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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진심이다.
호텔에서 오광택과 헤어진 것은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입구로 나왔을 때 강대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괜찮니?”]
“예. 어쩐 일이세요?”
[“조금 전에 국무총리실 정무 비서관이란 분이 전화를 하셨더구나. 엄마 재단 만드는 일 돕겠다고.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고.”]
영감이 제대로 오바했구나!
[“내일 총리실에 와줄 수 있냐고 해서 지금 엄마가 걱정이 한가득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제가 갈까요?”
[“그래 줄 수 있니?”]
아들인데 뭘 이렇게 어렵게 말을 하는 거지?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강찬은 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그동안 받은 전화번호를 저장했고, 아파트에 도착하자 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아들!”
“왔니?”
유혜숙은 숙제를 하지 않은 채로 개학을 맞은 중학생 얼굴이었다. 강찬이 풀썩 웃으며 “아이고, 우리 엄마 겁먹었네!” 하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모양이었다.
셋이 탁자에 앉았다.
“라노크 대사 기억하세요?”
“라노크?”
“예. 공트 자동차 발표회 때 보셨던 프랑스 대사분이요.”
“아! 그래! 그분이 왜?”
유혜숙이 빠져드는 것과 달리 강대경은 ‘이게 진실일까?’ 하는 얼굴이었다.
“그분이 우리나라에 도움될 일을 가지고 있는데 고집이 센 데다, 프랑스어에 자부심도 대단해서 쉽게 얘기가 안 풀렸나 봐요. 김태진 씨라고 유비캅 대표를 소개해 주는 자리에 정부에서 나온 분들이 있었는데 원하던 걸 들어준 모양이에요. 요즘은 일이 쉽게 풀려서 저도 어리둥절해요.”
유혜숙이 받아들이려고 애쓸 때 강대경이 야릇하게 웃으며 강찬을 보았다.
“내일 총리실 가시는 건 제가 취소시킬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유혜숙은 놀라서 얼버무리고, 강대경이 눈짓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일단은 날아온 사인을 제대로 받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괜찮으시면 다녀오세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일이잖아요.”
“그래도 될까?”
“그럼요.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애쓰시는 게요.”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머니.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응?”
“저랑 백화점 가요. 내일 입고 가실 옷 한 벌 사드리고 싶어요. 지난번에 아버지 셔츠 사드린 거 이후로 계속 마음에 쓰였거든요.”
“아니야, 얘.”
“가세요. 저 유비캅이랑 디아이에서 월급 받았거든요. 첫 월급은 부모님 옷 사드리는 거래요. 아버진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강대경이 시원하게 대답하자 유혜숙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가세요, 어머니.”
“가자, 여보. 아들이 첫 월급 탔다잖냐. 아들 잘 둔 덕 좀 봐야지.”
“그래도 될까?”
강찬과 강대경이 손발을 맞춰서 유혜숙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가까운 백화점이 어디 있어요?”
“바로 앞에 있다. 그리 가자.”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바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
고건우는 입을 모으며 한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각하.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할 겁니다. 저들이 원하는 게 국가 정보원장의 자리를 넘겨달라는 거니까요.”
“그렇게 하면 유니콘은 절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아시잖습니까?”
문재현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20년 만에 야당에서 대통령이 나온 게 죄라면 죄겠지요. 우리가 유니콘을 발표하게 되면 저들이 정권을 잡기 어려워지는 거니까요.”
“절대로 국가 정보원장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둘 다 그걸 아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국회도 저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여차하면 나를 탄핵하려 들 겁니다.”
고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딱히 답은 없었다.
“일본이 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니콘을 연결하려고 북한을 다녀온 것까지 왜곡하는 판인데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암살하고 싶어 할 겁니다.”
“본보기로 재벌 한 곳을 무너트리시죠.”
문재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하면 대놓고 저들이 뭉치게 됩니다. 가뜩이나 재벌 규제 때문에 이를 갈고 있는데요. 거기다 언론이 저들 손에 있는 한, 보복 정치라고 일제히 들고 일어나겠지요.”
“각하!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언론을 장악하십시오. 국가를 위한 일입니다.”
문재현이 웃음과 함께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그동안 우리가 욕해 왔던 정권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겁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년 만에 우리에게 정권을 맡겨준 국민입니다. 그분들을 무시하고 배신해서는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내가 대통령을 물러나 정권을 넘겨주는 것으로 저들이 유니콘 사업을 성공시킨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고건우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문재현을 보았다.
방북한 목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니 언론이 그를 칼날 위에 올려놓고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었다.
