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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누가 더 빠를까?
강찬이 11시에 커피전문점에 도착했을 때 김형정은 이미 흡연실 바깥문을 열어놓고 테라스 쪽에 앉아 있었다. 회색 양복에 셔츠 차림인 김형정은 아직 온 얼굴에 흉터가 고스란히 남았고 왼손 검지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팀장님!”
“강찬 씨!”
우선 반가웠다. 안쓰럽고 걱정되는 모든 것을 떠나서 우선 반가운 게 가장 먼저 와 닿았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괜찮습니다. 이걸로 입원해 있긴 좀 그렇지요.”
김형정이 깁스를 한 검지를 들어 보였다.
“차는 뭐로 하실래요? 제가 사 올게요.”
“석 선생 오시면 같이 드시죠.”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강찬이 자리에 막 앉는 순간에, 마침 석강호가 택시에서 내리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뭐 주문했소?”
“아니. 나는 커피 부탁하고.”
“석 선생. 내가 이러니까 커피 한 잔 부탁합니다.”
“그런 소리 마십쇼.”
석강호가 시원시원하게 말을 받고는 주문대로 걸어갔다.
“김태진, 그 친구와는 통화했습니다.”
“뭐라시던가요?”
“출장 갔다가 좀 다쳤다고 했더니 우선 얼굴 보자고 난리더군요. 오후에는 그 친구를 만날 생각입니다. 우리 일이라는 게 다쳤다고 하면 작전 중 부상을 먼저 떠올리게 돼서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지 아직 고민 중입니다.”
강찬이 풀썩 웃을 때 석강호가 커피 석 잔을 쟁반에 들고 다가왔다.
“자! 차 드십시다.”
쟁반을 탁자에 올린 석강호는 담배를 뽑아들며 김형정을 보았다.
“그래도 이렇게 뵈니까 살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석 선생. 덕분에 이렇게 마주 앉아 차도 마시고 담배도 피웁니다.”
“별말씀을.”
어색한 감정이 살짝 흘렀는데 이런 건 하루 이틀 지나면 알아서 녹아버린다.
“그런데 어떻게 외인부대 특수팀에 합류하게 된 겁니까?”
김형정이 주변을 슬쩍 돌아보며 잔을 들었다.
“여차하면 둘이서 갈 생각까지 했는데 이 양반이 두 번이나 라노크를 찾아가서 조른 덕분이었습니다. 처음엔 날 쏙 빼놓고 가려고 하다가 덜컥 들켰지 뭡니까?”
석강호가 투덜거리며 한 말에 김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원장님이 직접 병원에 오셔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강찬 씨가 나서서 움직인 것 같다고 말을 하더군요.”
“골 아프게 뭐 이런저런 거 생각하십니까? 그냥 살아 돌아왔으니까 상처 대강 아물면 다 같이 술 한잔 하고 터시자구요.”
말을 마친 석강호가 애꿎은 얼음을 버적버적 깨물어 먹었다.
강찬은 잠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팀장님. 유니콘 프로젝트를 다음 주에 발표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표할 예정이어서 관련국의 유니콘 담당자와 정보국 담당자가 모두 올 예정입니다.”
석강호가 얼음을 씹다 말고 주변을 흘끔 둘러보았다.
“아마 내일모레쯤 유럽 쪽에서 먼저 말을 흘릴 예정인가 봅니다. 오늘 오전에 한국정부도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후우-우!”
김형정이 입술을 둥그렇게 만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루어지는군요.”
“그걸 위해서 이 고생을 하셨던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막상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그냥 멍하기만 합니다.”
“총리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꼭 그렇습니다.”
김형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마셨다.
“업무는 바로 복귀하시나요?”
“누워있으니까 오히려 더 아픈 것 같아서 내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강찬은 든든한 아군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며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으셨더군요?”
이왕 말이 나온 거다.
강찬은 양진우의 뒤를 캐다가 우연히 윤봉섭을 만나게 되었고, 조일권에 이르는 과정을 쭉 설명했다.
“지금이라도 가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 중입니다.”
말을 마친 강찬이 담배를 들자 석강호와 김형정도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러지 말고 시원하게 목을 비틀어버립시다. 스미든, 그 새끼한테 언제 어떤 여자 집에 오는지 알아보라고 한 다음에 둘이 가서 나오는 걸 으드득 해버리면 끝나는 일 아니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석강호의 말을 김형정이 고개를 저으며 받았다.
