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88화 (8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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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안느에게도 이럴 겁니까?

저녁 시간까지 석강호와 함께 있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예약한 후에, 모처럼 중식당에서 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좋게 생각합시다.”

“그러자.”

“푸흐.”

석강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소식 듣는 거 있음, 바로 좀 알려주쇼.”

“알았다.”

강찬은 석강호와 헤어져 바로 호텔로 향했다.

로비 라운지에 자리 잡고 조용하게 창가를 향해 앉았는데 주철범이 귀신같이 알고는 와서 인사했다.

“여기 오실 때면 전화 주십시오, 형님.”

“알았다. 바쁠 텐데 가서 일 봐라.”

“저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먹었다.”

자주 보는 데다 살갑게 구니까 정이라도 든 것처럼 하는 짓이 밉지 않았다.

주철범이 카운터를 들렀다가 지하로 향했다.

또 비겁하게 마신 커피값 안 내는 놈이 된 거다.

강찬이 숨을 내쉬고 창을 바라볼 때 전화가 울렸다.

이게 안 오면 이상한 거다.

[“호텔에 들렀냐?”]

“그래. 약속이 있어.”

[“어떤 새끼가 시킨 건지 아직 안 나왔고?”]

“찾고 있어. 그러니까 마음 가라앉히고 기다려.”

[“실력이 부족한 거 안다. 그렇더라도 날 빼지는 마라. 안 되면 내가 너랑 강호 형님 칼이라도 갈아줄게.”]

심정이야 왜 모르겠냐?

“알았다. 참! 애들 가족한테 돈 좀 보낼까 하는데 어떠냐?”

[“그건 걱정하지 마라. 상가 건물에서 가장 목 좋은 자리로 아예 명의까지 싹 넘겨줬다. 그 새끼들 뒈질 줄 알면서 내 앞 막아선 거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

“쯧! 하여간 뭔가 잡혀서 움직이면 연락하마.”

[“부탁하자.”]

전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30분쯤 지나서 전화가 울렸고, 강찬은 호실을 알려주고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라노크는 9시 정각에서 5분쯤 먼저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두 사람은 프랑스식 인사를 나눴다.

늦은 시간이고, 다른 준비를 하지 못해서 방에 비치된 생수를 따르고 시가와 담배를 물었다.

“어제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거 사과드릴게요.”

“천만에요. 강찬 씨가 주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찬은 담배를 끄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굳이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거라서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오늘쯤 보자는 통화는 있었다. 그렇지만 설마하니 라노크가 할 일이 없거나 호텔 방이 그리워서 약속을 정하지는 않았을 거다.

“강찬 씨.”

김형정 이야기구나!

그저 불렀을 뿐이다. 그런데도 강찬은 김형정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슴이 뛰며 답답했다.

“한국 특수팀은 우리 쪽 정보총국의 시야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몽고에 침투했습니다. 한국에서 새벽 4시 40분 출발이었습니다.”

강찬은 라노크에게 최대한 집중했다.

“강찬 씨와 통화를 나눌 때까지는 결과를 알기 어려웠는데 한국 시간으로 오후 7시쯤 정보총국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강찬의 눈빛을 본 라노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총 25명 중 사망이 13명가량이고, 부상자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인원은요?”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라노크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생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이래서 그렇게 가슴이 답답했구나.

강찬은 말없이 시선을 떨군 채로 이를 악물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생포는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낸 걸 알게 되면 대사님이 염려하셨던 대로 뒷수습이 어려울 거고, 그걸 알기 때문에 아마 죽음을 택했을 겁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너무 단순한 방법을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몽골에 입국하는 순간, 정보가 알려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들었을 겁니다.”

강찬의 날카로운 눈빛을 피하는 것처럼 라노크가 애꿎은 물을 들이켰다.

“강찬 씨. 흥분하면 안 됩니다.”

강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강찬 씨가 해야 할 일은 구출이 아니라 유니콘을 성공시켜서 이번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강찬은 담배를 집어 들었다.

라노크는 절대로 구출 작전을 협조하지 않을 거다.

이렇게 된 거라면 내일 가장 빠른 비행기로 우선 몽골에 가는 것이 정답이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사님.”

강찬이 숨을 커다랗게 내쉬자 라노크가 흘깃 시선을 주었다.

“결국, 출발할 생각인 거지요?”

강찬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냥 웃기만 했다.

석강호와는 이미 약속을 했고, 그와 더불어 김태진, 서상현이 삽시간에 머리에 떠올랐다.

