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69화 (6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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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프리카도 아닌데.

안느가 건물을 나오며 셋이 1번 홀로 걸어갔다.

경서울은 원래 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홀의 한쪽으로 콘크리트 도로가 놓였다.

캐디 3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세 사람을 보고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했다.

화창한 날씨였고, 오전 7시라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찬 씨가 먼저 치시죠.”

“그럴까요?”

강찬은 캐디가 건네주는 드라이버를 들었다.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적당하게 선 다음, 공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에잇!’

까아앙!

흰색 공이 바나나처럼 오른쪽으로 휘더니 산 너머로 휙 사라져버렸다.

‘뭐지?’

뻘쭘해서 뒤를 보자 다들 당황한 얼굴이었다.

안느가 웃음을 참으려 애쓰고 있다가 강찬과 시선이 마주쳤다. 표정이 어색했는데 어쨌든 우는 것보다는 낫다.

“미안해요. 아빠와 나온 분이 이렇게 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웃으면 됩니다.”

“강찬 씨는 정말 안 쳐봤군요.”

결례라고 생각했는지 라노크가 끼어들었는데 표정은 안느와 다르지 않았다.

“전에는 그래도 똑바로 날아간 것 같았는데 이건 좀 다르네요.”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석강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라노크의 차례였다.

그는 편안하게 공을 올려놓고 두어 번 연습 스윙을 한 후에 멋지게 공을 때려냈다.

“나이스 샷!”

캐디들의 외침에 어울릴만한 샷이었다.

“강찬 씨. 다시 한 번 치세요.”

“괜찮습니다. 이게 원래 실력이라 다시 친다고 달라지지도 않을 겁니다.”

안느의 차례다.

“저 걸어가도 되나요?”

뭔 소리야? 공을 쳐야 걸어가지 않나?

그런데 안느의 표정은 진지했다.

“강찬 씨. 골프를 몇 시에 끝내야 합니까?”

“잠시만요.”

강찬은 김형정에게 골프 예약 시간에 대해 물었다.

“오늘은 완전히 비운 겁니다. 편안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강찬이 그대로 전해주었다.

“들었지? 강찬 씨가 이렇게 배려했다니 마음 놓고 걸어도 되겠다.”

“고마워요, 아빠. 고마워요, 강찬 씨.”

“천만에요. 그리고 안느. 괜찮다면 차니라고 부르세요.”

안느가 생긋 웃어 보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강찬은 주변을 살핀 후에 안느의 오른편에서 걸었고, 석강호와 프랑스 요원들이 라노크의 오른편을 지켰다.

이렇게 뻥 뚫린 골프 코스를 걷는 것은 카트를 타는 것보다 저격의 위험이 월등히 증가한다.

오른쪽에 산이 있어서 우선 최대한 가리자는 의미였다.

‘이거였구나.’

20m쯤 내려가자 여자들을 위한 티 박스가 따로 있었다. 안느는 제 키만 한 드라이버를 받아서 몇 차례 휘두른 다음, 멋지게 공을 때렸다.

뒤쪽에 있던 캐디들이 박수를 쳤다.

“대사님. 저는 아무래도 두 분의 실력에 못 미칩니다. 차라리 이렇게 곁에 있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실제로도 그렇다.

안느의 드라이버를 캐디에게 건네주고 셋이 나란히 걸었다.

“강찬 씨가 기권한단다. 이제부터 우리 둘이 칠까?”

안느가 서운한 얼굴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함께 칠 실력을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강찬은 캐디에게 이후부터 자신은 빼라고 말을 전한 뒤, 석강호와 김태진에게 사인을 줬다.

라노크와 안느가 번갈아가며 공을 치고, 홀컵에 공을 떨구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프랑스 요원들은 강찬의 눈짓에 군말하지 않고 따랐다. 호텔에서 함께 싸웠던 두 놈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아예 강찬의 지시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6번 홀이다.

커다란 인공호수 너머에 그린이 있는 홀.

