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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서막.
강찬은 석강호의 차를 타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상처였다.
석강호는 상체에 붕대를 감았고, 강찬은 아직 피가 배어 나오는 상태다.
“강찬 씨. 이제 치료합시다.”
상처를 그대로 두고 기다렸기 때문에 김형정이 솔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피를 멈추게 할 필요는 있었다.
“붕대라도 감읍시다. 방지병원엔 부모님 계시니까 여기서 대충 치료하고 근처 대형마트에서 티 두 장 사서 입으면 되겠소.”
쯧!
석강호의 권유에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오리 구이집으로 가서 석강호의 쉬프틀 타고 큰 도로로 움직였다.
승용차 한 대, 승합차 한 대.
김형정은 강찬을 승합차로 안내했다.
요원 하나가 김형정의 지시에 따라 강찬의 상처를 살폈다.
“꿰매야 합니다.”
“여기 그런 거 없잖아. 그냥 붕대만 감아.”
강찬의 태도에 요원이 소독을 한 후, 묶다시피 빡빡하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수고했어.”
강찬이 차에서 내리자 김형정과 석강호가 다가왔다.
“저는 석 선생 차로 움직일게요.”
“강찬 씨.”
김형정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불렀다가는 “알겠습니다.” 하고 입을 닫았다.
김형정과 헤어진 두 사람은 곧바로 출발했다.
“옷을 좀 사야지 않겠소?”
“우리 집으로 가. 거기서 옷 갈아입으면 되지.”
“아 참. 집이 비었지?”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찬의 눈치를 살폈다.
“왜?”
“눈 좀 푸쇼. 누가 보면 싸우러 가는 줄 알겠소.”
“양진우, 그 개새끼가 뒤에서 피식거릴 걸 생각하니까 감정이 가라앉질 않는다.”
“세 살 먹은 애도 이름을 아는 인간을 그냥 달려가서 목을 비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딱 부러진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 새끼도 그걸 아니까 이런 짓을 한 거겠지요.”
“개새끼. 돈이 그렇게 많으면 그 돈 쓰면서 편안하게 살지, 뭐 미쳤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서정모터스 때문에 손해 봤다잖소?”
“야! 그 새끼가 나중에 끼어든 거야. 거기다 손해가 나면 얼마나 났겠냐?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뭐요?”
“그 새끼가 라노크와 아버지를 습격한 데 협조한 이유가 유니콘을 막겠다는 거야. 이해가 안 된다. 대한민국이 돈이 많아지면 누구보다 양진우 그 새끼가 더 많이 벌 거고, 고작 공트 자동차 판매권을 못 뺏었다고 사람 목숨을 그렇게 쉽게 노렸다는 게.”
차가 막히는 게 답답해서 강찬은 창문을 내렸다.
에어컨을 켜고 있어서 그런지 바깥에서 더운 기운이 훅하고 달려들었다.
“우리가 모르는 게 있지 않겠소?”
“그렇겠지.”
강찬의 눈빛을 본 석강호가 입을 다물었다.
***
한국 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양진우는 따로 마련된 특실에서 달팽이 요리를 앞에 두고도 포크를 들지 않았다.
일식집에서 만났던 네 명 중 허상수만 빠져 있었다.
“허 의원은 뭐라고 하시든가?”
“자료만 확실히 폐기하시랍니다.”
“그거야 이미 끝났고.”
양진우가 시선을 돌리자 좌측에 앉아 있던 사내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이번에도 강찬이란 놈입니다.”
“곽 실장. 내가 곽 실장에게 듣고 싶은 건, 그 미친 망아지 같은 놈을 어떻게 처리할 건가 하는 거요.”
곽도영은 체격이 컸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손발까지 커서 테이블과 식기가 그만큼 작아 보일 정도였다.
“국가정보원을 되찾아올 때까지는 조심스럽습니다. 가능한 놈의 이전 기록과 강대경, 유혜숙의 기록을 뒤지고 있는데 최근 말고는 수상한 흔적도 없어서 고심 중입니다.”
“곽 실장.”
“예, 회장님.”
양진우가 크리스털 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오.”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이번도 마찬가지요. 민족과 나라를 위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어. 그런데도 서양 놈들에게 붙은 매국노 하나 처리 못 한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거요? 매국노는 관두고 그런 더러운 새끼를 만든 부모조차 손 못 대는 현실은 또 어떻소?”
“그 점은 시간을 좀 두고서.”
