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97화 (9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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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끝까지 가보자.

식당을 정한 최종일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세종로 빌딩, 2107호, 환자 1명, 병원에 데려가고 경찰이나 검찰이 개입하지 못하게 해.”

정말 내용만 전하고 통화가 끝났다.

“경찰을 부를 때도 거기에 전화하는 거냐?”

“본부에서 직접 연락하면 경찰이 알고 나오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사이 광화문을 지나 10분쯤 가자 식당이 나왔다.

한옥을 세련되게 개조한 구조였다.

“어서 와요.”

털털한 노인네가 거실 안쪽의 문을 가리켰다.

드르륵.

창호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석이 네 개 있었다.

“잠시 계셔.”

강찬은 그냥 편하게 안쪽에 앉았다.

빤한 사내놈 넷이 들어와서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꼴을 만들기는 싫었다.

최종일이 맞은편에 앉았다.

“여긴 주문 안 받아?”

“먼저 전화했습니다.”

언제 했지?

“담배는?”

“피울 수 있습니다. 재떨이도 있구요.”

“그냥 물어본 거야. 밥 먹고 피우려고.”

그냥 가정집 방에 앉은 느낌이었다.

“요원들에게 못할 짓 했다. 밥 먹고 그냥 털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말을 마쳤을 때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상이 들어왔다.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한정식이라더니?

이런 건 백반이라고 하는 게 맞다.

강찬이 수저를 들려고 하는 차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강찬. 나다.”]

“왜?”

[“너 신사동에서 일 있었냐?”]

“개인적인 거야. 회사에 속한 해결사 놈들인데 뭘.”

[“분당하고 관련된 건 아니지?”]

어딘가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회사 해결사 놈들이라니까.”

[“알았다. 그중에 생활하는 놈들이 서넛 끼어서 그래. 말 듣는데 딱 넌 줄 알았다. 괜찮으면 내일쯤 잠깐 나와라.”]

“내일은 그렇고. 다음에 한 번 보자.”

[“알았다.”]

통화를 끝내고 강찬은 된장찌개를 한 수저 떠서 먹었다.

“죽이네!”

“잘한다는 소문은 있습니다.”

달각. 달각.

그냥 빤한 소리나 하며 먹는 식사다.

그래서인지 30분 만에 식사가 끝났다.

이두범이 나가더니 커피와 재떨이를 가져왔다.

담뱃불을 붙이고 난 다음이었다.

“점심은 제가 사겠습니다.”

“왜 그래? 미안해서 내가 사는 거라니까.”

“그냥 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뭔가 아쉬운 소릴 할 게 있나?

눈치를 봐서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건 내가 사. 차라리 다음에 한번 사면 되잖아.”

최종일이 웃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말 난 김에 붕대나 갈고 가자.”

이두범이 차에 가서 붕대와 약을 가지고 와서 넷이 모조리 깨끗한 붕대로 갈았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양진우 족치러 가볼까 하는데?”

“양진우는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까 조일권에게서 받은 자료를 좀 더 검토하시고 기회를 봐서 아예 도망가지 못할 증거를 잡고 만나시는 게 좋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조일권 때처럼 쉽게 만나기도 어려울 거고, 마주친다고 해도 최종일 말대로 처리가 만만치 않다.

“쯧! 그래. 오늘은 이만하고 자료 검토하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강찬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꼭 6만 원 나왔다.

가게 바깥에 있는 항아리 재떨이 앞에서 사진을 태운 다음, 이두범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강찬은 곧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윤봉섭의 탁자에 있던 사진을 떠올리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안 찾아갔더라면 어쩔뻔했나?

하여간 양진우를 빨리 해결하는 게 좋다.

때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찬은 곧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 있던 강대경과 유혜숙이 강찬을 맞았다.

“아들 왔어?”

“왔니?”

“아버지, 일찍 오셨네요?”

“토요일에 출근한 것도 억울한데 일찍 들어와야지, 점심은? 손은 또 왜?”

“어머, 아들! 손 다쳤어? 많이 다친 거야?”

“점심은 먹었구요, 이건 좋은 일 하다 살짝 긁힌 거예요.”

“좋은 일을 하는데 왜 다쳐? 조심 좀 하지.”

뭐라 해도 좋았다. 유혜숙을 보고 있으면.

