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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프리카도 아닌데.
카트가 출발한 직후에 강찬과 다예루는 산의 경사가 시작되는 곳으로 움직였다.
“매복지를 노려.”
석강호가 고개를 틀어 셔츠의 소매를 입에 물더니 소매를 ‘부욱.’ 찢어냈다.
“팔부터 묶읍시다. 그리고 그 권총은 위험해요.”
석강호가 왼팔을 묶어주는 동안 강찬은 권총을 살폈다.
“젠장!”
총구에 흙이 잔뜩 들었다.
“이걸 쓰쇼.”
“너는?”
권총을 건네준 석강호가 허리춤에서 대검을 꺼냈다.
“그거 이리 줘.”
“대장!”
강찬이 대검을 낚아채고 권총을 돌려주었다.
“양쪽에서 달려 올라간다. 불꽃이 보이면 무조건 갈겨.”
“다섯 발 남았소.”
“그 안에 해결해.”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화다닥!
미리 봐두었던 곳으로 동시에 뛰어올랐다.
오른발을 꼬챙이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온몸이 쓰라렸다.
타앙! 타앙! 타앙!
강찬의 주변의 흙이 튀어 올랐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나?
타앙. 타앙. 타앙. 타앙.
석강호가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걸어가며 총을 쐈다.
마지막 한 발!
부스럭!
매복해 있던 적이 석강호를 향해 몸을 돌린 거다.
강찬은 있는 힘껏 달려나갔다.
파바바박!
타앙!
석강호의 마지막 탄알이 매복지 위에 떨어졌다.
미친 새끼!
강찬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몸을 드러낸 거다.
넌 여기서 살아도 뒈졌어!
강찬은 이를 꽉 깨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콰자작! 타아앙!
귀 바로 옆에서 총소리가 터진 직후였다.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적이 대검에 찔린 것은 맞다.
강찬은 대검을 사정없이 당겼다.
“끄으윽!”
버둥대던 적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달려온 석강호가 위장막을 걷어치웠을 때 적은 목에서부터 명치까지가 길게 갈라져 있었다.
“괜찮소?”
“넌 뒈졌어. 허억. 허억.”
구덩이 턱에 허리를 걸치고 몸을 뒤로 눕혔다.
“도대체 몇 놈이나 왔든?”
“라노크 쪽만 스물이 넘습디다.”
강찬이 석강호를 보았다.
“클럽하우스에서 총을 든 요원이 다섯쯤 지원 나왔었소.”
김형정이 감춰놓은 놈들이 있었다는 건가?
“전에도 이런 일 있었냐?”
석강호가 강찬을 끌어올리며 “뭔 소리요?” 하고 악을 썼다.
피와 흙이 엉겨 붙어서 처참한 모양새였다.
“총 말이다. 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총을 자주 볼 줄은 몰랐다. 아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몸 전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처음이요. 그런데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보도 안 되는 거 보면 전에는 우리가 몰랐었던 거 아니겠수?”
그럴 수도 있겠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하다.”
“일단 내려갑시다.”
석강호는 강찬의 상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호텔에서 마주친 놈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국가정보원과 라노크쪽에서 말이 나가지 않으면 이럴 수가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우선 내려가자니까요!”
“젠장! 너무 많이 죽었어! 어떤 새낀지 찾아내야지!”
“여기서 찾을 건 아니잖소. 그러니까 상처부터 치료합시다.”
석강호가 세워주어서 강찬은 부축을 받으며 산을 내려왔다.
대기하고 있던 카트 두 대가 곧바로 다가왔다.
“담배 있냐?”
카트 조수석에 타고 있던 유비캅 직원이 얼른 담배를 건네줬다.
찰칵. 찰칵.
카트에 걸터앉아 라이터를 켰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
“이게 왜 이러지?”
그 사이 담배가 피에 젖었다.
“이리 주쇼.”
석강호가 담배 두 개를 동시에 붙여서 입에 하나 물려줬다.
“후우!”
“가도 됩니까?”
“그냥 피우고 가자.”
유비갑 직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강찬의 몸을 보았다.
숙제를 마친 느낌이었다.
“골프 이게 위험한 운동이다.”
“그러게나 말이오.”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빨았다.
***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자 김태진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왔다.
“괜찮습니다. 총에 맞은 게 아니라 전부 까진 거예요.”
“보기는 총상보다 심해 보이는데?”
김태진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대사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시는데 어떡할까?”
치료가 급하긴 했지만 우선 라노크를 보내는 것이 옳았다.
“쟈켓 잠깐만 빌려주세요.”
