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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꼬리잡기.
라노크가 돌아가고 난 후에 평온이 찾아왔다.
“아들. 엄마는 오늘 병원에 있을게. 미쉘하고 나가서 차라도 마시고 집에서 쉬어. 그리고 내일 와.”
“점심이랑 저녁은 어떻게 하실려구요?”
“엄마가 그거 하나 못할까 봐?”
강대경이나 유혜숙에게 미쉘이 불편할 수 있겠다.
“그럼 오후에 봐서 전화 드릴게요.”
강찬을 따라서 미쉘이 함께 일어섰다.
“안뇽히 계세요.”
“그래요, 미쉘. 다음에 또 봐요. 내가 다음번엔 꼭 밥 한번 살게요.”
강찬은 멋진 프랑스어로 “알아들었지? 나가자.” 하고 말을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미쉘은 유혜숙과의 허그를 잊지 않았다.
병원을 나선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이대로 가라는 건 예의가 아니다.
“밥 먹어야지. 어디 갈까?”
“분위기 좋은 곳!”
강찬이 힐끔 보았을 때 미쉘이 팔짱을 끼었다.
“차니. 우리 맥주 마시러 가자.”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곳이 있냐?”
팔에 느껴지는 미쉘의 가슴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안느와의 키스, 거기에 어제 울먹였던 일이 생각나 팔을 빼기 그랬다.
미쉘은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작고 앙증맞게 생긴 수입차다.
운전을 할까 했지만, 강찬은 그냥 조수석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 거야?”
“차니는 생각나는 데 없지?”
“나야 그렇지.”
미쉘이 환하게 웃으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토요일이라 올림픽 도로가 제법 막혔다.
“차니. 꼬마 여학생은 몰라도 안느는 좀 더 신경 써 줘. 그 아가씨는 지금 온통 차니 생각밖에 없을 거야. 달라질 거라는 각오를 칭찬해주고 격려해 줘. 그래서 강해지고 나면 그 경호원처럼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던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줘. 세상은 차니처럼 강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야.”
“안느 때문에 화난 건 아니고?”
“키스뿐인데 뭘. 그것도 일방적인 키스. 차니가 거북해 한 걸로 난 됐어.”
강찬이 피식 웃은 다음이었다.
“차니는 은근히 바람둥이 기질이 있어.”
미쉘이 짓궂은 눈빛으로 강찬을 흘겨보았다.
“차니가 관심 없어 할 때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지?”
“너만 그런 거야.”
“흥.”
미쉘이 새침하게 고개를 틀었다.
깊게 들어간 눈, 오뚝한 코, 금발, 그리고 가끔은 한번 만져보고 싶게 하는 가슴까지.
얘랑은 뭐가 빗나간 걸까?
그냥 한번 자?
그런데 그 뒤가 무섭다.
프랑스로 휴가 나왔을 때 느꼈던 그 허무함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거다.
“차니. 드라마 제작팀 회식 말이야.”
디아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유로에 들어섰다. 이후로는 길이 그리 막히지 않았다. 적당히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자유로를 빠져나왔는데 얼마 가지 않아 통나무로 지은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그럭저럭 주변이 산이다.
차에서 내리자 단숨에 몰려드는 상쾌한 공기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조수석에서 내려 입구를 향하기 위해 걸어 나왔을 때였다.
미쉘이 다가와 강찬을 안았다.
가슴에 머리를 붙이고 팔을 뒤로 둘렀는데 몸이 뜨거웠다.
“이대로 잠깐만 있자.”
그래. 이 정도야.
강찬은 미쉘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행복해.”
미쉘이 뜨거워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기습적으로 당하는 건 몰라도 이건 아니다.
강찬이 바라보기만 하자 미쉘이 눈을 찡그렸다.
“미쉘. 저기 미안한데.”
“키스만 해줘. 난 안느처럼 하고 싶지 않아.”
미쉘의 몸이 완벽하게 강찬에게 붙어 있었다.
“차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 안느를 이해해 줬던 것처럼 지금은 날 이해해 줘. 내가 견딜 수 있게.”
주차장에 서서 섹스를 나누는 느낌이 들 정도로 미쉘의 몸이 자극적으로 움직였다.
촉촉한 눈빛이 강찬을 원하고 있었다.
강찬은 미쉘을 향해 얼굴을 움직였다.
뜨거웠다.
그녀의 숨결, 볼, 입술, 주저함 없이 넘어오는 혀,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강찬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미쉘은 적극적이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클랙슨을 커다랗게 울려댔지만 상관없었다.
강찬은 처음으로 미쉘을 갖고 싶었다.
허리 아래로 파고드는 그녀의 몸에 들어가고 싶었다.
