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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안느에게도 이럴 겁니까?
아파트 입구에 선 강찬은 집이 있는 곳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어딜 가는지 실감 나지 않았다.
미친 짓인지 모른다.
강찬은 두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대로 두면 계속 테러가 자행된다는 것과 잡혀 있는 아군을 그대로 두는 건 함께 싸우던 전우가 할 짓이 아니라는 것.
택시를 타고 신사역까지 이동했다.
“여기요!”
석강호가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저기 한 군데 열었습디다. 갑시다.”
강찬이 피식 웃으며 석강호가 가린킨 곳으로 걸었다.
여름이라고 해도 새벽에는 따듯한 커피가 그리웠다.
“좀 잤소?”
“치킨 시켜 먹었다. 너는?”
“마지막이 될지 몰라서 마누라 안아줬소.”
강찬은 풀썩 웃으며 흡연실에 들어가 바깥 창문을 활짝 열고 앉았다. 잠시 후에 석강호가 두 잔의 커피를 가지로 자리로 왔다.
“지금도 안 늦었다.”
“쓸데없는 소릴 자꾸 해요?”
“너나 나나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
“그건 그렇, 앗! 뜨거!”
“정신 차려.”
석강호가 손등으로 주둥이를 쓱 문대고 불만스럽게 안쪽을 보았다.
“비행기 타면 나아질 거요. 마누라 안고 나서까지 생각해 봤소. 그런데 혼자 남아서는 견딜 자신이 없습디다. 이왕 가기로 한 거니까 이제 다른 소리 마쇼.”
“알았다. 여기까지만 하자.”
석강호가 한쪽 얼굴을 우그러트리며 담배를 건넸다.
찰칵.
“후우. 다예.”
“예.”
“이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어.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기본 작전은 완전히 무시할 거다. 비행기 안에서 브리핑 끝난 다음, 마지막 도주 지역을 따로 설정할 테니까 잘 기억해 둬.”
“알았소. 거, 오랜만에 눈빛 보기 좋소.”
3시가 다가오자 점점 작전에 나선다는 실감이 들었다.
강찬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간이 켜진 사무실의 불빛과 멀리 보이는 아파트,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까지.
‘돈가스나 한번 먹어둘걸.’
강대경과 유혜숙, 김미영과 미쉘.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커다랗게 숨을 토해냈다.
빈털터리로, 아무것도 없이 프랑스로 건너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몸 상태는 좋았다.
아프리카에서 있을 때보다 월등히.
아직 어린 몸이라 그런 건가 했지만, 그보다는 유헌우의 말대로 회복력이 좋아진 것과 관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만다행인 것은 석강호가 꾸준히 운동했다는 거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검은색 승합차가 역 앞에 멈춰 섰다.
“가자.”
“알았소.”
석강호의 눈빛이 다예루의 것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드르륵.
강찬이 다가가자 승합차의 문이 열렸다.
“무슈 강. 타십시오.”
요원 하나가 밖을 살피며 고갯짓을 했다.
둘이 올라가 앉기 무섭게 차가 출발했다.
이럴 때 말은 필요 없다.
무심하게 밖을 바라보는 동안 승합차는 무섭게 달렸다. 실제로 오산까지 30분 만에 도착할 정도였다.
입구에서 운전을 맡은 요원이 신분증을 제시하자 안쪽은 살피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승합차는 곧바로 활주로 안까지 들어가 비행기 앞에 멈춰 섰다.
C295 군용 수송기였다.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요원이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강찬은 피식 웃어주고 차에서 내려 곧바로 수송기에 올랐다.
C295는 조정석을 제외하고 뒤쪽은 그저 텅 빈 공간이다. 오늘은 양쪽 벽에 위아래로 간이 침상이 있었다.
비행기 문이 닫혔다.
외인 부대원 12명이 아래쪽 간이침대에 쭉 앉아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가장 왼편에 앉은 놈은 제라르였다.
강찬과 석강호가 맞은 편 침대에 앉자, 곧바로 양쪽 날개에 하나씩 달린 프로펠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당신일 줄 알았습니다!”
“뭐라구!”
“당신이 나올 줄 알았다구요!”
비행기가 움직일 때 제라르가 악을 썼다.
석강호가 신기한 눈으로 히죽거리는 것을 제라르가 힐끔 보았다.
10분쯤 거칠게 달린 군용기가 고도를 잡자 경고등이 세 번 깜박였다.
제라르가 중앙으로 움직였다.