유니콘을 연결시켜준다면 북한이 요구하는 지원과 휴전선 분쟁을 조율하겠다는 제안이었는데 언론은 뒷부분만 가지고, 그것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차라리 유니콘을 발표해 버린다면, 그래서 기득권과 현재의 야당이 국민을 기만한 것을 터트려 버린다면…….
문재현은 절대로 유니콘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철도를 연결할 수 있다면 대통령직을 포기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
“총리님.”
“말씀하십시오, 각하.”
“강찬이란 학생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공식적으로는 어렵습니다.”
문재현이 쓰게 웃었다.
“대신 일정을 소화하시다가 우연이 마주치시는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건우는 강찬이 좀 더 나이가 있고, 정부의 고위직이었으면 싶었다. 이럴 땐 누군가 나서서 실컷 두들겨 주었으면 싶은 마음에서였다.
“각하. 골프 하십니까?”
“허허. 제가 운동에 소질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으실까요?”
“태풍 전날 공연 한 편 본 것 가지고도 자격이 없는 대통령 소리를 듣는데, 골프를 치라구요?”
문재현이 껄껄 웃는 것을 보며 고건우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
“사모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점원의 칭찬이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강찬은 강대경이 지금처럼 만족한 미소를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름다웠다. 예뻤다.
지금껏 이런 옷을 살 돈으로 아이들을 돕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지만, 그런 옷이 유혜숙을 돋보이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강찬은 거울 앞에 선 유혜숙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머니. 이걸로 하죠? 정말 정말 예뻐요.”
“이걸 내가 입어도 돼? 너무 비싼 거 아냐?”
유혜숙은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첫 월급이잖아요. 그렇게 하세요.”
“아들에게 미안해.”
“이게 왜 미안할 일이에요?”
강찬이 웃으며 유혜숙을 들여다보았다. 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 엄마 정말 예쁘죠?”
바보처럼 웃고 있는 강대경 앞에서 직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유혜숙은 결국 강찬의 뜻을 받아들였다.
계산을 마친 강찬은 유혜숙의 구두까지 사주었다.
반짝이는 쇼핑백을 든 강찬이 씨익 웃으며 강대경을 보았다.
“아버지. 양복 한 벌 사셔야죠.”
“나?”
유혜숙이 놀랐다가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내일 같이 가실 거잖아요. 자리에 어울리는 양복 한 벌은 있으셔야죠. 그래도 강유모터스 대표이신데요.”
강찬은 어색해 하는 강대경을 설득해서 양복과 구두, 그리고 벨트를 선물했다.
“너만 빠져서 안 되지. 아빠가 한 벌 사주마.”
“저는 오늘 아침에 이 옷 샀어요. 제법 비싼 브랜드예요.”
강대경과 유혜숙이 강찬을 훑어보고는 더 권하지 못했다. 서운해하는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차라리 점심 맛있는 거 사주세요.” 하고 셋이 백화점을 나왔다.
***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일진 아이들의 교육도 끝난 다음이었다. 석강호와 어젯밤의 이야기를 하고, 옷이 날개라는 따위의 농담을 주고받을 때였다.
“잠깐 얘기 좀 해.”
허은실이 옷을 갈아입고 강찬을 불렀다.
하여간 이년 깡다구 하나는 인정해줄 만하다.
석강호가 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앉아.”
“커피 사줘.”
강찬의 눈 끝이 찌푸려지자 허은실이 잽싸게 그의 오른손을 보았다.
“우리 동네 가서 커피 사줘. 일진 연합 애들이랑 광민대학 오빠들 보게. 학교에서 집에 간 다음에 우리 아무도 밖에 못 나가. 네 말대로 열심히 했잖아. 우리도 밖에 다니고 싶어.”
겁은 나지만 또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어떻게 들으면 진짜 같기도 하고, 다르게 들으면 거짓말 같기도 했다.
“커피 사줘!”
딱히 할 일은 없는데 이 년이랑 얽히고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다.
‘한동안 조용히 넘어간다 했다.’
강찬이 말없이 보고 있자 허은실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왜 하필이면 트론스퀘어에서 얻어맞던 모습이 떠올랐을까? 가슴을 비틀리고, 그렇게 따귀를 맞으면서도 꿋꿋하던 모습.
“허은실. 너 개학하면 정말 학교에서 왕따 없앨 자신 있어?”
“말했잖아. 병원에서 오는 애들만 막아주면 그건 자신 있어.”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약까지 먹은 엄마가 있는데 저년은 왜 이렇게 삐뚤어진 거지?
“알았다. 애들 다 불러라.”
“애들?”
“이왕이면 다 같이 돌아다니는 게 좋잖아?”
“싫어.”