라노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해 못 할 수도 있을 거다.

“강찬 씨. 나나 안느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이럴 겁니까?”

그런데 뜻밖의 질문이 들렸다.

이건 어떤 의미지?

“그때도 이렇게 모든 일 팽개치고, 앞뒤 안 가린 채로 뛰어올 거냐고 묻는 겁니다.”

풀썩 웃는 강찬을 라노크가 똑바로 보고 있었다.

“예, 대사님. 솔직히 내일 몽골에 갈 생각입니다. 대사님이나 안느가 이런 상황에 놓여도 전 똑같이 할 겁니다. 마음 써주신 건 감사하지만, 누군가 구출을 기다리는데 그걸 외면하고 전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라노크가 먼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일 새벽, 오산 비행장에 비행기와 외인부대 대원 열둘, 그리고 추가로 열 명이 무장할 수 있는 군복과 무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뭐라는 거지?

강찬은 방금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다르항 근교의 군기지에 내려서 경비행기나 헬기로 이동해야 합니다. 만약 여기서 사태가 커지면 중국은 반드시 전쟁을 일으킵니다.”

강찬의 눈빛을 본 라노크가 빙그레 웃었다.

“안느도 이렇게 지켜주는 것 맞지요?”

“반드시! 이렇게 구하겠습니다.”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포로를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니 가능한 한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구출 확률이 높습니다. 다행인 것은, 적들이 아직 기지를 옮기지 못했고, 한국 단독 작전인 것을 확인하고 방심한다는 것 두 가지입니다. 반드시 살아와야 합니다.”

“예. 대사님.”

라노크가 내민 손을 강찬이 꽉 잡았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본 강찬이 얼른 손에 힘을 풀었는데 의외로 라노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자세한 브리핑은 비행기 안에서 듣고, 한 가지 명심할 게 있습니다.”

라노크는 아직 강찬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함께 출발하지 못할 사람에게는 절대로 얘길 꺼내지 마시고, 반드시 만나서 하되, 그동안 가지 않았던 곳에서 하세요. 새벽 3시에 집결해서 우리 승합차로 이동하겠습니다. 장소는 한 시간쯤 뒤에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그 말은 살아와서 합시다. 이번 작전의 총 책임자는 갓 오브 블랙필드입니다. 무사귀환을 고대하겠습니다.”

라노크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이런 일이 그렇게 좋습니까?”

“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지옥에 가라고 해도 만족할 겁니다.”

강찬이 방을 나선 다음이다.

안쪽에서 라노크의 보좌관이 조용하게 걸어 나왔다.

“대사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갸웃한 다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작전으로, 내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후회는 없어. 성공한다면 미국이 프랑스의 말에 고개 숙이는 시대가 열릴 테니까, 이건 내게도 승부가 되겠지. 기회가 된다면 무슈 강의 눈빛을 잘 봐두고 꼭 기억해 두게. 저런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의 흐름을 바꾸지. 어쩌면 유니콘이 유일하게 주인으로 인정할 사람이 무슈 강일지 몰라.”

보좌관에게서 시선을 돌린 라노크가 입을 열었다.

“작전에 실패하면 모든 기록을 삭제해.”

“무슈 강과 한국에서 함께 움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내일 승합차에서 인원수를 확인해. 아마 무슈 강을 포함해서 두 명일 테니 적당한 교통사고에서 불에 탄 시체 두 구가 나오면 좋겠지.”

“알겠습니다.”

“프랑스을 위한 길이다. 유니콘을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조국에 목숨을 받친 거고. 무슈 강이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라노크가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찬이 향한 문을 바라보았다.

“저 친구가 몽고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실망했을 거야.”

***

유비캅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커피전문점에 앉은 강찬은 김태진과 석강호에게 각각 전화를 넣었다.

물론 약속 시간은 각각 달랐다.

밤 10시쯤 김태진이 먼저 도착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주소를 받은 건 직원들이 조사하고 있으니까 사흘 정도 지나야 동선이 나와.”

“그건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오늘 뵙자고 한 건, 내일부터 한 사흘간 지방에 다녀옵니다.”

“내일? 중요한 일인가?”

“예. 그래서 그동안 부모님을 좀 더 집중적으로 지켜주셨으면 싶어서요.”

김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국가정보원에서 경호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부탁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나?”

“제가 멀리 있으려니까 신경이 쓰여서요.”

“자네가 이럴 정도라면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사흘 정도는 최대한 인원을 배치하지.”