김태진의 쟈켓을 입은 강찬이 안으로 들어갔다.
“차니!”
라노크의 품에 있던 안느가 단박에 달려와 강찬의 품에 안겼다.
‘윽!’
마음은 이해하지만 통증이 굉장했다.
“걱정했어요!”
강찬이 잠시 안느의 등을 두드려 주었을 때 라노크는 복잡한 감정을 담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느가 파고들수록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서, 라노크가 걸어오지 않았다면 강찬은 안느를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강찬 씨.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모처럼 골프인데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라노크가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은 골프였습니다.”
안느가 겨우 몸을 떼는 순간에 김형정이 다가왔다.
“대통령님께서 이곳에 직접 오셨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차에 계셨는데 안으로 들어오신답니다.”
강찬이 뭔 소린가 할 때 김형정의 뒤에 있던 직원이 능숙한 불어로 통역을 했다.
“짐작대로 강찬 씨는 몰랐던 모양이군요. 역시 이 라노크가 친구로 생각했던 사람답습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라노크가 안느를 보았다. 그녀도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리 큰 부상은 아닌 듯 보였다.
“차니 곁에 있을래요.”
“그렇게 하시고 다녀오십시오.”
그가 처음으로 가면이 아닌 미소를 보이고는 김형정을 따라 걸었다.
“치료부터 하자.”
김태진과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안느가 끝까지 따라왔다.
석강호가 상의와 바지를 벗겨주었는데 앞쪽은 아예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이대로 붕대를 감으면 아예 미라가 되겠소.”
“시끄러!”
안느가 뒤에서 강찬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응급치료를 끝내고, 신발을 갈아신은 다음, 차와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라노크가 돌아왔다.
“차니!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나요?”
“그럼.”
“언제요?”
안느가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모습이 라노크는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대사님. 다음 주에 안느와 셋이 저녁 먹을까요? 제가 한번 사겠습니다.”
“강찬 씨. 고맙습니다.”
그가 보는 앞에서 강찬에게 입을 맞춘 안느는 그제야 차에 올랐다.
***
안느가 출발한 다음, 김태진까지 셋이서 유헌우의 병원으로 향했다.
“아니, 어떻게 해야 이렇게 다칠 수가 있는 겁니까?”
유헌우는 투덜댔지만 능숙하게 치료를 마쳤다.
“다리에 난 총상은 스친 거라 차라리 나은데 왼팔은 피부 이식을 해야 할지 몰라요. 이틀 정도 입원해서 상태를 봅시다. 붕대도 갈아야 하고, 주사도 맞아야 하니까 내 말대로 하세요.”
“알았습니다.”
유헌우가 워낙 단호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거부하지 못했다.
병실에 올라가자 길었던 하루가 끝난 느낌이었다.
“커피 드시겠소? 대표님은요?”
“한잔 마셔야지요.”
석강호가 커피를 타가지고 온 뒤에 담배를 하나씩 물었다.
침대 양쪽에 아예 공기청정기를 설치되어 있었다.
“형정이 이 친구가 와봐야 알겠지만, 반대파에서 밀입국을 도운 정황을 잡았다고 하더군. 이참에 제대로 반격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그거야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원래는 자네를 만나러 오셨다고 들었다. 덕분에 라노크를 구하게 돼서 양쪽 모두 호감을 갖는 계기도 되었고.”
강찬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대표님. 대통령이 평소에 프랑스어 통역과 함께 움직인다는 건 어딘지 이상하지 않나요? 그것도 저를 만나러 오면서요?”
김태진도 이미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김형정이 정말 대통령이 오는 걸 몰랐을까?
함께 움직이는 팀이라면 이런 정도의 정보는 미리 주었어야 맞다.
“정보가 샜습니다. 호텔에서는 모르지만, 오늘은 직원들 희생이 너무 컸어요.”
김태진이 볼을 꽉 깨문 후에 입을 열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놓고 뒤에 의논하자. 희생된 직원들은 대전에 안장하고, 국가 유공자 포상, 그리고 회사에서 보상금을 지원하는 것까지는 얘기가 끝났다.”
덤덤한 척했지만, 김태진은 화를 꾹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저런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그나마 자네 덕분에 희생을 줄인 걸 텐데. 후우. 내가 부족해서 다 피어보지도 못한 애들을……. 마음이 그렇다.”
김태진의 마지막 말이 강찬의 가슴에도 걸렸다.
***
강대경에게 전화해서 이틀 정도 못 들어가겠다고 이야기를 먼저 했고, 잠시 후에 유혜숙과도 통화했다. 드라마 촬영장소에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는 핑계를 댔다.