“매국노에게 분명한 경고가 있어야 할 거요. 근본도 없는 종자가 설치고 다닐 만큼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나도 다음 계획에 동참하겠소.”
곽도영은 신음처럼 한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회장님. 지금 말씀을 의원님께서 서운하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양진우의 입 끝이 살짝 들렸다.
“우리 민족이 서양 놈들에게 팔려서, 지금껏 혼신의 힘을 다해 먹이고 입혀준 우리를 오히려 매국노라 부르는 치욕을 당하느니 난 이 일에서 손을 떼겠소.”
곽도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회장님의 뜻이 이렇게 단호하시다는 걸, 제가 분명하게 의원님께 전하겠습니다.”
“그런 매국노를 만든 부모 중 하나만이라도 벌을 주라는 거요. 못난 자식을 믿고 내게 대항한 쓰레기 같은 것들! 그런다고 해서 강찬이란 놈이 눈 하나 까딱할 것 같지도 않지만, 최소한 그놈 어미만이라도 죽은 꼴을 보고 싶은 게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바람이오.”
“말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곽 실장의 답을 믿고 내일 중으로 필요한 자금을 보내겠소.”
양진우가 시선을 돌리자 비서실장 조일권이 안경 너머로 곽도영을 보았다.
***
“여보. 이거 정말 다 받아도 될까?”
유혜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봉투들을 바라보았다.
“마음 편히 먹어. 돌려줄 방법도 없잖아. 난 그 돈보다 우리 아들이 나쁜 일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구나 싶은 게 더 좋다.”
유혜숙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총리께서 그러셨잖아. 어려운 일인데 우리 아들밖에 도울 수 없다고. 그거 말한 거야.”
“난 또 당신만 아는 다른 일이 있는 줄 알았잖아.”
“그런 게 어딨냐? 찬이도 당신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더구먼.”
강대경의 말에 유혜숙이 만족한 듯 웃었다.
“당신 점심 어떻게 할 거야?”
“들어가. 들어가서 찬이 챙겨주고 내일 와.”
“아냐.”
유혜숙이 봉투를 한쪽에 올려놓고 강대경의 손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찬이한테 전화하고 여기 있을래. 그러니까 얼른 기운 차려서 일어나, 여보. 당신 혼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했나 봐. 미안해.”
“별소릴 다 한다.”
“많이 힘들었지? 이렇게 몸살이 나도록 몰랐어.”
“왜 그래? 그렇게 미안하면 뽀뽀!”
“이이는! 병실에서 누가 보면 어쩌려구!”
유혜숙이 대번에 입술을 오므리며 강대경의 손을 때렸다.
“우리 둘뿐인데 어떠냐?”
“당신이 뽀뽀만 하고 그냥 넘어가?”
“설마 병실에서 딴 생각하겠냐?”
“이그!”
유혜숙이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켜 강대경에게 입을 맞춰 주었다.
“됐지?”
“좋다!”
유혜숙이 강대경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난 당신 만나서 늘 고맙고 행복해, 여보.”
“오늘따라 우리 마나님이 왜 자꾸 이러지?”
“그냥 당신하고 우리 찬이 덕분에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봐.”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유혜숙과 통화를 했고, 오늘은 집에 있기로 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석강호에게 편한 옷을 건네주었고, 강찬은 간단하게 씻은 후에 옷을 갈아입었다.
“여기다 넣어. 나가는 길에 버리자.”
칼을 맞는 바람에 버린 옷이 몇 장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요?”
“먹어야지.”
“우리 미사리 백반집 갑시다. 그 앞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어차피 집에서는 담배 피우기도 그렇잖소?”
“그러자.”
강찬은 석강호와 둘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양진우, 죽일 생각이오?”
“응.”
석강호는 짐작하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 쪽 목숨을 노렸던 놈들이야. 숨겨진 이유가 뭐든 간에 제 욕심이 차지 않으면 쉽게 포기 안 할 거다. 그럴 바엔 우리식으로 해결하자.”
“방법은 생각해 봤소?”
“아직. 그 새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게 먼저라서 딱히 떠오른 건 없다.”
“쉽지는 않겠소.”
“그렇지. 일단 고민 좀 해보고.”
강찬은 유리창에 걸친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미사리에 도착해서 우선 백반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깨끗하게 밥공기를 비웠다.
다음은 당연하게 자주 가던 커피숍이었다.
이젠 종업원이 아는 척도 한다.