홀 뒤로 산이 있어서 저격수가 있다면 피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공을 치기 전에 3초에서 5초 정도 자세를 고정하기까지 한다.

강찬은 소매의 마이크 버튼으로 모르스부호를 보냈고, 이상 없다는 답을 먼저 들었다.

“6번 홀 주변 이상 없나?”

치잇.

“현재까지 이상 무.”

다들 신경이 날카로웠다.

라노크가 먼지 티 박스에 올라갔다.

이럴 땐 감밖에 믿을 게 없다.

‘괜찮을까? 아무 이상 없나?’

강찬은 홀 뒤에 있는 산을 보았다.

따악!

라노크의 아이언 샷에 하얀 공이 똑바로 날아가는 동안, 석강호와 김태진의 눈이 잠시도 쉬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안느의 차례였다.

그녀가 티 박스에 올라갔을 때 강찬은 다시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며 산을 보았다.

‘빨리 쳐라. 빨리.’

강찬의 바람과 달리 안느는 신중하게 공을 때렸다.

따악.

강찬은 재빨리 앞으로 가서 안느를 가리다시피 하며 골프채를 받았다.

눈이 마주쳤다.

‘경호를 왜 당신이 직접 하나요?’ 하는 눈빛이었다.

“가시죠.”

강찬은 안느에게 바싹 붙어서 걸었다. 산 위에 누군가가 기회를 노린다면 이 아래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차니. 경호원이에요?”

“아니요. 그보다는 골프를 주선했는데 대사님이나 안느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으로 받아주세요.”

라노크가 앞서 걸어서 자연스럽게 둘이 걷게 되었다.

“아빠 경호원들이 차니 지시를 받던데요? 자존심 센 루이까지 차니 뜻대로 움직여서 아빠도 저도 조금은 놀라고 있었어요.”

강찬은 그냥 웃어주었다.

“골프를 나오면 엄마 품에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인공호수를 빙 돌아 그린을 향해 걸었다.

걸음이 불편해서 카트를 권하고 싶었는데 경호를 생각해도 그편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빠가 늘 바빴어요. 그래서 엄마와 둘이 피크닉을 자주 갔거든요.”

프랑스 인들은 거의 다 피크닉을 자주 간다. 특히 아이가 어릴 경우, 레스토랑에서 거의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크닉을 갈 수밖에 없다.

“그때 풀냄새가 기억나요. 그래서 이렇게 골프를 할 때면 엄마 품에 있는 거 같아요.”

슬픔이 단단하게 뭉쳐 똬리를 틀고 있는 느낌이었다. 실컷 울지 못했는데 본인은 그걸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다.

용병을 지원한 놈들 중에서 열에 한둘은 이랬다.

센 척, 강한 척하는데 패고, 또 패고, 마지막에 죽기 직전까지 두들기면 대개는 엉엉거리며 울었다.

고아원이나 위탁 가정에서 학대받은 기억, 아버지 손에 잔인하게 죽은 어머니, 처참하게 죽은 누나나 여동생의 기억, 철저하게 안에 가두었던 것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울분 같은 울음으로 터져버리는 거다.

그런 뒤에는 거짓말처럼 강찬을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이걸 죽기 직전까지 한번 두들겨?

아서라.

뒤를 어떻게 감당하겠냐?

강찬이 풀썩 웃자 안느가 깊은 눈으로 따라 웃었다.

그린에 도착하자 김태진은 아예 정신병자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퍼팅을 위한 자세는 한 자리에 오래 서 있게 된다. 게다가 게임에 방해되기 때문에 함부로 근처에 갈 수도 없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경호상의 위치선정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뻔했지만, 유비캅과 프랑스 요원 모두 순순히 강찬의 눈짓대로 움직여주었다.

“휴!”

6번 홀을 돌아 산의 모퉁이를 걸을 때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토해냈다.

“왜요?”

“6번 홀 같은 경우는 경호하는 사람들이 가장 날카로워지는 구간이죠. 특히 티 박스나 마지막 퍼팅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면 피가 타들어 가는 심정이 됩니다.”

