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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자신 있으십니까?
소집은 오전 10시였다.
전날 술을 마신 석강호를 집에 있게 한 강찬은 아침까지 푹 자고 일찍 학교로 향했다.
교문에 들어설 때였다.
일진 놈들이 주변을 열심히 쓸고 있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했나?’
무얼 바라는지는 모르지만 간섭할 일도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과정이 전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 계단이나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당황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전처럼 벽에 붙거나 고개를 떨구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보인 모습 덕분이리라.
“찬아!”
김미영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백설공주의 저런 모습도 분명 한몫했다.
“팔은 왜 그래?”
“운동하다 조금 긁혔어. 이거 봐. 아무렇지도 않지.”
강찬이 팔을 움직여 보였는데 실제로도 따끔거리기만 할 뿐, 다른 통증은 없었다.
“교복 줄였어?”
“아냐. 어제 일이 있어서 윤섭이 거 잠깐 빌린 거야.”
김미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있나?
일진 놈들이 청소하는 이야기가 간간이 들리다가 이호준이 들어오면서 뚝 잘렸다.
곧바로 담임이 들어왔고 방학 중에 별일 없느냐는 말과 3학년은 좀 더 부족한 과목에 치중하라는 말을 끝으로 소집이 끝났다.
고작 이런 말을 하려고 방학 중에 학생들을 불러?
그러나 이렇게 끝난 걸 어쩌겠나.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미영이 얼른 다가왔다.
“나, 오늘 저녁때까지 시간 있어. 흐흐흐.”
“어떻게?”
“엄마가 모임 나가셨거든. 학원은 7시에 있어. 그때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한 거야.”
무언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점심 먹을까?”
“응! 영화두!”
김미영의 유치한 “응!”이란 대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자. 어디로 갈까?”
“트론스퀘어 가.”
“이대로?”
“그럼?”
교복을 입고 트론스퀘어를 가는 게 괜찮은 건가?
강찬은 김미영과 둘이 계단을 내려와서 우선 운동부실에 들렀다.
“선배님! 언니!”
차소연이 반갑게 인사했고, 그 사이에 강찬은 석강호와 밖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호원이요?”
“셋이서 열댓 놈을 깨끗하게 해결하던데? 너한테도 아마 붙였을 거야.”
“흠. 알았수. 어차피 김태진 대표가 움직여야 뭐가 되도 될 테니까 오늘은 그냥 분위기나 살핍시다.”
“미영이랑 트론스퀘어 들렀다가 바로 들어갈 테니까 여차하면 저녁때 보자.”
“알았소.”
강찬은 김미영과 먼저 학교를 나왔다.
***
일본식 다다미방을 두 번이나 거쳐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선 요리사가 무릎을 꿇은 다음, 조심스럽게 회를 올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쇼-오!”
요리사가 물러나도록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건너편 방문까지 닫힌 다음이었다.
“외무성은 어쩐다고 합니까?”
“일본에서도 당황한 모양인지 잠시 추이를 지켜보자고 했소.”
둘씩 마주앉았는데 걱정과 분노가 겹친 얼굴이었다.
“이번 일로 왼쪽 날개가 완전히 부러져 나간 겁니다. 빨갱이 놈들이 개입하지도 않은 북한을 핑계로 국민을 현혹하고,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지켜보자구요? 저 근본 없는 놈들이 이 기회를 이대로 끝낼 것 같습니까? 승일해운이 날아갔고, 지금껏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애쓰던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를 박탈당하고 쫓겨나고 있는 판국입니다.”
“양 회장. 여기 누구도 철도 연결을 찬성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하잔 말씀입니다. 철도가 연결되면 당장 시급이 만 원까지 오른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별것도 하지 않는 놈들이 하루 8만 원, 야간까지 포함하면 최대 20만 원을 버는 세상이 오는 겁니다. 게다가 이놈의 나라는 개가 먹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물려고 덤비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위기를 맞았다고 뒤로 물러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지금 어설프게 나서다 승일해운과 조금이라도 고리가 발견되면 한방에 찍혀 나가니까 그게 문제 아니오? 의장님과 몇 분이 애쓰고 계시니 조금만 참읍시다.”
“허어!”
양진우가 답답한 속을 대놓고 쏟아냈다.
“금감원, 교통부, 건교부, 전부 물갈이 중입니다. 이러다 법령 하나 잘못 발표되면 우린 말라 죽습니다.”
“그건 의장님과 내가 막습니다.”
“허 의원님. 지금 일제 청산, 친일파 색출이라는 핑계로 인민재판을 벌이고 있는 건 알고 계십니까?”
“압니다, 알아요.”