강찬이 피식 웃자 허은실이 또 오른손을 보았다.
이렇게 겁이 나면서 참 꿋꿋한 년이다.
“그렇게 하면 애들이 안 먹어줘. 그냥 오늘은 나랑 둘이 가. 그래서 연합 애들하고 오빠들이 정말 둘이 친한 거구나 하게 해 줘.”
화장을 안 해서 이상한 얼굴에 짝다리.
이 년이 남자였으면 두들겨서 죽였거나, 실컷 두들긴 다음에 친해졌을 것 같았다.
“알았다. 언제 가냐?”
“지금.”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따를 없애주는 조건으로 지켜준다고 했으니 이 정도야 해 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먼저 간다고 말하고 허은실과 학교를 나왔다.
버스를 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김미영과 참 많이 비교됐다. 이 년은 마주친 시선을 먼저 피하는 법이 없다. 걸음걸이, 서 있는 자세, 그리고 심지어 버스 손잡이를 쥔 손 모양에서까지 불량기가 묻어난다.
20분쯤 간 후에 버스에서 내렸다.
대로변 뒤로 고만고만한 빌라가 연이어 서 있는 동네였다.
허은실은 흡연실의 접이문을 활짝 열어놓은 커피전문점을 향해 걸었다.
“뭐 마실래?”
허은실이 묻는 말을 무시하고 강찬은 주문대 앞으로 걸어갔다.
“난 아이스커피 마실 거고, 넌?”
“나도 아이스커피.”
강찬은 계산을 마치고 흡연실과 연결된 테라스에 앉았다. 잠시 뒤에 진동벨이 울리자 허은실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나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뚜껑을 열어 커피를 마시던 강찬에게 허은실이 던진 질문이었다.
“난 뭐 하고 살아야 하는 거지?”
아침에는 깡패가 지랄을 하더니 오후에는 깡다구 센 년이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호준이는 유비캅에 들어가겠대. 2학년 애들은 다 걔처럼 유비캅 들어가고 싶어 해. 나는?”
강찬은 어이없는 웃음을 웃고 말았다.
“정자동 년들이 하는 짓 보고 정나미 떨어졌어. 그 쌍년들, 지금 일진 연합에 붙어서 주접떠는데 학교 나오면 가만 안 둘 거야.”
허은실의 눈이 파랗게 독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걸 모노드라마라고 하나?
“개학하면 나한테 무섭게 하지 말고, 내가 찾으면 도와줘.”
강찬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그런데 허은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오래간만이다?”
이년하고 나와서 일이 없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하다.
빈정대는 말투에 고개를 돌려봤을 때 병신 같은 차림의 두 놈이 뒤 테이블에 붙어서서 강찬과 허은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쫄티에 몸에 꽉 끼는 운동복 바지를 입었는데 몸이 더러워 보였다.
“인사 안 해? 안 맞으니까 간이 붓나 보지?”
허은실은 아예 고개를 도로 쪽으로 돌렸다.
저 새끼들도 아마 깡다구로 보면 이 년의 상대가 안 될 거다.
“야!”
뒤에서 다가오는 느낌에 강찬이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이 새끼가.”
놈이 강찬을 보며 툭 욕을 뱉은 직후였다.
쫘아아악!
“어!”
뒤에 있던 놈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었다.
강찬은 놈의 팔을 쭉 당겨서 어깨에 걸쳤다.
콰작!
“끄아아악!”
어쭙잖은 놈들과 드잡이는 이제 질린다.
따귀를 맞은 놈의 눈에 담긴 반항기에 강찬이 풀썩 웃었다.
운동복 바지에 ‘광민대학 격투부’라는 글자가 빨간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대학생이라는 놈들이 유치하게.
콱.
머리도 스포츠 형태라 잡기 어려웠다.
아마추어 새끼들.
강찬은 놈의 귀를 움켜쥐었다.
“아!”
비명을 지르면서도 놈의 어깨가 움찔했다. 주먹을 날리려는 거다.
쫘아아악!
강찬은 그대로 따귀를 갈겨버렸다.
놈이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아직도 얼굴을 볼 정신이 있다 이거지?
쫘아아악! 쫘아악! 쫘아악! 쫘아악!
털썩.
귀의 아래쪽이 찢어지는 바람에 강찬은 손을 놓았다.
전쟁터가 아닌데 굳이 귀를 뜯어놓을 필요는 없어서였다.
“끄으응.”
“조용히 해.”
팔이 부러진 놈이 강찬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피식.
강찬은 놈의 부러진 팔을 왼손으로 붙잡아서 당겼다.
“끄아아아아!”
“조용히 하라고 했지?”
