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86화 (8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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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꼬이고 꼬여서.

월요일 오후는 집에 돌아와 함께 밥 먹고 TV를 보며 보냈다. 굳이 특별한 일을 꼽으라면 재단 설립 승인이 났다는 전화 정도였다.

강찬은 짬짬이 USB에 담긴 양진우에 관한 자료를 모두 보았고, 필요한 부분을 체크했다.

다른 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여자에게 따로 살림을 차려준 것만은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한 새끼네.’

고작 두 달에 한 번이다. 그나마 제대로 자는 것도 아닌데 최고급 아파트에 엄청난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작은 키에 비해 단단한 체격, 눈이 좀 작고 코가 컸다. 상대를 얕보는 듯한 묘한 표정.

‘넌 일단 기다려.’

강찬은 눈빛을 빛내며 자료를 천천히 살폈다.

***

강대경은 화요일까지 쉬기로 했는데 아침을 먹자 좀이 쑤신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혜숙의 눈빛을 이기지 못했다. 강찬은 그런 강대경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화요일 오후.

강찬은 방배동에 있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었는데 예상보다는 규모가 무척 작았다.

“무슈 강, 이쪽입니다.”

입구에서 요원 하나가 강찬을 직접 안내했다.

“차니!”

안느가 먼저 일어났고, 라노크가 그 뒤를 따랐다.

벌써 와 있을 줄은 몰랐다.

“일찍 오셨어요?”

“안느와 따로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방해된 건 아닌가요?”

“천만에요. 마침 적당한 때 와 주었습니다. 자! 식사전에 간단하게 한잔할까요?”

라노크의 제안에 강찬과 안느가 잔을 들었다.

와인을 마신 라노크의 손짓에 요리가 나왔다.

오늘의 주인공은 안느였다.

그녀의 몇 가지 되지 않는 학창시절 이야기, 강찬이 보였던 그 황당한 드라이버 샷, 그리고 그날 이후의 변화.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안느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라노크도 유쾌한 얼굴이었고, 강찬도 즐거웠다.

2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났는데 그동안 다른 손님은 전혀 없었다.

라노크가 눈짓을 하자 종업원이 은쟁반에 시가와 담배, 재떨이, 라이터를 가져왔다.

“오늘의 가장 특별한 서비스지요.”

강찬이 풀썩 웃었고, 셋이서 여유 있게 담배를 즐겼다.

“강찬 씨. 안느가 앞으로 대사관의 안주인 역할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정말이요? 굉장하네요.”

강찬이 돌아보자 안느가 활짝 웃으며 얼굴을 가져왔다.

젠장! 괜히 좋은 척했다.

강찬은 별수 없이 소리만 요란하게 얼른 입을 맞춰 주었다.

“차니. 난 조금 뒤에 가야 해. 아프리카에서 온 귀빈들과 차모임이 있거든.”

칭찬받고 싶은 거다.

강찬은 대단하다며 몇 번이나 엄지를 치켜세웠다.

실제로 안느는 30분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옹해주고 가볍게 입 맞춰주고.

걱정했었는데 이대로라면 얼마 뒤에는 곧바로 중심을 잡을 것도 같았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인정해주는 사람을 따른다.

누군가가 곁에서 지속적으로 지켜봐 주고 다독여준다면 안느는 금방 그리로 마음이 갈 거다.

라노크가 주변을 둘러보자 요원들이 모조리 레스토랑 밖으로 움직였다.

“강찬 씨. 프랑스 정보국이 총력을 다한 결과, 장소는 수흐바타르와 셀레가 강 근처의 야산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강찬에게 담배를 권한 라노크가 시가에 다시 불을 붙였다.

“강찬 씨. 이건 무모한 일입니다. 나는 이번 일만큼은 말리고 싶습니다.”

“서른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제거하면 당분간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와 한국의 반대세력은 주춤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저었다.

“강찬 씨가 직접 갈 이유가 전혀 없는 일입니다.”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쉰 다음 라노크를 보았다.

“제 싸움입니다, 대사님. 유니콘을 부탁드렸고, 발표를 당기기로 했기 때문에 벌어진 싸움. 제가 모른 척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릅니다. 거기에 대사님과 지금의 부모님이 포함된 겁니다. 저들은 가리는 것이 없으니까요.”

