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80화 (80/520)

0080 / 0419 ----------------------------------------------

5-2. 하나씩 짚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강찬은 마음을 굳혔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이대로 넘어가는 건 바보짓이다. 막기만 하면 적들은 반드시 또 달려든다. 아프리카에서 질리고 질리도록 익힌 교훈이었다.

아직 구속하라는 명령이 내린 것도 아니다.

‘빨리 좀 찾아라.’

“저녁은 들었나?”

“예. 대표님은요?”

“나도 먹었지. 만약 경찰이나 검찰이 움직이면 친구를 통해 다 들어올 테니 당장은 사무실에 가 있을까? 그 친구나 석 선생 오기도 편할 거고.”

“그러시죠.”

용인을 빠져나오자 차가 그리 막히지는 않았다.

마침 석강호가 전화를 걸어와서 유비캅으로 오라고 했다.

유비캅 건물은 집과 가깝다.

여차하면 튀어 나가기도 적당했다.

석강호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팔은?”

“네 바늘 꿰맨 정도요.”

석강호는 면티를 입고 있었다.

칼에 갈라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거북했을 거다.

김태진이 직접 시원한 음료수를 들고 왔다.

“자! 이거 마시고, 우선 그 동영상 한번 보자구.”

“못 보셨어요?”

“병원과 아파트에 직원들 배치하느라고 아까는 정신이 없었지.”

강찬과 석강호는 책상에 팔을 걸친 채로 김태진의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건가?”

마우스를 클릭한 순간이다.

“꺄아악!”

가장 먼저 가까이에서 여자의 비명이 울렸다.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양복과 편한 차림의 두 사람이 깡패들과 싸우는 장면이 담겼다.

화면은 대략 40초쯤 만에 끝났다.

강찬과 석강호를 아는 사람은 ‘혹시?’ 할 정도의 윤곽이었다.

강찬이 칼로 가슴부터 어깨까지를 가르는 순간도 담겨 있었는데 다행히 운전석 쪽에서 찍은 사진이라 차에 가려서 정확하게 뭘 하는지는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영화 홍보란 말도 나온다. 이게 사실이면 왜 뉴스에 나오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우선 국가정보원에서 그런 쪽으로 몰고는 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셋이 다시 탁자로 왔다.

“강찬이야 차 건너편에 있어 다행이고 석 선생은 주로 등이 보여서 좀 낫고 그러네.”

좋게 말한 거다.

나쁘게 말하면 강찬은 얼굴이 잡혔고, 석강호는 전신이 다 나왔다.

“아무튼, 국가정보원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뉴스에 못 나오게 하고 있는 데다 여차하면 정당방위로 몰고 갈 거니까 조금 기다려 보자.”

막상 모여 앉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김형정에게서 다른 연락이 없는데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오죽하면 아직 연락을 못 할까 싶어서 일단 더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오광택이었다.

“여보세요?”

[“강찬. 나다.”]

“좀 찾았냐?”

[“아니.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하다.”]

“뭐가?”

못 찾아서 변명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쑤셔봤는데 전혀 안잡히더라구. 그러다가 인터넷에 칼부림이란 동영상 뜬 거 봤거든. 거기 내가 아는 놈이 하나 있다.”]

“그게 누군데?”

[“우리 꼬마 때 숙소생활 같이하다 중국 넘어간 놈이야. 십몇 년 됐나? 하여간 석 선생이 두 번째 상대했던 놈, 그놈이 그놈이다.”]

“찾을 수 있겠냐?”

[“일본놈들하고 같이 있었다면서? 그쪽에 붙었다면 나부터도 가만히 둘 생각 없다.”]

“절대 손대지 말고.”

[“알았다니까. 야! 그런데 석 선생은 뭔 칼을 그렇게 잘 쓰냐?”]

“헛소리 말고 얼른 그놈이나 찾아.”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찬은 오광택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렇다는 건, 얘들도 중국에서 일본 거쳐 왔다는 거 아니오?”

“그렇지 않겠냐? 전에 라노크 습격한 놈들처럼.”

“이거, 어째 수상하우.”

김태진도 비슷한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30분쯤 더 지나 아무래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때 전화가 울렸다.

[“강찬 씨. 지금 어딥니까?”]

“대표님 사무실에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리로 바로 가죠.”]

요원 셋의 상태를 묻고 싶었지만 온다는 말에 질문하지 않았다.

음료수를 한잔 더 마시고 났을 때 김형정이 들어왔다. 꽤 지친 표정이었다.

“오늘 깡패는 국내 조직은 아닙니다. 중국 쪽인 것 같은데 내일쯤 윤곽이 잡힐 겁니다.”

강찬은 오광택이 했던 말을 전했다.