“강찬 씨에게 형사면책권이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양진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재벌이라서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 쪽에 인맥도 상당하고 스포츠와 관련한 세계적인 인물들과 교류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정부에서도 처리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무식한 새끼!
강찬이 얼굴을 쓸어대는 동안 김형정은 자상하게 이유까지 설명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범인을 못 잡으면 그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지요. 반대로 작은 실마리라도 알게 되면 그것도 문제가 되구요. 양진우라면 언론을 누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크흠!”
“그건 저도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강찬 씨가 하겠다면 말릴 방법이 없을 테니 최대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도록 해 봐야지요.”
김형정은 말끝에 웃음을 달고 강찬을 보았다.
“가시죠. 제가 두 분께 꼭 점심 대접을 하고 싶었습니다.”
“점심은 제가 살게요.”
강찬이 나섰으나 김형정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더운 날이라 간단하게 만두와 냉면을 먹었고, 김형정은 김태진을 만나러 가겠다며 먼저 움직였다.
“잘못하면 오래가겠소.”
“그러게.”
김형정의 눈에 담긴 슬픔과 좌절이 문제인 거다.
대원들을 많이 잃고 돌아온 지휘관은 다음 전투에 내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다가 결국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넌 이제 어쩔래?”
“학교 가봐야 하우. 다음 주가 개학이라 서류 처리해야 할 게 제법 있소.”
“알았다. 그럼 난 집에 가 있을게. 아무래도 그게 마음이 편하지 싶다.”
“혹시 양진우 일로 움직일 거면 나도 꼭 데려가쇼. 지난번처럼 그러기 없어요.”
“야! 그날은 그냥 살펴보러 갔다가 그렇게 된 거라니까.”
“아후! 양진우, 이 양아치 같은 새끼! 개새끼!”
누가 보면 양진우가 석강호의 가족을 노린 줄로 오해할 만한 욕이다. 지리산 사건 이후로 석강호는 가족을 건드리는 일에 굉장한 분노를 표출해댔다.
“심심하면 학교나 같이 갑시다.”
“됐다. 새벽에 충분히 운동했다.”
“에이! 학교를 콱 그만두고 유비캅에 들어가버려?”
“방학이 없어서 싫다면서?”
“그건 그렇수.”
석강호가 입맛을 다시며 학교로 향했고, 강찬은 집으로 돌아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는데 당최 양진우를 어떻게 때려잡는 게 좋을지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새끼를 그냥 죽여버려?’
그럴 생각도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석강호와 둘이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깟 놈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후우!”
강찬은 머리를 쓸어댔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 언제까지 좋은 방법을 찾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다.
‘이번 주까지 찾아보고 안 되면 죽여버린다.’
어차피 저쪽에서 먼저 시작한 싸움이다.
강찬은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양진우의 사진을 볼 때마다 엊그제 보았던 유혜숙의 사진이 떠올라서 화를 참기 어려웠다.
집이 다 좋은데 담배 피우기가 지랄이다.
***
수요일이 되자 보도 전문 채널과 인터넷에서 유라시아 철도 이야기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거의 확실시 된다는 단서를 달고, 세계의 경제 판도를 바꿀 엄청난 사업이라는 자극적인 기사에 경제적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덧붙여서 북한이 포함된 것은 거의 확실한데 우리나라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주를 이뤄서 읽다 보니 강찬도 ‘이거 정말 우리나라가 빠진 거 아냐?’할 정도였다.
김태진, 김형정과 오전에 잠시 통화를 했고, 종일 집에서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몸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느껴졌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석강호가 전화했던 기록이 떠 있었다.
강찬은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요.”]
“전화했더라? 샤워 중이었어.”
[“프랑스 대사관에서 프랑스 국립대학교 입학허가서와 장학증서 도착했소. 2학기부터는 프랑스 문화관에서 소양교육을 한다고 수업을 빼달라는 공문도 함께 왔습디다. 지금 교무실 벌컥 뒤집혔고, 교장이 거품을 물고 언론에 홍보해야 한다고 지랄이오. 개학식 날 전교생 앞에서 전달한다고 급하게 표창장까지 찍고 있소.”]
“표창장은 또 뭐냐?”
[“뭐 평소에 모범이 되고, 학교의 이름을 빛냈다나 어쩐다나? 그런 내용이요.”]
염병!
모범을 어쩌고 이름을 어째?
