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98화 (9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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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이상하게 뒤로 밀린다.

김태진, 석강호와 함께 점심을 먹은 강찬은 곧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보고 있는데 김미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왔어?]

아차! 사흘쯤 뒤에 집에 온다고 했었다.

통화버튼을 눌렀고, 아파트 벤치에서 김미영을 만났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핼쑥한 얼굴이었다.

“얼굴이 이게 뭐야?”

“공부해야 돼. 프랑스 유학 꼭 갈 거야.”

강찬은 물끄러미 김미영을 보았다. 이 녀석은 함께 유학을 가기 위해 묵묵하게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던 거다.

“미영아. 우리 그냥 서울 대학교 갈래? 너만 괜찮다면 그렇게 준비하자.”

“서울 대학교?”

“응. 사실 서울 대학교에서도 입학 허가받았어. 아마 2학기에 통지 올 거야. 특례입학인가? 그런 걸로.”

“정말?”

“정말. 그러니까 조금 여유를 가져. 어차피 너도 서울 대학교 입학해서 1학년 마치고 유학 준비한다고 했잖아. 프랑스어 공부는 그때 상황 봐가면서 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먼저 보였고, 다음으론 강찬의 배려가 고마운 얼굴이었다.

불쑥 컸다.

힘겨운 시간이 김미영의 얼굴에 성숙함을 끌어낸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김미영을 강찬이 안아주었다.

강찬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딱딱하게 굳어서 어색하게 안기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강찬의 상체를 힘껏 안을 만큼 적극적인 포옹이었다.

강찬도 김미영도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아파트 앞이다. 동네 아줌마들은 마치 텔레파시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처럼 바로바로 말을 퍼트린다.

강찬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김미영의 눈빛이 간절한 바람을 전해왔다.

쪽.

강찬은 김미영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흐흐흐흐. 나, 서울대학교 합격 통지받으면 우리 또 여행 가자.”

“그래.”

김미영의 몸이 뜨거워지는 만큼 어딘가가 자꾸만 반응을 일으키려 했다. 급하게 석강호를 떠올리는 순간,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잠시 뒤에 강찬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김미영이 아쉬운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들어가. 기운 내고. 알았지?”

“응! 여행가기로 한 거, 잊으면 안 돼.”

“알았다.”

“안녕!”

김미영을 들여보내고 일요일이 끝났다.

***

월요일에는 두 명의 여직원이 강유재단에 출근했다.

한 명은 재단관리를 위한 파견 근무, 이은명이란 요원은 위탁 교육 형태로 3개월만 출근하게 해달라는 총리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강유모터스에는 영업사원 여섯이 요원이다.

한 명은 반드시 사무실을 지키고 외근을 나간 직원들도 전부 근방에서 대기한다. 게다가 한 명은 근처에 산다는 핑계로 강대경과 같이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강찬은 어느 정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유혜숙은 강유재단의 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행복해 보였다. 강찬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면서도,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에 만족한 얼굴.

요원의 배치가 끝나자, 강찬은 양진우의 자료를 검색하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일이 많이 힘드세요?”

강찬은 유혜숙의 어깨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었다.

“아! 아!”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어깨를 비틀었지만, 유혜숙은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엄마가 일하게 돼서 아들 못 챙겨 주면 어떡하지?”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이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무리하지 마시구요. 아셨죠?”

“고마워, 아들.”

유혜숙이 팔을 돌려 강찬의 손을 다독여주었다.

“새로 온 직원들이 워낙 잘해 줘서 그나마 다행이야.”

“잘됐네요.”

“아들 덕분이야. 고마워, 아들.”

이럴 때 뭔가 멋진 답이 있을 것 같은데 강찬은 그냥 미소만 짓고 말았다.

강대경이 귀가하고, 셋이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는데 전화기에서 파란 불빛이 깜박였다. 진동음이 TV 소리에 묻혔던 건지 전화 온 줄을 몰랐다.

