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81화 (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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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하나씩 짚죠.

병실에 올라갔다.

강대경은 침대를 세운 채로 기대있었고, 그 옆에 유혜숙이 있었다.

강찬은 의자를 끌어다가 강대경의 침대 옆에 앉았다.

“들어가. 가서 좀 쉬어.”

“괜찮아요. 볼 수 있을 때 엄마를 좀 봐둬야죠.”

강대경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제의 보았던 강찬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치는 모양이었다.

평범하게 자라 가정을 일군 사람에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칼부림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것도 자식이 그러고 있는 모습이.

강대경의 충격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강찬은 곰곰이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독기 있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무료한 시간이다.

TV가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 앞에서 당장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입이 궁금한데 뭐 시켜 먹을까요?”

“그럴래?”

두 사람은 원래 주전부리를 잘 하지 않는다. 대꾸를 하면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관심을 돌리 수 있게 전화가 울렸다. 미쉘이었다.

“알로!”

강찬은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차니. 곤란한 거야?”]

미쉘 역시 프랑스어로 받았다.

얘도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

“아버지 병원에 계셔서 와 있어.”

[“왜? 많이 편찮으셔?”]

어제 교통사고 일을 모르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괜찮으면 내가 병원 가도 돼?”]

“어딘데?”

[“회사야. 어느 병원인데?”]

어제 울먹이던 것도 떠오르고, 오늘 맥주 마시기로 했던 것도 생각났다.

“잠시만.”

강찬은 전화기를 내리고 두 사람에게 미쉘이 문병 온다는 말을 했다. 난처한 얼굴이지만,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병원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오면 점심 대접하면 되겠다.”

유헤숙의 말을 강대경은 이해하지 못한다. 잠시 유혜숙 친구 딸이 드라마 출연하게 되었다는 말을 전한 다음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석강호가 전화를 걸어왔다.

“네. 선생님.”

[“부모님하고 같이 있소?”]

이 새끼는 다른 몸이 되어서도 목청이 크다. 강찬은 눈치채지 못하게 전화기의 볼륨을 줄였다.

“병원에 왔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세요.”

강대경이 슬쩍 유혜숙의 눈치를 살폈다.

[“어제 퇴원하셨다더니 많이 편찮으신 거요?”]

“몸살이 심하시대요. 며칠 계시다 퇴원하실 거예요.”

[“어쩌우? 그럴 거면 아침에 차를 가져오라고 하지!”]

적당히 하고 좀 끊어라!

“네.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강찬은 뻑뻑한 통화를 시원하게 끝냈다.

“어쩜! 선생님께서 너한테 정말 많이 신경 써 주시는구나. 언제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예. 나중에요.”

가능하면 없어야 할 일이다.

이후로 김형정, 김태진의 전화가 차례대로 왔고, 비슷한 대답을 했다. 다들 눈치껏 알아듣는 분위기였다.

연달아 전화가 왔다. 라노크였다.

“예, 대사님.”

[“강찬 씨. 오늘 바쁜가요?”]

“아버지께서 과로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와 있어요.”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대사님께서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죠. 급한 일이신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나중에 전화 드리죠.”]

강대경과 유혜숙은 궁금한 얼굴이었다.

“대사님이세요. 오늘 시간 어떠냐고 해서 병원에 있다고 했어요. 다음에 전화하신대요”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면, 그냥 약속을 잡지.”

강대경이 안타까워할 때였다.

드르륵.

“안녕하세요!”

뭐지?

강찬도 당황스러운 등장이었다.

유혜숙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대경도 억지로 자세를 좀 더 세워 기대앉았다.

“대표님 아버님이 편찮으시대서 왔어요. 안녕하세요? 지난번 쉬프 발표회장에서 뵈었던 은소연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디아이 소속 연기자들이에요.”

“안녕하세요? 아버님, 얼른 완쾌하세요!”

합창처럼 함께한 인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유혜숙과 강대경은 은소연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어쩜. 와줘서 고마워요. 이리 앉아요. 어쩌지? 의자가 부족하네!”

“아니에요. 저희는 오늘 대본 연습이 있어서 방송국 가야 해요. 그리고 이거.”

은소연이 꽃을 건네주었고, 뒤에서 연습생들이 음료수 상자와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런 법이 어딨어요? 차라도 한잔 하고 가요. 아니면 이 과일이라도 같이 먹고 가든지.”