허상수가 짜증스러운 대꾸를 양진우가 곧바로 받아쳤다.
“온갖 자존심 버려가며 일본의 선진 문물을 들여온 우리 집안이 친일이나 매국노라 욕먹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 덕으로 배부르고! 자가용 굴리고! 해외 구경 다니는 것은 다 잊고! 벌레만도 못한 빨갱이 새끼들이 다 같이! 똑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고 악쓰는 시대가 오고 있단 말입니다.”
“허, 참, 거! 양 회장. 지금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겁니까? 내가 사과라도 해요?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고 고개라도 숙여드려?”
허상수의 눈이 번들거리자 양진우의 기세가 곧바로 꺾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단 참아봅시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건지 먼저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놈을 찾는 게 급해요. 지금 유비캅 직원들을 중심으로 정보를 캐려 애쓰고 있으니까, 조만간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거요.”
“외국인 노동자 법안만이라도 우선 좀 처리해 주십시오.”
“그건 다음 주에 통과됩니다. 오히려 이런 소란에 묻혀서 넘기기도 편하고. 그리고 그거, 비정규직 몇 명만 일단 정규직으로 돌립시다. 의장님도 아주 곤혹스러워하시는데.”
“빨갱이 새끼들! 거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일한 것보다 더 처먹으려고! 욕을 할 거면 달라질 말든가, 손을 벌릴 거면 고개를 조아리든가!”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돈이 넘어옵니다. 그때 조용하게 금융기관들 몇 개씩 인수해 두세요.”
“그게 벌써 진행됩니까?”
젓가락을 잡으려던 허상수가 물린 것처럼 물잔을 들었다.
“다음 달에 진행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 그걸 통해 운용비를 좀 만들어 보세요. 듣기에 고등학생 놈이 하나 끼어있고 국가정보원에서 그놈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파악 중이오. 거기다 아그레망을 부여받은 프랑스 대사가 임의로 본국에 다녀왔으니 그를 우선 우리나라에서 쫓아내면서 이참에 국정원장 모가지를 날릴 참이오.”
“흠.”
양진우가 허상수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는 이번 일을 북한의 공작이라고 함께 떠들 셈이오. 국내에 빨갱이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현 정권이 친북 정책을 펼친 탓이다. 그리고 한 곳을 집중적으로 때려야지요.”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양진우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당장 급한 것은 그쪽 출신이 정부 각료로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일입니다. 그 외 사람들이야 다 우리 사람이니 누굴 쓰더라도 손이 닿습니다.”
“국정원장만 바꿀 수 있다면.”
“일본이 조만간 제대로 한 건 터트려 줄 겁니다.”
허상수가 비릿하게 웃었다.
***
점심은 수제 햄버거를 먹었고, 영화는 사랑하는 연인 이야기를 보았다. 영화 중간에 김미영이 강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는데 나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상점 몇 개를 둘러본 다음 집으로 향했다.
묘하게도 김미영이 어수선한 일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느닷없이 달려든 유니콘 프로젝트에 휘청이다가 한 걸음 물러선 듯한 느낌?
전에 식당에서 손을 잡아주었던 것처럼.
“오늘 너무 좋다. 흐흐흐.”
강찬이 김미영을 마주 보고 웃었다.
이젠 저 웃음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파트 입구에서 헤어진 강찬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소독하고 붕대 갈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왔어? 어딜 갔는데 집에 이틀이나 못 들어와? 옷은 또 뭐야?”
“방송국 직원들 만나느라구요.”
“급하면 엄마한테 얘기하지.”
“다음번부터 그럴게요.”
김태진에게 매달려 슬프게 울던 노모의 모습이 떠올라 강찬은 유혜숙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저녁 안 먹었지?”
“예.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아버지는요?”
“금방 오신댔어.”
방으로 들어간 강찬은 결국 긴 팔 티를 꺼내입었다. 그렇지 않으면 왼팔에 감은 붕대를 감추기가 어렵다.
강대경은 30분 정도 뒤에 도착했다.
강찬이 나가 인사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더운데 왜 긴소매를 입었어?”
“몸이 좀 그러네요.”
“어디 아파?”
위기에 몰리기 직전에 다행히 유혜숙의 전화가 울렸다. 또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는지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팔에 붕대 감았어요.”
강대경이 신음처럼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먹어. 아빠랑 잠깐 나갔다 오자.”
“예.”
둘이서 그야말로 밥을 퍼 넣다시피 먹었다.
급하게 물을 마신 다음 강대경이 안방에 들렀다.
서둘러 현관을 나섰는데 아직 더운 날씨였다.
“차 한잔 마실래?”
“그러실래요?”