라노크였다.

강찬은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찬 씨. 라노크입니다.”]

“예, 대사님. 전화를 바로 받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내일 괜찮으면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라노크가 단순히 얼굴 보자는 건 아닐 테고.

“알겠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남산 호텔이 좋겠습니다.”]

이 양반은 남산 호텔에 뼈를 묻을 생각인가?

아무튼, 장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기는 어렵다.

[“11시 괜찮습니까? 점심이나 같이 하지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워낙 능구렁이라 속을 읽기는 어려웠다.

하긴, 귀찮게 짐작할 게 뭐 있겠나?

내일 점심때면 알 걸 말이다.

***

화요일 아침.

함께 출근하는 강대경과 유혜숙을 강찬이 배웅했다. 강유모터스의 옆 건물에 강유재단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들, 점심은 어떡하지?”

“낮에 프랑스 대사님과 같이 먹기로 했어요.”

“그래. 맛있게 먹고 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좋아서 강찬은 기분 좋게 유혜숙의 등을 다독였다.

“다녀오세요.”

두 사람이 출근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프랑스 대사와 점심 약속이 있고, 강대경과 유혜숙이 출근하는 주변에는 국가정보원 소속의 요원만 대략 20명 가까이 움직이는 거다.

그것도 당사자들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어차피 귀신처럼 알고 나타나 인사를 해댈 주철범을 생각하면 지금쯤 옷을 갈아입는 게 맞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옷을 막 꺼내 드는 순간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차니. 우리 드라마 수출하게 됐어!”]

대뜸 흥분한 미쉘의 음성이 들렸다.

“잘 됐다. 어디로 수출되는 건데?”

[“유럽 전체. 우리나라 드라마가 유럽 전체에 판매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잘 되면 드라마 완성 전에 투자금을 전부 회수할 수도 있어. 조만간 기사가 나갈 거야! 은소연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지 몰라, 아니, 꼭 그렇게 만들 거야, 차니!”]

이럴 때 근처에 없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분명 몸뚱이가 뜨거워져서 달려들었을 거다.

[“안 기뻐?”]

“왜 안 기뻐? 수고 많았다, 미쉘.”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직원들 응원하러 한 번 들러줘. 지난번 회식 때 못 와서 다들 서운해해.”]

“오늘도 방송국에 있어?”

[“오늘은 야외 촬영이 없어서 오후 4시경에 모두 끝나. 연습생들은 숙소에 돌아가라고 해도 남아서 연습 더하는 상황이고, 소연이까지 악착스럽게 대본 리딩하니까 다들 사무실에 있을 거야.”]

연습생들이 펄쩍펄쩍 뛰던 모습이 떠올랐다.

“봐서 전화할게. 점심 약속이 끝나봐야 알아.”

[“이일 시작하면서 이렇게까지 될 거란 기대 못 했었어. 고마워, 차니. 정말 고마워.”]

“일은 미쉘이 다 했는데 뭘! 이따 봐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강찬은 셔츠와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무사히!

고급 양복인데 벌써 몇 번째 세탁하는지 세기도 어렵다. 오늘만큼은 멀쩡하게 입고 돌아왔으면 싶었다.

***

10시 20분경 호텔에 도착했다.

이젠 아예 익숙하기까지 해서 강찬은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로비 라운지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보다 주철범이 먼저 나타났다.

이 새끼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나오셨습니까? 형님.”

“야! 인사 좀 평범하게 하고 그놈의 형님 소리 좀 하지 마.”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형님만큼은 끝까지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지랄한다.

“스위트 룸 하나 예약해 주라.”

“알겠습니다, 형님. 담배 하실 거면 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커피는 그리 옮겨달라면 됩니다.”

“번거롭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주철범이 프런트로 움직이자 직원이 커피를 가져왔다.

다라라라락.

그런데 처음 보는 여직원이 어찌나 손을 떠는지 커피잔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딸카닥.

