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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87화 (8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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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꼬이고 꼬여서.

석강호와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후에 스미든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 알지요! 바로 나갑니다!”]

놈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온단다.”

“개새끼.”

석강호의 뜬금없는 욕에 풀썩 웃고 말았다. 반가운 얼굴을 하고서 뭐하러 욕을 하는 건지.

“차니!”

잠시 후, 요란하게 손을 흔들며 스미든이 나타났다.

“어서 와라.”

“잘 지냈지요? 다예루, 오랜만이다. 앉아 있어요. 나도 커피 사 올게요.”

한국말이다.

게다가 어설프지 않은 발음이었다.

세련된 복장의 스미든은 누가 보아도 여유 넘치는 서양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새끼, 눈 봤소?”

“그때 의안 넣는다고 했잖아.”

“햐! 저렇게 감쪽같을 줄은 몰랐소.”

석강호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스미든이 다가왔다.

“우리 말 많이 늘었다.”

“알리스 덕분이지요.”

한국말이다.

석강호는 연신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국어 학당에서도 고급반에 들었어.”

“이 새끼가?”

“미안해요, 차니. 알리스하고 하던 말이 버릇 돼서 그래요. 담배 피워도 되지요?”

“담배는 그냥 피워. 아무튼,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다.”

“후우. 차니는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그럭저럭 지냈지. 참! 이상한 제안이라는 게 뭐냐?”

“오우, 차니! 맞아요. 이상한 제안!”

스미든이 담뱃재를 털며 호들갑스럽게 말을 받았다.

“공트 자동차 한국지사 지분을 팔라는 제안이 왔었어요. 금액이 상상을 넘어요. 50억 준대요.”

한국말 사이에 프랑스어나 영어 단어가 섞였는데 석강호도 대강은 알아들을 정도였다.

“누가?”

“서정 그룹? 법무법인 변호사가 직접 연락했었어요.”

강찬은 기가 막혔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냐?”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요.”

석강호가 강찬을 힐끔 보았다.

“양진우, 그 새끼 맞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 같소.”

“나 모르는 게 있어요?”

스미든이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살폈다.

“전에 서정모터스라고 중간에 공트 계약 가로채려던 놈들 기억나냐?”

“아! 서정! 어? 같은 이름이네요?”

“그래. 그놈들이 그때 밀려난 것 때문에 자꾸 찝쩍대는 모양이다. 50억이면 욕심나겠다?”

“노우! 차니. 난 내 지분 함부로 팔 수도 없어요. 공트 자동차 본사 허락이 있어야 해요.”

“네 지분이 얼마나 되는데?”

“20%요.”

강찬은 단박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렴 그 잘난 서정 그룹의 인재들과 변호사가 그걸 몰라서 20% 지분을 50억에 사겠다고 했을까?

잠시 생각했던 강찬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왜 그러쇼?”

“이 새끼한테 지분 사겠다고 하고 도청하거나 미행하고 있겠지. 누구한테 연락하나 보려고. 다들 웃어라. 사진이나 잘 나오게.”

“그래서 얻을 게 뭐 있다고 그런 짓을 하겠소?”

“저 새끼들이 샤흐란과 우리 일을 짐작이나 하겠냐? 중간에 갑자기 왜 틀어졌는지 살펴보려는 거겠지? 스미든. 너 알리스하고 헤어진 다음에 집에 다른 여자 데려간 적 있어?”

스미든이 눈치를 살피며 답을 하지 못했다.

“에라, 이 개새끼야!”

“다예루, 난 그냥.”

“시끄러워. 그냥 좀 한 여자 만나, 이 새끼야.”

석강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확인된 거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자. 어차피 조금만 알아봐도 금방 넘어가니까. 그 여자애 아직도 만나냐?”

“그게 차니.”

“한둘이 아니야?”

“셋이요.”

“그걸 다 만나?”

“그냥 돌아가면서 만나니까요.”

강찬은 실없는 웃음을 웃고 말았다.

하기야 키 훤칠하지, 용병 생활로 다져진 몸 있지, 공트 자동차 한국 지사장이란 타이틀 달았지, 속 빈 여자애들이 딱 좋아할 만한 모습이긴 했다.

담배를 들던 강찬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저 검지를 입술에 세워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스미든의 구두와 전화기를 옮겨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강찬의 표정을 본 스미든이 얌전히 구두를 벗은 후에 그 안에 전화기를 담았고, 석강호가 테라스 끝에 가져다 놓았다.

“스미든. 너 여자 꼬드기는 건 자신 있냐?”

