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68화 (68/520)

0068 / 0419 ----------------------------------------------

4-5. 적당히 해라.

토요일은 모처럼 유혜숙과 하루를 보냈다.

오믈렛으로 아침을 먹었고, 점심에는 강대경과 셋이 나가 냉면도 먹었다.

점심 전에 골프장 티업 시간을 오전 7시로 잡았다는 연락을 받아서 라노크의 비서관에게 전한 것이 유일하게 다른 일을 한 전부였다.

“아들, 오늘은 안 바빠?”

아파트의 산책로를 걷는 도중에 유혜숙이 던진 질문이었다.

“괜찮아요. 요즘 어머니랑 시간을 못 보내서 많이 아쉬웠었거든요.”

“엄마도 그랬어.”

강대경이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날이 더워서 오래 걷기 어려웠고, 유혜숙이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서 빙수를 먹으러 가기도 부담스러웠다.

뭔가 서운했지만, 오늘만 날이 아닌 거다.

셋이 집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이러다 저녁에 닭 시켜놓고 건전하게 콜라를 마시며 영화 한 편 보는 일정이 남았는데 이게 해보니까 제법 재미가 쏠쏠했다.

“과일 먹어!”

방에 있는데 유혜숙이 콧소리를 섞어 불렀다.

강찬이 거실로 나가자 강대경이 “수박이 잘 익었다.” 하면서 손짓을 했다.

실제로도 맛이 있어서 감탄하며 먹고 있는데 유혜숙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응, 선옥아. 집이야. 응. 우리 아들? 집에 있어. 왜?”

유혜숙이 강찬을 흘깃 보더니 잠시 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가 말을 해볼게. 그럼! 그런데 그쪽 일을 맡은 사람이 따로 있다나 봐. 그때 호텔에서 봤던 프랑스 아가씨. 그래! 그 아가씨가 전부 알아서 한다던데? 응! 그래. 내가 꼭 얘기해 볼게. 큰 기대하지 말고. 그래, 알았어.”

전화 때문에 수박 맛이 뚝 떨어졌다.

“무슨 전화길래 그렇게 어렵게 받아?”

“그때 오디션 보게 해달라던 친구. 선옥이라고 당신 기억 안 나?”

“아! 그 까맣고 마른.”

“까맣지는 않지.”

보는 관점이 상당히 다른 모양이었다.

“이번에 찬이 있는 회사에서 찍는 드라마에 꼭 좀 넣어달라고 저러네. 3회 이상 출연하면 연극영화과 지원하는데 가산점이 있다나 봐. 필요하면 경비도 대겠다고 말 좀 꼭 해 달래.”

“그건 아니다.”

“자식 대학 보내고 싶은 부모 마음이 어디 그래? 어제는 내년 총무 나보고 하면 어떻겠냐고 전화도 왔었어, 여보.”

강대경이 실없는 웃음을 웃었다.

“이러다 우리 찬이 서울대학 입학하면 난 어디 숨어 있어야 할 거야.”

“왜요?”

“너 프랑스 국립 장학생 소문나고 얼마나 시샘이 많았는데 얘! 아빠가 돈 써서 그렇게 된 거라는 말도 있었어.”

라노크가 말 한마디로 백억을 보내는 사람인데 대학을 부탁하려면 얼마나 줘야 할까?

이백억?

차라리 대학을 하나 짓거나 사버리고 말겠다.

“어머니 난처하셔서 어떡해요?”

“아냐. 이걸 하나 들어주면 또 다른 부탁이 오고, 나중에는 누군 들어주고 누군 안 들어준다는 말 들어. 이런 건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나아.”

유혜숙의 강단 있는 모습을 보자 묘하게 안심도 되었다.

“수박 드세요.”

“그래.”

유혜숙이 수박을 집는 순간이었다.

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진숙아. 그래. 응. 말 들었어. 그래. 그런데 아들도 힘을 쓰긴 어려운가 봐. 그래, 얘. 응. 내가 다시 얘기해 볼게.”

강대경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선옥이가 진숙이한테 나랑 친하니까 말 좀 잘해달라고 부탁했대.”

“당신 요즘 하루에 전화 몇 통쯤 받아?”

“음. 한 열 통?”

“그러다 40억짜리 재단 설립하면 우리 중에 제일 바빠지겠다?”

“정말!”

유혜숙의 찌푸린 얼굴에 금방 걱정이 올라왔다.

“얼른 먹어. 걱정은 나중에 하고.”

“당신이 도와 줄 거지?”

“염려 마시고 드세요, 재단이사장님.”

강대경이 능숙하게 유혜숙을 달랬다.

강찬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

운동부에서 가자고 했던 수련회는 라노크와의 행사 이후로 일정을 잡기로 했고, 디아이에서 가자고 했던 수련회는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일요일에는 쉰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는데 기분이 별로였다.