오른팔 안쪽을 부러진 곳에 대자 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콰자작!
강찬이 손을 놓자 놈이 엉덩이가 깨질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끄아아악!”
“이 새끼가 그래도?”
“끙. 끄응.”
놈은 시선을 떨군 채로 바닥을 차며 강찬에게서 떨어지려고 버둥댔다. 운동복 바지가 뒤로 밀려 엉덩이가 훌렁 나왔다.
강찬이 안쪽을 흘깃 보자 커피숍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테라스 난간을 붙들고 기대 있던 놈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람은 귀가 두 개다.
강찬은 손을 뻗어 반대쪽 귀를 잡아당겼다.
놈이 벌떡 일어났다.
쫘아아아악!
털썩.
강찬이 손을 뻗어 귀를 잡자 놈이 휘청거리는 동작으로 급하게 일어섰다.
“야!”
힐끔 강찬을 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쫘아아아악!
이미 양쪽 귀와 코, 입이 피로 엉망이었다.
강찬이 손을 뻗어 귀를 잡아당겼다.
“아! 아아아!”
“야!”
“으-응.”
피식.
콰자작!
강찬은 오른손 팔꿈치로 놈의 얼굴을 세게 갈겼다.
놈은 테라스의 난간에 허리가 걸려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철퍼덕.
“대학에 갔으면 거기서 놀아. 고등어 앞에서 깝죽거리지 말고.”
팔이 부러진 놈이 엉덩이를 반쯤 내놓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하여간 허은실만큼 사고를 몰고 다니는 년은 처음이다.
강찬이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순찰차가 커피숍 앞에 서고 정복 경찰 둘이 내렸다. 한 사람은 밖으로 떨어진 놈에게 다가갔고, 다른 한 명은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강찬이 전화를 꺼냈는데 경찰이 안에서 신고한 사람을 찾은 다음, 강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찬 씨.”]
“미안하지만, 싸움이 있었는데 경찰이 왔어요.”
[“알았습니다. 바꿔 주세요.”]
김형정은 묻지도 않았다.
마침 경찰이 강찬의 앞에 왔다.
“여기 두 사람 폭행한 거 맞죠?”
“전화받아보세요.”
강찬이 전화기를 내밀자 경찰은 인상을 찌푸렸다.
“폭행한 거 맞는지부터 말해요.”
강찬은 전화기를 귀에 댔다.
“안 받겠다는데요?”
“이 사람이 안 되겠네.”
경찰이 언짢은 내색을 보일 때 아래쪽에 있던 정복 형사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강찬 씨. 어느 경찰서인지 물어보세요.”]
강찬은 전화기를 내리고 “폭행한 거 맞는데 어느 경찰서 소속이세요?” 하고 물었다.
“이 사람이 진짜.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젊은 친구가!”
짜증이 확 올라왔다.
“경찰서가 어디시냐구요?”
“서초서에서 나왔소.”
나중에 들어온 경찰이 할 테면 해보라는 투로 답을 했다.
“서초서랍니다.”
[“1분이면 됩니다.”]
전화를 끊자 정복경찰이 같잖다는 듯 웃었다.
“신분증.”
말을 짧게 뱉은 경찰이 손을 내밀었다.
강찬은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주었다.
“뭐야? 너 미성년자야? 이거 조회 한번 해 봐.”
경찰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신분증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경찰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예. 옛. 서초지구대 경사 이철홉니다. 예! 현재 출동해 있습니다. 예. 예에?”
경찰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예! 앞에 계십니다.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예! 충성!”
경찰이 전화를 끊고는 동료가 들고 있던 강찬의 신분증을 뺏듯이 가져와서는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저놈들이 먼저 협박한 걸 몰랐습니다. 불편 끼쳐서 죄송합니다.”
팔이 부러진 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경찰을 보았다.
“여기 두 놈 연행해.”
“예?”
“시키는 대로 해.”
지시가 먹히지 않자 명령을 내린 경찰이 아예 주저앉은 놈의 반대쪽 팔을 잡아 들었다.
“폭력, 협박 등, 현행범 체포합니다.”
“끄으읍.”
일어서던 놈이 비명을 지르다가 강찬을 보며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에 경찰이 두 놈을 차에 태워 출발했다.
강찬이 자리에 앉아 허은실을 볼 때 전화가 울렸다.
[“강찬 씨. 새로 만든 주민증하고, 국가 정보원 신분증 준비됐습니다. 저녁에 잠깐 뵙지요.”]
강찬은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너, 멋있다.”
미친년.
풀썩 웃던 강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은실의 눈이 가장 뜨거울 때의 미쉘보다 열 배쯤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