“한국에서 특수조가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필요하다면 그들의 탈출을 도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강찬은 라노크를 똑바로 보았다.

“대사님. 저쪽이 서른이라고 했으니 이쪽도 최소한 서른 명은 갈 겁니다. 총구는 나와 대사님을 겨눈 건데 그걸 막겠다고, 시간을 벌어 보겠다고 죽으러 나서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라노크가 시가를 깊숙하게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뱉었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맡은 바 임무가 있지요. 내 판단으로 현재 강찬 씨의 역할은 몽고에 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유니콘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라노크는 이미 마음을 굳힌 눈치였다. 탁자에 놓인 와인잔을 노려보며 입을 열지 않는 것이 그랬다.

강찬 역시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고 구걸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장소를 정확하게 알려주신 것만도 감사합니다. 한국 팀에 합류하고,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노크가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을 거다. 그리고 이런 도움은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강찬 씨.”

와인잔에서 시선을 든 라노크가 강찬을 보았다.

“자칫하면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대사님. 적국은 우리나라에서 총을 들고 활동했습니다. 이렇게 밀리기만 한다면 대사님 주변의 요원들 역시 계속 희생될 겁니다. 이런 싸움은 상대가 포기하거나 목적한 바를 이루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흐-흠.”

라노크가 시가를 똑바로 세워 재떨이에 비볐다.

“강찬 씨가 지닌 비밀, 그리고 강찬 씨를 믿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강찬 씨는 프랑스와 한국 정부가 함께 만든 비밀 요원으로 각국 정보국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다.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강찬 씨. 지난번에 로리암에서 만난 제 친구들이 모두 해당 국가 정보국의 수장입니다.”

염병할! 뭐가 이렇게 거물들만 모여든 거야?

“물론 내가 프랑스 정보국 국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강찬 씨가 몽고에서 불미스럽게 적들의 손에 잡히거나 증거를 남기면 유럽 전체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얘기가 그리로 튀는 거지?

“몽고에 잠입해서 중국과 북한의 특수군 대원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세계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과 일본은 그렇게 해서라도 유니콘을 막고 싶어 하니까요.”

강찬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담배를 물었다.

결국, 방법이 없는 거다.

“강찬 씨. 우리 쪽에서 귀환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협조를 하겠습니다. 몽고는 거의 모든 자원을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유럽의 회사가 개발, 판매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도울 길이 있습니다.”

답답하지만, 라노크가 나서지 않는 것을 더 이상 강요하기 어렵다.

“대사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답답했다. 그래서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프랑스 요원들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강찬은 천천히 도로를 따라 걸었다.

“후흐흐.”

한숨을 쉬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너무 많이 죽었다.

거기에 또 서른이 넘는 인원이 죽을 길로 간다.

그걸 알면서도 빤히 지켜봐야 하는 것이 화가 나는 거다.

밤 10경이어서 도로가 붐볐다.

이럴 때 어깨라도 부딪치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강찬은 한적한 곳을 찾아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굴다리가 나왔다.

넘어가면 한강 변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강찬은 그대로 굴다리로 향했다.

한강이 바로 나왔다.

여름이라 사람이 제법 있었는데 그만큼 자리도 넓었다.

강찬은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걸터앉았다.

화가 나고,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웠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라노크였다.

“예, 대사님.”

[“강찬 씨. 하루쯤 쉬고 모레 다시 만나기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중심에 선 사람은 작은 아픔쯤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마세요. 강찬 씨는 더 큰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낸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찰칵.

“후우-우.”

주변에서 돗자리를 펴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담뱃불을 털어내고 꽁초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강을 보고 있자 숨통이 조금이나마 뚫리는 것 같았다.

강찬은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다.

피식.

“뭐 하십니까?”

“제게 미행이 붙었나요? 경호원은 전부 유비캅으로 돌린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전화기의 위치 추적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김형정이 강찬의 옆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라노크와 만나는 것 때문에 신경 쓰이신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강찬 씨를 한번 보고 싶어서 온 겁니다. 맥주나 사올까요?

강변에서는 캔맥주 하나 마셔줘야 분위기가 삽니다.”

“괜찮겠네요.”

김형정이 근처의 매점으로 갔다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왔다.