“경호원 맞네요.”

“아니라니까요!”

라노크가 ‘너희 뭐하냐?’하는 시선으로 강찬과 안느를 살피는 가운데 그늘집에 도착했다.

“대사님. 담배 하나 피우고 가시죠?”

“그래요, 아빠.”

라노크가 서양 가면 같은 미소를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이 담긴 음료수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웠다. 그늘집 안이다. 당연히 금연인데 말릴 사람이 없으니까.

그늘집을 삥 둘러서 유비캅 직원들이 서 있었다.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석강호, 김형정, 김태진이 물을 병째로 마셔대고 있었다.

“숙녀분은 홀에 나갈 준비를 해야지.”

라노크의 권유에 안느가 화장실로 향했다.

“강찬 씨를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하는데 안느 얼굴을 보니 그러지 못하겠습니다.”

강찬은 그냥 웃으며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저렇게 편하게 말을 건네는 걸 얼마 만에 보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는 대화를 안 하나요?”

“형식적인 대화만 하지요. 아내가 죽고 나서는 저와도 비슷합니다. 안느를 위해서 은퇴도 생각했었습니다.”

라노크의 답이 끝날 때 안느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늘집을 나와 7번 홀과 8번 홀을 돌았다.

해가 떠올라 더워졌다.

프랑스 요원들이 라노크에 집중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강찬이 안느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어쩌면 안느의 곁에 강찬이 있어서 더욱 라노크에게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저격 방향만 막아주면 된다.

다행히 체격이 작아서 가리기가 수월했다.

9번 홀이다.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 왼편이 산, 오른쪽이 5번 홀과 엇갈려 있는 구조여서 보기에는 시원했지만 경호하는 입장에선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라노크가 티 박스에 올라선 다음이다.

강찬은 가슴이 답답했다.

‘뭐지?’

제일 먼저 석강호를 찾았다.

그의 표정을 읽은 석강호가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라노크에게 조금 더 바짝 다가섰다.

김태진과 김형정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치였다.

까아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걸어 내려가 안느의 차례였다.

강찬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티 박스에서 살짝 멀어진 강찬은 급하게 소매에 달린 마이크를 당겼다.

모르스부호를 눌렀는데 답이 없었다.

깡!

강찬은 뛰어들다시피 달려가 안느를 감쌌다.

두근두근.

“9번 홀 매복조 응답!”

강찬의 송신에 답이 없었다.

홀에 들어서기 직전에 확인했던 모르스부호다.

무선을 함께 듣던 김태진과 김형정이 라노크를 단박에 감쌌다.

“카트로 움직여!”

강찬은 안느를 안은 다음, 프랑스어로 외쳤다.

“카트로 가! 대사님을 클럽하우스로 모신다!”

프랑스 요원들까지 삽시간에 라노크를 에워쌌다.

“대사님. 우선 카트로 가세요!”

“강찬 씨!”

여기서 다같이 카트를 탈 수는 없다.

“안느는 제가 책임질 테니까 우선 카트로 가세요!”

유비캅 직원 넷과 국가정보원 직원 하나가 강찬과 안느를 둘러쌌다.

라노크가 완전히 가려진 다음이었다.

타아앙!

퍼억!

“꺄아아악!”

캐디들의 비명과 함께 라노크를 바깥에서 감쌌던 직원 하나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출발해!”

라노크를 카트에 태워 완전히 가렸고, 프랑스 요원들이 카트에 붙어 달리고 있었다.

“너희는 캐디와 저쪽으로!”

유비캅 직원 둘이 캐디 셋을 몰다시피 해서 5번 홀 쪽으로 넘어갔다.

강찬은 나무를 뽑듯 안느를 들어 티 박스 앞쪽 산기슭으로 옮긴 후에 몸을 돌려 바로 업었다.

“팔 줘!”

얼이 빠진 건가?