강찬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조일권에게서 받은 USB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

“하아!”

이런 개새끼!

처음엔 송금한 금액들을 표로 정리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상반기 결산, 고정비, 유동자산 따위의 말을 모를 리가 있겠나.

혹시나 이런 표에 몰래 적은 건 아닌가 싶어서 뒤로 넘겨 보았는데 제목은 계속해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의 연속이었다.

강찬은 쓰게 웃고 말았다.

대가리 쓰는 놈을 상대로 확인 안 한 게 죄다.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서류를 펼친 강찬은 또 한 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계열사 별 상반기 결산.’ 따위의 제목 아래 매출 목표액과 달성액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 개새끼!

‘이걸 그 자리에서 확인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지?’

다른 건 몰라도 목을 걸고 깡다구를 부린 거다.

이걸 병원으로 찾아가?

어차피 최종일이 입원시킨 거니까 빨리 가서?

쯧!

강찬은 당장 유혜숙을 지킨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양진우를 상대할 때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아들! 저녁 먹자!”

혹시 눈빛이 번들거릴까 봐 강찬은 두 번이나 눈을 비빈 후에 거실로 나갔다.

***

일요일 아침을 먹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은 다른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유혜숙의 전화가 연신 울렸고, 매번 쉽게 끊는 법이 없었다.

“인기 폭발이신데요?”

“아빠는 엄마가 저렇게 바쁜 모습도 나쁘지 않다.”

강대경이 안방을 흘깃 보았다.

“다른 일 없는 거지?”

“예.”

잠깐 망설였다.

유혜숙을 지키는 데 강대경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강대경의 걱정하는 눈빛을 보는 순간, 강찬은 그냥 마음을 굳혔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책상에 올려놓은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네 차례인가 보다. 얼른 가서 받아.”

강찬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여보세요?”

[“뭐하쇼?”]

석강호다.

“그냥 있어.”

[“갑시다. 이럴 땐 역시 미사리 아니겠소? 가서 커피 한잔 때려주고 점심 먹고 옵시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나갈 곳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러자. 바로 나가면 되냐?”

[“아파트 앞이오.”]

강찬은 풀썩 웃으며 전화를 끊은 다음, 최종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종일입니다.”]

“미사리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올 건데 어머니가 걱정돼서 전화했어. 나 따라오지 말고 어머니 좀 지켜줘.”

[“어제 보고해서 오늘부터 어머님과 아버님 쪽으로 요원들 보강했습니다. 어머님 전담하는 요원만 모두 12명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중 2명은 어머님께 소개를 부탁드릴 참이었습니다.”]

“소개를?”

“20대 중반과 후반의 여자 요원입니다. 한 명은 총리실에서 재단 관리를 위해 파견했다고 하시고, 다른 한 명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근접 경호를 했으면 싶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6명 입사해 있습니다.”

강찬은 정말 커다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고, 가슴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걱정이 반쯤 녹는 느낌이었다.

“고마워. 오늘은 집에만 계신다니까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서 내일 소개하는 걸로 하지.”

[“석 선생님 만나십니까?”]

“응.”

[“그쪽 경호 요원들 얼굴이 보여서 그렇습니다.”]

“그럼 다 같이 인사하고 커피나 한잔 할까?”

[“저희 전부 시말서 쓰거나 감봉당합니다.”]

강찬은 풀썩 웃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청바지에 편한 셔츠를 걸쳤다.

“아버지. 선생님 잠깐 뵙고 올게요.”

“좋은 일 있었니?”

“예! 정말 좋은 일이 하나 있었어요.”

강대경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조심하는 거 알지? 엄마는 통화 중이니까 아빠가 얘기하마. 어서 가봐라.”

“다녀오겠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파트 입구에 석강호가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차에 올랐다.

“좋은 일 있었소?”

“그런 건 아니고.”

차가 움직이자 강찬은 어제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했다.

“뭐요? 그런 일에 날 빼놨다는 거요?”

이 새끼는 윤봉섭의 계획과 조일권의 잔머리에 화를 안 내고 엉뚱한 걸로 지랄이다.

“야! 그런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문제요!”

“사람 말을 듣긴 들은 거냐?”