냉커피 두 잔을 시키고 강이 보이는 야외 자리에 앉았다.
철컥.
“후우.”
담배를 피우는 동안 커피가 나왔다.
“내일 김 팀장 만나서 양진우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해볼게. 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지. 그리고 이건 우리 둘이서만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알았소.”
결정이 나자 마음이 편했다.
***
서울로 돌아와 아파트 앞에서 석강호와 헤어졌다.
눈빛에 독기가 가득 남아서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강대경과 유혜숙이 대번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거다.
적이 코앞에 있어서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데 먼저 달려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기분.
깡패가 스물 가까이 죽었다.
늘 싫어하던 놈들이고, 그 삶 자체를 부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사고현장에서 보았던 놈들이 깡패라고, 오광택이 알아본 게 깡패 출신이라고 방심하지만 않았더라면.
거실에 어둠이 깊게 깔렸는데도 강찬은 불을 켜지 않았다.
‘냉정해지자. 강찬.’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털어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웅웅웅.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문자가 오면서 전화기의 불빛이 거실에 피어올랐다.
불을 켜라는 건가?
강찬은 거실의 스위치를 켜고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야?]
김미영이었다.
순간, 미쉘과의 키스가 떠올라 미안했고, 커다랗게 숨이 토해지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화하지 말까?
당장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어서 실수할까 봐 겁나기도 했다.
웅웅웅.
[나 학원 끝나서 집에 가.]
풀이 죽어서 걸어오고 있을 김미영이 떠올라서 강찬은 피식 웃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학원 이제 끝났어?”
[“응!”]
오늘은 김미영이 또 여동생처럼 느껴졌다. 목소리를 듣자 이상스레 독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잠깐 볼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냐?
“지금 나갈게.”
[“응!”]
통화를 끊고 강찬은 터덜터덜 아파트를 내려갔다.
현관을 나설 때 아파트 입구에 있던 김미영이 그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넘어진다!”
“흐흐흐.”
어이그. 이 철딱서니야!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운 날이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벤치마다 사람이 많았다.
“팥빙수 먹으러 갈까?”
“아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
김미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잠깐 걸을까?”
“응.”
강찬은 김미영의 가방을 받아서 어깨에 메고 느긋하게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아함!”
김미영이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졸려?”
“응. 조금. 요즘 프랑스어 따로 공부한다고 하루 세 시간씩밖에 못 잤어.”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 우선 대입 제대로 보고 그 이후에 집중하면 되지.”
“올해 말에 델프 보려고 준비 중이야.”
“벌써?”
이게 가능해?
기초 언어 시험인 딜프도 아니고, 중급 이상인 델프 시험을 준비한다고? 불과 며칠 사이에?
“올해 말이잖아. 우리나라에서 1학기 마치고 유학 가는 걸로 할 거야. 나 잘했지?”
“굉장하다!”
진심이다.
프랑스어 자격시험 델프를 고작 6개월 만에 통과한다면 1년이면 현지인처럼 구사할 거다.
“나 공부가 너무 재밌어. 내가 목표한 공부를 끝내야 프랑스어 공부할 수 있게 계획을 짜놔서 앞에 공부도 더 잘 돼. 내년부터 우리 둘이 프랑스에서 지낼 생각 하면 막 힘이 나!”
강찬이 풀썩 웃자 김미영이 특유의 웃음으로 따라 웃었다.
“내년 내 생일에는 프랑스에 있을 거야.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
“그래.”
강찬의 대답을 김미영은 “흐흐흐.”하는 웃음으로 받았다. 며칠 못 본 사이 조금은 성숙해졌나 싶었는데 웃음소리를 들으니 다시 제대로 고등어처럼 느껴졌다.
얜 미쉘보다는 좀 더 풍만한 느낌이다.
허리에 비해 가슴과 엉덩이가 커서…….
누구랑 누구를 비교하는 거냐!
강찬은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김미영과 걷다 보니 독기가 많이 빠졌다.
“나 열심히 할게.”
“그래.”
김미영이 고개를 돌렸을 때 강찬은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공부를 독기 있게 하는 아이라 그런지, 어설프게 깨질 눈빛은 아니었다.
“미영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먼저 입학하는 거 맞지?”
“응. 그래야 프랑스 유학이 더 유리하대.”
혹시 몰라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아파트 외곽을 반쯤 돈 뒤에 지름길을 통해서 현관으로 돌았다.
“오늘만 좀 자. 내일 일요일이니까 그때 좀 더 하고. 피곤해 보여.”
