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71화 (7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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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번 해보죠

석강호가 점심시간에 맞춰 갈비탕을 사 가지고 와서 둘이 먹었다.

“애들은?”

“눈이 번들번들해서 가르치는 맛이 납디다. 오후에 할 거 대충 정해주고 오는 길이요.”

학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식사가 끝났다.

“장례식장 어딘지 알지?”

“조금 있다가 가볼 생각이오.”

석강호가 빈 그릇을 커다란 봉지에 담으며 대답했다.

“씻고 나올 테니 같이 가자.”

“괜찮겠소? 오전에 통화했는데 취재팀이 많아서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럽시다.”

“가서 옷 좀 사와라.”

“알았소.”

강찬이 머리를 감고 나왔을 때 석강호가 검은색 양복과 셔츠, 그리고 구두를 준비해왔다. 셔츠 안쪽으로 붕대가 비쳤지만 그리 흉한 몰골은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석강호가 가져온 차를 타고 출발했다.

“담배 하나 줘.”

“여깄소.”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아프리카도 아닌데 16명이나 죽었다.

차라리 전날부터 챙기는 건데.

그랬으면 이렇게 희생자가 많지 않았을 텐데.

죽은 직원들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아마추어를 전문가 앞에 디민 꼴이다.

쯧!

총격전이 없을 거라, 깡패들처럼 칼을 들고 덤빌 거라 방심했는지 모르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직원이 희생되었는지 모른다.

병원은 15분 만에 도착했다.

영안실 입구에 ‘유비캅 합동분향소’란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안테나와 방송국 로고를 단 차량이 여러 대 보였다.

차량을 통제하던 유비캅 직원이 석강호를 보고는 바로 경례를 한 다음, 입구를 열어주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곳곳에서 유비캅 직원들이 강찬과 석강호를 향해 인사했다. 팔이나 다리에 붕대를 감은 직원도 여럿 있었다.

전면을 가득 메운 흰 국화 속에 직원들의 영정이 놓였다.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앞으로 나가 향을 사르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이 무서워서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었다.

고개를 든 강찬이 몸을 돌리자 김태진이 아픈 미소를 지었다.

“몸은?”

“괜찮습니다.”

“방송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그냥 들른 것처럼 가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강찬의 손을 잡아준 김태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런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

석강호가 김태진과 인사를 마친 후에 강찬은 걸음을 옮겼다.

한쪽에서 서글프게 우는 이들이 보였다.

노모, 젊은 아내, 그리고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아이.

이런 건 아프리카와 달랐다.

죽어도 가족 하나 찾기 어려운 그곳과 달리 슬픔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할 이들이 이곳엔 너무 많았다.

강찬은 장례식장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

김태진이 이를 악문 채로 고개를 숙인 모습이 보였다.

“강찬 씨.”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서상현이 쩔뚝이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뭐라고 해야 할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부탁이 있습니다.”

서상현의 뒤로 유비캅 직원 둘이 서 있었다.

“다음 주부터 다시 훈련합니다. 이참에 우리도 특공대 편성을 할 생각입니다. 혹시 어제의 적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꼭 저를 참가시켜 주십시오.”

서상현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장례 끝나고 따로 의논하시죠.”

“알겠습니다.”

대화가 막 끝날 때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 아이구우! 이놈아! 오늘 내려온다며! 육개장 끓여놓으라며!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에미가 끓인 육개장 먹어! 이 나쁜 놈아!”

고생이 자글자글한 노인네가 서럽게 울며 제단 앞에 엎어졌다.

지금에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방송국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누구요! 누가 아들을 이랬소!”

김태진이 걸어나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말을 해보쇼! 선생님이 우리 아들 이랬소!”

노인이 달려들어 김태진의 쟈켓을 잡았다.

김태진의 손짓을 강찬도 보았다.

주변을 지키던 직원들이 고개를 틀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말을 해보쇼! 선생이 내 아들 이랬소! 말을 해보시란 말이오!”

“제 잘못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김태진은 이를 깨문 채로 울음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때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 한 명이 다가가 울부짖는 노인을 끌어안았다.

“이 양반은 죄 없소! 우리 아들이 늘 자랑하던 회사 사장님이요! 그러니까 이분한텐 이러지 마시요!”

“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나랏일을 하다 죽었는데 그것이 어째서 사장님 잘못이라 그라시오! 우리 아들 장하니 갔소! 당당하니 갔단 말이오!”

두 노인이 김태진의 목을 부둥켜안고 서글프게 울어댔다.

아프리카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

병원에 돌아온 강찬은 석강호와 담배를 피웠다.

일반 경호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였다.

“기분이 지랄 같네.”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콘이 이 정도 값어치가 있는 건가?”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죽어 나갈 때도 그랬잖소? 그래서 대장이 죽어간 애들을 더 안타까워했던 거고.”

“쯧!”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일이 너무 커져 버린 느낌이었는데 무방비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라노크의 일정이 국정원에서 새어나가지 않았다면 프랑스 쪽에 문제가 있는 거다.

‘라노크도 위험하다는 건데.’