“차니를 위한 일인가요?”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거라면 자신 있지요.”

“그럼 내가 명단 넘겨줄 테니까 전부 데리고 잘 수 있어?”

“누군데요? 예쁩니까, 차니?”

스미든이 상체까지 디밀며 달려들었다.

“골고루다.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여섯 명. 어떠냐?”

“맡겨 주세요, 차니!”

석강호가 뭔 소릴 하려고 이러나 하는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이 새끼 집이 번호키였냐?”

“노우, 차니. 지갑에 있는 카드가 있어야 들어갑니다.”

“카드 다른 애 준 거 있어?”

“그건 없어요. 좋은 시간에 누가 불쑥 들어오면 감정이 깨지니까요.”

멋들어진 새끼.

강찬은 김태진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청이 의심되는 상황이란 말을 하고, 해결책을 물었다.

[“당사자하고는 같이 있어?”]

“예. 구두랑 전화기는 좀 떨어트려 놨어요.”

[“그럼 그쪽 파트 직원 둘을 지금 보내지. 장소가 어딘가?”]

강찬은 커피전문점의 위치를 알려주고 통화를 끊었다.

“저녁은 뭐 먹을래?”

“차니, 여자 사진은 없어요?”

질문을 던졌던 스미든이 석강호를 보고는 움찔했다.

“돼지갈비나 먹읍시다.”

“그럴래?”

둘이 저녁 메뉴를 정하고, 헛소리를 몇 마디 지껄이고 있자니 유비캅 직원이 달려왔다.

“이 친구 몸부터 살펴주고, 저기 신발하고 전화기 좀 봐줘. 그리고 저녁 먹는 동안 집도 좀 봐주고.”

“알았습니다.”

직원들이 가방에서 전화기 모양의 기계 세 대와 탐지봉을 꺼내 스미든의 몸을 천천히 살폈다.

“몸에는 이상 없습니다.”

커피전문점이다.

강찬이 혹시 주변에 미행하던 누군가가 있는지 주의 깊게 돌아보는 사이, 직원들이 신발과 전화기에 탐지봉을 가져갔다.

삐이-이.

유비캅 직원이 검지를 입 앞에 세웠다.

그리고는 조용히 신발과 전화기를 들고 차로 향했다.

“오우! 놀랍군요.”

“난 네가 더 놀랍다, 이 새끼야.”

“다예루! 자꾸 욕하지 마!”

“뭐라는 거야? 이 병신새끼가!”

“쯧! 그만해.”

석강호와 스미든이 입을 다물었다.

10분쯤 후에 유비캅 직원이 신발과 전화기를 가져왔다.

“양쪽에 모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도심 2㎞ 이내에서 녹음이 가능한 고성능입니다.”

“미안하지만 카드키를 줄 테니까 집도 좀 살펴줘.”

“알겠습니다.”

강찬이 눈짓을 하자 스미든이 카드키를 건네고 주소를 불러주었다.

“1시간쯤 걸립니다. 끝나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근처에서 식사하고 있을게. 저녁은 어떡할래?”

“끝나고 둘이 좋은 데 가기로 했습니다.”

직원들의 태도가 일반적인 상사를 대하는 것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수고해.”

유비캅 직원이 출발하자, 셋이 커피 전문점과 떨어지지 않은 곳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첫 손님이다.

안쪽에 자리를 잡고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당장은 도청 염려가 없다.

“스미든. 당분간 집으로 다른 사람 못 들어오게 해. 하다못해 관리실에서 점검 나왔다고 해도 모조리 지키고. 알았지?”

“알았어요, 차니.”

“서정 그룹에 대가리가 양진우다. 그 새끼가 나부터 여기 다예루, 그리고 너까지 앙심을 품고 있는 거야. 어설프게 굴다간 손쉬운 너부터 당해. 그거 조심하고.”

스미든이 히죽 웃었다.

당한다는 말에 속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내가 내일 여자 명단 건네주는 거, 전부 양진우 여자다.”

석강호와 스미든이 깜짝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아파트 사주고 생활비 대주는 데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나 보더라. 그 여자들 동선은 아까 봤던 유비캅 직원들 시켜서 챙겨줄 테니까 네가 알아서 전부 네 여자로 만들어. 네 말이라면 껌벅 죽게. 알았지?”

“그런 건 염려 말아요, 차니.”

셋이 히죽 웃을 때 음식이 나왔다.

불판에서 ‘치이이’하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자 석강호가 주문했던 소주와 맥주로 폭탄주를 만들었다.