반응이 없는 안느의 오른팔을 어깨 위로 돌리고, 왼팔은 겨드랑이에 끼워 잡게 했다.

“쟈켓!”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타아앙! 타아앙!

카트에서 불꽃이 튀었고, 프랑스 요원하나가 쓰러졌다.

강찬은 유비캅 직원이 건넨 쟈켓으로 안느의 몸을 받친 다음 어깨에 대각선으로 묶었다.

카트가 지나가면 이 인원으론 안느를 지키지 못한다.

“총!”

국가정보원 요원이 당황한 순간이었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카트의 앞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강찬은 요원의 멱살을 잡아당기고 품에서 권총을 낚아챘다.

안느만 없다면 직원이나 요원을 노릴 이유도 없다.

“너희는 캐디들과 홀을 타고 클럽하우스로 가!”

파바바바박.

강찬은 5번 홀을 향해 달렸다.

군장을 완벽하게 메고 달리는 느낌.

‘왜 울거나 소리 지르지 않지?’

타아아앙!

강찬의 앞쪽 잔디가 커다랗게 튀었다.

타아아앙!

두 번째로 잔디가 튀었을 때 카트 쪽에서 대놓고 총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찬은 페어웨이 끝에서 5번 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푸덕!

등에 있던 안느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조금이나마 등성이가 있어서 안심이다.

국가정보원 요원과 유비캅 직원들이 캐디들과 클럽하우스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차니. 나 놔줘요.”

너무나 차분한 음성이라 강찬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를 각오한 눈빛이었다.

“부탁이에요. 늘 이런 순간을 상상했어요. 엄마 품으로 갈 수 있는 순간…….”

타앙! 타앙! 타다당! 타아앙!

저격만이 아니다. 아예 카트를 노리고 달려드는 거다.

이대로 있다가 두 놈만 달려들어도 안느는 죽기 딱 좋다.

강찬은 몸을 일으킨 다음, 8번 홀을 향해 달렸다.

“놔줘요!”

안느가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젠장!

타아앙!

바로 옆에서 잔디가 푹 떠올랐다.

타아앙!

‘크흑!’

정강이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휘청거렸지만 강찬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왜! 왜요! 그냥 날 놔두면 되잖아요!”

더 달리는 건 무리다.

파바박.

나무가 심어진 중간으로 몸을 날렸다.

“헉헉. 헉헉.”

묶었던 쟈켓을 풀었다. 어차피 넘어진 뒤라 안느의 몸이 반쯤 빠진 다음이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피로 범벅이었다.

“꺄아아악! 꺄아아악!”

강찬은 비명을 질러대는 안느를 위에서 덮쳤다.

타아앙! 파악! 타아앙!

오른쪽에 있던 나무가 커다랗게 파였고, 그 옆 풀이 높다랗게 튀었다.

“다리! 다리에 총을 맞았어!”

“안느! 안느!”

바닥에 누운 안느의 몸 위에 올라탄 자세다. 강찬은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억세게 잡고 눈을 들여다봤다.

“당신이 끔찍한 경험을 한 건 인정해. 하지만 당신이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당신 아버지도 죽어. 그걸 몰라?”

안느가 고개를 저었다.

“멍청아! 네가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골프장에 나온 거야! 그런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일단 살자. 그런 다음에도 죽고 싶다면 그땐 내가 분명하게 죽여주마.”

안느는 놀란 눈을 하고도 강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일단 살자. 알았지?”

안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심장이 뛰는 진동과 숨소리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부스럭.

그때, 주변에서 기척이 들려서 강찬은 안느의 몸에서 내려왔다.

“어떻게 해요?”

쉿!

강찬은 검지를 빠르게 입에 가져갔다.

도대체 몇 놈이나 온 거야?

밀입국을 이렇게 단체로 할 수 있는 건가?

멀리서 연신 총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아프리카도 아닌데.

강찬은 주먹에서 엄지만 세워 등 뒤를 가리켰다.