치익!

“여기!”

김형정이 맥주 캔을 건네주고 자신도 하나 들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나자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건배 한 번 합시다, 강찬 씨.”

강찬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내일 출발 합니다.”

일주일이라더니?

“다녀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유니콘 잘 부탁합니다.”

“오실 수나 있구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김형정이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권했다.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팀장님. 요원들과 대원들이 서른 명 이상 갑니다. 그들의 죽음이 모두 기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팀장님의 희생으로 적들이 한순간에 유니콘을 버려둘 것 같으세요?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또 죽을 사람을 보내나요? 계속?”

“당장은 이게 최선입니다. 그래서 부탁하는 겁니다. 이후의 세대는 좀 더 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서 감히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서요. 유니콘이 연결되면 그 막대한 부로 좋은 무기도 사고, 요원들 황제처럼 떠받들어서 정말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그래서 이 길을 웃으면서 갈 수 있는 겁니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작전이 아니에요. 무조건 죽을 길로 뛰어드는 건 작전이 아니라 자살이라 불러야 하는 거라구요.”

“강찬 씨.”

김형정이 손에 든 맥주를 앞으로 내밀었다.

“셀레가 강이 꽤 길게 이어져서 국경을 타고 가더군요.”

강찬의 의심스러운 시선 앞에서 김형정이 묘하게 웃었다.

“원래 작전에는 없었던 계획입니다. 국경을 따라서 러시아로 넘어간 다음, 다시 산악을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향할 겁니다. 그때 도와주세요.”

“연락은요?”

“위성전화를 사용합니다. 이 정도면 건배해 줄만 한데요?”

김형정이 이런 일을 거짓말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강찬은 맥주를 부딪치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라노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점은 이미 돕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제 대사관까지 가서 라노크를 만날 일이 이번 작전 말고는 없었을 테니까요.”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급 경호 대상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미행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그 점은 믿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이 전화기가 문제인 거 같은데요?”

“그거 버리면 제가 시말서 써야 합니다.”

둘이 웃고 난 다음이었다.

“강찬 씨. 고맙습니다.”

김형정이 강찬을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전한 말이다.

“뜬금없는 말씀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자세한 정보가 프랑스 쪽에서 입수되었습니다. 짐작하기에는 프랑스 정보 총국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 사이에 프랑스 지부에서 긴급하게 넘어온 겁니다.”

“그런 것보다 팀장님과 대원들이 무사히 넘어오시는 가가 더 중요하지요.”

“새로 들어온 정보에 따라 살길을 찾은 겁니다. 몽고 국경수비대의 위치, 교대, 그리고 심지어 강을 타고 움직일 동선까지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쯧!

강찬은 갑자기 라노크에게 무지하게 미안했다.

아차! 김형정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팀장님. 일어나세요. 내일 움직이시려면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셔야죠.”

“그럴까요?”

김형정은 사양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제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얼른 들어가세요. 전 맥주 한잔 더 마시고 들어갈게요. 이대로 들어가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김형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강찬의 앞으로 걸어왔다.

“강찬 씨 같은 분을 만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 말씀은 살아오신 다음에 하세요. 못 오시면 유니콘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제가 달려갈 겁니다.”

김형정이 멋지게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꽉 쥐었다. 손아귀가 아플 만큼 꽉.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김형정이 그대로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향했고, 차에 올랐다. 라이트가 켜지고 차가 빠져나가는 동안, 강찬은 멍하니 보고 있었다.

피식.

차가 돌아가는 그 짧은 틈에 김형정이 거수경례를 한 것을 본 강찬의 웃음이었다.

***

수요일은 온종일 집에서 빈둥거렸다. 김형정의 일로 어수선한 참이라 딱히 나갈 마음도 없었다.

강대경은 출근했고, 유혜숙은 친구와 약속을 마치고 재단 사무실을 들렀다 들어온다며 나갔다.

‘얼굴 좀 보자, 개새끼야.’

강찬은 다시 양진우의 자료를 틀어놓고 외우다시피 살폈다.

쉽지 않았다.

막말로 작정하고 달려가서 두들겨 패는 거라면야 석강호와 둘이서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양진우를 두들기는 건, 깡패들이나 알리온의 데이빗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국가정보원도 무마하기 어려운 짓을 고작 주먹질 몇 번 하자고 만들기는 싫었다.