주체하기 어려운 욕구가 밀려오면서 미쉘을 힘차게 잡아당겼다. 풍만한 가슴과 한없이 부드러운 아래의 감촉이 힘을 더할수록 아쉽게만 느껴졌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강대경의 일이 있었던 후라 그런지 강찬이 움찔했고, 미쉘이 아쉬운 듯 커다란 숨을 토해내며 강찬에게서 물러났다.
강찬도 아쉬웠다. 더럽게 많이.
웅웅웅. 웅웅웅.
“여보세요?”
[“강찬. 찾았다! 이 새끼들 분당에 있어. 산속에 별장처럼 지은 집인데 몇 놈인지는 아직 몰라.”]
오광택의 흥분한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확한 주소 아냐?”
[“분당에 숙성 오리구이 찍어. 그 옆에 난 길로 올라가면 그 집밖에 없다. 어떻게 할래?”]
“오광택. 움직이지 말고 있어.”
[“야, 이 새끼야! 나도 깡패야! 나도 칼로 살았다고! 이런 일에 뺄 생각하지 마! 아니면 내가 먼저 간다!”]
“알았다, 알았어! 일단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애들은 다른 곳에 두고 우선 너만 오리구이 집으로 와. 만난 다음에 결정하자. 밖에 나간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지금 출발할게. 스무 명 추려 간다. 이따가 보자.”]
통화를 끊은 강찬을 미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았다.
“미안해, 미쉘. 정말 중요한 일이라 가봐야 돼.”
“어디야? 내가 태워다 줘도 되지?”
미쉘은 두말하지 않고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아직 여운이 남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오광택이 알려준 분당의 식당을 입력한 후에 곧바로 출발했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직 병원이쇼?”]
“오광택이가 놈들을 찾았단다. 분당에 숙성 오리구이 찍어서 그리로 와. 쿠크리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알았소. 대장은 그리로 바로 올 거요?”]
“지금 가는 길이야.”
[“10분! 아니 5분 안에 출발하우.”]
시작이다.
이참에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눈빛이 왜 그래?”
눈이 또 번들거렸나 보다.
강찬은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바로잡은 후에 분당에 도착하고 싶었다.
“미쉘. 사실 나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아이 있어.”
미쉘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상관없어.”
그리고는 정말 시원하게 말을 던졌다.
“차니에게 내 처음 모습이 어땠는지 잘 알아. 실제로 그렇게 살았고. 지금 내가 차니를 좋아하는 건 정말 내가 좋아서야. 어린 친구 좋아하는 거? 이해해. 그러니까 전에 부탁했던 대로 밀어내지만 말아줘.”
이게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거 맞나?
“차니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까 많이 만나 봐. 난 내가 진심을 다해서 사랑할 사람을 만난 거니까 이렇게 차니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게 행복하거든.”
“서운하거나 화나지 않냐?”
“대신 아까처럼, 가끔은 안아주고 키스해 줘. 난 그걸로 충분히 만족해. 사랑 없는 섹스 백 번보다 훨씬 황홀했어. 사실 나 속옷 갈아입어야 할 정도야.”
강찬이 풀썩 웃고 말았다.
바비인형 같이 생겨서 어쩌면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건지.
“키스는 약속하는 거지?”
“자신 없다.”
솔직하게 오늘 같은 키스를 더 하다가는 강찬이 먼저 미쉘을 원하게 될 거다.
“안 돼.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안느하고도 키스해 놓고 뭘. 한 달에 두 번. 내가 키스하고 싶을 때 키스할 권리를 줘.”
뭔가 남녀의 역할이 바뀐 느낌이었다.
“근데 차니 몸 정말 좋더라. 나 숨을 쉴 수가 없었어.”
미쉘의 강찬의 허리 아래를 힐끔 봤다.
싸우러 가는 마당에 할 소리는 아니다.
“회식은 알아서 잡아. 그리고 아까 문병 온 분들과 하는 일이 있으니까 난 그때 상황에 맞춰서 움직일게.”
“무슨 일 있었어? 차니가 뭔가 바뀐 거 같은데?”
“글쎄.”
강찬은 답을 얼버무렸다.
아프리카를 잊기로 하면서 마음이 변한 건 맞다. 하지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
식당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우게 한 뒤, 강찬은 차에서 내렸다.
“여기서 돌아가.”
“위험한 일 아니지?”
내내 뜨거웠던 미쉘이 지금은 살짝 겁내며 묻는다.
강찬은 가볍게 웃어주고 문을 닫은 다음 돌아섰다.
오르막길이다.
정면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길 양쪽에 막 자란 작은 나무들과 배배꼬인 줄기들이 가득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주차장에 있던 놈 하나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이미 받은 인사다.