듣기만 했는데도 등에 지네가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야! 월요일에 나 결석할 테니까 알아서 좀 덮어라.”
[“그럼 화요일까지 기다릴 거요. 언론에 내는 건 프랑스 대사관에 확인해 봐야 한다고 어떻게 하겠지만, 전교생 앞에서 받는 건 피하기 어려울 거요. 오늘 뭐 하쇼? 이따가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 먹읍시다.”]
“알았다. 아무튼, 적당히 하자.”
[“끝나고 전화할게요.”]
짜증이 확 났지만, 학교에 안 나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2학기는 그렇게 할 참이었으니까 뭐.
아무튼, 불편한 학교생활은 끝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준 제대로 된 신분증도 하나 있고, 강찬은 가슴 한쪽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머리의 물기를 다 닦고 수건을 세탁실에 가져다 놓고 왔을 때 전화가 울렸다.
유혜숙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여보세요?”
[“아들! 프랑스 국립대학 입학 허가서 나왔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알고 있었어?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하셨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고! 엄마, 지금 어쩔 줄 몰라서 아빠보고 잠깐 와달라고 했어! 엄마, 자꾸 눈물이 나! 우리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워서, 엄만 이상하게.”
유혜숙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나?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데 전화기를 붙들고 울어?” 하는 강대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찬이냐?”]
“예, 아버지. 어머니 많이 우세요?”
[“그런다. 기분 좋아서 그런 거니까 마음 쓰지 마라. 아빠도 얘기 들었다. 축하한다.”]
이번에도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엄마 좀 다독여야 할 것 같으니까 아빠가 나중에 전화하마.”]
“예.”
빤히 알고 있던 일인데 저렇게 흐느낄 정도로 기쁠 수가 있나?
강찬은 아무래도 개학식에 나가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책상에 앉았다.
이제 나흘 남았다.
강찬은 수화기를 들어서 스미든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스미든입니다.”]
한국말 대답이다.
“스미든. 다음 주부터 양진우가 어떤 여자 집이든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
[“다음 주요?”]
기껏 프랑스어로 말을 했더니 한국말로 받는다.
“그게 아니라, 다음 주부터 가장 확실한 날 아무 때나 확인되는 대로 알려달라고.”
[“알았소.”]
이 새끼는 여자랑 있는 게 확실하다.
점잖을 떠는 목소리가 딱 그랬다.
양진우 이 개새끼를 아무래도 일단 죽여버리는…….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또 울렸다.
[“아들!”]
“어머니. 괜찮으세요?”
[“응! 갑자기 아들이 여섯 살 때 엄마 안아주면서 한 얘기들이랑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어. 아빠 회사 직원분들하고, 여기 재단 직원분들 저녁 사기로 했는데 아들도 나올래?”]
무슨 끔찍한 말씀을!
“저는 저녁에 석강호 선생님 만나기로 했어요.”
[“아! 맞다! 그 선생님께 인사드려야 하는데. 엄마가 정말 감사드린다고, 꼭 한번 찾아뵙겠다고 전해 드릴래?”]
“예.”
절대로 그럴 마음은 안 생겼다.
유혜숙과 전화를 끊은 강찬은 냉정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보았다.
이런 여자를 죽이라고 시켰다 이거지?
***
석강호와 둘이 미사리에서 백반을 먹은 다음, 카페로 향했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하나씩 피웠다.
“이런 거 하나 사면 어떻겠소?”
“뭔 소리야?”
“대장 여유 좀 있을 거 아니오? 차라리 이런 거 하나 사서 우리 아는 사람들만 오는 카페로 만들고, 저기 뒤쪽 마당에 운동시설 좀 깔아 놓으면 좋지 않겠소? 우리 둘이 말하기도 편하고, 담배 피울 때 남 눈치 안 봐도 되고.”
강찬은 처음으로 카페의 뒤쪽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저기 반 갈라서 이쪽은 대장 개인 공간. 저쪽은 운동 공간. 그럼 괜찮을 것 같은데?”
“이런 건 얼마나 하냐?”
“내가 한번 알아보겠수. 학교 안 나올 거니까, 이런 곳에 개인 공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자.”
“알았소.”
커피를 마신 강찬은 양진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번 주까지 살펴보고 여차하면 다음 주에 모가지를 돌려버릴 생각이다. 그때 같이 움직이자.”