“얼굴을 봐둬라! 여기 이분이 이번 작전을 지휘한다! 편의상 우리 모두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코드명은!”
제라르가 불만스럽게 강찬을 힐끔 본 다음 악을 썼다.
“갓 오브 블랙필드! 같이 온 분은!”
제라르가 고개를 돌린 순간에 석강호가 “다예루!”하고 답을 했다. 말릴 틈도 없었다.
제라르의 입이 확실하게 “젠장할!”이라고 움직였다.
“다예루! 명심할 것은 오늘 작전은 정식 작전이 아니다!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빠지고 싶은 사람은 언제고 말한다! 질문 있나?”
대원들은 맞은 편에 앉은 강찬과 석강호를 다부진 시선으로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제라르가 검지와 중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대원 넷이 움직여 구석에 묶여 있던 사람 키보다 높은 박스를 중앙으로 옮겼다.
철컹. 철컹. 크르르릉.
바퀴를 고정한 후에 대원 하나가 박스의 양쪽 문을 열었다.
군복, 군화, 그리고 총기와 대검 등이 안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군복은 황색이었고,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강찬과 석강호는 말없이 몸에 맞는 군복과 군화, 그리고 소총과 권총, 대검, 탄창과 실탄을 꺼냈다.
옷을 갈아입을 때 제라르가 흘깃 강찬의 몸을 보았다. 비행기 안의 조명 때문에 흉터가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군복을 다 입은 강찬은 먼저 대검을 오른쪽 발과 왼쪽 허벅지에 하나씩 묶었다.
보위나이프.
영화 람보에 나왔던 것으로 유명해진 대검이다.
등 안쪽에 톱날 형태의 홈이 있고, 손잡이 안쪽에 낚싯줄과 바늘 서너 가지가 들었다.
다음은 권총이다.
강찬은 콜트 19, 두 자루를 오른쪽 허리와 왼쪽 다리에 묶었다.
철커덕.
이번엔 소총이다.
외인부대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겠다는 듯, M727 카빈이었다. M16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주문한 대로 개조했다고 해서 ‘아부다비 카빈’이라고도 불린다.
탄창 여섯 개를 좌우 허리 뒤쪽으로 두 개씩, 그리고 팔뚝에 하나씩 묶었고.
철컥!
하나는 총에 끼웠다.
무장을 마친 강찬이 시선을 들자 제라르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강찬은 베레모를 받아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썼다.
철컥. 철컥.
석강호 역시 강찬과 다르지 않았다.
제라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건넨 베레모를 석강호가 덥석 받아서 푹 뒤집어썼다.
그런데도 제라르는 계속 석강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한국말이다.
제라르가 의심스럽게 강찬을 보았다가 돌아섰다.
강찬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군용기를 타는 순간, 석강호는 완벽하게 다예루가 되었다.
제라르가 대원들과 함께 무장을 했다.
20분쯤 지나서 중앙에 있던 박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현지 시각, 오전 7시 다르항 군기지에 내려서 헬기로 오론까지 이동할 거요! 도착 예정시간은 8시요. 거기서 다시 산악이동 6시간이면 작전지역이오.”
정찰 후 저녁까지 휴식을 취한 후, 야간 작전을 하기에 적당해서 강찬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은?”
“작전 후에 무전을 하면 헬기가 바로 오기로 했소.”
헬기를 띄우면 아무래도 걸리기 쉽다.
고개가 갸웃했지만, 일단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3시간가량 꼬박 남았다.
“올라가 자라.”
“저 새끼 눈빛이 거슬려서 꿈자리 뒤숭숭하겠소.”
“그러게 왜 이름을 그걸 대?”
“그냥 나온 거요. 그거보단 병아리가 독수리 흉내 내는 게 귀엽소.”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한숨 자.”
강찬의 눈짓을 받은 석강호가 위쪽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무장을 마친 대원들이 하나둘, 편한 침대를 찾아 몸을 눕혔다.
앉아 있는 건 강찬과 제라르, 그리고 가장 어려 보이는 대원 하나였다.
강찬은 벗어놓은 옷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후우.”
담배 연기가 곧장 뒤쪽으로 날아갔다.
저격수 둘을 제외하면 중화기는 하나도 없다.
실력을 확실하게 알기 어려웠지만, 눈빛이 어수룩하지 않은 게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강찬은 두 팔을 무릎에 걸치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렇게 달려가도 시체만 찾을지 모른다.
배신당하는 것이 얼마나 피 끓는 일인지 아는 강찬은 김형정을 떠올리며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기분 좋은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지금이 꿈속 같기도 했다.
