받으라고?”
석강호가 ‘푸흐흐.’하고 웃다가 얼른 코를 닦았다.
“하여간 나오는 거요. 하루라니까 그래요. 교장실에서 표창하는 거, 방송하기로 했소. 그것까지만 합시다.”
둘이서 풀썩 웃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어디 가서 간단하게 햄버거나 하나 먹읍시다.”
“짬뽕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됐다.”
“그런 게 어딨소? 배고프면 먹는 거지.”
이 새끼, 구충제 사 먹이는 걸 깜박 잊었다.
석강호와 저녁까지 먹고 집에 들어온 강찬은 늦은 시간에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영화를 보며 닭을 시켜먹었다.
가족끼리 이런 시간은 정말 좋다.
***
일요일 아침이다.
“아들! 아침 먹자!”
강대경과 유혜숙은 점심 지나서 마트에 다녀온다는 것 빼고는 종일 집에 있을 거라고 했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떼로 지키는 터라, 마트 정도는 그다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새로 출근한 직원들에 대해 만족한 느낌이어서 큰 걱정도 없었다.
식사 후에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어제 건물 앞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검색어를 바꿔가며 아무리 찾아봐도 전에 보았던 ‘이 모 씨’ 자살과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 외에 석강호가 말한 피켓 시위에 관한 기사는 없었다.
“뭐야? 이 새끼가 작업한 건가?”
하기야 용인의 국도변에서 칼질해댄 것도 감췄는데 재벌 양진우가 그깟 직원 자살 기사 하나 못 막을까?
오후에는 세 식구가 마트에 다녀왔다.
일상이 주는 행복함이라니.
몸뚱이야 고등어지만, 정신 연령이 있다 보니 결혼을 좀 일찍 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도 했다.
누구랑?
아직 졸업도 안 한 김미영?
강찬이 혼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기다려 주기로 했었다.
점심은 밖에서 간단하게 먹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 강찬은 기회를 엿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요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프랑스 대사분 있잖아요. 그 라노크라는 분.”
“응. 그분이 왜, 아들?”
유혜숙이 쟁반에 대고 참외 껍질을 깎은 다음 접시에 가지런히 잘라 놓았다.
“이번에 방문하는 분들 중에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 있다고, 발표회장에 프랑스어 통역으로 참석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그래?”
유혜숙이 놀란 얼굴로 강대경을 먼저 보았다.
“그런 거야 좋지. 네 생각은 어떠냐?”
“괜찮으시면 참석해 보고 싶어요. 그런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고 싶구요.”
“좋은 경험이 되겠다.”
답을 하면서 강대경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부담스러운 자리가 되지 않겠냐는 의미로 보였다.
“참! 아들. 프랑스 국립대학 합격증은 내일 받는 거지?”
“예. 내일 학교 가서 받고 모레부터는 프랑스 문화원에 나가게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을까?”
“봐서 서울 대학교 특례입학 허가서 나오면 그때 결정하죠. 어느 쪽이 좋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유혜숙은 또 눈물이 왈칵 솟구친 모양이었다.
“왜 또 그러세요?”
“아들 병원에 있을 때 생각나서 그래. 아빠 말씀대로 대학은 잊었다 하고 마음먹었었는데 이렇게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가 준 게 고마워서.”
대꾸할 말이 없어서 참외를 내려다볼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렸다.
“얼른 가서 받아.”
강대경이 눈짓을 해서 강찬은 방으로 들어왔다.
“여보세요?”
[“나요. 특별한 일 없으면 어제 계약한 땅 보러 갑시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곧바로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나왔을 때 석강호는 이미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찬은 바로 조수석에 올랐다.
“너는 집에서 뭐라고 안 하냐?”
“뭘요?”
“하루쯤은 식구들이랑 가평이라도 다녀오지, 그래?”
“말도 마쇼. 딸애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나가줬으면 하는 눈치요.”
“집에서 얼마나 발광을 떨길래 그런 소리가 나와?”
강찬의 시선에 석강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에는 학원이니 과외니 선생 월급 가지고 엄두가 안 나서 못 시켰잖소. 이번에 아파트로 옮기고도 돈이 좀 있으니까 둘이 아주 신 났소.”
“딸이 싫어하지 않아?”
“이상한 계집애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우. 다른 애들보다 뒤처지는 걸 못 견디기도 하고.”
“딸보고 계집애는 또 뭐냐?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하면 좋지 뭘 그래?”
석강호가 픽 하고 웃었다.
“머리가 나쁜 거요. 학원 보내, 과외 시켜, 밤에 잠 줄여가면서 그 공부를 하는데 반에서 겨우 5등 합디다.
“그 정도는 훌륭하구만!”
“돈이 얼마가 드는데 그러쇼? 그 돈 모았다가 차라리 유학을 보내고 말지. TV만 켜도 둘이서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데 원!”
석강호가 못마땅한 얼굴로 계속 투덜거려서,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아!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피켓 시위 기사가 아예 없던데? 넌 그거 어디서 봤냐?”