거기다 유비캅 직원의 현재 수준으로는 어제 같은 전문가들이 달려드는 걸 상대하기 어렵다.

특수조가 필요했다.

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전문가.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을 한잔 마실 때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김형정이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전처럼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강찬 씨. 대통령님께서 강찬 씨를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같이 가시죠.”

뭐라는 거야?

“장소는 전에 총리님을 만났던 화랑입니다. 복장은 그렇게 가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이요?”

“예.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급하게 일정을 잡았습니다.”

김형정의 얼굴에 담긴 사명감이 강찬을 자극했다.

“지금 나가면 되나요?”

“현관에 차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 선생도 함께 가시죠. 경호실에서 얘기가 나와서 함께 보셨으면 하셨습니다.”

석강호가 당황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가자.”

“알았소.”

커다랗게 숨을 들이쉰 석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 대기하던 차를 타고 출발하자 곧바로 한 대의 차가 뒤에 따라붙었다.

“어제 말씀하셨던 일은 원장님께 직접 보고 드렸습니다. 라노크의 일정이 새어나간 점은 자체적으로 점검 중이어서 결과가 나오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형정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국가 정보원은 요원들이 죽어도 이름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저 현관 벽에 별 하나를 새겨 줄 뿐이죠. 잊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다들 그런 각오로 일합니다. 별이 된 요원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강찬 씨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로 느낀 점이 많습니다.”

다짐은 좋은데 요지에는 살짝 빗나간 느낌이었다.

“오늘 오전에 결정이 있었습니다. 대통령님과 원장님, 총리님께서 허가해 주셔서, 제가 별도로 조직을 구성할 겁니다. 국가정보원에도 보고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인원과 무기, 그리고 경비만 지원받는 특수임무대가 생기는 건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김형정의 표정이 정말 무거웠다.

“서류상 책임자는 접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김형정이 고개를 돌려서 강찬도 그를 보았다.

“골프장에서처럼 강찬 씨가 지휘하십시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런 건 생각하지 못했다.

“별이 못 돼도 좋습니다. 다만, 유니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면, 아니 강찬 씨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강찬이 풀썩 웃었다.

이런 남자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 거지?

그 순간, 승용차가 화랑에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가 차로 완벽하게 막혀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의 직원들이 입구에서 승용차를 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실례하겠습니다.”

화랑의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 한 명이 깍듯하게 인사한 후에 휴대용 탐지봉으로 강찬과 석강호의 몸을 살폈다.

검색이 끝나자 또 다른 직원이 강찬을 안으로 안내했다.

화랑 한가운데 소파에 있던 문재현과 고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하. 강찬 씨와 석강호 선생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문재현이 강찬과 악수를 나눈 다음, 다시 석강호의 손을 잡았다.

“총리는 전에 보셨다구요?”

“석강호 선생은 처음입니다.”

고건우가 강찬에게 웃어 보인 후, 석강호와 악수를 나눴다.

“앉읍시다.”

김형정과 그 외에 비서진, 경호원이 소파를 빙 둘러 서 있었다.

커다란 유리잔에 얼음과 음료수가 가득 나왔다.

“차 듭시다.”

문재현이 손으로 유리잔을 가리키고 먼저 잔을 들었다. 강찬도 한 모금 마셨는데 알싸한 단맛이 나쁘지 않았다.

“부상이 심하다던데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문재현이 강찬의 셔츠를 보듯 시선을 떨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골프장에 간 건 순전히 내 고집이었습니다.”

문재현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총격이 있다는 보고에 우리 경호 실장이 얼마나 반대를 해댔는지 저 양반 고집을 꺾는 게 안 사람 이기기 보다 어려웠지요.”

경호 실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철도를 연결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500년 이상 동남아시아의 중심이 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내 임기가 3년 남았는데 그 안에 이 일을 완성해야 합니다. 일본은 이걸 지켜볼 수가 없어요. 만약 반대쪽에서 정권을 잡으면 라노크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바로 어제처럼요.”

문재현이 김형정을 잠시 보았다가 다시 강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통령의 직책을 걸고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습니다. 어제 라노크 대사가 그러더군요. 우리나라에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자신도 목숨의 절반쯤을 걸었는데 그게 모두 강찬 씨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마친 문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고건우를 비롯해 강찬과 석강호도 얼른 몸을 일으켰다.

“공식 일정이 아니라 바로 일어서야 합니다.”

문재현이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강찬 씨.”

“예, 각하.”

문재현은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이번 일로 희생된 분들은 정말 유감입니다. 그러나 나는 물론이고, 여기 총리와 국정원장 역시 목숨을 걸고 진행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이 민족을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어제 김 팀장이 그러더군요. 강찬 씨에게는 강요할 수 없다고.”

기분이 묘했다.

이런 남자들이 상관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다.

“부탁합니다. 만약 누군가 죽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가장 앞에 서겠습니다.”

눈빛이 빛나는 남자의 부탁이다.

“알겠습니다, 각하.”

“석 선생도 도와줄 거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군인처럼 한 대답에 문재현이 풀썩 웃었다.

