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99화 (9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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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이상하게 뒤로 밀린다.

라노크와 헤어진 강찬은 그가 두 번이나 부탁한 대로 쎄실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차니?”]

“통화 괜찮아?”

[“물론이지. 아깐 바쁜데 미안했어, 우리 회사 VIP 고객 몇 분을 제외하고, 그런 금액을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었나 봐.”]

“그건 됐고, 200억은 주식 주문을 넣을 거고, 300억은 선물? 그거 주문 넣을 건데 되는 거지?”

[“오우! 파생상품 투자를 하려고! 선물 거래는 반드시 차니의 사인이 있어야 해. 거기에 위험고지를 받았다는 것도 증명해야 하고. 지금 어디야? 내가 바로 준비해서 갈게.”]

“그럼 내가 한두 시간 뒤에 전화할게. 저녁에 미쉘 만날지 모르니까 그쪽에서 보면 되겠다. 괜찮지?”

[“오케이, 차니! 이후의 약속을 전부 비워둘 테니까 언제고 전화 줘.”]

“알았다.”

통화를 막 끝냈을 때 주철범이 다가왔다.

“가십니까? 차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형님?”

“전화할 곳도 있고, 만날 사람도 있으니까 내가 알아서 갈게.”

“알겠습니다, 형님. 살펴 가십시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꼼짝없이 깡패 꼴이다.

강찬은 일단 로비 라운지로 들어가서 형식적인 주문을 하고는 전에 24시간 대기한다던 번호를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 연락음이 꼭 한 번 울린 직후였다.

[“어떤 일을 도와드릴까요?”]

정말 전화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가? 그것도 24시간 내내?

“강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내용을 말씀하시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친절한데도 무언가 사무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통화였다.

“총리님을 최대한 빨리 뵙고 싶은데 연락이 됩니까?”

순간, 여직원이 멈칫한 것이 느껴져서 강찬은 픽 하고 웃고 말았다.

[“급한 용무이신가요?”]

“예.”

[“바로 연락드리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실없는 웃음을 웃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대기했던 직원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을까?

김형정이 있었다면 이런 전화도 안 했을 거다.

강찬이 주문한 음료수가 나왔을 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강찬 씨. 고건우입니다.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면서요?”]

“네. 총리님. 꼭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급한 일입니까?”]

“유니콘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갑자기 고건우의 말이 빨라졌다.

“남산 호텔입니다. 제가 움직여도 되니까 장소만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음.”]

시간을 보는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고건우 음성이 들려왔다.

[“20분 내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뵙지요.”]

“알겠습니다, 총리님.”

강찬은 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음료수를 노려보았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물이나 한잔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등받이에 몸을 기대던 강찬의 시선에 이지연이 들어왔다. 수습 직원인 걸 보면 최소 고등학교는 졸업했을 텐데 언뜻 보기에는 중학생으로 보일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이지연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당황해 하는 얼굴에 몸이 굳어 동작이 딱딱했다.

졸업 시기는 아니니까 집에 있다가 겨우 취직된 건가 싶었다.

강찬은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이지연보다 행복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혹시나 이지연이 원하는 삶이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강찬을 전화기가 급하게 불렀다.

“여보세요?”

[“총리실에서 연락드립니다. 남산 호텔 현관으로 나오시면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바로 나가죠.”

아직 20분이 안 되었는데 빠르기도 하다.

계산을 마치고 현관으로 나가자, 검은색 승용차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뒷문을 열었다.

철컥.

강찬이 타자 문을 닫아준 사내가 얼른 조수석에 올랐다.

“총리님께서 말씀하신 장소로 이동합니다.”

차가 움직이자 강찬은 어디로 향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전에 고건우를 만났던 미술관이다.

조수석에서 내린 사내가 바로 안으로 안내했다.

단정한 차림의 요원들과 일반 직원들이 모두 신분증을 달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5분 안에 도착하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찬은 소파에 앉았다.

그깟 5분이야, 뭘.

천천히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이 미술관은 도대체 뭐하는 건물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림 네 개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바빠지더니 비서관과 요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강찬은 입구에서 들어서는 고건우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찬 씨. 늦어서 미안합니다.”

“제가 급하게 뵙자고 한 건데요.”

“앉읍시다. 차 좀 주지.”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은 주문이다.

자리에 앉은 고건우가 우선 숨을 토해냈다.