아파트 건너편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강찬은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가져와 강대경 앞에 먼저 놓아주었다.
“엄마한테는 약 사러 간다고 했다. 많이 다친 거냐?”
“좀 까졌는데 보기도 그렇고, 약을 발라야 해서 감아놓은 거예요.”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어서 가게 안은 긴 팔이 덥지 않았다.
“엄마가 표시 내지 않지만 네 눈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해. 엄마 육감은 아빠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거든.”
둘이서 유혜숙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재단 안 만들어도 되고, 대학에 안 가도 된다. 이쯤에서 빠질 수는 없는 거냐? 아빠는 그냥 우리 세 식구가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만 쉽게 학교 다닐 수 있다면 강유모터스도 공트 자동차에 넘기마.”
고등학생 아들이 밖으로 도는 꼴을 봐야 하고 몇십억의 돈을 내미는 걸 이해해야 하는 데다 툭하면 다쳐서 들어오는 거다.
솔직하게 있는 대로 지금까지의 일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자면 가장 먼저 몸뚱이가 바뀌었다는 설명을 먼저 해야 한다.
어떻게?
강찬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속으로 삭였다.
웅웅웅. 웅웅웅.
난처할 때 전화가 울렸다.
“받아라. 받고 나서 얘기해도 충분해.”
김형정의 전화였다.
“예, 팀장님.”
[“강찬 씨. 저녁에 시간이 좀 됩니까?”]
경호원이 있으니까 어디 있는지 빤히 알 일이다.
“아버지와 커피숍에 있어요.”
[“괜찮으면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이쪽에 오시면 연락주시구요.”
통화를 끝내자 강대경의 표정에 걱정이 스쳤다.
“아버지.”
강대경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쓰는 얼굴이었다.
“그냥 일이 저 혼자 굴러가더니 덜컥 커져 버렸어요. 그것도 저를 중심으로요. 빠지겠다고 우기면 그럴 수는 있는데 틀림없이 후회할 것 같아요.”
“그 일이 적성에 맞아서 그런 거냐?”
“별로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강대경이 ‘그런데 왜?’하는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같이 일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 좋아서 해보고 싶었어요.”
“국무총리도 거기에 포함되는 분이냐?”
“예.”
“이러다가 대통령 만났다고 할까 봐 겁난다.”
강대경이 실없는 웃음을 강찬은 억지로 따라 웃었다.
“이번 주에 엄마 재단 만들어. 원래는 규정이 무척 까다로운데 어제 통보가 왔더라. 엄마가 네 이름을 꼭 넣고 싶어 했지만 다른 사람 눈이 있어서 그냥 강유재단으로 하기로 했다.”
“좋네요.”
“원래는 유강찬 재단이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싫어서 그렇게 된 거다. 엄마가 얘기할 텐데 네 이름이 빠졌다고 정말 서운해하더라. 그래서 앞에 ‘강’ 자가 네 이름을 의미하는 거라고 아빠가 우겼다.”
“유강찬 보다는 강유가 훨씬 나은데요?”
“그렇지?”
강대경이 웃으며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아빠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음껏 하란 말.”
“예.”
“너 입원하고 나서 어려울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그랬다. 살아만 나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겠다고. 절대 약속 지킬 테니까 살아만 나라고. 아빤 힘들지만, 그 약속 지키는 거야. 대신 다시는 그런 경험 하고 싶지 않다. 알지?”
“예.”
“약속 있는 거 같으니까 아빠 먼저 가마.”
“더 있다 가셔도 돼요.”
“아냐.”
강대경을 따라 강찬이 일어선 다음이었다. 강대경이 팔을 뻗어 강찬의 등을 쓸어주었다.
“반짝하는 이벤트보다 엄마 곁에 좀 더 자주 있어. 엄마 외로워하는 눈치야.”
“예, 그럴게요.”
“토요일엔 우리 또 영화 보자.”
강찬의 등을 다독인 강대경이 커피숍을 나섰다.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털어놓고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잠시 커피를 노려보고 있자니 김형정이 테이블에 앞에 나타났다.
“강찬 씨.”
“오셨어요? 저녁은요?”
“먹었습니다. 커피는 석 선생 오면 같이 시키죠.”
“연락하셨어요?”
“바로 온답니다.”
강찬은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아무래도 아파트 바로 건너편이라 보는 눈이 불편해서였다. 밖으로 나와서 석강호에게 사거리에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오라고 한 다음, 그리로 걸어갔다.