김태진이 나간 바람에 저녁은 석강호와 둘이 먹었다.
차 한잔 마실 때쯤에 김태진과 김형정이 함께 들어왔다.
“좀 어떻습니까? 강찬 씨.”
“저야 뭐.”
쟈켓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은 김형정은 네 사람이 다 들을 정도로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비캅 희생자만 16명에 부상자가 그 정도 되지요. 프랑스 요원 둘이 희생됐구요. 우리 정부에서 유비캅을 통해 보상금과 위로금을 전달할 거고, 국가유공자 자격을 부여할 겁니다.”
아픈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해운회사의 선박을 통해 밀입국한 정황을 찾았습니다. 관련된 국회의원, 정부 인사를 파악 중입니다. 죽은 직원과 캐디들이 있어서 숨기지는 못합니다. 마침 대통령님께서 계셨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정부 인사가 포함된 간첩단이 북한 특수군을 밀입국시킨 것으로 발표하고 대대적인 검거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민심도 이 정도 사건이면 대통령을 지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쯧.”
죽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통령님께서 라노크와 비공식 면담을 통해 확실한 답을 얻으신 모양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유니콘 사업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신다는 생각입니다.”
잘된 일이다. 궁금한 걸 하나 빼면 말이다.
“팀장님.”
“말씀하세요, 강찬 씨.”
“혹시 대통령이 골프장에 올 것을 알고 계셨나요?”
입을 다문 김형정의 얼굴이 곧 대답이었다.
“알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사전에 발설하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인 데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말은 맞다. 하지만 강찬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저는 그런 규정 따윈 모릅니다. 처음 뵙던 날, 여기 석강호에게만은 무조건 말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내 편에겐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것만 압니다. 이건 라노크에게도 분명하게 설명한 일입니다.”
“강찬 씨. 저는 국가정보원 요원입니다. 정보원엔 그에 따른 규정이 있어요.”
“그러시겠죠.”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건 싫습니다. 그게 언제 내 사람을 다치게 할지 모르니까요. 이번에 16명이나 희생된 것이 그것과는 상관없는 일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싶네요.”
“알겠습니다, 강찬 씨.”
김형정은 제대로 알지 못한 얼굴이었다.
“라노크와는 언제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다음 주에 안느와 셋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날짜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장소와 시간이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왜죠?”
강찬의 질문에 김형정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다른 뜻은 없고 경호나 기타 편의를 위해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혹시 국가정보원 신분증을 받았으니까 행동을 전부 보고해라, 이런 건 아니시죠?”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국가적으로 워낙 거대한 프로젝트라, 그렇다는 겁니다.”
김형정이 갑자기 왜 이러냐는 투의 눈빛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오해가 있으실까 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제가 모르는 다른 계획이 끼어드는 게 싫습니다. 만약 그런 일로 여기 석강호나 제 사람을 잃게 되면 그땐 국가정보원이 절 죽여야 끝나는 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오늘 일이 언짢으셨던 모양인데 대통령님은 그저 지나가는 길에 들르신 겁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다.
아니라면 설명이 미흡했든가.
강찬은 한 번 더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로 했다.
“지난번엔 국무총리가 불쑥 나타나고, 이번엔 대통령이 지나다가 들렀습니다. 반대로 묻죠. 대통령께선 제가 라노크와 함께 있는 걸 모르고 오신 겁니까?”
“그거야.”
“제가 김 팀장님과 라노크의 경호를 의논할 때 팀장님은 대통령 경호 동선을 전혀 계산하지 않았습니까?”
김형정은 대답하지 못했다.
“작전을 짤 때 내가 한 모든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고스란히 흘러간다면 팀장님은 그런 팀을 믿고 일하실 수 있으세요? 전 아닙니다.”
“국가의 일입니다. 강찬 씨도 그걸 알고 수락한 거 아닙니까?”
이 사람은 여기까지다.
강찬은 고개를 돌려 “지갑 좀 줘.”라고 말을 했다.
석강호가 지갑을 건네주자 강찬은 새로 받은 주민증과 국가정보원 신분증을 꺼내 김형정이 앉은 침대 끝에 두었다.
김태진은 묵묵하게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할 뿐 다른 말은 없었다.
“앞으로도 철도가 연결되는 데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라면 협조하겠습니다. 하지만 강요하지 마세요.”
김형정은 신분증에 시선을 내렸을 때였다.
“제 것도 여기 둡니다. 첫 달 급여가 들어왔던데 내일 계좌 보내주시는 걸로 합시다.”
석강호가 점잖게 나섰다.