‘뭐지? 왜 이러지?’

무언가 빠진 느낌.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 계속해서 강찬을 자극했다.

웅웅웅. 웅웅웅.

갑갑해서 바람이나 쐬러 나갈까 할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뭐하쇼?”]

“빈둥거려.”

[“커피 한잔 때려줍시다.”]

“그럴래?”

사양할 게 뭐 있나? 가뜩이나 찜찜하던 참인데.

강찬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아파트를 나왔다.

가까운 거 하나는 정말 좋다.

얼마 걸리지 않아 미사리 커피숍에 도착했고 늘 앉던 자리에서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이거 넣어둬요.”

석강호가 네모난 카드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거 지닌 채로 손잡이 버튼 누리면 문 열리고 시동이랑 다 걸 수 있습디다. 차는 내가 사는 아파트 지하 1층에 둘 거니까 급한 일 있으면 쓰는 걸루 합시다.”

“야! 요거 생각 잘했다.”

“나 월급이 천만 원 가까이 나옵디다.”

강찬이 카드를 지갑에 넣는데 석강호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국가 정보원 월급 말이오. 활동비하고 위험수당이 붙어서 본봉은 선생하고 비슷한데 총액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는 거요.”

“받으면 좋지, 뭐.”

“대장이 받아야 하는 걸, 내가 대신 받는 거 같아서 영 그렇수.”

“그럴 거 뭐 있냐?”

강찬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지난번에 너 당했을 때 그런 생각 했었다. 나나 너처럼 사는 건 좋은데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많이 주는 건, 그만큼 위험도 많다는 뜻 아니냐?”

“그래도 나는 하는 일이 없잖소?”

“당장 내일 경호 할 거잖아.”

“그거야 그냥 놀러 가는 거 아뇨?”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만만하게 생각하지 마. 엊그제 호텔에서 마주쳤던 놈 다섯이면 너랑 나랑 둘 중 하나는 당하겠더라. 밀입국으로 둘 들어왔는데 다섯은 못 들어오겠냐?”

“그렇긴 하네.”

석강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얼음을 버적버적 깨물었다.

“네가 좀 더 신경 써라. 경호원이 어쩌고 해도 실전 감각이 없는 놈들은 그냥 당한다. 막말로 유비캅에서 경호하는 걸 우리 둘이 덮친다고 생각해 봐.”

“흥! 라노크는 무조건 죽은 거요.”

대답을 한 석강호가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거 봐. 그때 그놈들은 독도 깨물었어. 그런 각오로 다섯이 달려들면 유비캅 애들은 절대로 감당 못 한다.”

“총도 있었담서요?”

“글록 19을 한 손으로 쏘는 놈들이다.”

석강호가 “어후.” 하면서 또 얼음을 입에 넣고 씹어댔다. 한 손으로 쏘는 건 조금만 훈련하면 되지만 반동이 심해서 어지간하면 양손으로 잡게 되는 권총이 글록 19이다.

“반동만 이겨낸다면 장탄수를 따졌을 때 최고지. 그렇다는 건.”

“전문가란 뜻이네요.”

강찬이 석강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는 게 맛있어 보여서 강찬도 커피를 마시며 얼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으드득. 으드득.

“야! 요거 맛있다.”

“푸흐흐. 아프리카랑은 다르지요.”

거긴 얼음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프랑스에선 얼음을 씹어먹을 생각조차 못 해봤다.

“다예.”

“예.”

강찬의 부름에 석강호가 진지하게 답을 했다.

“내일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무조건 죽여.”

“무조건이오?”

“그래, 무조건.”

석강호가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틀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소?”

“느낌이 안 좋아. 어제까지는 몰랐는데 오늘 자고 일어나서부터 영! 이게 아프리카에서 하는 작전이었으면 초짜들 다 뒤로 뺐다.”

“차라리 내일 약속 취소합시다.”

강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이 없어. 기껏 바람 넣어놓고 감이 안 좋으니까 미루자고 하기도 어렵고.”

“그렇기도 하우. 샤흐란 그 새끼도 대장이 느낌 예기하면 늘 지랄, 지랄해 댔으니까.”

“잘해. 내일 첫날인데 망신당하지 말고.”

“몸 상태가 돌아왔다니까요.”

강찬이 피식 웃자 석강호가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

석강호와 근처의 백반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마음이 좀 가벼워졌는데 그렇다고 아침부터 느껴지는 불쾌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강찬은 경호준비를 확인하고 싶고 의논도 할 겸 해서 김태진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쩐 일이야?”]

“대표님. 내일 라노크 경호에 몇 명 투입되나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골프장은 전체 통제를 하는데 사방이 뚫려 있어서 건너편 산을 타고 넘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거든. 우리 회사 인력을 다 쏟아부어도 비는 곳이 많고, 정보원 직원은 셋밖에 지원받지 못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이것 때문에 그런가?