“지난번 호텔 습격과 이번 골프장 습격은 중국 국가 안전부 소속 요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건, 이들이 일본을 통해 입국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을 감추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승일해운 화물선을 통해 입국했는데 일본 측의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승일해운은 선장이 뒷돈 욕심으로 그랬다는 식인데 그렇게 나오니까 다른 죄를 추궁하기도 어렵게 됐지요. 어쨌든 국세청 세무조사와 기타 사유로 승일해운은 면허가 취소될 겁니다.”
“꼬리만 자른 꼴이네요.”
“당장은 그렇지요. 대신 돈이 움직인 흔적을 뒤지고 있으니까 조만간 좀 더 큰 게 나올 겁니다. 대강 짐작하는 인물들도 있구요.”
이런 건 어수선하고 골치 아프다.
“이참에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서 관련 부서의 책임자들을 물갈이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커피숍에 도착했더니 석강호가 커피를 앞에 두고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택시를 타고 오다 보니까 걷고 있어서 그냥 왔소.”
이제는 김형정도 이런 대화에 적응한 눈치였다.
“아이스커피 사놨는데 팀장님, 괜찮으시죠?”
뭐랄 것 없이 셋이 앉아 커피를 마셨다.
김형정은 품에서 전화기를 두 개 꺼냈다.
“이게 강찬 씨 거, 이건 석 선생 거.”
어제 말한 전화기인가?
“이게 뭡니까?”
석강호가 전화기에서 시선을 들어 김형정을 보았다.
“거기 정면 아래에 두 가지 어플을 깔아놓았는데 왼쪽 것은 무전, 오른쪽 것은 비상호출입니다. 비상호출은 구조요청도 포함하고 있어서 눌리는 순간, 위치가 파악되고 근처의 직원들이 바로 달려갑니다.”
“무전은요?”
강찬의 질문에 “도심에선 반경 1㎞ 이내에선 바로 교신할 수 있습니다.” 하고 김형정이 대답했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도청도 어느 정도는 방지할 테니까 앞으로 그 전화기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번호가 같아서 지금 쓰시던 전화기를 꺼 놓으면 바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평범해 보여서 오히려 좋았다.
김형정은 며칠 전 일로 느낀 바가 있는지 강찬에게 전했던 말을 석강호에게도 그대로 전해 주었다.
“팀장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강찬이 김형정을 불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있을까요?”
김형정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중국 요원을 이렇게 들어오게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나지 않겠냐는 뜻입니다.”
“강찬 씨.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더 급한 일? 아예 군대가 넘어오나?
“이번 일을 계기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야당에서 원하는 것은 국가정보원 원장 자리입니다.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평택항 개발이 전제 조건인데 그와 관련한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달라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면 되잖아요?”
“국정원 원장을 저쪽에 넘겨주면 유니콘은 아예 포기하게 될지 모릅니다.”
“뭐가 그래요?”
“야당이 노리는 최종 목표가 대통령 탄핵이라 그렇습니다. 국가정보원 원장이 나서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석강호가 “허!”하는 소리를 툭 뱉었다.
“해결 방법은요?”
“최대한 빨리 유럽 승인을 얻어 유니콘 프로젝트에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거죠. 그러면 모든 문제가 일단락됩니다.”
“결국, 열쇠는 라노크가 쥐고 있는 거네요.”
“일본, 그리고 차기 정권을 노리는 야당, 친일세력들의 방해를 막아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경호만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프랑스 본국의 반응도 문제입니다. 이번 습격으로 본국에서 대사를 교체를 검토하는 모양인데 아직 확정된 정보가 아니라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단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사표를 쓰신 게 맞나요?”
석강호가 놀란 눈으로 김형정을 보았다.
“상부에 보고할 의무를 없애는 데는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밀이 새나갈 구멍이 확실하게 좁혀진다.
“경호원들 솜씨가 대단하던데 그분들도 어차피 사표를 쓰신 거잖아요? 당분간 제 경호보다는 유비캅 직원 훈련을 맡아주면 어떨까요? 필요하면 제가 호출하면 되니까요.”
“프랑스가 라노크 대사라면 우리나라는 어쨌든 강찬 씨가 있어야 합니다.”
“아직 제가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이니까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일개 고등학생이 이러고 있을 거라고 누가 믿어주기나 하겠어요?”
김형정이 턱없이 웃었다.
“라노크 말로 제가 우리나라와 프랑스가 비밀리에 키운 요원이라는 소문이 있다던데 그거야 정보국 이야기니까 일반에는 아직 안 돌았을 거 아녜요? 당장은 좀 더 단단한 직원이 더 필요한 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건 내일 발인이 끝나면 제가 친구와 의논하지요.”
강찬은 우선 믿을만한 조직이 필요했다.
신뢰만큼이나 실력을 갖춘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