“지난번과 같은 방법이네요.”

“우리도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문제는 왜 아버지가 타겟이 되었냐는 거죠.”

“어떤 놈들인지를 알면 그 점도 풀릴 겁니다.”

“요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찬은 내심 안 좋은 소식을 각오하고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셋 다 목숨은 지장 없습니다. 뒷좌석에 탔던 요원이 좀 심하게 다쳐서 6개월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하고 나머지 둘은 골절과 타박인데 현재 검사결과로는 그리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휴우.”

강찬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잘 됐다. 정말 잘 됐다.

“구속 말이 나온 건 당시에 출동한 경찰의 태도가 수상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사건을 무마할 생각으로 언론과 방송에 협조 요청을 했으니 그 점에 대해선 우선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동영상이 제대로 떴던데요?”

“최초로 올린 분에게 이미 조치했습니다. 조만간 영화촬영 장면을 오해한 걸로 풀고, 전화기에 녹화됐던 동영상은 이미 삭제했습니다.”

김형정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석 선생, 팔은 괜찮습니까?”

“네 바늘 꿰맨 정도니까요.”

“다행입니다.”

김형정은 음료수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팀장님.”

김형정이 컵을 내려놓으며 강찬을 보았다.

“이대로는 의미 없어요. 이번에도 라노크 때처럼 그냥 넘어가면 저놈들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 합니다. 지난번 골프장 습격한 놈들 연결고리 나온 거 있나요?”

“확실히는 아직.”

“오늘 문제 일으킨 놈들 잡으면 윤곽은 잡을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진술만 가지고 배후를 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정국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탓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치면 된다.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칠 생각이었다.

“강찬 씨. 섣불리 나섰다간 강찬 씨가 당합니다.”

“아뇨.”

강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저놈들은 못할 짓이 없습니다. 라노크든, 아버지든, 우리 쪽에서 누구라도 죽거나 다치면 저쪽이 이긴 꼴이 되니까요.”

김태진이 강찬과 김형정을 번갈아 보았다.

“이대로 있다가 누군가 죽게 되면 그땐 너무 늦습니다.”

김형정이 신음처럼 숨을 토해냈고, 김태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김형정이 입을 열었다.

“강찬 씨. 아무리 화가 나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게 맞습니다.”

법의 테두리?

골프장에서 총을 쏘고, 서울 근교에서 칼을 휘두르는데?

답답했지만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은 강요할 게 아니다.

알아서 움직이면 되는 거다.

***

마음 편하게 유비캅을 나와서 석강호와 둘이 집에서 가까운 사거리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빙수 먹읍시다.”

늦은 시간에 설치는 게 기쁜 것처럼 석강호는 얼굴빛이 좋아 보였다.

잠시 후, 석강호가 커다란 빙수를 두 그릇이나 들고 왔다.

“그냥 하나만 사지, 뭘 이렇게 무식하게 들고 왔냐?”

“아깐 치사하다고 하더니 또 왜 그러쇼?”

“넌 재밌나 부다?”

석강호가 숟가락을 강찬의 빙수에 꽂아주었다.

“솔직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수. 지난번에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얼마나 분하던지.”

그럴 만도 하겠다.

강찬은 팥빙수를 떠서 입에 넣었다.

“음료수보다 낫다.”

“이게 가끔 먹으면 먹을만하다니까요.”

조금 전까지 분하다던 놈이 팥빙수를 커다랗게 입에 처넣고 있다.

강찬은 실없이 웃으며 팥빙수를 먹었다.

“집에 갈 거요?”

“그래야지.”

“혼자 하기 없소.”

뭐라는 거야?

“왜 이러쇼? 눈빛 보면 빤히 답 나오는구만. 오광택이한테서 연락 오면 바로 달려갈 거 아뇨? 그때 나 빼지 말라는 거요.”

“내 표정에 나오든?”

“눈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모르겠소? 확실히 합시다. 나 뺄 거요? 데려갈 거요?”

“넌 지겹지도 않냐?”

석강호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대장. 지금 따끈한 커피 생각나지 않소?”

“그것도 눈에 보이냐?”

“거봐요. 똑같은 거요.”

답을 마친 석강호가 카운터로 움직였다.

뭐지?

멋진 대답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되지도 않는 소리에 정신을 팔린 것 같기도 했다.

석강호는 커피를 한 잔만 들고왔다.

“잘했다.”

“거 봐요. 이번엔 담배 아니오?”

결국, 강찬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석강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의 생활이 그리운 건 아니오. 난 지금 좋아요. 대장 덕분에 학교 선생 하다가 느닷없이 강남에 아파트 샀지, 마누라에게 거금 안겨줬지, 그리고도 내 통장에 몇억 있으니까. 대신 내가 대장을 인정하는 것만큼 대장도 나를 인정해 주었음 하는 거요. 남자로, 대원으로.”

