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75화 (7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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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여러 가지 만남.

툴툴거리며 샤흐란을 벼르고 있을 때 오광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강찬. 너 어디냐? 시간 되면 잠깐 만나자.”]

“며칠 동안 어려워. 왜 그러는데?”

[“너 신영동파도 손 썼어?”]

“방지병원 앞에서 달려든 놈들 해결한 건 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오광택이 허탈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원로들이 너를 좀 만났으면 하는데 어떠냐?”]

“야! 깡패랑 친한 건 너 하나로 만족해. 어설프게 나 만났다가 망신당하면 네 입장이 더 난처해지지 않겠냐?”

[“그게 아냐. 쪽발이랑 짱개들이 대놓고 설치는데 조직 두 개가 박살 나니까 이쪽도 긴장타는 거야. 강찬이 깡패 싫어하는 거? 대한민국 깡패라면 누구나 다 안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 무너트리면 쪽발이를 등에 업은 놈들이 엄한 자리를 차지해. 그 새끼들은 칼질하고 비행기로 뜨면 그만이니까.”]

“오광택이 그런 걸 무서워해?”

[“네가 깡패짓 그만두라며! 칼질 피하는 깡패가 깡패냐? 그러니까 뒤를 가려가며 문대야지.”]

왜 이새끼가 큰소리를 치지?

“하여간 내가 며칠 내로 한국에 갈 거니까 그때 의논하자. 나도 곤란해질지 모르고.”

[“강찬.”]

“왜? 오광택!”

[“정 힘들면 연락해라.”]

“지랄은. 알았다.”

깡패 새끼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담기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선 샤흐란을 만나보는 게 먼저다.

강찬은 소파에 기대 TV를 켰다.

한반도 지도를 배경으로, 돈뭉치가 화살표를 따라 사람형상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냥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고건우, 얼굴을 보지 못한 국정원장, 그 아래로 김형정까지, 맘고생이 심할 거다.

“담배 하나 피우고.”

비행기에서는 봉지 커피와 라면이 최고인데.

대부분의 프랑스 놈들은 한국산 봉지 커피를 맛보고 나면 정신을 못 차린다. 라면은 좀 달랐다. 아프리카에서는 인상을 찌푸리던 놈들이 이상하게 비행기 안에서는 침을 꼴깍거리며 아쉬운 얼굴을 짓는다.

프랑스에서 한국산 봉지 커피와 라면을 구하기가 어려운 걸 안 뒤로는 제 놈들끼리 돈을 걷어 사온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몸으로 넘어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 상상조차 못 했다. 문득 외인 부대원을 보자 다시 용병으로 지원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골치 아플 것 없이, 적과 마주쳐 살아남으면 되는 세상이 어쩌면 적성에 더 맞을지도 모른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강찬은 무심결에 탁자에 놓였던 자신의 과거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빨간 글씨로 찍힌 ‘사망’이라는 글자도.

유혜숙이 저걸 받고 살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고개가 저어졌다.

강찬은 전화를 들었다.

벨은 오래 울리지 않았다.

[“아들!”]

“예. 뭐 하세요?”

[“청소하고 있었어. 무슨 일 있니?”]

“예.”

[“왜? 무슨 일인데? 어디 다쳤어?”]

“아뇨. 그냥 보고 싶어서요.”

[“아이! 깜짝 놀랐잖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음성이어서 애교처럼 들렸다.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예요. 걱정하실 것도 같구요.”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지?”]

“그럼요.”

전화를 하다 보니 덜컥 유혜숙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외인부대 지원은 포기하는 게 맞다.

“끊을게요. 오늘은 못 들어갈 것 같구요,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은 전화할게요.”

[“안 그래도 돼, 아들.”]

“예?”

[“가끔 해. 아들이 전화하느라고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거 싫어. 그리고 이렇게 통화하고 나면 엄만 며칠 동안 계속 행복하거든.”]

“알았어요. 짬 봐서 편안할 때 전화 드릴게요.”

[“그래. 사랑해, 아들.”]