“그래요! 안 그래도 그 개새끼가 걸려서 밥이 잘 안 넘어갔는데 생각 잘했소.”
저녁에 밥을 두 공기나 처먹은 놈이 할 소린 아니다만, 강찬은 모른 척 넘어갔다.
“스미든한테 전화해 놨으니까 시간 잡히는 대로 바로 갈 거다. 그렇게 알고 있어.”
“푸흐흐흐.”
석강호가 눈빛을 번들거리며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 했다.
“지난번 몽골 작전 이후로 몸이 깨어난 느낌이우. 달리는 것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참! 애들이라 그런지 실력이 정말 무섭게 늡디다. 특히, 호준이 놈하고, 어! 거 은실이, 그 두 녀석은 재능도 있어요.”
“됐다.”
늘었다고 해봐야 어설프게 어디 나섰다간 당장 목이 돌아가기 꼭 좋은 실력일 거다.
***
강대경과 유혜숙은 밤 9시쯤 들어왔다.
“아들!”
강찬이 풀썩 웃으며 유혜숙을 안고 등을 다독여주었다.
“어째 딸이 아빠한테 안긴 것처럼 보인다?”
“이이는!”
강대경의 말에 발끈하면서도 유혜숙은 미소를 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옷을 갈아입은 다음, 거실에 앉았다.
“과일 먹어.”
배가 부르지만, 참외 몇 조각 못 먹을 건 아니어서 강찬은 포크를 들었다.
“참! 유라시아 철도 이야기 들었니?”
“예.”
“아깝더라. 네가 가진 공트 주식을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바로 200억은 됐을 텐데.”
“200억이요? 설마 그렇게 되겠어요?”
무슨 셈을 어떻게 하길래 그런 계산이 나올까?
“주식은 바로 곱절로 가서 그럴 수 있지. 더구나 러시아와 프랑스가 주축이니까 프랑스 공트 주식은 더 그럴 거고. 40억이 배로 튀면 80억, 거기서 다시 한 번 배로 튀면 160억이 되는 거지. 일주일도 안 걸릴걸?”
듣고 보니 그런 거 같다.
그렇다면 200억을 주식으로 샀으면 400억에 다음은 800억? 선물은 300억을 산다고 했으니까, 600억에 이어서 1200억?
두 개를 합치면?
강찬은 짧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털었다.
“괜히 엄마 재단 만든다고 해서 손해 봤나 봐.”
유혜숙이 미안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그런다고 해서 500억을 투자했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거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게 따지면 어떤 돈이든 도울 때마다 마음에 걸리잖아요.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우리 여유 생길 때마다 어려운 사람들 도우면서 살아요. 전 주식 오른 거 하나도 안 부러워요.”
속으로 뜨끔했지만, 500억을 투자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을 강찬이다. 그나저나 그럼 석강호하고 스미든은 주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강찬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유니콘 프로젝트 한국 포함.
다음 주 중으로 한국에서 발표.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
목요일 아침에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온갖 방송의 하단에 속보가 떴고, 심지어 뉴스 특보가 연속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잠깐 TV를 켠 강대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여보. 출근 안 해?”
“해야지. 그런데 유라시아 철도를 우리나라에 연결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저 발표를 우리나라에서 하는 건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일인데? 지금 정부가 저걸 소문 하나 안 내고 해냈다는 게 정말.”
“여보!”
“응! 그래. 가야지.”
강대경이 아쉬운 얼굴로 일어나서 유혜숙과 함께 현관으로 움직였다.
“다녀오세요.”
“그래, 아들.”
두 사람이 출근하자 강찬은 잠시 TV 앞에 앉았다.
솔직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떠드는 것을 보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구나 싶기도 했다.
주가 이야기, 부동산이 급등한다는 이야기, 철도가 연결되면 일 인당 GNP와 GDP가 얼마쯤 될 거란 이야기를 떠들고, 외국 회사가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벌써부터 투자 문의가 쇄도한다는 보도가 연신 있었다.
아직 발표도 안 난 일에 저렇게 들뜰 필요가 있나?
몽골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은 대원들을 저들은 전혀 알지 못할 거다. 꽁꽁 묶인 채로 손가락에 기다란 송곳을 꽂아도 이름과 소속을 말하지 않은 대원들의 고통을 저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할 거다.
이걸 막으려던 놈들이 얼마나 야비하게 굴었는지 알고나 있을까?
강찬은 TV를 끄고 책상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