이 새끼가 완전히 무식의 탈을 벗었다.

유식해진 한 마리 나비.

“그 표정은 뭐요?”

“갑자기 멋있는 말을 들으니까 귀가 먹먹해서 그렇다.”

“푸흐흐. 원래 내가 좀 그렇소.”

따끈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담배를 피우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어쩌면 석강호와 둘이 속을 털어놔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오광택한테서 연락 오면 바로 치자.”

“알았소.”

“너, 지난번에 쿠크리 챙겨놨지?”

“집에 있소. 날을 좀 갈아 놔야겠지요?”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강호가 히죽 하는 웃음을 웃었다.

***

집에 들어간 시간은 얼추 자정이 다 되었을 때였다.

피 묻은 재킷은 석강호에게 맡겼다.

“아들이야?”

현관을 열자 유혜숙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 어머니 안 주무셨어요?”

“응. 아빠가 편찮으셔.”

“아버지가요?”

“약 먹고 주무시는데 목이랑 허리가 많이 안 좋은가 봐. 내일 병원 가겠다고 하는데 깊게 못 자고 자꾸 가위도 눌리고 그러시네. 아까는 괜찮으셨니?”

“아! 예. 아까는 괜찮으셨어요.”

대충 얼버무린 후,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유혜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병원에 모시고 가죠.”

“그래, 아들.”

유혜숙이 힘 빠진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참. 오늘 전화가 많이 왔었어. 인터넷에 칼부림인가, 끔찍한 동영상이 떴는데 거기 나온 게 너 아니냐고. 아는 거 있니?”

“듣긴 들었어요. 영화 홍보 하려고 만든 거라던데요? 어머닌 안 보셨어요?”

“엄만 그런 거 못 봐.”

유혜숙이 말끝에 몸서리를 쳤다.

“너한테 몇 번 전화해볼까 했는데 우리 아들이 그럴 리도 없고, 괜한 일로 일 방해할까 봐 안 했어. 참!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쉬어.”

“아니요! 이렇게 엄마랑 있으니까 좋은데요?”

유혜숙의 걱정이 조금씩 녹아가는구나 싶었다.

“뭐 먹을래?”

“조금 전에 팥빙수 먹고 왔어요.”

강찬이 유혜숙의 등을 쓸어줄 때였다.

“찬이 왔니?”

방에서 강대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찬이 일어서고 유혜숙이 그 뒤를 따랐다.

“아버지. 주무셔서 인사 안 드렸어요. 많이 안 좋으세요?”

“몸살이 났나 봐.”

강찬이 다가가자 강대경이 인상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누워 계세요.”

“엄마가 없으니까 허전해서 잠이 깨.”

“이이는.”

유혜숙이 걱정스럽게 다가서는 와중에 강대경은 강찬의 몸을 살폈다.

‘괜찮은 거지?’

강대경의 시선이 묻고 있었다.

강찬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 푹 잘 수 있겠다.”

강대경이 긴 숨을 내쉬며 웃었다.

“이이는, 나보고 아들 바보라고 놀리더니?”

“왜? 나는 아들 좋아하면 안 되냐?”

“이이가 정말 아들이 오니까 살아났네?”

유혜숙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약은 드신 거죠?”

“먹었다. 피곤할 텐데 가서 쉬어. 내일도 나가니?”

“연락 오는 거 봐서요. 아버지는요?”

“내일 토요일이잖아.”

벌써 토요일인 건가?

한 주가 날아가듯 지나갔다.

20분쯤 이야기를 나누다 강대경이 다시 누웠다.

유혜숙도 걱정이 훨씬 덜한 얼굴이라 강찬은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방으로 갔다.

자려고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영화 홍보라는 말이 있어. 괜찮은 거지?]

미쉘이었다.

편하게 집에 있으면서 걱정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다.

강찬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차니!”]

“집에 들어왔어.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바로 연락 못 했다.”

[“괜찮은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많이 걱정했니?”

[“무서웠어. 차니가 다치거나 잘못될까 봐.”]

미쉘이 울먹이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이젠 괜찮아.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아냐. 이제 됐어. 그리고 내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고. 다음에 작업실 위치하고 열쇠 줄 테니까 차니가 필요할 때 언제고 사용해.”]

“고맙다.”

그걸 쓸 일이 뭐 있겠나.

그러나 울먹이는 미쉘을 봐서라도 적당한 대답을 하는 게 좋았다.

“기분 풀고 자.”

[“그럴게. 차니도 푹 쉬어.”]

전화를 책상에 올려놓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일단 아프리카는 안 간다.