“이번에 우리 강찬 씨가 고생 많았습니다. 일찍 만나서 인사를 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일이 많았습니다.”

일이라면 강찬도 많았다.

거기에 윤봉섭과 조일권을 처리하면서 도움 받은 것도 많고.

비서관이 차를 놓아주었다.

“차 마시고 이야기하지요.”

배가 부른 참이라, 강찬은 입술만 대고 바로 찻잔을 내렸다.

“총리님. 죄송하지만 수행원들을 전부 내보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건우가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고건우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둘도 아니고 열댓 명이 있는 앞에서 전할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었다.

“예, 죄송하지만 그게 맞는 거 같은데요.”

잠깐 고개를 갸웃했던 고건우가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10분?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강찬의 대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그렇게 하지요. 여기, 잠깐 자리 좀 비워주세요.”

미술관의 벽을 타고 서 있던 직원들과 요원들이 고건우의 눈짓에 모두 밖으로 나갔다.

강찬은 그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라노크 대사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 특수팀 시체를 보관하고 있고, 그 사진을 보도해서 한국 정부와 라노크를 압박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었습니다.”

고건우가 볼을 씰룩이며 찻잔을 들었다.

목이 마르기보다는 화가 난 것을 감추기 위해 찻잔을 든 것처럼 보였다.

“유니콘 프로젝트를 다음 주에 발표하겠답니다.”

찻잔을 든 고건우는 밀랍 인형처럼 꼼짝도 않고 있었다.

“발표를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달랍니다. 유럽과 러시아의 정보국 담당자가 모두 함께 오겠다고 하고, 이번 기회에 국가정보원과 교류를 맺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달칵.

고건우가 이지연만큼이나 거칠게 잔을 내려놓아서 내용물이 탁자에 튀었다.

“강찬 씨. 다음 주에 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하고, 그때 각국의 정보담당자가 모두 참석해서 우리 국가정보원과 교류하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흥분한 것 같은데도 강찬이 전한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다. 국무총리를 하는 사람은 과연 다르구나 싶었다.

“맞습니다. 각국의 유니콘 책임자, 정보국 담당자가 모두 온다고 들었습니다.”

“푸흐흐흐.”

고건우가 마치 석강호처럼 웃고 있었다.

“이건 마치, 뭐라고 해야 하나? 푸흐흐흐.”

그토록 깔끔하게 말을 정리했던 고건우가 실성한 사람처럼 헛소리와 이상한 웃음을 연달아 터트려댔다.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강찬을 본 고건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일 중으로 강찬 씨에게 전화하겠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에서 적극 협조할 사안이지만, 우리 쪽 실무자도 정해야 하는 일이라 하루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편하신 대로 하세요.”

“하아.”

숨을 토해내며 고건우가 일어서는 바람에 강찬도 따라 일어섰다.

“강찬 씨.”

고건우가 악수를 하듯 손을 내밀더니 두 손으로 강찬의 오른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어쩌면 유니콘 프로젝트에서 당장 강찬 씨의 이름이 빠져 있을지 모르지만, 대통령님과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발표가 끝나고 나면 따로 강찬 씨의 공로를 세상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총리님! 절대로 그러지 말아 주세요.”

강찬은 고개까지 저으며 고건우를 말렸다.

지금도 충분히 귀찮고 번거로운 참이다. 발표가 끝나면 속 좀 편해지겠구나 싶은 판국에, 이게 무슨 물귀신 발목 잡아당기는 듯한 말인가.

강찬의 표정을 본 고건우가 너털웃음을 웃은 다음 다시 작게 숨을 토해냈다.

“이건 나중에 따로 의논하지요. 이제 어디로 갑니까? 나가는 길이니까 나와 함께 타고 가면 됩니다.”

“총리님. 전 택시가 편합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호텔 앞까지는 함께 움직이지요.”

“감사합니다.”

고건우와 함께 미술관을 나온 호텔의 정문 근처에서 내렸다.

마침 택시가 길게 늘어서 있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강찬은 미쉘과 쎄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 정말 바쁘다.

유니콘 프로젝트?

500억으로 하는 주식 거래와 선물 거래?

강찬이 원하는 삶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돈의 단위가 자꾸만 커지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맞을 거다.

쯧! 일단 벌고 보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거라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닐까?

강찬은 창밖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해 보였다.