“저희, 대표님께서 지켜주신 덕분에 드라마 찍을 수 있게 됐어요. 또 여기 있는 연기자 전부 출연하구요. 지금은 아직 이렇지만, 우리 중 누가 스타가 되든 이 고마움 잊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저희끼리 다짐한 게 있어요.”

공손하게 말을 한 은소연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쉬프 광고와 아버님이 하시는 사업의 모든 광고에는 죽을 때까지 무료로 출연하겠습니다!”

초등학생이 책을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외친 다짐이 병실에 가득 찼다.

“연습 시간이 있어서 이제 가겠습니다. 아버님, 얼른 일어나세요.”

“얼른 일어나세요!”

은소연이 아쉬운 얼굴로 강찬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에 연습생들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한바탕 폭풍이 쓸고 간 느낌이었다.

“저 아가씨도 네가 있는 회사 소속이었니?”

“예. 그런데 쉬프 발표회장에 있었던 건 저도 생각 못 했어요.”

강대경은 당황했고, 유혜숙은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다.

“어쩜! 표정들이 밝아서 정말 보기 좋다.”

강찬은 그냥 말없이 웃기만 했다.

요건 틀림없이 미쉘 작품일 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쉘이 꽃, 과일 바구니, 그리고 케익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꽃을 든 손으로 문을 억지로 열면서 말이다.

“어서 와.”

“어머님. 안녕하세요?”

한국말이다. 교묘하게 프랑스어 억양을 섞은.

드라마에 내보내도 손색없는 연기력이었다.

미쉘은 유혜숙을 안고 볼에 키스를 한 다음, 강찬에게도 같은 인사를 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앉아요. 그렇지 않아도 무리한 부탁 해서 미안하던 참이에요.”

미쉘이 강찬을 보았다.

프랑스어로 “은소연하고 연습생 보낸 거, 너지?” 하고 물었는데 미쉘은 유혜숙을 향해

“아니에요, 어머님.” 하고 한국말로 답을 했다.

“우리 말이 많이 늘었네요.”

“강찬 씨 덕분이에요.”

아주 지랄을 떤다.

어제 울먹이던 것도 연기였나.

아무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미쉘은 아예 일회용 접시와 플라스틱 포크까지 준비해왔다.

케익은 전부 다른 종류였다.

맛도 있었다.

누가 문병 온 거고, 누가 아들이야?

강대경과 유혜숙은 온통 미쉘과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은소연을 못 되게 이용하려던 알리온을 강찬이 직접 만나서 막아낸 이야기를 통역할 때는 등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사무실에 무서운 사람이 찾아왔는데 강찬이 나타나서 겁먹지 않게 연기자들과 직원들 지켜주었다는 이야기에 유혜숙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얘는 연기가 아니라 작품을 쓰는 게 낫겠다.

팔 부러트린 얘기와 폭력 장면을 빼고도 어쩌면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지.

뒤늦게 얘가 원래 잡지사 에디터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강대경은 당시 모습을 대강 짐작하겠다는 표정이었다.

11시경에 강유모터스 임원들과 직원들이 방문했다.

한바탕 인사와 함께 음료수를 꺼낼 때였다.

드르륵.

김형정이 들어왔다.

“어? 팀장님.”

김형정이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문 안쪽으로 섰다.

‘뭐지?’ 하는 순간에 신분증을 왼쪽 가슴에 단 사내들이 서넛 들어왔다.

염병!

마지막에 들어선 사람은 고건우였다.

유혜숙은 입도 열지 못했고, 강대경은 몸을 일으키느라고 버둥댔으며, 강유모터스 임직원들은 알아서 침대 발치 쪽으로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강찬 씨. 마침 지나는 길이라 들를 수 있었습니다. 전에 두 분을 뵈었으니 큰 결례는 아니겠지요?”

고건우가 점잖게 말을 건네고는 침대로 다가갔다.

“환자가 무리하면 찾아온 제가 공연한 짓을 한 사람이 됩니다. 그냥 편하게 계세요.”

고건우가 말을 건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유모터스 임직원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지 회사 임직원분들입니다.”

“아! 강유모터스지요. 반갑습니다. 고건우입니다.”

임직원들이 차례로 다가와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며 고건우의 손을 잡았다.