“후우!”
담배를 바닥에 눌러 끈 강찬이 시선을 들었을 때 제라르와 시선이 마주쳤다.
“커피 한잔 드릴까?”
“주면 좋지.”
제라르가 고갯짓을 하자 함께 앉아 있던 앳된 대원이 커피를 준비하러 갔다. 봉지 커피 특유의 향이 풍긴 후에 대원이 종이컵 세 개를 들고 왔다.
강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찰칵.
“후우.”
제라르는 대놓고 강찬을 보고 있었다.
“한숨 자둬.”
“하루쯤은 괜찮소.”
“구대장이 신경이 날카로우면 대원들이 불안해해. 느긋해라. 대신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바짝 날을 세워. 그래서 구대장의 표정과 말, 느낌으로 대원들이 알아서 쉬어도 되는지, 긴장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줘.”
제라르가 고개를 비틀고 강찬을 보았다.
강찬은 커피를 다 마신 종이컵에 담배를 끄고 아까 바닥에 놓았던 꽁초도 종이컵에 담았다.
슬쩍 피곤이 몰려왔다.
‘한숨 자둘까?’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강찬이 누워볼까 하고 간이침대를 돌아볼 때였다.
“내가 왜 이번 작전에 지원했는지 압니까?”
제라르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봐, 구대장!”
강찬이 피식 웃으며 그를 보았다.
“옆에 병아리 살리고 싶으면 얼른 재우고 한숨이라도 자둬.”
강찬은 야전침대에 몸을 눕혔다.
좌우 허리에 걸린 탄창을 최대한 옆으로 당겨서 몸을 고정시키고 베레모로 눈을 가렸다.
잠시 후에, 제라르가 “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찬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
카라라라랑. 우우우우웅!
비행기의 프로펠로 소리와 고도가 급격하게 바뀌는 느낌에 강찬이 눈을 떴다. 고개를 한번 털어내고 침상에 앉은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완벽하게 꿈처럼 느껴졌다.
강찬이 몸을 일으켜 생수병을 가지고 왔을 때 석강호와 제라르가 차례로 몸을 일으켰다.
기내의 불빛이 두 번 깜박였다.
“아후!”
석강호가 강찬의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털어댔다.
강찬은 생수뚜껑을 열어 석강호에게 부어줬다.
“푸후! 푸우!”
요란스럽게 세수를 마친 석강호가 다시 강찬에게 물을 부었다. 세수를 마치고 남은 물을 마셨다.
우우우우웅.
비행기의 몸체가 커다랗게 돌면서 옆에 두었던 종이컵이 맞은 편으로 넘어져 굴러갔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고 고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쿠웅.
바퀴가 닿았다.
어떤 새끼인지 조종 더럽게 못 하는 놈이다.
콰가가가가강.
활주로에 내려앉은 비행기가 악을 쓰듯 커다란 소리를 내며 속도를 줄였다.
강찬은 빠르게 대원들을 살폈다.
이럴 때 겁먹은 놈은 반드시 표시가 난다.
확실하게 막내놈을 제외하곤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크으으응.
비행기 문이 열렸다.
강찬의 고갯짓에 제라르가 대원들을 인솔해 뛰어 나갔다.
대기하는 헬기는 CH-47 치누크였다.
소시지 모양에 앞 뒤로 프로펠러가 달렸다.
석강호를 태우고 강찬이 마지막에 오르자 헬기는 곧바로 활주로를 떠올랐다.
대원 둘이 씨-레이션을 나눠주었다.
사양할 게 아니다.
강찬과 석강호는 안에 담긴 빵과 비스킷, 초콜릿 바와 캔에 담긴 과일까지를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두두두두두.
귀가 멍할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강찬은 제라르를 향해 소리쳤다.
“지도!”
입 모양으로 짐작한 모양이다.
제라르가 왼쪽 상의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며 다가왔다.
“왜 이제야 달라고 합니까!”
“대원들은 산악행군 중에 알려주면 돼!”
“왜요!”
강찬이 힐끔 제라르를 보았다.
“비상시에 피할 장소는 마지막 순간에 알려줘야 효과가 있어! 알면서 왜 물어봐!”
제라르가 기가 막힌 듯 웃었다.
강찬이 펼친 지도에는 오론과 수흐바타르 지역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붉은 점으로 적의 위치가 찍혀 있었다.
“구대장!”
강찬이 돌아보자 제라르가 고개를 가까이 가져왔다.