***

디아이에 도착한 강찬은 2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가장 먼저 인사한 것은 지친 얼굴로 책상에 앉아있던 코디와 메이크업 직원들이었다. 다음으로 김재태 부장과 경리 최유진이 일어나 인사했는데 미쉘과 임수성이 각자의 방에서 급하게 나왔다.

“나오셨습니까?”

“어서 와, 보스!”

한눈에 보았을 때 직원들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역시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직원이 더 필요한 거 아냐?”

“아니에요!”

“아닙니다, 대표님.”

코디와 로드 매니저들이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라는 답을 했다.

“대표님. 지금 제작하는 드라마가 끝나고 반응을 봐가면서 더 충원하면 됩니다. 저도 그렇고, 직원들 모두 이번 드라마가 경력이 됩니다. 심지어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전화도 오는 형편이니까 저희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임수성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까지 끄덕였다. 본인들이 그렇다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강찬은 미쉘과 함께 대표이사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표님. 차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최유진의 질문에 강찬은 커피를 부탁했다.

소파에 앉으면서 돌아봤을 때 책상 위에 서류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저건 대표이사가 검토하고 봐야 할 서류들이야.”

“알아서 하라니까.”

“알아, 차니. 하지만 대표이사에게 보고할 준비는 해 두는 게 맞아. 그래야 직원들이 좀 더 긴장하고 방심하지 않아. 지금 내가 대표이사 한다고 하면 다들 실망할걸?”

강찬이 풀썩 웃을 때 최유진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유럽에서 공식 계약서가 이메일로 왔어. 법무법인에서 검토가 끝나면 사인할 때는 차니가 직접 와줘야 해.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니까 조연으로 출연 중인 베테랑 연기자분들이 연습생들을 따로 가르쳐줄 정도로 관계도 좋아졌어.”

미쉘은 들뜬 얼굴이었다.

“내가 이 일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바랐던 모든 게 이루어진 거 같아. 그래서 나나, 직원들이나 전혀 힘든 줄 몰라.”

커피를 마신 강찬은 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견딘다고 해서 언제까지 저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미쉘. 지휘자는 두 걸음 앞을 봐야 돼. 그래서 더 지원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를 빨리 결정해 주는 게 맞아. 지금 미쉘이 할 일은 다음 작품을 언제 할지 결정하고, 그에 맞는 인원을 보강하는 거야. 이번 작품에서 같이 손발 맞추고, 다음 작품은 새로 뽑은 직원들이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게 해.”

미쉘이 감탄했다는 눈빛으로 강찬을 보았다.

죽고 사는 전쟁에 나서봐라. 이런 건 저절로 익히게 된다.

똑똑똑.

그때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녕?”

쎄실이었다.

미쉘이 반갑게 맞았고, 차를 부탁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지점장이 따라온다는 걸 억지로 말렸어. 차니가 계좌 다른 곳으로 옮기면 나 잘릴지 몰라.”

미쉘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릴 때 커피가 들어왔다.

“자! 여기 내가 연필로 동그라미 쳐놓은 곳에 사인해주면 돼. 그럼 오늘부터 당장 주문 넣을 수 있어.”

쎄실이 증권사 마크가 찍혀있는 종이봉투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강찬 앞에 놓아주었다.

“파생 거래는 위험해. 여기 있는 걸 꼭 한번 읽어보고 결정하는 게 좋아, 차니.”

강찬은 대충 읽는 척하고는 얼른 사인을 마쳤다.

“차니 주식하려고?”

“응. 그냥 배우기도 할 겸 해서 해보려고. 참 주문 비밀번호는 어떻게 되냐?”

“그럴 필요없이 나한테 바로 전화해, 차니.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말고, 혹시 다른 직원이 전화할 수도 있어.”

“그럼 내가 주문받고 차니에게 확인전화 하지, 뭐. 그래도 되지?”

“그러자.”

언제쯤 500억이란 돈을 실감하게 될까?

서류를 다시 종이봉투에 넣어 챙긴 쎄실이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괜찮아?”

“위에 연습생이랑 전부 먹어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셔, 미쉘! 차니 덕분에 법인카드 따로 받아왔다구! 오늘 실컷 먹어! 아마 2천만 원까지는 괜찮을 거야!”

“어머! 어떻게 된 거야?”

“차니가 엄청난 계약을 하나 해줬거든! 한번 주문할 때마다 주식과 선물 수수료가 10억씩 나오는데 그중 우리 지점 수익이 3억에, 내 수수료만 3천이야. 그러니까 오늘 우리 마음 놓고 먹자구, 미쉘!”