하마터면 잔이 쓰러질 뻔했다.

“죄송합니다!”

잔을 놓느라 숙인 여직원의 가슴에 ‘수습사원 이지연’이라는 명찰이 달려있었다.

지배인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강 선생님. 어제 행사가 있어서 오전에 수습직원만 두 명 나왔는데 마침 제가 다른 곳을 보는 동안 실수한 모양입니다. 새것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이 이지연에게 눈짓을 했다.

받침대에 커피 좀 흘린 것치고는 과한 반응이다.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 그리고 자꾸 이러시면 불편해서 여기 못 와요.”

강찬이 풀썩 웃으면서 사양할 때 주철범이 다가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형님?”

“내가 잔을 받다가 좀 흘린 거야. 앉아라. 커피 마실래?”

“시간 괜찮으십니까?”

“너랑 차 한잔 하려고 조금 일찍 왔다.”

“감사합니다, 형님.”

주철범이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꺾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커피 좀 주세요.”

지배인이 고마운 눈빛으로 이지연과 함께 돌아간 다음이다.

“1901호로 준비했습니다, 형님.”

놈이 카드키를 공손하게 건넸다.

전에 샤흐란의 옆구리를 갈랐던 방 같은데 그게 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광택이는 요즘 어떠냐?”

“날카로우십니다, 형님. 주변 조직들까지 광택이 형님 눈치 보고 있을 정도입니다.”

주철범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때 지배인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도석이 상태는?”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습니다, 형님.”

이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강찬이 커피를 마실 때 전화가 울렸다.

쎄실이었다.

“여보세요?”

[“차니! 차니 계좌로 500억이 송금됐어!”]

“그래? 그게 입금된 모양이네.”

[“도대체 차니는 정체가 뭐야? 지금 지점장이 차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난리야!”]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미안! 꼭 전화해 줘.”]

“알았다.”

라노크가 말했던 금액이 입금된 걸 거다.

세상 참.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전혀 실감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언짢은 소식입니까?”

내 인상이 그랬나?

적당히 둘러대고 커피를 마실 때 전화가 울렸다.

“대사님. 강찬입니다.”

[“강찬 씨. 5분 뒤에 도착입니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주철범에게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현관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검은 승용차와 승합차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강찬 씨.”

“대사님.”

둘이 거창하게 프랑스식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객실로 향했다.

차와 시가, 그리고 재떨이가 준비되었고, 비서관과 요원들이 거실의 안쪽으로 움직였다.

“안 좋은 소식 하나와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서양 놈들은 왜 이런 표현을 즐겨 쓸까?

전혀 재미없는데 말이다.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입에 문 채로 라노크가 입을 열었다.

“먼저 안 좋은 소식은 지난 작전에서 사망한 한국 특수팀의 시체를 중국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사진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절차만 몇 가지 거치면 조만간 대대적인 보도와 함께 한국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쯧!

국제적 이해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죽은 요원들과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된 요원들, 그리고 이 작전을 총괄했던 국가정보원은 국제적인 망신을 피할 수 없게 생겼다.

강찬은 당장 김형정이 가장 걱정되었다.

“기쁜 소식은 뭔가요?”

강찬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던진 질문에 라노크가 입을 열었다.

“어제 유럽의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워낙 구렁이들이라 어떤 내용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찬은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 대사님. 오늘 입금하셨던 모양인데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습니다. 대사님께 감사드리고, 친구분들께는 제가 고마워하더라고 꼭 전해주십시오.”

“강찬 씨는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별로 실감 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라노크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유니콘 프로젝트의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틀쯤 지나면 신문에 짐작 기사가 뜨고 예상 국가 명단이 떠돌게 될 것입니다.”

유니콘 프로젝트가 정말 이루어지는 건가?

강찬은 멍한 느낌으로 라노크를 보았다.

“가능한 한 빨리 국무총리를 직접 만나서 뜻을 전하시고, 협조요청을 하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협조요청이요?”