“여기 강 옆이 알파! 여기 산속이 베타다! 만약 문제가 생겨서 나와 떨어지면 이 두 곳 중 가까운 곳으로 피해. 근처에만 있어. 반드시 찾으러 간다!”
제라르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 당신 같소?”
“뭐?”
“한!국! 사람들은! 다! 당신 같냐고!”
강찬은 풀썩 웃은 다음 시선으로 석강호를 가리켰다.
“다예랑 조를 나눈다! 가능하면 알제리말 할 줄 아는 대원을 나눠줘!”
“미치겠군!”
‘다예루’를 ‘다예’라고 부른 건 실수다.
제라르는 느닷없이 따귀를 맞은 얼굴이었다.
“구대장!”
제라르는 대답도 안 하고 보기만 했다.
“궁금하고 의심스러운 건 나중에 따져!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대원들의 목숨, 그다음은 작전에 성공하는 거다! 내 목표는 지금 여기 있는 대원들이 작전이 끝난 후에도 전원, 이 헬기에 타고 있는 거야! 알았어?”
“알았소!”
“애송이는 꼭 옆에 붙이고 다녀!”
제라르가 이를 꽉 깨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두두두두.
조를 나누고 지형을 살피는 사이, 40분이 흘렀다.
끝없는 대지 사이에서 간간이 ‘게르’가 보이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0분쯤 지나서 처음으로 작은 강이 보였다.
강찬은 모처럼 날이 날카롭게 선 느낌이었다.
시선을 돌리다 눈이 마주친 석강호가 눈빛을 번들거리며 히죽 웃었다.
“눈 좀 푸쇼. 애들 겁먹겠소!”
입 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강찬이 피식 웃고는 대원들을 보았다.
날이 바짝 선 강찬을 보며 다들 긴장한 얼굴이었다.
두두두두두.
헬기가 커다랗게 회전한 다음, 강가에서 멀어졌다.
강찬은 멀리 펼쳐진 지형을 빠르게 살폈다.
지도에서 느꼈던 것보다는 덜 험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차가웠는데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어서 좋았다.
“구대장!”
강찬이 검지와 중지를 크게 벌려서 뒤쪽을 가리켰다.
내리기 전에 경계를 갖추란 의미다.
대원들이 제라르를 보았을 때였다.
“이제부터 지휘는 갓 오브 블랙필드가 한다!”
놈이 악을 쓰듯 외쳤다.
“2조는 다예루의 지시를 받도록!”
제라르의 말에 대원 여섯이 고개를 까딱했다.
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석강호가 강찬을 흘깃 봤다.
감이 어떤가를 알고 싶은 눈치였다.
우우우웅.
뒤쪽 문이 열렸고.
투우웅.
헬기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경계병 둘이 강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은 먼저 제라르에게 눈짓을 했다.
“가자!”
우르르르.
군화 소리와 무기가 ‘철컥’ 이는 소리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뚫고 들렸다.
“다예!”
강찬의 두 번째 고갯짓에 석강호가 달려나갔다.
강찬이 나서고 경계를 섰던 둘이 뒤를 따랐다.
전력질주다.
이런 평원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서 있는 건 그냥 사격훈련 하시라고 모가지를 대주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700m.
긴장한 놈들은 호흡이 가빠진다.
평소에 적어도 7㎞쯤은 달려버릇해야 이럴 때 700m를 전력으로 달릴 수 있고, 뒤처지지 않는다.
들고 매달아 놓은 총과 무기의 무게가 별 거 아니라고?
전력질주 100m마다 무게가 배로 늘어나는 느낌을 초짜는 절대로 모른다.
“달려!”
강찬은 악을 썼다.
“헉헉! 헉헉!”
아니나 다를까.
초짜가 벌써부터 가쁜 숨을 토해냈다.
긴장이 너무 큰 거다.
강찬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라노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작전을 아는 놈, 심지어 방금 헬기를 몰고 떠난 놈이 입 한번 뻥긋하면 여기서 또 목을 뚫리는 거다.
엄청난 돈은 사람의 모든 것을 마비시킨다.
느낌은 없었다.
석강호가 가장 멀리서 달렸다.
“구대장!”
제라르가 흘깃 볼 때 강찬이 주먹을 앞으로 향하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쭉 폈다.
산개다.
제라르는 왼쪽!
다예루는 오른쪽!
이제 반 달렸다.
강찬은 신병 곁으로 달려갔다.
“야! 이 개새끼야!”
한국어 욕이다!
하지만 감정은 그대로 전달된다.
힐끔 강찬을 본 놈이 화들짝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