“저두요.”

통화를 끝내자 알기 어려운 여유와 자신감이 생겨났다. 프랑스 용병에서 갓 몸이 바뀌었을 때의 거친 성격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도 들었다.

미국? 영국?

쯧!

자신감이 아무리 살아나도 혼자 어쩔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강찬은 고개를 털고 화장실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침실과 침실 사이에 표시가 붙어있긴 한데 잠이 든 라노크에게 방해되기도 싫고, 또 갑갑하기도 해서 거실 바깥쪽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문이 열리자 비행기 양쪽으로 놓인 커다란 좌석에 대원들과 요원들이 쉬고 있었고, 그 뒤로는 좌우로 길게 붙은 의자가 있었다.

요원 하나와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에 강찬은 입 모양으로 “투알렛.”이라고 알려주었다.

기다란 소파를 지나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볼 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나왔다.

소파에 기대앉은 제라르의 곁에 종이컵이 보였다.

“봉지 커피 있어?”

강찬이 묻자 제라르가 날카롭게 시선을 들었다.

“냄새가 좋아서 그래. 봉지 커피와 담배 하나 얻으려고. 뭐하면 담배는 내가 안에서 가져오지.”

왼쪽 볼에 난 흉터가 위협하듯 꿈틀거렸으나 강찬에겐 그냥 귀여워 보였다.

위협이 안 먹혀서 그런 건지, 상대하기 귀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라르가 옆자리에 있던 대원에게 고갯짓을 했다.

아직은 앳된 티가 나는 대원이 가방에서 꺼내 든 것은 한국산 봉지 커피였다.

가장 싼 거.

‘깜찍한 새끼.’

대원이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타 주었다.

커피 향, 총기와 군복에서 나는 남자 냄새가 뒤섞이자 기분이 묘했다.

“담배는 안 줘?”

“적당히 합시다.”

강찬이 피식 웃으며 바라보자 제라르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나를 압니까?”

“그럴 것도 같은데?”

“난 처음 보는데요?”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고?”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을 처음 본다고.”

강찬의 말투에 기분 상했는지 제라르가 세게 나왔다.

“담배 줄 거야? 안 줄 거야?”

제라르가 할 수 없다는 듯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하나를 주고 담뱃갑 채로 입에 가져가 하나를 물었다.

“흐-흠.”

기분이 나쁜지 숨을 내쉰 제라르가 오른쪽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강찬은 그가 꺼낸 지포 라이터를 단번에 알아봤다.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강찬의 것이었다.

‘이 새끼가?’

철컹. 치익.

제라르가 팔을 길게 내밀었다.

“라이타 좋네.”

“흥.”

제 입에 문 담배에도 불을 붙인 제라르가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다른 부대로 전출 갔으니까 이렇게 살아 있는 거겠지. 샤흐란의 손에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강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존심으로 사는 놈들을 더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

이렇게라도 함께 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피웠으니 충분히 만족할 만도 하고.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커피값으로 도움될 조언 하나 하고 가지.”

강찬은 담배를 종이컵에 넣으며 마지막 연기를 뱉어냈다.

“아프리카에서 쓰려면 석유를 섞어. 안 그러면 중요한 순간에 낭패를 볼 수도 있어.”

제라르가 눈을 하얗게 치켜뜨고 강찬을 보았다.

여기까지다.

강찬은 몸을 돌려 과거로부터 멀어졌다.

***

정확하게 16시간을 비행한 후에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렸다.

로리암 기지 시각으로 새벽 7시쯤이었다.

외인부대 대원들이 먼저 내렸고, 라노크와 강찬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다.

장교 셋이 나와 있다가 라노크에게 프랑스식으로 경례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도착해 계십니다.”

“그럼 그리로 먼저 갈까요?”

장교가 지프를 가리켜서 강찬과 라노크가 뒤에 올랐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기내식이 좋아서요. 침대가 있는 비행이라 나중에 한번 빌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 비행기는 미국이 제공한 겁니다. 강찬 씨가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한 번쯤 빌려보지요.”