강찬, 그리고 석강호의 손을 꽉 잡아준 문재현이 밖으로 나갔다.

“강찬 씨. 오늘은 내가 먼저 나갑니다. 필요한 모든 지원을 승인했지만, 결국은 강찬 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일입니다. 미안합니다.”

“알겠습니다, 총리님.”

“고맙습니다.”

고건우가 강찬과 석강호의 손을 차례로 잡아준 다음 밖으로 향했다.

***

바로 병원으로 돌아왔다.

커피를 탔고, 담배도 하나씩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어제 대통령님과 라노크 대사가 기본적인 합의는 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방해를 이겨내기 위해 라노크 대사가 갑갑해 하는 부분을 풀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하시면 맞을 겁니다.”

강찬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김형정이 답을 했다.

“쉽지 않네요.”

“철도가 연결되면 일본은 그저 바다에 떠 있는 섬나라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니 일본이 필사적으로 우리를 방해하려 들고, 부끄럽지만, 그들에게 매수된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걸 우리가 다 해야 한다구요?”

“전쟁 빼고 강찬 씨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할 말이 없었다.

“천천히 생각하죠.”

“지금까지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두 분의 가족을 국가 정보원에게 보호하는 것,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 우리 팀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사전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김형정의 표정에 그가 어떤 결심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해보죠.”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차라리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예.”

김형정이 나가자 석강호가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우리 대통령 만나고 온 거 맞지요? 당최 실감이 안 나우.”

“나두 그렇다.”

둘이서 입맛을 다셨을 때 유헌우가 간호사와 들어왔다.

“붕대 갑시다.”

“오전에 갈았잖아요?”

“상처가 빨리 낫는 만큼 붕대는 자주 갈아야 하지요.”

유헌우가 능숙하게 붕대를 벗겼는데 통증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조직 검사 내가 해도 됩니까?”

벗겨낸 붕대를 선반에 올린 유헌우가 입을 열었다.

“비용은 내가 부담할 테니까 그냥 한번 해봅시다. 상처가 치료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사실 붕대를 갈면서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속도가 빨라지는 건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없어요.”

“조직 검사야 제가 비용을 내죠. 그런데 속도가 빨라지는 게 문제가 되나요?”

유헌우가 석강호를 흘깃 보았다.

“괜찮으니까 그냥 말씀하세요.”

“강찬 씨 때문에 그동안 발표된 특이체질 논문을 거의 다 훑었는데 속도가 빨라진 경우가 꼭 한 건 있더군요.”

유헌우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한순간에 노화가 진행됐습니다.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유일한 사례라 그 조직과 비교해서 검토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한순간에 늙어버렸다는 건가요?”

“단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니까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우선 조직 검사를 먼저 해봅시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해볼 생각이었다.

강찬이 동의하자 유헌우가 왼팔의 상처에서 살점을 작게 떼어낸 다음 붕대를 감아주었다.

“결과는 한 달 정도 뒤에 나옵니다.”

“꽤 오래 걸리네요.”

“그렇지요.”

유헌우가 나가자 석강호가 근심 어린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표정이 그게 뭐냐?”

“걱정돼서 그렇소.”

“됐다. 출출한데 우리 빵이나 사다 먹자.”

“그럽시다.”

석강호가 방을 나섰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생각할 문제로 공연히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웅웅웅. 웅웅웅.

TV를 켤까 할 때 전화가 울렸다.

미쉘이었다.

“여보세요?”

[“차니. 요즘 어떻게 지내?”]

조심해 하는 목소리라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드라마 잘 돼가냐?”

[“그건 문제없어. 지금 대본 연습 중이고, 이번 주말에 제작 발표회 있을 거야.”]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가볼까 했는데.”

[“와주면 좋지. 애들이 아주 좋아할 거야.”]

“너는 안 좋고?”

[“사실은 내가 제일 좋을 거야.”]

미쉘이 고백하듯 하는 대꾸여서 강찬은 그냥 웃음이 났다.

[“드라마 제작에 신경 쓰지 않게 하겠다고 각오해서 연락 안 했어. 솔직히 알리온하고 이하연 뉴스 나왔을 때 나나 우리 직원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걔들이 잘못 한 게 많으니까 그렇지.”

[“우악산 파의 일도 그렇고. 나 차니가 조금 무섭기도 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대본 연습은 매일 하니?”

[“응. 지금은 방송국에 모여서 해. 연습생 애들이 첫 회부터 들어가서 회사 분위기는 최고야.”]

“알았다. 며칠 내로 한번 들를게. 다들 열심히 하라고 전해 줘.”

[“그럴게. 올 때 꼭 연락해 줘. 나는 거기 없을 때 많거든.”]

“그래.”

전화를 끊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사실 드라마제작도 전혀 평범하지 않지만 말이다.

석강호가 빵과 음료수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아래층과 간호사실에 쫙 돌렸소.”

“잘했다.”

팥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내일 학교 나올 수 있소?”

“왜?”

크림빵을 꺼내 든 석강호가 음료수를 건네주며 답을 했다.

“소집일이우. 그거 안 나오면 결석처리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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