“각자 입장이 있겠지만, 감춰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한 팀이 아니오. 우린 국가정보원 요원이라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대표님과 팀장님이 한팀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거요.”
뭐야?
지금껏 계속 지껄인 강찬보다 석강호의 말 한마디가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강찬은 놀란 속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자!”
김태진이 양쪽 다리에 ‘탁’ 소리가 나게 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서로 입장이 있는 거니까. 양쪽 다 원하는 게 틀린 거라 생각하고 신분증은 우선 넣어두기로 하자. 자네도 앞으로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만 강찬의 동선을 파악하는 걸로 하지.”
“강찬 씨는 국가정보원 1급 경호 대상이야.”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네가 상관들을 설득할 문제야. 처음 날 찾아왔을 때 도움을 달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1급 경호대상이란 핑계로 묶는 건 친구인 내가 봐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강제할 생각이라면 내가 봐도 오늘 신분증을 받아가는 게 맞다.”
김형정이 난처한 듯 입술을 찌푸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찬 씨. 하지만 우선 신분증은 가지고 있는 걸로 합시다. 석 선생도 그렇게 하시고. 제가 돌아가서 윗분들과 상의토록 하겠습니다.”
김태진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좋았다. 분위기가 무거웠는데 김태진이 쓱 일어서더니 커피를 타러 움직였다.
“강찬이랑 자주 만나다가 이게 버릇이 들었나? 입이 궁금하면 봉지 커피가 먼저 생각나. 어허! 석 선생은 그냥 앉아 있어요. 이깟 것 하나 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김태진은 “우리 군대 있을 때 이거 지겹게 마셨는데.” 하면서 능숙하게 커피를 탔다.
“자! 한 잔씩 듭시다.”
김태진이 술을 권하는 것처럼 종이컵을 건넸다.
“그나저나 석 선생은 어디서 권총 사격을 익힌 거요?”
석강호가 얼른 강찬을 본 다음이었다.
“우리 정보원하고 경호실 쪽에서도 석 선생 이야기가 몇 차례 나오긴 했었습니다.”
김형정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영화보고 배웠습니다.”
김태진과 김형정이 헛바람을 쏟아내는 것처럼 웃었다.
“이제 가봐야겠다. 직원들 장례식장에 갈 거니까 어쩌면 모레까지 못 올지 모른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저도 같이 일어나겠습니다. 강찬 씨와 석 선생의 입장을 상부에 보고하고 어떤 식으로든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일어섰다.
너무 쓸데없이 고집을 피운 것 같아서 미안하긴 했는데 그렇더라도 작전의 모든 것이 외부로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아프리카에서처럼 김태진과 김형정 모르게 퇴로를 만들어 놓을 바에는 아예 이런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간 후에 간호사가 와서 링거줄에 주사약을 넣고, 약을 주었다.
“들어가.”
“오늘은 여기서 잘라우. 침대도 있고 방학인데 뭐가 문제요?”
“코 골면 죽일지 몰라.”
“푸흐흐흐.”
둘이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TV를 틀었다.
심심해서 틀었던 건데 뜻밖에도 대낮,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 대통령 암살이 시도되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장흥 방향이라 판문점과의 거리가 가까웠다는 둥, 밀입국이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는 둥, 국회와 국가 고위직에 간첩이 있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죽은 적들과 그들이 사용한 총기가 간간이 화면에 비쳤다.
“난 이제 뉴스를 그대로 못 믿을 것 같수.”
강찬도 그랬다.
***
다음날, 석강호는 일찌감치 해장국을 사 와서 아침을 함께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잠시 뒤에 유헌우가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좀 어때요?”
“쓰라린 거 빼면 그럭저럭 괜찮은데요?”
“어디 봅시다. 얼마나 나았을지 기대가 큽니다.”
의료용 장갑을 낀 유헌우가 강찬의 붕대를 떼어냈다.
투두둑.
가슴이며 팔을 감았던 붕대가 살과 엉겨있었다.
“많이 아프겠는데요?”
생살을 잡아 뜯으면서 할 소리는 아니다.
“허허허.”
이 양반은 늘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기가 막힌 듯 웃고 난 유헌우가 진지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뭔데 그러세요?”
“강찬 씨 상처를 볼 때면 늘 이러네요. 왼팔도 굳이 이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유헌우는 소독한 후에 약을 바르고 다시 붕대를 감아주었다. 주사액도 넣고 간호사가 건네준 약도 먹었다.
“강찬 씨, 어제 골프장에서 다쳤다고 했지요?”
“제가 그랬었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난 그냥 못들은 걸로 하렵니다.”
유헌우가 고개를 저어가며 병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