“와! 잘됐다, 쎄실! 축하해!”

“이게 모두 미쉘이 차니와 연결된 덕분이지.”

둘이 요란스럽게 떠들더니 마지막에는 끌어안고 난리를 쳐댔다.

“차니, 정말 고마워.”

쎄실의 인사에 강찬은 웃기만 했다. 이건 라노크가 만든 일이지 강찬은 뭘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른다.

미쉘은 확실히 센스가 있고, 프랑스 여자 특유의 방식이 있어서 흥분한 쎄실을 보면서도 투자금액이 얼마인지 묻지 않았다.

저녁은 다 같이 근처의 일식집에서 회를 먹었다.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연습생들의 부탁에 따라 정한 메뉴였는데 이하연처럼 거만하게 구는 년이 없어서 분위기는 더없이 화기애애했다.

“언제쯤 TV에 나오냐?”

“다음 주에 예고편 시작하고 열흘 뒤부터 방영이야. 여기 소연이는 물론이고, 저쪽에 연희하고 은정이는 예고편에도 나와.”

말만 들어도 좋은지 연습생들이 헤벌쭉한 얼굴로 미쉘을 보았다.

한참 재미나게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전에 알리온 일이 있어서인지 직원들은 강찬을 보며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은소연이었다.

‘저년이 뭔가 있는데?’

강찬은 이따금 부딪치는 은소연의 눈빛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밥 먹는 도중에 ‘너 왜 그래?’ 하기도 그렇고. 나중에 계약 해지하고 다른 곳에 가겠다면 그건 또 할 수 없는 일이다.

후식도 먹고 대충 식사가 끝났다.

“미쉘. 씬디가 지금 끝난대. 우리 가서 오랜만에 와인 한잔하자. 내가 살게.”

“그럴까? 보스는 어때? 우리 같이 가자.”

“난 이만 들어가 봐야 돼. 당분간은 집에 좀 일찍 들어갈 일이 있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미쉘은 끈적이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다.

강찬이 먼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길었던 월요일의 마무리였다.

***

화요일은 아침을 먹고 강대경과 유혜숙을 배웅한 후에 컴퓨터를 켰다.

아직 양진우가 남은 거다.

양진우와 서정그룹에 관한 인터넷 검색을 하는 동안, 어제 강남의 서정그룹 사옥에서 여직원이 투신자살했다는 짤막한 보도가 나왔다.

‘우울증?’

평소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동료직원의 진술이 전부였다. 양진우를 빨리 처리 못 하면 강찬도 우울증에 걸리게 생겼다.

강찬이 심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강찬 씨. 고건우입니다.”]

“네. 총리님.”

[“우리 정부는 라노크 대사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고 최대한 협조할 것입니다. 우선 그렇게 전해주시고, 공식적인 제안을 해주기를 희망한다고 전해주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전 연락만 전했을 뿐인데요.”

고건우와 전화를 끊은 강찬은 바로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건우의 뜻을 먼저 전했고, 다시 증권사의 쎄실 번호를 별도로 알려주었다.

[“공식적인 요청은 목요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 발표가 조금 뒤로 미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요청이 있게 되면 유니콘 프로젝트가 공공연하게 알려질 것입니다. 중국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았습니다, 대사님.”

전화를 끊은 강찬은 모니터에 올라 있는 양진우의 자료를 노려보았다.

우선 커피를 한잔 마셔주고?

강찬이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이는 동안, 주문 담당자를 확인하기 위해 쎄실이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간단하게 대답 세 번으로 통화가 끝났다.

강찬이 커피를 들고 책상으로 움직일 때였다.

빌어먹을 전화가 또 울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전화로 사람을 잡는다.

“여보세요?”

[“강찬 씨. 김형정입니다.”]

“아! 팀장님. 좀 어떠세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괜찮으면 차나 한잔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어디로 갈까요?”

[“전에 만났던 사거리 커피전문점에서 뵙지요. 괜찮으시면 석 선생도 함께 나오시죠. 제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시간은요?”

[“강찬 씨는 언제가 편합니까?”]

“팀장님이 편하게 시간 정하세요.”

[“그럼 11시쯤으로 할까요?”]

“그렇게 하죠.”

아직 움직이기 어려울 텐데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더 누워있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강찬은 우선 석강호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날카롭게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이상하게 이 개새끼가 자꾸만 뒤로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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