괜히 말을 걸어서 깡패가 온 것을 확인시키느니 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았다.
차라리 좀 더 아래쪽에서 만날 걸 그랬다.
가게 안은 온돌로 된 넓은 홀을 중심으로 한쪽은 주방, 맞은 편은 방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온 것을 알아본 아주머니가 안쪽을 흘깃 보았을 때였다.
“강찬!”
오광택이 안쪽 방문을 열고는 강찬을 불렀다.
“주문하시겠어요?”
문앞에 따라온 아주머니가 고개를 살짝 디밀었다.
“한 명 더 올 건데 그냥 구이 한 마리 주세요.”
“예.”
주문을 한 오광택이 문을 닫았다.
“어떻게 찾았냐?”
“앉아. 숨이나 돌리고 말해. 여기.”
오광택이 담배를 건네줬다.
“동영상에 나온 새끼 이름이 차양운이거든. 그 새끼 중국 건너갈 때 같이 생활 접은 친한 새끼가 하나 있거든. 최근에 중국 가고 싶은 놈 있으면 말하라고 떠들었다는 말 듣고 가서 잡았더니 여길 알려주더라고. 여기 집도 그놈 이름으로 사 놓은 거고.”
오광택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그 새끼가 알려주면 어쩌려고?”
“지금 저 아래 승합차에 애들이 데리고 있어. 이번에 용인 일 할 때 그 새끼도 끼어있었단다.”
강찬은 모처럼 속이 후련했다.
우선 집에 있는 개새끼들을 먼저 해결하고?
“다른 놈들은?”
“동영상을 몇 놈이랑 같이 봤는데 다들 아는 얼굴이 없는 걸 보면 중국에서 데려온 놈들이지 싶다.”
“여기서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데?”
“바로 위란다. 길이 구부러져서 안 보이는 거지, 소리 지르면 바로 들린다고 하더라.”
강찬이 만족한 듯 웃자 오광택이 팔을 앞으로 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서 오세요.”
밖에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광택이 문을 열어보고는 “여기요!” 하자 석강호가 손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강찬은 오광택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여기 있으면 뭐 할거요? 바로 갑시다.”
석강호가 손가방을 두들겼다.
“지금보다 밤 돼서 놈들이 다 들어왔을 때 덮칠 거니까 우선 주문한 거 먹으면서 기다리자.”
“저 밑에 승합차 한 대하고 승용차 한 대 있던데, 그거하고 주차장에 서 있는 꼬마 보면 저놈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눈치채지 않겠소?”
강찬은 외길로 들어올 때 승합차와 승용차를 못 봤다.
“반대쪽에서 온 거 아니요? 뭔 이상한 부동산 건물 옆에 세워져 있던데? 한눈에 알아보겠습디다.”
부동산 건물은 봤었다.
거기에 석강호가 알아볼 정도로 차를 세워 놓은 거라면 자칫 놈들에게 들킬 확률도 높았다.
“CCTV가 있다던데?”
“감시 카메라가 있어?”
“두 대 있다고 하더라.”
강찬이 어쩔까 할 때 오리구이가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겉이 탄 두꺼운 호박을 칼로 쪼갠 안에서 노릇한 오리가 김을 피워내고 있었다.
어쩌지?
오리가 중요한 때가 아니다.
‘여름이라 해도 길고.’
뜻밖에 잡은 기회를 쉽게 날릴 순 없다.
강찬과 석강호는 용인에서 얼굴을 봤고, 오광택은 원래 알던 놈이다. 그렇다고 어설픈 깡패 놈 올려보내는 건 일을 그르치는 것 같아서 그렇고.
“예. 예. 오리구이 세 마리요? 윗집이요. 네.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그때 아주머니의 말에 셋이 번갈아 눈을 마주쳤다.
“저거 다 구워지면 들고 올라가면 되겠다.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도 이거 먹고 올라가자.”
강찬은 젓가락으로 구워진 오리의 가슴살을 떼어내 먹었다. 점심을 걸러서 출출한 탓이 컸다.
“선생 형님. 이래저래 불편하니까 그냥 강호 형님이라고 부릅시다.”
“맘대로.”
“이거 하나 드시오.”
오광택이 석강호에게 다리 한쪽을 건네준 후에 나머지 한쪽을 들고 뜯었다.
20분쯤 지나서 오광택이 먼저 방을 나갔다.
“아줌마. 윗집에서 가져오란 오리 말이에요!”
“예.”
“우리가 거기 가는 길이니까 다 되면 알려주세요.”
“그러시면 저야 고맙죠. 그럼 계산은요?”
“내가 할게요.”
“예.”
얘기가 순조롭게 끝났다.
