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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서막.
강찬의 허리와 어깨를 꿰매준 의사가 진료를 다녀갔다. 아들은 상처를 숨기고, 아버지는 병명을 속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나쁜 뜻이 아니니까.
김형정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던 참에 마침 전화가 왔다.
[“강찬 씨. 아버님은 좀 어떠십니까?”]
“병원에 와 있어요.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어요.”
[“오후에 시간 좀 되시나요?”]
“글쎄요? 지금 아버지 병실에 있어서요.”
강찬의 앞에서 강대경이 가보라고 손짓을 해댔다.
“예!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시면 병원 나오실 때 전화 주십시오.”]
“그럴게요.”
통화를 끝내자 강대경이 궁금한 듯 강찬을 보았다.
“김 팀장님이에요. 오늘 만났으면 하시네요.”
“가 봐라.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맡았더라도 어른들께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예.”
좋았다.
아버지가 이런 염려와 걱정을 해주는 것이 말이다.
“엄마, 요즘 졸업생 사이에서 부쩍 뜬 거, 아냐?”
“엄마가요?”
“그래. 호텔에서 네가 해준 거랑 엄마 친구 딸 드라마 출연시켜 준 거, 그리고 프랑스 대학 입학에, 서울대학교 입학까지. 요즘 엄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 거다.”
강찬이 풀썩 웃자 강대경이 “고맙다.” 하고 웃어주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강찬은 문득 유헌우의 충고가 떠올랐다.
“아버지. 정말 왜 그런 일을 당하셨는지,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렇게 넘어가도 되시겠어요?”
“솔직히 궁금하지. 하지만 아빤 너 돕겠다는 마음으로 그날 일 잊으려는 거다.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면 아빠가 말리거나 간섭할 거 같으니까. 아빠 무사하고, 너 이렇게 있으면 됐다. 혼자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마. 나랏일을 하는 게 힘들면 가끔은 아빠에게 투정부려도 돼.”
“예.”
“더 나이 먹으면 못 할 것 같으니까 어디 이리 와봐라.”
강대경이 팔을 벌려주는 틈으로 강찬이 어색하게 안겼다.
툭툭툭.
어깨만 닿은 채로 강찬을 안은 강대경이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날, 네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아빠, 솔직히 무섭지만 견뎌보는 거야. 그러니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힘들 거나 지치거나 혹시라도 힘들 때면 언제고 아빠에게 말해. 알았지?”
“예.”
“다치지 말고.”
드르륵.
강대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실 문이 열렸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들 힘들까 봐.”
유혜숙이 두 사람을 향해 보기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휴, 우리 아들이 아빠 위로해 주고 있었네. 엄마도 한번 안아 줘.”
강찬은 목을 감싸주는 유혜숙을 안았다.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가 우리 아들 정말 사랑해.”
대답도 못 했다.
이런 행복이 세상에 있는 줄, 그리고 그것이 강찬의 몫이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유혜숙이 가져온 칼로 과일을 깎아 먹고, 세 식구가 모처럼 함께 지냈다.
점심은 강찬이 주문한 보쌈으로 대신했다.
“여보. 나 내일 퇴원할란다.”
“이이가! 일주일 정도 쉬어야 한다잖아.”
“아냐. 어제 푹 자고 났더니 몸이 개운해. 여기 좀 불편하기도 하고. 내일 원장님께 말씀드려 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자. 대신 집에서 하루나 이틀, 더 쉴게.”
유혜숙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대경을 노려보다가 “원장님 말씀 들어보고.” 하는 단서를 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는 당신 재단 사무실에도 나가야 돼. 알지?”
“내가 꼭 갈 필요가 뭐 있어? 당신이 알아서 해 줘.”
“이 사람이? 우리 사무실 옆에 오피스텔이니까 잠깐이라도 다녀가. 여직원 한 명 있을 거야.”
강유재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는 동안, 시간이 얼추 오후 3시가 되었다.
“전 나갔다 올게요. 팀장님도 만나볼 생각이구요.”
“그래. 얼른 가라. 그리고 아빠 내일 퇴원할 거니까 너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알았지?”