”고맙습니다.”

“어딜 가는데 이렇게 비장하게 이래?”

”좋아하는 분이 곤란하신 모양이에요. 가서 도와드리려구요.”

“장소를 끝까지 말 안 하는 것도 수상하고? 어딘지 모르지만, 필요하면 나도 가자.”

“그럴 일은 아니에요. 제가 얼른 다녀올게요.”

“석 선생은?”

“같이 갈 겁니다.”

“날 빼놓다니, 서운한데?”

“이번만 넘어가 주세요.”

강찬이 웃으며 하는 말에 김태진이 비슷하게 웃으면서 일어섰다.

“멀리 간다니까 일찍 일어나지. 조심해서 다녀와. 와서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김태진이 먼저 출발했다.

잠시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 석강호가 도착했다.

“어떻게 됐답디까?”

오자마자 석강호가 의자를 바싹 당기며 고개를 디밀었다.

“작전 실패. 25명 중 사망 13, 포로 12로 추정된단다.”

“씨발.”

석강호가 대뜸 욕을 뱉고는 이를 꽉 깨물었다.

“어떻게 할 거요?”

“내일 오산에서 출발한다. 외인부대 12명 합류하고 비행기에서 브리핑. 그리고 3시 집결하면 라노크 쪽에서 태워가기로 했다.”

역시나 석강호도 잠시 멍한 얼굴로 있었다.

“정말이오?”

“왜 빠질래?”

“차라리 죽이고 가쇼!”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강찬을 보았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신사역 3번 출구.]

마침 문자가 왔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보여준 뒤 문자를 바로 지웠다.

“누가 왔었소?”

“김 대표님 잠깐 만났어. 부모님 경호 부탁하려고.”

“그럼 저 음료수 내가 마셔도 되지요?”

“하나 사라.”

“놔두쇼. 한 모금만 마시고 바로 들어가야지요.”

석강호는 남은 음료수를 입에 털어 넣더니 담배를 물었다.

“기분이 묘하네.”

석강호의 표정이 복잡했다.

“전에는 이런 작전이 그냥 작전이었는데 막상 출발한다고 하니까 마누라랑 딸, 그리고 애들이 마음에 조금 걸리우.”

“괜찮으니까 남아.”

“그냥 그렇다는 거요! 뭘 그런 걸로. 대장은 아무렇지도 않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너무 갑자기 결정돼서.”

“흥! 가서 구해오면 되는 거 아뇨?”

“그렇지.”

석강호는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고맙소, 대장.”

“들어가자.”

“한 시간 일찍 나오쇼. 둘이 커피 한 잔 마십시다.”

강찬이 풀썩 웃자, 석강호가 히죽 하는 웃음으로 받았다.

***

석강호의 차를 함께 탄 강찬은 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우선 강대경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어머니 옆에 계세요?”

[“응. 무슨 일이냐?”]

“저 내일 새벽 2시 30분쯤 나가서 사흘이나 나흘 정도 지방에 가야 해요. 엄마가 많이 놀라실 거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려구요.”

짧은 침묵 뒤다.

[“아빠가 엄마한테 말하는 거, 깜박했다. 괜찮아. 병원에서 들었었는데, 뭘! 그게 내일 새벽이었구나! 아빠가 지금 말해 놓으마. 언제 오니?”]

강대경의 음성이 커다랗게 들렸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10분이면 들어가요. 그냥 수련회 간다고 할게요.”

[“이 녀석이 아빠보다 바빠. 알았다. 아빠가 잘 얘기해 놓을게.”]

전화를 끊으면서 보았을 때 11시 10분이었다.

내일 새벽 2시에 나갈 거고, 수련회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이유였는데 강대경이 멋지게 받아주었다.

꼭 두 사람과는 통화하고 싶었다.

강찬은 처음으로 김미영에게 문자를 넣었다.

[전화할 수 있어?]

이미 밤 11시가 훨씬 넘었다.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집에서 통화하기 곤란할 수 있었다.

미쉘은 오늘 회식이라고 했으니 전화를 받을 거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김미영이었다.

[“나야! 흐흐흐.”]

“좋은 일 있니?”

[“나한테 처음 문자한 거야. 기분 좋아서 그래.”]

강찬은 웃음이 풀썩 났다.

“집에 있는 거 아니야?”

[“오늘 논술이라 지금 끝났어. 이제 집에 가.”]

가끔 김미영이 공부하는 과목을 듣고 있으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잠깐 만날 수 있어?”