‘이 새끼를 아예 병신을 만들어?’

아서라. 마무리가 지랄 같으면 반드시 보복을 하려 든다. 그것도 당한 것보다 더 많이 되갚겠다고 발악하면 뒤만 불편하다.

‘죽여?’

이것도 쉽지 않다.

국내 최고의 재벌 회장을 덜컥 죽이면?

강찬은 고개를 저어댔다.

“후우! 이 개새끼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뒤탈 없이 속이 후련하게 하지?”

강찬이 머리를 긁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려서 들었다.

“여보세요?”

[“차니! 나를 잊으면 섭섭해요.”]

맞다. 이 새끼를 잊고 있었다.

“너, 여자애랑 잘 지내고 있었잖아? 생각나면 네가 먼저 전화하면 되지.”

[“나 요즘 혼자 지내요.”]

“가슴 큰 애는?”

[“지난주에 헤어졌소.”]

그럼 그렇지!

[“차니. 이상한 제안이 하나 왔어요. 만나서 얘기합시다.”]

“이상한 제안? 그게 뭔데?”

[“만나서 하자니까요?”]

이 새끼가 사람을 달궈? 그러고 보니 여유가 많이 생겼다.

“언제 만나?”

[“오늘, 같이 저녁 먹읍시다. 다예루도 부르지요?”]

“알았다. 그럼 다예랑 전화해보고 연락할게.”

[“오케이, 차니. 그리고 나 어학원 등록했어요.”]

“그건 이따 얘기해.”

[“알았소, 차니. 전화 줘요.”]

통화를 마친 강찬은 석강호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은 후에, 다시 스미든에게 전화했다.

갑자기 바빠졌다.

씻고, 유혜숙에게 전화해서 외출한다고 알리고, 옷 갈아입고. 석강호와 한 시간 일찍 만나기로 했더니 여간 분주한 게 아니다.

강찬이 아파트 입구에 나가자 석강호는 들뜬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그게 뭐냐?”

“요즘 왜 그렇게 꼼짝을 안 해요?”

“야! 그래 봐야 이틀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셨잖아.”

“거, 외로운 나도 좀 챙겨주쇼.”

이놈을 만나면 주로 웃음이 나온다.

둘이 스미든의 집 앞쪽으로 가서 커피전문점에 앉았다.

“호랑이도 아닌 새끼가 딱 맞춰 연락을 다 하네?”

“이상한 제안이 있다면서 사람 달굴 줄도 알더라.”

“그럼 뭐할 거요? 조금 있으면 제 입으로 나불나불할 텐데.”

둘이 아이스 커피를 놓고 담배를 피웠다.

강찬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김형정의 일을 털어놓았다.

“그럼 대장은 나 몰래 김 팀장이랑 같이 갈 생각이었던 거요?”

“꼭 그런 건 아니지.”

“흥! 어쩐지 그날 이상하더라니! 미쉘이랑 잠자리가 어쩌고, 말을 돌릴 때 내가 딱 알아봤어야 하는데 서운하우.”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알았소. 속 좁은 놈 되기 싫으니까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 드리지. 대신 부탁이 하나 있소.”

“뭔데? 말만 해라. 저녁 내가 살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빼놓지 않겠다고 갓 오브 블랙필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주쇼.”

어쩐지 잘 넘어간다 싶었던 석강호가 정색을 하고 강찬을 보았다.

“대장. 더럽게 서운한 거 그냥 넘어가는 거요. 마음 같으면 여기서 펑펑 울 거 같소.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봐요. 내가 죽을 길에 가는데 대장 생각한다고 잠자리 얘기나 하다가 확 사라져버리면 마음이 어떻겠소?”

쯧!

이 새끼가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지?

“대장!”

“알았다. 약속한다.”

“정식으로 콱, 해 주쇼.”

이 새끼가 진짜?

“대장?”

석강호의 눈을 본 강찬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건 말리지 못한다. 뒈지게 패지 않는 한.

“갓 오브 블랙필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앞으로 모든 작전에 너를 넣어주마.”

히죽.

석강호의 웃음을 보며 강찬은 커다란 실수를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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