“이따 봐서 전화 드릴게요.”
“조심해서 다녀, 아들.”
강찬은 그렇게 병실을 나섰다.
***
뜻밖에도 김형정은 삼성동 사무실에서 강찬을 만났으면 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택시만 타면 되는 건데.
강찬은 15분 만에 건물에 도착했다.
5층에 올라가서 문 앞에 서는 순간, 문이 철컹하고 열렸다.
“들어오세요.”
김형정이 문 안쪽에 있었다.
“올라오는 동안 CCTV를 못 본 거 같은데요?”
“그래도 좀 특별한 사무실 아닙니까?”
김형정은 안쪽의 자기 방으로 강찬을 안내했다.
“사표 쓰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차 마시면서 말씀하시죠. 커피? 시원한 음료수?”
“둘 다 주세요.”
“현명한 선택이네요.”
김형정이 웃으면서 나갔다가 쟁반에 커피 두 잔과 음료수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담배도 여기 있습니다.”
탁자에 있던 담배는 이미 서너 개비가 빠져 있었다.
“정신 건강도 챙겨야 되겠다 싶어서요.”
강찬이 풀썩 웃었고, 둘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찰칵.
“후우. 담배가 참 좋은 거네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김형정에겐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럴 땐 그냥 지켜보는 게 제일 좋다.
“북한 특수군 소속 서른 명이 중국으로 넘어간 정황을 찾았습니다.”
“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건가요?”
“원래는 지난번에 넘어온 인원으로 라노크 대사 제거와 그 외 테러를 충분히 수행할 거라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강찬 씨 덕분에 마지막 남았던 인원까지 제거되니까 저쪽도 급해진 거겠죠.”
아직 본론이 나온 것 같지 않아서 강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베를린에서 우리 요원 일곱이 희생됐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국지전과 다르지 않은 희생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차양운이란 자를 뒤쫓다가 중국 정보국의 움직임도 잡았지요. 그 덕분에 북한 특수군이 어디로 움직였는지 확실히 알게 된 겁니다.”
김형정이 재떨이에 담배를 끈 다음 강찬을 보았다.
“대통령께서 재가하셨습니다. 몽고에 있는 북한 특수군을 선제공격할 겁니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강찬은 멍하니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사안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도 신분을 완전히 세탁하고 넘어갑니다. 제가 다시 복직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금 제 지문과 사진 등 모든 기록이 변경 또는 삭제되었습니다. 어디서 잡히든, 누가 뒤지든 저를 찾지 못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대통령님은 우리 영토에서 적들이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도록 지켜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강찬 씨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하셨고. 아버님의 일은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뜻도 전하셨습니다.”
“몇 명이 갑니까?”
“강찬 씨. 이후의 일은 모두 극비리에 진행됩니다. 일주일쯤 후에 후임이 강찬 씨에게 새로 연락할 겁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김형정의 잔잔한 미소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양진우에 대한 정보를 부탁드려도 되나요?”
강찬의 말이 떨어지자 김형정은 책상에서 USB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부탁하실 것 같아서 그의 주변부터 의심 가는 정황, 동선, 경호, 자금까지를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겁니다.”
김형정은 이미 죽을 각오를 마친 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이 길이라 생각하는 거고, 그 끝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거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팀장님. 왜 특수군을 상대하기도 전에 죽음을 확신하세요?”
“그렇게 보입니까?”
“다른 말씀 마시구요.”
김형정이 각오를 다지듯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퇴로를 확보 못 했습니다.”
뭐 이런 병신같은 작전이?
“목표지점이 몽고와 중국, 러시아의 경계에 근접해 있습니다. 그곳까지 갈 수는 있지만, 전투 후에 돌아올 방법이 없습니다.”
강찬이 피식 웃었다.
“결국, 입국한 후에 전투가 벌어지면 몽고군과도 싸워야 한다는 뜻이네요.”
“국경수비대가 근처에 있습니다.”
“입국은요?”
“정상적으로 할 겁니다. 제법 많은 경비가 갑니다.”
알 것 같았다.