[“응! 응!”]

“아파트 앞인데? 넌 어디야?”

[“5분이면 도착해.”]

강찬은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김미영이 보였다.

“여기!”

강찬이 손을 흔들자 김미영이 빠르게 달려왔다.

“피곤하겠다.”

“아니야. 오늘은 기쁜 날이야.”

“뭐가?”

“문자 했잖아.”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생각나서.”

“흐흐흐.”

“문자한 게 그렇게 좋았어?”

“응!”

에효! 한숨이 나왔지만 싫지는 않았다.

통화만 했으면 했는데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들어가야지?”

“5분쯤 시간 있어.”

“늦었다. 엄마 걱정하시니까 들어가.”

여름밤이다.

김미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눈이 진짜 예쁘구나.

김미영이 마른 침을 삼켰다.

원하는 게 뭔지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몽골에 갔다가 잘못되면 못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감 났다.

어쩌면 이 모습이 서로에게 마지막일지 모른다.

‘잘 살아.’

“들어가야지. 5분 됐어.”

김미영이 아쉬운 듯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안아줘!”

“여기서?”

“응!”

강찬은 김미영을 가볍게 안아주었다.

몸이 얼마나 뜨거운지 이러다 병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잠깐 그렇게 있었다.

“내일부터 사흘 정도 지방에 다녀올 거야.”

“지방? 어디?”

“장소는 석강호 선생님이 아셔. 다녀와서 연락할게.”

“응! 꼭!”

“일찍 자. 알았지?”

“싫어! 프랑스어 더 열심히 할 거야!”

몸을 뗀 김미영이 빠르게 달려갔다.

부끄럽고 감정이 복잡하고 그런 모양이었다.

“후우!”

잘한 거다.

뜻밖에 얼굴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일이다.

강찬은 벤치에 앉아 미쉘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린 다음 받았는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먼저 들렸다.

[“잠깐만.”]

미쉘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음악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직 한참인가 부다?”

[“이제 거의 끝나가. 차니는 어때?”]

“난 새벽에 지방에 가야 해서 짐 챙기러 지금 막 집에 왔어. 사흘 정도 걸릴 거야.”

[“아쉽다. 다들 차니 올지 모른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미안하다. 대신 다녀와서 우리끼리 회식 한번 하자. 그때 다 같이 노래도 부르러 가고.”

[“오케이, 차니! 새벽에 나간다면서. 얼른 들어가 조금이라도 자. 쥬뎀므, 차니.”]

“그래. 그럼 수고해.”

전화를 끊은 강찬은 곧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아들!”

유혜숙이 있다가 강찬을 맞았고, 뒤이어 강대경이 나왔다.

“저 때문에 못 주무셨죠?”

“새벽 2시에 나간다면서? 피곤해서 어떡하니? 저녁은?”

“애 숨넘어가겠다.”

“저녁은 먹었구요. 잠은 새벽에 가는 차 안에서 자면 돼요. 짐은 그쪽에 운동복이 따로 있어서 굳이 안 챙겨도 된대요. 세면도구까지 다 있는 모양인데요?”

“무슨 수련회를 이렇게 가니?”

“여보. 찬이 피곤할 텐데 한 시간이라도 자야지.”

강대경이 나서서 유혜숙을 말리려 들었다.

“아니에요. 괜찮으시면 우리 닭이나 한 마리 시켜먹어요. 어떠세요?”

“닭? 아들 치킨 먹고 싶어? 그럼 얼른 시키자. 잘 됐다. 엄마도 출출했는데.”

강대경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왜요, 아버지?”

“아빠가 조금 전에 출출하다고 했다가.”

“이이는!”

강찬이 커다랗게 웃고는 적당한 곳에 닭을 시켰다.

걱정하는 눈빛은 강대경과 유혜숙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의 종류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닭이 와서 셋이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혜숙의 걱정 너머에 행복이 깔려 있는 게 좋았다. 강대경이라면 최악의 통보에도 유혜숙을 잘 건사할 거다.

미안했지만, 죽어가는 김형정을 외면할 수는 없다.

씻고, 옷 갈아입은 시간이 1시 45분쯤 되었다.

“다녀올게요.”

“다녀와, 아들. 몸조심하고.”

목을 안아주는 유혜숙의 등을 강찬이 다독였다.

어쩌면 끔찍한 결과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이다.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 손을 놓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강대경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답을 했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

‘조심해야 한다.’

‘예. 그럴게요.’

강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현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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