“기름값이 비쌀 것 같아서 싫습니다.”

활주로를 달리는 동안 헛소리를 주고받았다.

주변으로 깔린 막사와 자동차의 진동이 오랜 비행에 지친 몸을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다.

활주로를 빠져나와 두 번째 열에 있는 막사 앞에서 지프가 멈춰 섰다.

“이 안에 계십니다.”

“고맙소.”

라노크가 장교의 경례를 가벼운 목례로 받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벙커 특유의 천장과 형광등이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라노크!”

다섯 명의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라노크와 볼 인사를 나눴다.

“소개합니다. 라노크의 새로운 친구, 강찬 씨입니다.”

“환영합니다, 강찬 씨.”

피할 수 없이 볼 인사를 나눴다.

이럴 때 이 새끼들은 둘 중 하나다.

독한 향수 냄새 아니면 버터를 바른 커다란 개를 끌어안는 듯한 냄새.

강찬을 포함해서 일곱이 자리에 앉았다.

“피곤하면 잠시 쉬고 이야기를 나눠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시간이 있으니가요.”

다행히 전부 불어를 사용했다.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쉬었습니다. 그리고 강찬 씨는 여러분이 유니콘 프로젝트를 빨리 결정해주길 바랍니다.”

이미 속을 읽었거나 오기 전부터 계산해 둔 것이리라. 강찬은 샤흐란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강창 씨.”

“강찬입니다.”

“미안합니다. 강창? 강촨! 강차안 씨.”

왼쪽에 앉아 있던 루드비히가 결국 이름을 이상하게 만들고는 입을 열었다.

“라노크의 친구로 우리는 이미 강찬 씨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강찬은 라노크를 보았다.

이 구렁이는 자고 일어나 두 번이나 식사를 같이 하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결정 났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강찬은 표정을 읽히지 않으려 애썼다.

“흠!”

라노크가 능숙하게 다섯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노크가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강찬을 본 후에 고개를 들었다.

“더 시간 끌 것 없이 대한민국을 포함한 유니콘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합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강찬 씨?”

‘내가 졌다.’

라노크가 마지막에 보인 의미심장한 눈빛에 강찬이 풀썩 웃고 말았다.

“라노크. 아무리 결정한 사안이라 해도 유니콘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아직 이릅니다.”

“한국에서 온 우리의 친구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여러분이 이번에 큰 도움을 준다면 언젠가 우리도 같은 도움을 받게 될 겁니다.”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고건우는 애가 타서 가슴을 부여잡고 힘겨워했을 거다.

“라노크 대사께서 저를 친구로 받아주었습니다.”

강찬이 입을 열었다.

궁금함과 유창한 프랑스어에 놀란 감정이 적절하게 섞인 시선들이 달려왔다.

“게다가 친구가 된 기념으로 유니콘 프로젝트라는 엄청난 선물도 주었구요. 이점에 대해 라노크 대사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노크가 넉넉한 미소로 강찬을 응원했다.

“한국에 있는 제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내용은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진심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다섯 명의 표정이 묘해서 강찬은 혹시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라노크.”

그때 독일어 억양이 강한 루드비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를 각오하겠다는 뜻입니까?”

“나와 안느는 강찬 씨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선이 필요한 모든 일은, 여기 우리의 친구 강찬 씨를 통해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루드비히가 맞은 편에 앉은 반트를 한번 보았다가 녹색의 눈을 라노크에게 돌렸다.

“영국이 끝내 침묵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침묵할 것이고, 발표 뒤에는 조용히 따라올 것입니다.”

“라노크의 결심이 그렇다면 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할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만 남았군요.”

루드비히가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반트라는 스위스인이 나서서 결론을 내려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일단 원하는 대로 결론은 난 것 같았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강찬이 고맙다는 뜻을 비쳤는데도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아직도 남은 게 있나?

하여간 이것들은 머리를 너무 굴려서 오래 못살 거다.

“강찬 씨는 피곤하실 테니 잠시 쉬고 계십시오. 남은 문제는 우리끼리 의논하는 게 옳습니다.”