입국은 돈을 먹고 누군가가 해주겠지만,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는 도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죽는 것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유니콘을 막으려고 하는 세력에게 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강찬 씨의 아버님을 노리라고 지시한 자들에게 더는 가만있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는 일입니다.”
기가 막힌 심정이어서 강찬은 지켜보기만 했다.
“강찬 씨. 유니콘을 부탁합니다.”
“일주일 정도 걸리신다고 하셨죠.”
“이 이상은 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김 대표님도 이 일을 알고 계신가요?”
“강찬 씨와 약속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강요할 순 없지만, 가능하다면 우리 둘만 아는 것으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죽음을 각오한 대원들과 요원들을 위해서입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합류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예상외로 단호한 거절이었다.
“만에 하나, 강찬 씨의 신변에 일이 생긴다면 제가 이렇게 나선 일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강찬 씨. 유니콘을 부탁합니다. 그것만 이루어진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남자의 눈빛이었다.
그것도 사명을 가진 군인의 눈빛.
***
전에 먹었었던 짬뽕을 함께 먹을 생각이었는데 강찬은 저녁 시간 전에 김형정의 사무실을 나왔다.
죽을 각오를 한 사람에게 일주일은 하루만큼이나 빠르게 흘러간다. 그에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집으로 가는 길에 석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복 상의 가지고 있지?”
[“깨끗하게 준비해 놨소.”]
“오광택 애들 장례식장 갈 건데 같이 갈래?”
[“집 앞으로 가면 되우?”]
“20분이면 아파트 입구에 있을 거다.”
[“알았소.”]
강찬은 집으로 올라가 양복바지에 깨끗한 셔츠를 입은 후에 아파트 현관으로 나섰다.
석강호가 쉬프의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가 어디요?”
“상계 장례식장이라더라.”
석강호가 네비게이션에 장소를 입력하고 바로 출발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하지?
강찬은 석강호를 힐끔 보았다.
“왜 그러쇼?”
“양복 입은 게 안 어울려서 그렇다.”
“어? 우리 마누라는 쫓아오는 젊은 년 조심하라고 했는데?”
강찬이 풀썩 웃고 말았다.
“아버님은요?”
“내일 퇴원하실 건가 봐. 그냥 놀란 데다 후유증이 심하셔서 그런 거니까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다른 말 안 했다.”
“다행이오.”
이번에는 석강호가 강찬을 슬쩍 보았다.
“왜?”
“뭔 일 있지요? 뭐요? 솔직히 말하쇼.”
“없어! 이런 날씨 좋은 날, 너랑 장례식장이나 가는 게 칙칙해서 그래.”
“아닌데?”
“장례식장 들렀다가 용인에서 다친 요원들 문병 갈 거다.”
“그럽시다.”
40분쯤 달려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나 깡패요!’ 하고 써 붙인 것 같은 놈들이 바글바글했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서너 놈이 다가왔다.
강찬은 이러니저러니 하기 싫어서 조수석에서 내렸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 놈이 입술을 뒤틀며 강찬을 보았을 때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안쪽에서 급하게 뛰어온 놈이 있었다. 이름은 모르는데 얼굴은 기억에 있었다.
“이 새끼들이! 강찬 형님을 몰라?”
염병! 주차장에 있던 놈들이 죄 허리를 숙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강찬을 보았다.
놈이 잽싸게 고갯짓을 해서 석강호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형님.”
강찬과 석강호는 놈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기억났다.
전에 석강호가 목이 돌아가 입원했을 때 전화를 걸어주었던 놈이다.
지하 1층 전체를 모두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좌우의 칸마다 영정 사진이 걸려있고, 가족들인 듯한 사람들이 넋 나간 얼굴로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오!”
멀리서 나이 든 여자의 구슬픈 곡소리가 들렸다.
“여깁니다. 형님.”
오광택은 가장 안쪽 칸에 있었다.
강찬이 들어가자 안쪽에 있던 놈들이 모두 일어나 인사했다.
“왔냐? 오셨소?”
수염이 멋대로 자란 오광택이 초췌한 얼굴로 강찬과 석강호를 맞았다.