그녀가 피범벅인 다리를 흘깃 보았으나 두말 않고 등에 업혔다.

체구가 작은 게 그나마 복이다.

안느가 깜박 잊고 목을 안고 있어서 강찬은 그녀의 왼팔을 잡아 겨드랑이에 끼웠다. 달리는데 목이 눌리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등에 몸이 찰싹 붙는다.

안느가 강찬의 등에 고개를 묻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몸이 뜨겁게 느껴졌다.

강찬은 최대한 쪼그려 앉은 자세로 나무를 돌아 페어웨이와 산의 경계로 다가갔다.

자그락.

멈칫.

강찬은 그대로 멈춰서 소리가 난 곳을 노려보았다.

바람이 살랑이는 순간이었다.

부스럭.

적의 머리가 보였다.

타앙. 타앙. 털썩.

총을 쏜 강찬은 재빠르게 더 안쪽으로 달렸다.

타앙. 타앙.

나무 속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봤다.

타앙. 타앙. 타앙.

털썩!

세 발을 연속해서 쏘자 적이 산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아직도 라노크 쪽에서 총성이 터져 나왔다.

‘잘해라, 다예.’

으드득.

이를 악문 다음이다.

강찬은 그대로 산을 타고 올라갔다.

조경수를 심어놓은 산이다. 적당한 경사 곳곳에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서로 모습을 보기 어렵다.

“흐으. 흐으.”

입을 다물고 가쁜 숨을 쉬려니 숨소리가 변태처럼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부스럭.

홰액!

타앙. 타앙. 타앙. 타앙. 타앙.

털썩. 털썩.

강찬은 몸을 먼저 날렸고, 적은 제자리에서 있었다.

적이 죽은 대신에 강찬은 팔꿈치와 무릎이 홀랑 벗겨졌다.

“괜찮아?”

등에 붙은 안느의 고개가 끄덕였다.

강찬이 잡은 적만 셋이다.

이미 총소리로 위치가 알려져서 빨리 움직이는 게 좋았다.

산등성이를 타고 클럽하우스 쪽으로 이동했다.

강찬은 왼손으로 안느의 맞잡은 손을 꽉 잡아주었다. 조금씩 힘이 풀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30m가량 산을 타고 가던 강찬이 걸음을 멈췄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또 뭐지? 아차!’

근처에 매복한 직원이 있어야 맞다.

직원을 죽인 적이 그 안에서 기다릴 수도 있는 거다.

주변을 살필 때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악!

강찬은 엎드린 자세로 산 아래로 몸을 던졌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타앙.

콰지직. 콰작. 콰자자작.

두 발과 오른팔로 몸이 뒤집어지지 않게 버텼다.

삽시간에 산을 내려왔는데 반대로 끔찍한 통증에 정신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퍼버버벅.

그 와중에 기어서 몸을 감췄다.

우우우웅.

멀리서 카트 여러 대가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아요, 차니!”

안느의 팔을 감쌌던 왼손은 아예 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살이 갈렸다.

우우우웅.

“강찬!”

김태진이 코앞까지 카트를 가져왔고, 석강호가 미친놈처럼 달려와서 강찬을 가렸다.

“대사님은?”

“클럽하우스에 있소. 갑시다!”

“안느를 먼저 안아. 위에 한 놈 더 있다.”

석강호가 들려고 했는데 안느가 팔을 풀지 않았다.

“안느. 먼저 가 있어.”

“같이 가요.”

“한 놈 남았어.”

“같이 가요.”

“안느!”

강찬이 뒤를 돌아봤을 때였다.

팔을 푼 안느가 몸을 돌려 강찬에게 입을 맞췄다.

뿌리치기 어려웠다. 살아보겠다는 약속 같아서.

“기다릴게요.”

강찬이 고갯짓을 하자 김태진과 직원들이 달려와 안느를 감쌌다.

“먼저 가세요. 석강호와 둘이서 해결하고 갈게요.”

“알았다.”

김태진이 안느를 감싸고 카트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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