강찬이 기가 막힌 웃음을 터트릴 때쯤 미사리에 도착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담배에 불을 붙이자, 새삼 석강호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주까지가 방학인 건 아쇼?”

“그러냐?”

상관없다.

2학기에는 라노크가 학교를 빼준다고 했다.

커피가 나와서 한 모금 마시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새끼를 잊고 있었다.

“여보세요?”

[“대장. 스미든이오.”]

“뭔 소식 좀 있냐?”

[“다 만나봤고 그중 한 명은 잠자리까지 했소.”]

벌써?

제법 성과가 있었는데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래서 얻은 게 있냐?”

[“죽여줍니다. 일주일 안에 네 명과 잠자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대장. 이 임무 환타스틱합니다. 스릴도 있고.”]

강찬은 애꿎은 강을 노려보았다.

잠을 자라고 보낸 게 아닌 거다.

“스미든. 그래서 얻은 정보가 있냐고?”

[“노우, 대장. 중간보고입니다.”]

“알았다. 혹시 정보 생기면 전화해라.”

전화를 끊은 강찬이 이를 꽉 깨물자, 석강호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뭐라는데 그러쇼?”

“한 명하고 잠자리까지 했다는 데 아직 정보 얻은 건 없단다.”

“병신.”

강찬이 커피를 들었을 때 석강호가 뱉은 욕이다.

이 새끼는 이상하게 대원들과 친하지 않았다.

늘 혼자서 전체를 따돌리다시피 했는데 그런 만큼 유독 강찬을 따랐었다.

“다른 일 없으면 김 팀장님한테 한번 가봅시다.”

“그건 생각 좀 해보자.”

강찬 역시 그 생각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작전에 실패해서 대원들 반이나 죽고 포로로 있다가 나온 거다. 지금쯤 죽고 싶은 심정일 텐데 불쑥 가는 건, 글쎄? 나라면 당장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거 같다.”

“그건 그러네.”

석강호가 커피잔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김태진 대표가 너 한 번도 연락 없다고 서운해하더라. 밥 한번 먹자고 했더니 목 빼고 기다린다고 하고.”

“그럼 지금 전화해 볼까요?”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서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보세요? 대표님? 석강호입니다.”

반갑게 통화를 시작하고 몇 마디 하지도 않아서 석강호는 미사리의 위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오세요.”

전화를 내려놓은 석강호가 “이리 온답니다.” 했다.

일단 하루는 쉰다.

강찬은 멀리 강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양진우, 이 새끼를 어떻게 죽이지?

***

서정그룹 회장 양진우의 공식 집무실은 강남 테헤란로의 서정그룹 사옥 29층이다.

천 평에 가까운 한 층을 집무실로 사용하는 데 일요일인데도 비서실은 전원 출근해서 직원 13명이 무거운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접견실만 모두 다섯 개, 접견 대기실 둘, 그리고 회의실 셋, 그 외에 책상이 있는 집무실과 샤워시설을 갖춘 침실, 간단한 기구와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휴게실이 있었다.

양진우는 불편하고 못마땅한 얼굴로 제1 접견실에서 곽도영과 마주앉았다.

“이 나라에 법이 있긴 있소? 서정그룹의 비서실장이 개인 집무실에서 폐인이 되다시피 당했는데 그걸 지켜보고만 있으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들이오?”

곽도영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 의원이 얼마나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두 번씩이나 곽 보좌관만 보낸 것으로 의중은 알았소. 이 시간 이후로는 나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게 전해 주시오.”

“회장님,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일은 아닙니다.”

양진우가 입술 한쪽을 쳐올리며 언짢은 미소를 지었다.

“허 의원의 뜻이 이런 거라면, 난 나대로 살면 돼. 만약 어설픈 이유로 날 위협한다면 나도 혼자 죽지는 않을 자신이 있고. 이 시간 이후로는 내가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당분간 연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전해주시오.”

말을 마친 양진우가 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별안간 곽도영을 노려보았다.

“세상 참! 대선도 아닌데 몇십 명 들여오겠다고 가져간 돈이 100억이요! 100억! 그래놓고 매번 같이 앉았던 조 실장이 저렇게 되었는데 참으라고! 100억을 저놈 모가지에 걸면 오늘 밤에라도 쟁반에 들고올 놈이 산더미요!”

“회장님.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재현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일이 망가진 겁니다.”