“앉읍시다. 앉아. 야! 여기 그냥 커피나 가져와.”
오광택이 담배를 꺼내 건네고 제 입에도 하나 물었다.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강찬을 바라본 오광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깡패 싫어한다고 해서 안 올 줄 알았다.”
“필요한 거 없냐?”
“차양운이 불러온 새끼만 알아봐 줘.”
“그건 장례 끝나고 얘기해.”
오광택이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독이 잔뜩 올라 있었는데 당장은 어떤 말을 해도 귀에 차지 않을 거다.
강찬은 20분쯤 앉아 있다가 장례식장을 나섰다.
다음은 경찰병원이다.
김형정이 알려준 병실에 들어서자 몸 절반을 깁스로 감싼 요원 곁에 목발을 짚은 요원과 팔에 깁스를 한 요원이 있었다.
석강호가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이리 앉으십시오.”
“됐어. 바로 갈 거야.”
강찬은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
“덕분에 아버지께서 무사하실 수 있었다. 고맙다.”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며 강찬은 병실을 나섰다.
***
“이제 어디 갈 거요?”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편하게 담배도 피우고.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내가 살 테니까.”
“장어 어떻소?”
“그러자.”
서울 바깥을 뺑 도는 느낌으로 김포로 향했다.
장어를 배 터지게 먹고 둘이 커피전문점에 앉았다.
“맘 풀어요.”
“풀렸어.”
“분명 뭔가 있는데?”
이 새끼는 눈치까지 빨라졌다.
“야. 나 미쉘이랑 한번 자 볼까? 그러면 안에 쌓였던 게 풀리면서 마음이 좀 너그러워지고 그럴까?”
석강호가 히죽 웃으면서 담배를 집었다.
“이거 봐. 말까지 돌리네. 대장. 그러지 말고 뭔지 속 시원하게 말해 보쇼.”
강찬은 그냥 담배만 꺼내 물었다.
“혹시 아프리카 갈 생각이오?”
“아니.”
“그것만 아니면 됐소.”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집에 들어온 시간은 10시쯤이었다.
강찬은 유혜숙과 통화를 하고 대강 씻고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찬 씨. 내일 약속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사님. 내일 약속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안느가 몰랐으면 싶어서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정 바쁘시면 30분이어도 괜찮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라노크가 전화기 너머에서 직원과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찬 씨. 오후 1시에 겨우 시간이 납니다. 대사관으로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강찬은 씻고 오믈렛을 먹은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유헌우가 기다리고 있다가 강찬의 상처를 보아주었다.
“괜찮네요. 내일부터는 샤워도 되겠어요.”
유헌우는 밴드를 붙여주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아버지 퇴원하셔도 되나요?”
“음! 괜찮으실 겁니다. 사실 특별한 치료도 없거든요. 놀라신 것만 풀리셨다면 퇴원하셔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이따 회진하실 때 퇴원 물어보실 거예요.”
“제가 잘 말씀 드리지요.”
치료를 마친 강찬은 병실로 올라갔다.
강대경은 어제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헌우가 올라왔고, 퇴원이 결정되었다.
***
강대경을 챙겨서 집에 돌아온 강찬은 곧바로 프랑스 대사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요원이 강찬을 안내했다.
“강찬 씨!”
“대사님.”
반가웠다.
프랑스식으로 인사를 하고 라노크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대사님. 이 방은 안전한가요?”
라로크가 강찬을 힐끔 보더니 문 앞에 대기하던 요원에게 눈짓을 했다.
문이 닫혔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도청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주파수를 차단했습니다. 밖에서 직접 마이크를 대도 저 음악이 더 크게 들려서 도청이 어려울 겁니다. 무슨 일입니까?”
라노크가 권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강찬은 이어서 담배를 집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라노크는 기다란 다리를 꼬고 앉아 강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찬 씨. 꼭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볼 땐 무모한 일입니다.”
라노크가 상체를 세우며 강찬을 바라보았다.
“대사님. 어려운 부탁인 건 압니다. 하지만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라노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내일 저녁 자리에서 답을 드리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라노크의 표정이 무척이나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