“어? 그래서 나 미워 보여?”
이럴 땐 영락없이 중딩이다.
“그런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은 조금 일찍 잘게. 안녕!”
“그래.”
손을 흔들어주자 마치 제가 세운 목표를 향하는 것처럼 김미영이 빠르게 달려갔다.
사람이 좀 없었다면 벤치에 앉아있고 싶은데 여전히 가족단위로 나온 이들이 많았다.
강찬은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뒤에 유혜숙이 전화를 걸어와서 저녁은 먹었는지 다른 일은 없는지를 챙겼고, 강대경과 잠시 통화했다. 목소리가 평온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새끼는 어떻게 된 거지?
비록 깡패라도 덧없이 죽은 거다.
경찰 병원을 거쳤으면 분명 장례식장에 있을 텐데 오광택의 전화가 없는 게 찜찜했다.
‘전화를 걸어 봐?’
전화기를 노려보던 강찬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상처가 조금 욱신거린다고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려던 강찬은 간단하게 머리를 감고 세수만 했다. 허리와 어깨에 감은 붕대가 생각보다 심하게 젖어 있어서였다.
아침은 역시 오믈렛이다.
이 빌어먹을 음식이 유혜숙이나 강대경과 먹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혼자 먹으려니 아주 지랄이다.
병원에 갈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 입었던 옷에 시커멓게 피가 말라 있어서 또 버리게 생겼다.
양진우! 이 개새끼!
인터넷으로 얼굴이나 봐둘걸.
강찬은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를 내려와 분리수거통에 집어넣은 다음 택시를 탔다.
방지병원에서 강찬을 모르면 그건 정말 수상한 거다.
당직의사는 유헌우보다 덤덤하게 강찬의 상처를 살피고, 소독한 후에 꿰매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응급처치가 좋아서 큰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사 한 대 맞으시고 처방전 받아가세요.”
“수고하셨어요.”
강찬은 주사를 맞은 후, 처방전을 뒷주머니에 넣은 채로 병실로 올라갔다.
드르륵.
“어머! 아들!”
“좀 어떠세요?”
“어! 많이 좋아졌다. 아침은 먹었니?”
“예. 오믈렛 해 먹었어요.”
강대경을 먼저 살핀 강찬은 다음으로 유혜숙을 보았다.
“어머니 아침은요?”
“병원이 이상해. 특식처럼 푸짐하게 해서 엄마 것두 나왔어. 병원비 비싸게 받으려는 거 아니겠지?”
유혜숙의 말에 강대경과 강찬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일은 없었지?”
“예. 아무 일 없었어요.”
유혜숙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찬아. 너 혹시 병원에 좀 있을 수 있냐?”
“예, 아버지. 왜요?”
“엄마 집에 가서 좀 쉬게 하려고. 몸살 좀 난 건데 자꾸만 저렇게 혼자 있으면 안 되다고 해서 그런다. 여보! 찬이 있으니까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와.”
“그러세요! 제가 있는 동안 가서 좀 쉬셨다가 오세요.”
“그래, 아들. 그럼 엄마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아들이 아빠 좀 챙겨드려.”
강찬의 어깨를 쓰다듬어 준 유혜숙이 병실을 나섰다.
“차는 드셨어요?”
“엄마가 타줬다. 너 뭐 마시려면 마셔라.”
“전 됐어요.”
어설프게 봉지 커피 마시면 담배 생각난다.
“너 아빠 걱정하고 있지?”
강대경이 뜻밖의 질문을 날리고는 강찬을 빤히 보았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침대 머리를 세워서 기대앉은 강대경이 강찬의 머리를 털듯이 쓸었다.
“아빠 걱정하지 마라. 네가 하는 일이 옳다면 옳은 거다. 병실에 찾아오셨던 분들과 학생들의 눈빛에 든 진심을 본 걸로 아빤 만족한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아빠 걱정하지는 마. 필요하면 언제고 도움 청하고. 아빠가 그래 주면 되지?”
강찬은 대답도 못 하고 눈만 끔뻑였다.
“다 큰 줄 알았더니 이럴 때 보면 아직 아니네?”
강대경의 손길이 정말 좋았다.
“찬아.”
“예, 아버지.”
“그 사람들이 아빠를 왜 노렸는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으마. 대신 엄마는 놀라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싶다.”
“예. 꼭 그렇게 할게요.”
강찬은 최대한 빨리 양진우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