“문재현! 문재현! 언제까지 그 근본 없는 놈을 핑계로 댈 거요! 당장 이 정도라면 그놈의 철도가 연결되지 않더라도 정권을 찾아올 수나 있겠소! 공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 양진우가 앉아 있는 건물에서 노조가 생기는 마당이요! 개가 밥상에 마주 앉아서 수저를 내놓으라고 하는 판에 지난 몇 개월 동안 200억이 넘는 돈을 가져가 놓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또 문재현이요!”

양진우의 목에 핏대가 튀어나왔다.

작정했단 뜻이다.

이미 허상수에게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국정원장 자리만 넘어오면 모든 게 끝납니다.”

“언제? 내가 조 실장처럼 반병신이 돼서 병원에 누워 있은 다음에? 난 이미 손을 썼소.”

“회장님.”

“어디서 눈을 부라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곽도영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 말씀은 드리면 안 되는데 회장님께서 혹시 오해가 깊어지실까 봐 드립니다.”

창을 향해 고개를 튼 양진우가 눈알만 움직여 곽도영을 보았다.

“지금 의장님과 의원님, 두 분께서 중국에 가 계십니다.”

“흥! 점심때 중국요리가 생각난 모양이지?”

“문재현이 특수팀을 보냈었습니다.”

양진우의 고개가 검지 길이만큼 곽도영을 향해 움직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운데 그 일로 중국 고위관리와 의장님께서 극비리에 준비하시던 일이 깨진 것으로 압니다.”

“결국, 내 돈을 날려 먹었단 말이로구만!”

“한국 특수군 소속 시체 13구를 보관 중입니다. 조만간 인터넷과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예정입니다. 신원이 전혀 나오지 않지만, 얼굴이 보도되면 아는 사람 하나 안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문재현이 보낸 것으로 파악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재현을?”

“문재현은 쉬운 놈이 아닙니다. 대신 이번만큼은 국정원장이 물러나야겠지요. 중국도 그 정도 선에서 더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할 겁니다. 의장님과 의원님 두 분은 지금도 중국에서 바삐 움직이고 계십니다.”

어느 틈에 양진우는 곽도영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아무튼! 지켜는 보겠소. 그리고 내가 이미 손을 써 놓은 것이 있으니, 그 점은 알고 계시오!”

“회장님의 현명한 판단 기대하겠습니다.”

곽도영이 고개를 숙이자 양진우가 협탁 서랍을 열었다.

“여기! 이후로 못 보게 되더라도 곽 보좌관이 내게 보인 마음이 고마워서 드리는 거요.”

양진우가 곽도영의 앞으로 봉투를 밀어놓았다.

“회장님. 의원님의 열정을 생각해 주시고, 기쁜 소식이 생기면 그때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넣어두라니까, 그러네. 그거 거절하면 나 곽 보좌관 정말 안 봐.”

곽도영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후에 봉투를 품에 넣었다.

“가보겠습니다.”

곽도영이 절도있게 인사를 마치고 접견실을 나갔다.

“흐-흠.”

양진우는 한숨을 내쉰 다음, 협탁에 올려놓았던 전화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됐어? 샤흐트 브니므? 그래! 그렇게 명성있는 조직을 이용해야지! 돈이나 빼먹으려던 조 실장 꼴이 되어선 안 돼. 그래! 서양놈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동양인이 들어오는 게 맞지! 서두르되 단단하게!”

만족한 얼굴로 통화를 마친 양진우는 협탁에 올려진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잠깐 들어와.”

[“알겠습니다, 회장님.”]

달칵.

문이 열리고 단정한 복장의 여직원이 양진우 앞으로 걸어왔다. 아직 앳된 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양진우가 창가로 움직이자 여직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해? 이리 안 오고.”

“네. 회장님.”

고개를 숙인 채로 창가로 걸어간 여직원을 양진우가 거칠게 잡아당겼다.

콰앙.

창에 부딪힌 여직원의 뒤에서 스커트를 걷어 올린 양진우는 그보다 더 급하게 여직원의 속옷을 잡아내렸다.

“얼른 숙여!”

한 손은 여직원의 허리를 당기고, 다른 한 손은 허리띠를 푸느라 바빴다. 그래서 양진우는 수치심에 눈을 꼭 감은 여직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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