석강호의 말처럼 비겁하게 이 삶에서 한 발 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찬은 천장을 보았다.

“이제부터 내가 너다. 더 발을 빼고 있다가는 안방에 있는 두 분만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도 몰라. 내일부터, 아니 지금부터 진정한 강찬으로 살겠다. 그렇게 이해해다오.”

강대경을 잃을 뻔했다.

강찬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맘 편히 누워있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미안했다.

개새끼들. 그런 사람을 죽이려 들어?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마.

지금부터 내가 무슨 짓을 하건 그건 네놈들이 자초한 일이다.

강찬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

새벽에 일찍 일어났지만 달리는 것은 건너뛰었다. 팔에 땀이 차는 것이 염려돼서였다. 대신 간단하게 푸시업과 몇 가지 운동을 하고 샤워를 했다.

팔의 붕대는 풀지 않았다.

“아버진 좀 어떠세요?”

“이상하게 목을 제대로 못 움직이셔. 허리도 아프다고 하시고.”

유혜숙은 겁이 난 모양이었다.

강찬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일어났니?”

강대경이 퉁퉁 부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아침 드시고 병원에 같이 가세요.”

“그래야겠지?”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강대경도 그럴 마음이 있어 보였다.

유혜숙이 죽을 끓이는 동안 강찬이 오믈렛을 만들었다.

“여보!”

안방에서 강대경의 음성이 들렸다.

“왜? 못 견디겠어?”

유혜숙이 급하게 뛰어갔고, 강찬이 그 뒤를 따랐다.

“혹시 죽 끓이니?”

“쌀죽. 왜? 먹고 싶은 죽이 있어?”

“나도 오믈렛 먹을 거니까 죽 끓이지 마.”

“이이가 애처럼 왜 이래?”

“배고파.”

유혜숙이 눈을 흘기는 앞에서 강찬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세요. 제가 얼른 하나 더 만들게요. 아침은 안방에서 셋이 먹죠. 오믈렛은 반찬도 필요 없잖아요.”

투덜거리면서도 유혜숙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결국, 셋이서 오믈렛을 먹었다.

“잠깐만. 엄마 얼른 준비하고 나올게.”

당연히 함께 가겠다고 할 줄 알았다.

강찬은 방으로 들어가 유헌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실로 나왔을 때 강대경은 거북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다가 상체를 천천히 틀었다.

“병원에 연락했어요. 어머니 놀라시지 않게요.”

“잘했다. 아빠 괜찮겠지?”

“이참에 병원에서 며칠 쉬세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석강호에게 차를 빌릴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 운전까지 해서 강대경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유혜숙의 준비가 끝나자 천천히 걸어서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아침부터 왜 저런 사람들이 잔뜩 있지?”

유혜숙이 유비캅 직원들을 보며 불평을 터트렸다.

“든든해 보이고 좋구만.”

“당신은!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쭉 있는 게 뭐가 좋아? 경비실에서 뭐라고 안 하나?”

그 사이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고 택시를 탔다.

유헌우는 능글맞게 과로로 인한 몸살 진단을 내리고 며칠 입원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혜숙이 입원 절차를 밟기 위해 진료실을 나간 다음이었다.

“검사 결과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통상적인 후유증인데 혹시 모르니 집에 계시는 것보다는 입원해서 며칠 쉬시는 게 더 낫습니다.”

유헌우가 진실을 밝혔다.

강대경을 병실로 옮기고 강찬은 다시 유헌우에게 갔다.

“어디 봅시다.”

이 양반은 상처를 뜯으며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호오. 이 정도면 붕대를 감지 않아도 되겠군요.”

상태는 어떤지 몰라도 당장 보기에는 흉측한 상처였다.

“보기 흉해서 그런데 그냥 붕대 감죠.”

“여름이라 걱정이긴 한데 일단 며칠은 그렇게 합시다. 풀고 싶으면 푸세요. 대신 아직 무리한 운동 하지 마시고.”

유헌우가 약을 바르고 능숙하게 붕대를 감았다.

“뼈가 보이는 상처가 며칠 만에 이렇게 되다니. 강찬 씨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죠?”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지?

“위독한 환자에게 수혈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치유력의 일부만 전해져도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언제는 장기를 꺼내 판다더니 이제는 흡혈귀처럼 피를 노린다.

유헌우가 강찬을 빤히 보았다.

“어제 동영상 봤습니다.”

병원을 이리로 왔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보는 동안 강찬 씨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유헌우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아버님이 어제 강찬 씨 모습에 크게 놀라신 것 같습니다. 저 상태를 그대로 두면 평범한 사람은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폭력장면을 보거나 피, 칼을 보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워하게 되지요. 병원에 계신 동안 강찬 씨가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강찬은 유헌우에게 피를 좀 빼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