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65화 (65/520)

0065 / 0419 ----------------------------------------------

4-4. 진심이다.

“정말입니까? 정말 라노크가 그렇게! 우리와 철도를 연결하겠다고 했습니까?”

“예. 분명히 그렇게 말했고, 수일 내로 그 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추진할 생각이니 참고만 하라고 했습니다.”

“호오!”

고건우가 헛바람이 가득 담긴 탄성을 먼저 쏟아냈다.

뭐하냐?

강찬이 슬쩍 좌우를 둘러보았는데 비서관은 물론이고, 김형정도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찬 씨!”

고건우는 완전히 흥분한 얼굴이었다.

“고맙습니다! 이제 나랏밥을 먹은 값을 조금이나마 한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성공한다면 우리 후대는 오래도록 번창할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강찬 씨!”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아닙니다!”

고건우는 고개까지 저어 보였다.

“라노크가 추진하겠다고 하면 이미 성사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충분히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양반이 그 정도로 힘이 있는 거구나.

강찬이 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자 고건우가 ‘넌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김 팀장님. 오늘 우리 강찬 씨가 경찰서에 가는 고충이 있었다던데?”

“알리온은 세무조사와 강제 성접대 등으로 특별조사 중이고, 우악산 파는 일제 검거에 들어갔습니다. 이틀 안으로 검찰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고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생색내기가 분명하다.

강찬은 하마터면 피식 웃을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강찬 씨 아버님이 강유모터스 대표시지요?”

“그렇습니다, 총리님.”

“어머님은?”

“보육원 지원을 위해서 재단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고건우가 비서관을 보았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냥 가정주부라고 할 걸 그랬나?

“오늘은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다음 주에 점심이나 한번 하기로 하고, 혹시 아쉬운 것이 있으면 말씀해도 됩니다.”

“총리님.”

고건우가 고개를 살짝 내밀며 강찬의 말을 기다렸다.

“라노크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골프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쪽에서는 경호에 어려움이 많아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혹시 골프를 하루쯤 즐기도록 배려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강찬 씨는 골프를 치나요?”

“어설프게 몇 번 해본 적은 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고건우에 맞춰 강찬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강찬 씨.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김형정의 말에 따라 강찬이 먼저 나왔고, 들어왔던 반대로 주차장을 향했다.

뒷좌석에 타고 문을 닫는 순간에 곧바로 출발했다.

김형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에 힘을 잔뜩 준 채 부들거리며 떨다가 강찬이 풀썩 웃을 때쯤에야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개인적인 영달은 잊었습니다. 그저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한 걸음 나아갔다는 것과 대한민국이 발전할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 기쁠 뿐입니다.”

“승진은요?”

김형정이 씨익 웃었다.

이 남자는 이런 매력이 있다.

강찬은 전화를 꺼내서 김태진의 번호를 눌렀다.

[“어떻게 됐나?”]

“대표님 친구분이 승진하시게 된 거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라노크가 우리나라에 철도를 연결할 수 있도록 추진한답니다.”

[“우아아!”]

강찬은 전화기를 얼른 귀에서 뗐다.

[“정말이지! 어디야? 무조건 만나자! 오늘 같은 날은 술 한잔 해야지! 내가 산다!”]

김형정도 다 들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지금 김 팀장님이랑 같이 있어요.”

옆에서 김형정이 “역삼동으로 오라고 하세요.” 라고 말을 했다.

“역삼동으로 오시라네요.”

[“알았다. 지금 바로 가지.”]

“대표님!”

강찬은 전화를 끊기 전에 얼른 김태진을 불렀다.

“라노크가 국내 경호를 맡아달랍니다. 의뢰인인가를 저로 하고 유비캅에서 프랑스 대사관으로 연락해 달라고 하던데요.”

[“흐흐흐. 미치겠군.”]

이 양반도 이런 웃음을 웃나?

[“연락해놓고 가지. 아! 괜찮으면 석 선생도 나오라고 해.”]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찬이 다시 석강호에게 전화를 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김형정을 바꿔주자 그가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김형정이 지정한 장소는 뜻밖에도 ‘발리’라는 룸살롱이었다.

“우리끼리 이야기 나누기 편해서 다니는 집입니다.”

김형정이 안으로 들어가자 뜻밖에도 곱게 생긴 여자가 그와 강찬에게 인사하고 복도 안으로 안내했다.

방은 넓었다.