강찬의 곁에 있던 미쉘과 악수를 나눈 고건우가 침대를 향해 돌아섰다.

“아버님.”

“예, 총리님.”

고건우가 강찬을 슬쩍 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부족해서 아직 어린 아드님께 어려운 일을 부탁했습니다.”

강대경은 멍한 얼굴이었다.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님께는 힘겨운 일일 겁니다. 그렇지만 당장 아드님이 맡은 일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고건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비서관이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유혜숙에게 전했다. 앞면에 화려한 봉황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쾌유를 빈다는 전언과 함께 보내신 성의입니다.”

유혜숙이나 강유모터스 임직원은 아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재단은 어떻게 됐나?”

“월요일에 설립 통지가 나갈 예정입니다.”

비서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고건우가 강찬에게 돌아섰다.

“강찬 씨. 미안합니다.”

강대경이 습격당한 것에 관한 사과일 거다.

무슨 답을 하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라 강찬은 섣불리 입을 열기 어려웠다.

“그럼 쾌유를 빕니다.”

고건우가 마지막으로 강대경에게 인사를 전하고 밖으로 나갔다. 김형정은 간단한 눈인사만 전하고 일행을 따라갔다.

아직도 강유모터스 직원들은 침대 발치에 있었다.

“어머니?”

강찬이 유혜숙을 부르는 말에 병실에 있던 모두가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빛을 되찾았다.

“아! 앉으세요.”

“아닙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유혜숙의 말을 몇 번에 걸쳐 사양한 임직원들이 병실을 나가며 강찬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점심! 맞다. 미쉘이랑 점심 먹어야지.”

유혜숙은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머니 점심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러지 말고 이 앞에 뭐 좀 사올까요?”

“아니. 엄마는 케이크 먹어서 배 안 고파.”

밥보다는 정신을 차리는 게 우선이었다.

미쉘도 같은 생각이라 점심은 잠시 후에 먹기로 했다.

‘국무총리가 이렇게 위력 있는 사람이구나.“

강찬이 턱없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미쉘이 커피를 탔다.

케이크를 먹고 난 참이라 커피 냄새가 정말 좋았다.

“고마워요, 미쉘.”

따듯한 커피가 강대경과 유혜숙을 진정시킨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특유의 음식냄새가 풍겼다.

드르륵.

밥이 온 건가?

시선을 돌렸는데 허은실을 시작으로 운동부 학생과 일진 아이들이 주르륵 들어왔다.

강찬은 기가 막혀서 웃음이 툭 나왔다.

“안녕하세요?”

강대경과 유혜숙은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미쉘을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아버님이 편찮으시다고 해서 왔어요. 저희 모두 선배님 때문에 학교 재미있게 다니거든요. 얼른 일어나세요. 그리고 이거.”

차소연이 계면쩍은 얼굴로 상자에 담긴 음료수를 내밀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어서 그랬는지 유혜숙이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며 받았다.

그 와중에 허은실은 미쉘을 대놓고 보았다.

저년은 뭘 하든 피곤하다.

“학생들. 점심 먹고 가요.”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사주신댔어요. 가는 길에 들른 거예요.”

“그럼 음료수나 과일이라도 들고 가요.”

“저희 고기 뷔페 갈 거예요. 거기서 많이 먹을게요.”

석강호가 사는 모양이다.

집에 혼자 있기 싫은 게 분명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한 후에 아이들이 병실을 나갔다.

허은실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조심하는 게 좋다.

강찬은 식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차니. 학생 중에 예쁘게 생겨서 나 보던 여학생 이름이 뭐야?”

“왜?”

당연히 프랑스어다.

“그 여학생, 차니 좋아하는 거 모르는 거지?”

“뭐?”

“이거 봐. 차니는 다른 건 날카로운데 왜 그런 걸 몰라? 그 여자아이 차니 좋아하는 거야. 말을 못한 거 같던데, 억울하고 답답한 거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보니까 차니는 아예 모르는 거 같고. 재밌다. 귀여웠어, 그 여학생.”

“끔찍하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마라.”

“차니는 이럴 때 정말 섹시해!”

이년은 또 몸이 뜨거워지는 병이 시작됐다.

대충 핑계를 대고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문이 열렸다.

“대표님!”

김태진과 서상현이었다.

강찬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두 분께 처음 인사드립니다. 김태진입니다.”