두 가지는 분명했다.

한국을 포함한 유니콘 프로젝트의 발표, 그리고 블랙헤드와 갓 오브 블랙필드는 라노크만이 알고 있다는 것.

“괜찮으면 저는 산책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강찬은 천천히 일어나 막사의 문을 열고 나왔다.

햇살이 눈 부셨다.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은 맑아졌는데 이럴 땐 역시 샤워와 커피, 그리고 담배가 딱이다.

막사 앞에서 외인부대 대원 넷이 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

강찬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왼 주먹을 이리저리 비틀어보았는데 팔뚝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찰칵.

“후우.”

제라르가 있어야 봉지 커피를 얻어먹을 텐데 교대로 쉬는 모양이었다.

20분쯤 지나서 샤워하러 들어갈까 할 때 라노크가 밖으로 나왔다.

“끝나셨나요?”

“최대한 서둘러 발표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천만에요, 목숨을 구해주고 딸을 돌려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지요.”

이 능구렁이는 종잡기가 어렵다.

속을 보이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완벽하게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느낌.

“곧 아침 식사가 준비될 겁니다.”

“샤워를 먼저 할까 하는데요.”

“식사를 준비할 때 강찬 씨와 내가 갈아입을 옷들이 함께 준비됩니다. 차라리 식사 후에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대사님.”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보던 라노크가 고개를 돌렸다.

“유니콘 프로젝트 발표가 있으면 우리나라 정세가 안정됩니까?”

“흠. 아마 30년, 그러니까 한국 기준으로 앞으로 6번 대선을 치를 때까지는 정권이 바뀌지 않을 겁니다.”

“대북 송금이 문제가 됐다던데요?”

“유니콘 사업이 발표되면 당장 미국이 그런 일 없다고 우길 겁니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미국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막대해지기 때문에 우선 현 정권의 입맛에 맞춰야 하지요. 일본 역시 한국 정부와 척을 지고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아마 대대적인 정정 보도와 사과 발표가 있을 겁니다.”

이렇다면 얼마나 빨리 발표가 되느냐의 싸움이다.

라노크가 혹시 이 기회를 이용해 강찬을 프랑스에 귀화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받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하는 것이 먼저다.

“밥을 먹고 샤흐란을 만나면 되나요?”

“그렇게 된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어쩌면 이렇게 대놓고 기뻐할 수 있을까?

“강찬 씨.”

“예.”

활주로 저 건너편에서 지프와 트럭 한 대가 여유롭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돈이나 권력보다 주변 사람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까?”

뭔 도덕 교과서 같은 질문이야?

강찬이 웃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의외로 라노크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저 내 사람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서.”

“그게 돈이나 권력보다 항상 앞섭니까?”

“외인부대에서 돈이나 권력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명령대로 대원들을 포기했다면 지금쯤 샤흐란에게 죽지 않았을 만큼 높은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라노크가 입을 길쭉하게 늘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아프리카에서 목숨을 걸고 대원을 구하러 갔던 것이니까요.”

지프에 요원 둘이 앉아 있는 것이 확연하게 보일 때쯤이었다.

“만약 내게 사고가 생긴다면 안느를 지켜주겠습니까?”

강찬은 고개를 돌려 라노크를 날카롭게 보았다.

“강찬 씨의 약속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안느를 지켜주겠습니까?”

지프가 도착하기 전에 답을 듣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지프가 막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알고도 비밀에 부쳤던 유니콘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되면 공공연하게 암살이 시도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딸 아이 하나는 살리고 싶은 겁니다.”

지프가 바로 앞의 막사를 지났고 트럭이 방향을 틀고 있었다.

유니콘 발표를 늦출 수 있는 데도 강찬을 위해 서두른 것이고, 그 대가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이건 거절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노크가 뾰족한 코를 돌려 강찬을 보았다.

“이제 안심이 되는군요. 자. 친구들과 함께 아침을 즐깁시다.”

강찬은 라노크의 손짓에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샤흐란.

식사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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