“차니. 우리 건배 합시다. 내가 목숨 걸고 일 성공 시킵니다.”

목숨 걸 일까지야 아니지만, 강찬은 그냥 잔을 내밀었다.

셋이서 저녁을 먹으며 옛날 이야기와 스미든이 만났던 여자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이 참 많은 여자가 있었다. 다는 아니겠지만, 몇몇은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분명할 거다. 그것도 전화기와 구두에 도청장치를 설치할 정도로 근성 있는 여자.

“그 여자들이 날 바보로 알았다는 거네요?”

스미든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 자신의 매력 때문이 아니란 사실에 더 분개하는 눈치였는데 그거야 뭐, 강찬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배가 적당히 불러올 때쯤에 전화가 울렸고, 잠시 후에 유비캅 직원 둘이 식당으로 왔다.

“침실, 거실, 화장실, 현관, 이렇게 네 곳에 장치가 있어서 모두 제거했습니다. 여기 카드키 받으십시오.”

“고생했다.”

“이렇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강찬이 의아한 눈으로 볼 때 직원 둘이 공손하게 인사하고 식당을 나섰다.

뭔가 있는데?

그렇다고 불러서 물어보기도 뭣한 일이라 그냥 넘어갔다.

***

당장은 술을 마셔서 운전하기가 곤란했다.

스미든을 들여보낸 두 사람은 또다시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잡았다.

“양진우 여자를 어쩌려고 그런 거요?”

“그냥 생각난 거야. 어차피 여자 밝힐 새끼한테 사명감 있게 달려들 일 던져준 거. 혹시 아냐? 그중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 터트려 줄 여자가 있을지?”

“그것두 그렇소.”

“도청까지 했다니까 우리도 한 방 먹여줘야지.”

“푸흐흐. 기대되우.”

석강호가 야릇하게 웃었다.

강찬은 김태진에게 전화를 걸어 스미든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여자들의 동선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아버지를 노린 데다 제 주변에 도청 장치를 깐 거니까요. 슬슬 준비해 보려구요.”

[“알았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는 게 좋지.”]

“담당 직원 한 명 정해서 스미든과 직접 연락하게 해 주세요. 여자들 주소는 따로 알려드릴게요.”

[“이메일이니 뭐니 하지 말고, 그냥 전화로 알려줘.”]

“그러죠.”

김태진과 통화를 끊었다.

“김 팀장님의 일을 아직 모르는 거 아니오?”

“그런 거 같은데?”

“햐! 무서운 분이네. 몇 시에 출발했으려나? 하여간 내일이면 대충 결과가 나오지 않겠소?”

“그렇겠지. 내일 라노크가 만나자고 했으니까 그때쯤이면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

“그렇겠수.”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커피를 마셨다.

“열흘이면 방학 끝나우.”

“벌써?”

“나도 아쉽소. 지금처럼 몸 만들면서 애들하고 훈련만 하라면 몇 년이고 할 텐데.”

강찬은 내심 여유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입학 허가서만 나오면 고등어 생활 끝이다. 끝!

***

목요일은 새벽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젠 제법 몸에 익어서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육상 선수를 할 게 아니라면 지금 정도가 적당했다.

솔직히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후회도 됐다.

라노크에게 매달려서라도 김형정을 혼자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강찬의 뇌리에 떠올랐다.

아침을 먹고 모처럼 학교에 나가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김태진과 스미든에게 전화해서 여자들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고, 자질구레한 당부를 전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자꾸만 커다랗게 숨을 쉬게 되었다.

강찬은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맨손 운동을 했다.

씻고 점심은 유혜숙이 만들어 준 비빔국수를 먹었다.

뭐 할 게 없나?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은 급하게 전화를 집어들었다.

[“차니. 오늘 바빠?”]

“저녁에 약속이 있어. 왜?”

[“회식 때문에. 오늘이 마침 다른 출연자들 시간이 전부 맞았어.”]

“미안한데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미쉘이 알아서 해주라. 급한 일 생기면 연락하는 걸로 하고.”

[“알았어. 별안간 잡힌 거니까. 다른 일 없지?”]

“그럼.”

[“혹시 일찍 끝나면 전화 줘. 잠깐이라도 들렀다 가면 다들 좋아할 거야.”]

“알았다.”

통화를 끝낸 강찬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솔직히 어떤 전투에서도 100% 살아남는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다. 그건 강찬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살아서 귀환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 철저한 작전과 대원들의 실력인데.

빌어먹을!

대원들의 실력은 모르고, 작전은 급하게 세워졌다.