김태진은 점잖게 상세를 물었고, 강찬 덕분에 회사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 기회에 인사도 나눌 겸 했다는 말과 함께 서상현이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와 봉투를 내밀었다.

한사코 거절했으나 김태진이 워낙 간곡하게 청하는 터라 마지못해 받았다.

강찬은 미쉘을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점심은 어떻게 했어?”

“케이크를 먹어서 조금 뒤에 먹으려구요. 두 분은 어쩌셨어요?”

“우린 점심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돼. 그럼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십시오.”

김태진이 깔끔하게 물러났다.

서상현은 유혜숙도 눈치챌 만큼 미쉘을 힐끔거리다가 김태진을 따라서 아쉬운 얼굴로 병실을 나갔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힘든 일을 한 사람처럼 지친 얼굴이었다.

집에 있을 걸 그랬다.

그래도 올 사람은 대충 다 왔으니 이제 더 귀찮을 일은 없는 거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아들이 정말 오늘 온 분들을 다 도와준 거야?”

유혜숙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눈치였다.

“그냥 이리저리 알게 되어서 벌어진 일이에요.”

강찬은 강대경을 살폈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싶었다.

드르륵.

그만 좀 해라!

강찬이 홱 고개를 돌렸을 때 프랑스 요원 둘이 들어섰다.

라노크다.

강찬을 따라 유혜숙과 미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니!”

먼저 병실에 들어선 것은 안느였다.

불편한 걸음으로 다가온 안느가 대번에 강찬을 안고 입을 맞췄다.

젠장! 젠장!

프랑스 사람인 라노크야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부모 앞에서 할 짓은 아니었다.

적당히 안느를 떼어낸 강찬은 “한국은 부모님 앞에서 이러는 거 실례가 돼.” 하고 알려주었다.

“안뇽하세요?”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한 안느가 라노크를 보았다.

강찬이 소개하고 라노크가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미쉘을 소개할 때 분위기가 묘했다.

안느와 미쉘은 상관없다는 투로 편안하게 인사했는데 오히려 강대경과 유혜숙이 미쉘의 눈치를 살폈다.

라노크는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프랑스 국립 대학을 추천하고 두 사람만 괜찮다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게 하고 싶다는 뜻까지 비쳤다.

강찬은 유혜숙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안느를 며느리로 받아달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찬 씨. 연락 없이 온 것은 미안합니다. 일정을 빼기가 빠듯해서 어쩌나 했는데 안느가 혼자라도 이곳에 오겠다고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차니. 왜 전화 한번 안 해?”

“다음 주에 식사하기로 해서 그랬어.”

집에만 있던 안느의 변화가 라노크는 기쁜 얼굴이었다.

“차니. 나 변하기로 했어.”

작은 체구의 안느가 자랑하고 싶은 투로 말을 건넸다.

집에만 있어서 이런 거다.

외톨이인 아이들의 특징, 외롭게 살다가 용병으로 왔던 놈들이 강찬을 졸졸 따라다닐 때 보이던 눈빛이었다.

슬쩍 시선이 마주쳤을 때 미쉘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강찬 씨. 다음 주에 일정이 어떻습니까?”

“대사님 시간에 제가 맞추면 됩니다.”

“그럼 화요일쯤으로 할까요?”

“그렇게 하시죠.”

대충 이야기가 끝났다.

라노크는 요원을 통해 봉투를 하나 전해주었다.

“차니.”

안느가 강찬에게 안겼는데 입을 맞추지는 않았다.

“휴후.”

라노크가 나가자 진이 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유혜숙이 미쉘의 눈치를 살폈다.

“차니. 안느가 사랑에 빠진 것도 모르는 거지?”

“딱 한 번 봤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그거보단 외롭게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걸 거야. 저러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한순간에 바뀐다.”

미쉘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요원 중에 안느 좋아하는 사람 있는 것도 모르고?”

“뭐?”

말을 못 알아듣는 유혜숙이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라노크 바로 뒤에 있던 남자, 그 사람이 안느를 사랑하고 있는 눈빛이었어. 표정이 워낙 딱딱해서 다른 사람은 모를지 모르지만, 내 눈은 못 속여.”

루이? 루이가?

이게 무슨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

“내 앞에서 안느랑 그런 키스를 하고, 오늘 나 그냥 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미쉘의 미소를 보며 강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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