“그걸 어디서 봤더라? 이따가 내가 찾아보고 전화하겠소.”
꼭 그 기사를 봐서 뭐하겠나.
화제를 돌리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석강호와 함께 도착한 곳은 자리가 제법 좋았다.
그런데 짓다 만 건물이 흉물스럽게 서 있고, 거기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빨간 글씨가 하얀 천에 적혀서 세 곳이나 붙어 있었다.
강도 보이고, 도로에서 멀지 않고.
“이게 뭐지?”
그런데 석강호의 놀란 소리처럼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석강호는 바로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여보쇼! 나 어제 미사리 땅 계약한 석강호요. 예.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데 이건 뭐요?”
강찬이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석강호의 음성이 점점 커졌다.
어쩐지 자신만만해 하더라니.
“그런 말을 언제 했어!”
석강호가 버럭 소리를 지른 직후에 건물 너머에서 덩치가 좋은 사내 둘이 비적 거리며 다가왔다.
강찬이 고개를 젖혀 보니, 작은 컨테이너 막사가 안쪽에 숨은 것처럼 놓여 있었다.
가지가지 한다.
“어떻게 오셨소?”
대가리가 강찬의 두 배쯤 되는 놈이 강찬과 석강호를 번갈아 보며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이 땅 계약했다더니 혹시 그분들이요?”
“알았소! 여기 말씀하신 분들 나왔으니까 내가 얘기해보고 전화하겠소!”
석강호가 전화를 끊고 대가리 큰놈을 보았다.
“내가 어제 이 땅 계약했는데 유치권은 몰랐거든요. 이게 어떻게 된 거요?”
놈이 바닥에 침을 찍 뱉는 것을 본 강찬이 피식 웃자, 뒤에 있던 놈이 불편한 시선으로 꼬나보았다.
“아무튼, 좋은 땅 사신 거요. 지주가 이거 짓다가 주저앉는 바람에 건축비를 못 받아서 이러는 거니까, 그것만 주면 내일이라도 깨끗하게 비어드립니다.”
“그게 얼마요?”
석강호의 질문에 놈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딱 20억입니다.”
강찬은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25억짜리 땅을 5억을 깎았다고 좋아하더니 치고받으면 15억 덤터기를 쓰게 생긴 거다.
“가자.”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이건 그냥 멍청해서 당한 거다.
땅을 사면서 현장을 한 번 안 보고 덜컥 계약한 게 잘못이고, 유라시아 철도 때문에 땅값이 무조건 오를 거라고 기대한 잘못도 있다.
1억이면 싸게 먹혔다.
“가! 내가 내일 1억 보내줄 테니까 다음부턴 좀 꼼꼼히 챙겨.”
강찬은 엉덩이를 털며 자동차로 걸었다.
“이 개새끼들이 사람을 완전 병신 취급한 거네!”
“욕심부리다 그런 거잖냐. 너도 유라시아 철도 연결되면 몇 배는 오를 거라고 기대했을 거 아냐? 이렇게 털고 넘어가. 대신 가지고 있던 공트 주식 무지하게 오르더라. 열흘만 있으면 네가 가진 주식가격만 150억에서 200억 간다던데, 이참에 좋은 교훈 얻었다고 생각해.”
두 놈이 멍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계약금이 아까워서라도 매달릴 줄 알았던 모양이다.
늘 가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동안, 석강호는 몇 번이나 눈빛을 번들거리며 화를 냈다.
“그만해라. 우리가 멍청해서 당했다고 주먹질을 해대면 깡패랑 다를 게 뭐 있냐? 그렇다고 이걸 재판을 할래? 아니면 사기로 고소를 하겠냐? 여기까지만 해.”
석강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1억이 얼마나 큰 돈인지도 안다. 하지만 끝내기로 했으면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는 것도 중요하다.
“참! 지난번에 500억 말한 거 증권계좌로 들어왔거든. 조만간 찾아서 좀 보내줄게.”
“그걸 왜 나한테 보내요? 거기에다 나도 따로 받은 거 있잖소.”
“거 봐라. 너나 나나 언제 돈 욕심 낸 적 있었냐? 이번에 공연히 욕심부리다 손해 본 거니까, 다신 이러지 말자 하고 그냥 털어. 아무튼, 돈은 좀 보내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그게 아니라.”
“다예.”
강찬이 짧게 부른 소리에 석강호가 움찔했다.
“그만하자. 우리가 욕심부리다 그런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저 새끼들이 얍삽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냐.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해.”
“알았소. 미안하우.”
강찬이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실 때 석강호가 “어휴!” 하면서 숨을 털어냈다.
이놈은 이제야 미련을 버린 거다.
“개새끼들. 눈 깜짝할 사이에 1억을 챙겨가네.”
“그나마 어제가 토요일이라 계약금 1억만 보낸 게 다행이지, 평일이어서 덜컥 은행빚 갚고 잔금까지 치렀으면 어쩔 뻔했냐?”
“그건 그렇소.”
“그래. 우린 아직 운이 남은 거야. 이제부터 조심하자.”
“알았소.”
일요일이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