김형정의 각오나 이 작전을 지시한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 이런 모든 작전에 강찬이 참여하기도 어렵다.

‘믿자. 살아서 온다고 믿어주자.’

이런 걸 보면 아끼는 대원을 전장에 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이유도 없이 날카롭게 노려본 다음 전화기를 들었다.

라노크였다.

“여보세요?”

[“강찬 씨. 마음은 좀 진정됐습니까?”]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대사님. 도움 주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뵐 수 있을 것 같아서 따로 전화 드리지 않았습니다.”

라노크의 음성이 평소와 다름없어서 강찬은 우선 마음에 두었던 말을 먼저 전했다.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차나 함께 할까요?”]

“물론 괜찮습니다. 어디로 나갈까요?”

[“남산 호텔이 좋겠습니다. 먼저 가셔서 객실을 하나 잡아주세요. 저녁 만찬을 끝내고 바로 이동할 예정이니 시간은 오후 9시쯤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강찬은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김형정의 상관 연락처라도 알아 놓을걸. 위성 전화를 가져갔으니까 충분히 결과를 알 수도 있을 텐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석강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요. 학교에 잠깐 나올 수 있소?”]

“왜? 무슨 일인데?”

[“전에 옥상에서 맞았던 놈 중 몇이 대장을 만나러 왔다고 해서 기다려보라고 했소.”]

“지금 갈게.”

[“알았소.”]

강찬은 옷을 갈아입었다.

이렇게 되면 답답하게 집에서 종종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 편한 일이다. 차라리 뒤에 무시무시한 놈들을 달고 나왔으면 싶기도 했다.

유혜숙은 연신 전화로 바빴다.

이번 주까지는 재단과 동창회 일로 바쁠 거라고 했다. 안 한다는 사람을 왜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지.

눈치껏 인사하고 학교로 향했다.

한낮이라 택시를 타자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교문을 들어서던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멀리서 봐도 팔에 깁스를 한 놈과 머리에 거즈를 붙인 놈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찬이 다가가자 놈들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자고 했어?”

스탠드를 내려가면서 강찬은 필요 이상으로 눈이 번들거리는 것을 알았다.

왜 이렇게 독이 오르는 거지?

이럴 필요 없다.

이유야 어쨌든 얻어맞은 놈들이 만나자고 해서 나온 거다.

기다렸던 놈들은 모두 세 놈이었다.

“뭐야?”

“앉아.”

그래. 앉아주마.

강찬은 스탠드에 앉아서 허벅지에 팔을 걸치고 놈들을 보았다. 더러운 인상에 거즈를 붙이고, 붕대를 감아서 느낌은 좋지 않았다.

“우리 2학기 때 학교 나올 거야.”

강찬이 답을 않고 듣고만 있자 눈치를 살핀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은실이랑 호준이한테 말 들었어.”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그냥. 우리 학교 다닌다고.”

이런 병신 새끼들이?

제 발로 제 돈 내고 학교 다니는 걸 왜 말하는 거지?

“우리 나오기 기다렸다면서? 그냥 얌전히 졸업할 테니까 우리도 좀 봐 주라.”

기가 막혔다.

허은실이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몰라도 이놈들은 학교에 나오는 순간, 강찬에게 당하는 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알아서들 해.”

“괜찮은 거지?”

“그렇다니까.”

세 놈이 쭈뼛거리며 일어나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걸어나갔다.

쯧!

멍하니 운동장을 보고 있는데 석강호가 다가왔다.

“어? 언제 왔소? 여기 있던 놈들은 봤소?”

강찬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허은실이가 또 있는 대로 뻥 쳤구만.”

“그런 모양이다.”

“마음쓰지 마쇼.”

“저런 거에 그럴 일이 뭐 있냐?”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혹시 김 팀장 때문에 그렇소?”

“응.”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영 기분이 찜찜하우. 오늘 오전부터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너도 그러냐?”

“우리 둘 다 걱정돼서 그렇겠지요. 한국 특수부대원들 실력이야 유명하잖소?”

“그렇긴 하지.”

강찬은 김태진과 스미든, 그리고 라노크와 통화했던 얘기들을 차례로 전했다.

“어차피 저녁이면 알겠구만요. 목소리는 어떻습디까?”

“평소랑 다름없더라.”

“어이휴! 이거야 시간이 갈수록 피가 마르는 기분이니, 원.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정이 많이 들었던 건가? 후우!”

석강호가 속을 토해내는 것처럼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기다려 봅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운 것을 견디기 어려워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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