비는 곳이 너무 많아서?

[“무슨 일이 있나?”]

“그냥 좀 걱정돼서요.”

아무리 김태진이 믿어준다고 해도 감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

[“따로 지시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얼마든지 요구해도 돼. 사설 경호 회사는 의뢰인의 뜻에 무조건 따르게 되어 있으니까.”]

의뢰인이 그런 뜻인 건가?

[“몰랐나?”]

“예, 저는 그냥 소개해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생각했었어요.”

[“경호에 있어서 모든 사안을 의뢰인이 결정한다고 보면 맞지. 한마디로 자네에게 목숨을 맡긴다는 의미로 보면 돼. 아무튼, 문제가 있으면 바로 전화하마.”]

“그러세요.”

의뢰인의 의미를 알고 나자 부담이 더해졌다.

“쯧!”

뭐라고 해도 내일 약속은 정해진 일이다.

강찬은 내일 새벽에 운동 겸 모임이 있어서 일찍 나간다는 말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밤 9시 30분이었는데 바로 잠이 들었다.

***

새벽에 일어나 씻고, 간단한 옷을 챙긴 다음 석강호와 만났다.

“아후! 모처럼 긴장감 100%요!”

강찬이 올라타자 차가 바로 출발했다.

새벽 4시라 라이트를 켠 차들이 빠르게 달렸다.

“어디 커피 파는 데 없나?”

석강호가 혼잣말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코너에 24시간 하는 곳 있지 않냐?”

“아, 그러네! 잠깐 들러서 커피나 사갑시다.”

“아예 담배도 하나 피우고 가자.”

“좋지요!”

전에 봐두었던 커피숍이 문을 열어서 석강호가 따듯한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둘이서 담배 하나를 피운 후에 바로 출발했다.

“느낌은 어때요?”

“그저 그래. 이러다 갑자기 두근거리면 사고 터지는 거고, 아니면 좋게 끝나는 거지.”

“퍽두 그러겠소. 그나저나 대장은 정말 이런 일에 최적화돼서 태어난 사람인가 보우. 어쩌면 감으로 그렇게 때려잡을 수가 있지?”

차가 외곽도로로 접어들자 속도계가 금방 100을 넘어섰다. 간간이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는 동안 경서울 골프장에 도착했는데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골프장 안팎으로 라이트를 훤하게 켜 놓아서 멀리서부터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복을 입은 유비캅 직원이었다.

“석강호요. 오늘 명단에 있을 거요.”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유비캅 직원이 석강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경례를 하자 다른 직원 둘이 바리케이드를 한쪽으로 치웠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자 직원이 서 있다가 두 사람을 맞았다.

“차는 이 앞에 세워 둬.”

“알았소.”

석강호가 클럽하우스를 조금 지난 곳에 차를 세웠다.

“대표님은?”

“위층에 계십니다.”

강찬은 주차를 하고 온 석강호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어서 와.”

“어서 오세요.”

김태진과 김형정은 타이를 매지 않은 양복 차림이었다. 석강호 역시 정장 바지에 셔츠를 입었는데 차에 두었던지 쟈켓을 손으로 들고 왔다.

“아침 먹읍시다. 갈비탕하고 토스트가 있던데 어떤 걸로 할까?”

강찬은 간단한 게 좋았다.

다들 그를 따라서 토스트를 준비했다.

“어젯밤에 20명 매복했고, 무전기는 이거다. 석 선생도 받으시고. 강찬이 1번, 이 친구가 2번, 석 선생이 3번.”

강찬과 석강호가 무전기를 허리에 걸고 이어폰을 옷 속에 넣어서 귀에 걸었다.

김태진과 김형정이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보면 아는 거다.

무전기를 귀에 거는 모습이 능숙했다.

토스트가 나와서 아침 식사를 마쳤을 때가 5시 20분이었다.

“외곽선 배치 모두 끝났으니까 라노크가 도착하면 작전 시작이다.”

“그전에 골프장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을까요?”

“카트를 타고 돌면 10분 걸린다니까 그래 볼까?”

네 사람이 클럽하우스 뒤쪽으로 나와 카트에 올라탔다.

우우우우웅.

전기로 가는 차 특유의 소음이 울려 나왔다.

“제가 체크해 봐도 되죠?”

“그럼!”

강찬은 옷 소매에 걸어둔 마이크를 눌렀다.

“오늘 행사를 담당한 강찬이다.”

산 중턱에 외곽 경계를 맡은 직원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팀별로 보고.”

치잇.

[“1번 홀, 이상 무.”]

치잇.

[“2번 홀, 이상 무.”]

강찬이 듣는 무전을 넷이 다 같이 듣는다.