강찬과 석강호는 손을 씻어 기름기를 없앤 후에 마당으로 나갔다. 혹시나 몰라 길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승용차 건너편에 섰다.
“쿠크리.”
석강호가 손가방에서 쿠크리를 두 자루 꺼내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스응.
손잡이를 잡고 칼을 뽑아들자 섬뜩하게 벼른 날이 강찬을 노려보았다.
만족스러웠다.
“내가 오리를 들고 올라가서 문을 열면 그때 올라와.”
“밑에서 그걸 어떻게 아우?”
“이 정도 산속이면 뭔 소리든 다 들리겠다.”
“같이 갑시다.”
“야! 오리 세 마리다. 너랑 나랑 둘이 올라가면 저 새끼들 대번에 알아. 마침 옷도 편하게 입어서 나 혼자는 어떻게 넘어갈 거다.”
석강호가 강찬의 옷을 훑어보고는 입술을 뒤틀었다. 양복 입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 거다.
“담배나 하나 줘.”
“여차하면 유리창이라도 깨쇼.”
강찬이 석강호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오광택이 플라스틱 노끈이 달린 종이백을 들고 나왔다.
“대장.”
“왜?”
“만약 소리가 안 나고 5분 넘어가면 그냥 올라갈 거요.”
“알았어.”
강찬은 쿠크리를 뒤쪽 허리에 꽂고 오광택에게서 종이백 세 개를 건네받았다.
“간다. 참! 얼마라데?”
“15만 원. 야! 신호는? 애들 불러야 하니까 좀 있다가 올라가.”
“둘이 말 맞춰 놨으니까 그대로 따라 해. 전화 연결 하고 있다가 싸우는 소리 들리면 올라오라고 하면 되잖아.”
“알았다.”
“간다!”
강찬은 숨을 한번 들이마신 후에 길을 따라 올라갔다.
식당을 지나서부터는 그냥 산속에 난 흙길이었다.
콘크리트로 포장할 법도 한데 그냥 맨땅이라 좁은 길 양쪽이 차바퀴 간격으로 내려앉았다.
저벅저벅.
강찬은 눈빛을 풀기 위해 눈을 껌벅이며 걸었다.
뒤쪽에서 전해지는 쿠크리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저기구나.’
실제로 산길을 잠깐 올라가 왼편에 숨은 것처럼 집이 나왔다.
별장이 아니라 흔히 보이는 오래된 2층 양옥집이다.
창살로 된 문 안으로 정원 겸 주차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현관, 이 층 베란다, 그리고 외부에서 베란다로 올라가는 대리석 계단이 별도로 있었다.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강대경과 라노크의 목숨을 노리라고 지시한 놈들을 찾아내는 거다.
강찬은 가슴 높이쯤 오는 대문에서 벨을 눌렀다.
반투명 유리라 거실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오리구이 가져왔는데요?”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찌이잉! 덜컹!
문이 열렸다.
개새끼들이 의심하는 줄 알고 잠시 긴장했었다.
강찬은 주저하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현관문을 당겼는데 안쪽에서 잠겼다.
“기다려!”
거친 말과 함께 자물쇠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현관문이 열리며 성질 더럽게 생긴 놈이 발로 문을 버티고 손을 내밀었다.
“얼마야?”
“15만 원이요.”
강찬은 우선 종이백 세 개를 놈에게 건네주었다.
“아, 그 새끼. 돈이나 꺼낸 다음에 주지.”
놈이 투덜거릴 때 강찬은 흘깃 안을 보았다.
“여기!”
강찬은 돈을 내민 놈의 얼굴을 빤히 봤다.
“뭐해, 이 새끼야! 빨리 돈 받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놈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강찬이 있는 쪽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강찬은 가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전문가의 눈빛이었다.
라노크를 노리고 호텔에 왔던 놈들 수준의 전문가.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근데 이 새끼가?”
오리를 받아든 놈이 욕을 뱉을 때 놈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알아봤다.
서로 알아본 거다.
“비켜!”
놈이 현관으로 튀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스응! 피윳!
강찬은 쿠르리를 뽑아내는 동작으로 앞에 있던 놈의 목을 그어버렸다.
“커흑! 컥!”
콰다당!
놈이 목을 부여잡고 신발장에 부딪치는 순간이다.
강찬은 한 걸음을 뛰어들었고, 놈은 안쪽 현관에서 한 걸음을 나왔다.
퍽. 파바바박. 피윳! 파박.
오른쪽 팔꿈치를 쿠크리로 갈랐는데도 적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퍼억! 퍽!
강찬과 놈의 팔꿈치가 얼굴 앞에서 두 번이나 마주쳤다.
그 순간, 거실에서 놈들이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