찰칵!

라노크가 라이터를 들더니 이제야 시가에 불을 붙였다.

뻐끔. 뻐끔.

구렁이답게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불을 붙인다.

“중국의 의도는 한국정부와 나를 곤경에 빠트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니콘 프로젝트의 발표를 한국에서 할 생각입니다. 유럽과 러시아의 유니콘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한국으로 올 생각이지요. 이렇게 되면 중국은 예정했던 보도도 철회하게 될 것입니다. 강찬 씨, 협조요청을 해주시겠습니까?”

강찬은 풀썩 웃으며 라노크를 보았다.

“제가 우리 정부에 엄청난 공을 세운 것으로 만드시려는 거네요. 혹시 따로 바라시는 것이 있나요?”

“하하하하.”

이렇게 웃는 라노크를 보는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 각국의 정보 담당자들까지 모조리 움직입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지요. 그 앞에 강찬 씨를 세우고 싶습니다.”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인 라노크가 말을 이었다.

“강찬 씨. 유니콘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발표되면 올해 안에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외국자본이 50조쯤 됩니다. 거의 모든 회사가 한국에 지사나 조립 공장, 또는 물류센터를 짓고자 할 것입니다. 당장 한국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가치가 최소 3배 이상 오르게 되지요.”

이건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궁금한 눈빛을 띠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 부동산을 가진 부자들만 더 잘살게 되는 거 아닌가요?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지구요.”

라노크가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기업들은 한국인 사원을 고용할 필요가 있고, 그런 기업들은 인재들을 선점하기 위해, 당연히 주거, 그리고 급여, 후생복지를 신경 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한국 기업들도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지요. 또 있습니다.”

강찬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보며 라노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기업에 속해 있던 중소기업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손을 잡을 기회를 얻습니다. 한국 내 그룹이나 재벌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열립니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원들도 급여만으로 지금보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조일권이 말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강찬은 어렴풋이나마 조일권이 지껄였던 것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엄청난 세금 수입이 생깁니다. 극빈층이나 노약자들에 대한 복지가 지금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굉장하군요.”

“올해는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몇 배나 더 많은 경제적 효과가 일어날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암살까지 작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일본은 이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아 상대적 몰락을 맞을 테니까요.”

라노크의 설명 덕분에 강찬은 지금까지 왜들 이렇게 악착스럽게 매달렸는지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협조요청을 해주시겠습니까?”

“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무척 좋아하겠군요.”

“모르긴 몰라도.”

라노크는 들고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을 이었다.

“며칠은 잠을 못 잘 겁니다.”

강찬이 풀썩 웃자 라노크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김형정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점심은 방에서 주문해서 먹었다.

화제는 주로 최근 안느의 활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생각 밖으로 잘 해내는 모양인지 말을 전하는 라노크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디저트를 먹을 때였다.

“강찬 씨. 당장 돈을 쓸 일이 있습니까?”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는 터라 강찬은 흘깃 시선만 주었다.

“내일 중으로 주식에 200억, 선물에 300억쯤 투자하세요. 각각 7일 후에 매각하시는 게 가장 현명합니다.”

“주식은 알겠는데 선물은 또 뭡니까?”

라노크가 여유롭게 웃었다.

“거래하는 증권사에 말씀하시면 알고 있을 겁니다. 대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냥 놔 두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데다, 돈 욕심도 없고, 유니콘 발표를 틈타서 그런 눈먼 돈을 벌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라노크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가 꼭 그랬다.

“내가 7일을 말씀드린 이유는 그때까지도 주식과 선물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간절한 심정으로 주문을 넣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최소한 몇 배의 수익을 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찬 씨는 일주일의 투자로 지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지만,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됩니다. 주문이 어려우시면 증권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 보좌관이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탁월한 판단입니다, 강찬 씨.”

디저트 포크를 내려놓은 라노크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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