18홀을 모두 돌아 클럽하우스에 도착한 강찬은 마이크 버튼을 눌러 모르스부호를 울렸다.

내용은 ‘비트 오케이?’였다.

김태진이 풀썩 웃었다.

순서대로 ‘오케이’ 신호가 잡혔다.

“매복조 무기가 대검뿐인가요?”

“그렇지.”

김태진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강찬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권총은 준비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김형정이 가슴을 툭툭 쳤다.

“자네도 신발 갈아 신지? 장갑이랑 위에 뒀으니까.”

“그래야죠.”

다른 건 몰라도 긴장한 모습이 아닌 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차나 한잔 마실까요? 석 선생?”

“좋지요.”

넷이 올라가서 차 한잔 마시고 금연 푯말이 붙은 바로 아래서 담배도 하나 피웠다.

“자네와 라노크 대사를 중심으로 석 선생, 나, 그리고 여기 이 친구가 삼각형으로 선다. 국가정보원 요원이 한 명씩 붙어서 권총도 준비하고 있고.”

“좋네요.”

“국내 행사치고는 과한 경우인데 호텔에서 총을 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어젯밤에 20명 매복시킨 거고. 그 직원들은 저격이 있는지를 별도로 감시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무언가 뒤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더는 따지기도 어려웠다. 사실 골프 한번 치는데 전날부터 땅을 파고 대기하는 것도 어쩌면 과한 일인지 모른다.

강찬은 골프화로 갈아신고, 뒷주머니에 장갑을 꽂았다.

골프라고 아프리카에서 서너 번 때려본 게 전부다.

이런 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치이잇.

[“VIP 도착하셨습니다.”]

무전과 동시에 네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 아래층 현관으로 향했다.

검정색 승용차가 두 대가 들어섰고, 뒤편 승용차 뒷자리에서 라노크와 체격이 작은 여자가 내렸다.

경호원 여섯이 내려 라노크의 주위를 감쌌다.

“강찬 씨. 설레서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라노크가 환한 얼굴로 강찬을 안고 양 볼에 인사했다.

“대사님. 유비캅의 김태진 대표입니다.”

라노크와 김태진이 먼저 악수를 나눴다.

“이분은 오늘 골프장을 섭외해주신 국가정보원 김형정 팀장. 그리고 이분은 국가정보원 석강호 요원입니다.”

라노크가 사무적인 미소와 태도로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강찬 씨. 제 딸과 함께 왔습니다. 아드리안입니다.”

체격이 작아서 어린애인가 했는데 스물 중반쯤으로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드리안. 강찬입니다.”

“아빠가 친구로 인정한 분이라 들었어요. 앞으로 안느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죠, 안느.”

안나는 강찬의 어깨에도 키가 못 미쳤다.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프랑스 여자치고는 굉장히 왜소한 체격이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셨나요?”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차와 시가나 하나 즐기고 공을 칠까요?”

“그러시죠.”

강찬이 위층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라노크의 표정이 순간 바뀌는 것을 보았다.

‘왜 저러지?’

이유는 바로 알았다.

안느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대사님. 안느도 있는데 우리 탁 트인 곳에서 담배를 즐기는 건 어떨까요?”

“탁월한 제안입니다, 강찬 씨.”

강찬이 눈짓을 하자 유비캅 직원 둘이 급하게 움직였다.

뒷문을 나오면 바로 골프장이 펼쳐진다.

“흐흠! 후! 한국의 산은 독특한 향을 가졌지요. 참 오랜만에 이렇게 가슴 설레는 냄새를 맡아보는군요.”

라노크가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탁자와 의자가 움직였고, 다시 석 잔의 커피가 준비되었다.

강찬이 담배를 꺼내 예의상 권했는데 뜻밖에도 안느가 바로 집어 들었다.

찰칵.

라노크는 시가에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였다.

말이 필요없는 시간이었다.

라노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차를 마셨고, 안느는 골초의 느낌을 주면서 담배를 피웠다.

“하나 더 피워도 되죠?”

“그럼요.”

강찬은 안느에게 담배를 꺼내준 다음 불을 붙여주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눈이 깊게 들어가서 우수에 젖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안느가 꼭 그런 타입이었는데 금색과 갈색이 뒤섞인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고, 푸른색 골프 상의에 노란색 조끼, 회색 바지를 입었다.

담배도 다 피웠고, 커피도 적당히 마셨다.

“나가기 전에 잠시 실례할게요.”

라노크와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태진이 직원 둘과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골프가 그토록 기뻤던 것은 저 아이 때문입니다. 저 아이 일곱 살 때, 피격을 당해서 아내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저 아이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지요.”

사별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 뒤로 지금껏 잘 먹지도 않고, 차를 타는 것도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유독 골프 나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남자도 사귀는 거 같지 않고.”

“차에서 피격당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내가 있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라노크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