언젠가 주차장 파 박기범을 두들길 때가 생각나 기분이 별로였지만 그걸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김형정과 강찬이 상석을 비워놓고 앉아서 물 한 병을 따서 마시고 있자니 김태진과 석강호가 함께 들어왔다.

강찬의 퉁퉁 부은 눈을 본 두 사람은 흥분이 싹 가신 얼굴이었다.

“어? 눈이 왜 그러쇼?”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자는 걸 누가 때렸소?”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강찬과 김태진이 함께 앉았고, 석강호와 김형정이 인사를 나누고 건너편에 앉았다.

강찬은 낮에 호텔에서 있었던 일과 고건우를 만난 이야기까지를 먼저 들려주었다. 그러자 김형정이 놈들이 입국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내일부터 운동을 더 빡세게 해야겠소.”

강찬이 풀썩 웃을 때 마담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술집이 아니라 바느질을 하고 있을 것처럼 단아하게 생겼다.

“홍진아예요. 잘 부탁드려요.”

홍진아는 석강호와 강찬에게 인사하고 술과 안주를 주문하겠다고 한 후 방을 나갔다.

족보가 꼬였다.

김태진과 강찬, 다시 강찬과 석강호, 김태진과 김형정, 아! 말과 호칭을 정리하기가 정말 복잡했다.

“나이로 가죠.”

“강찬 씨. 그건 내가 불편합니다.”

김형정이 고개까지 저으며 반대했다.

“우선 각자 편한 대로 대하자. 아무리 내 친구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함부로 말을 놓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선은 김태진의 말이 정답인 듯싶었다.

잠시 후에 양주와 맥주, 그리고 과일과 나막스 튀김이 안주로 나왔다.

김형정이 나서서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자!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한잔합시다.”

빤한 말에 진심을 담으니 어쩐지 멋져 보이기도 했다.

넷이 단숨에 술을 마셨다.

“후우!”

모처럼 시원하게 마시는 술이다. 속이 다 후련했다.

두 번째로 김태진이 냉큼 폭탄주를 만들어서 돌렸다.

“만날 사람은 언젠간 만난다. 우릴 이어준 강찬을 위해 한잔합시다.”

요것도 괜찮아 보였다.

강찬을 비롯해 네 사람이 또 단숨에 마셨다.

석강호가 잽싸게 잔을 모으더니 양주를 왕창 넣은 폭탄주를 만들어서 돌렸다.

“오늘 술값은 내가 내는 거요.”

저 새끼가 그럼 그렇지.

“잘 마시겠소, 석 선생.”

김태진과 김형정이 껄껄거리면서 술을 마셨다.

강찬은 적당하게 술을 섞어 폭탄주를 돌렸다.

넷이기에 망정이지 열 놈쯤 됐으면 한 바퀴 돌고 술자리가 끝날 뻔했다.

잔을 받은 세 사람이 강찬을 빤히 바라봤다.

“유니콘에 올라타는 날을 위해서!”

넷 사람이 비슷하게 웃으며 잔을 비웠는데 이후로 각자 편하게 술을 따랐다.

“다섯 놈 교육이 끝나면 바로 라노크에게 붙이마.”

“그건 알아서 하세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대충 끝났다.

중간에 강찬은 강대경에게 문자를 해서 오늘 석강호와 있겠다고 하였으며 몸조심하라는 답신을 받았다.

석강호와 가족이 납치되었을 때의 이야기.

강찬의 손에서 철사를 풀어낼 때 석강호의 심정.

들것을 들고 달릴 때 숨이 콱콱 막혔다는 김태진의 이야기에 마지막으로 오늘 일까지.

덤이 있다면 알리온과 우악산 파의 조사 발표가 곧 있을 거란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넷이 마셨는데 이렇게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실컷 마신 후에 다들 집에 들어가고, 강찬은 결국 남산 호텔에서 묵었다.

***

아침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모처럼 제대로 마셔서 그동안 쌓였던 것이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간단하게 몸을 씻은 강찬은 방에서 푸시업과 몇 가지 운동을 한 시간가량 했다. 땀을 흘린 탓에 제대로 씻고 나왔을 때는 오전 8시쯤 되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방의 전화가 강찬을 찾았다.

“여보세요?”

[“형님. 주철범입니다.”]

남산 호텔에 있음을 이 새끼처럼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는 일이 있을까.

“왜?”

[“광택이 형님께서 5분 후에 도착하신답니다. 같이 식사 하시자구요. 지금 속옷이랑 갈아입으실 옷, 올려보냈습니다.”]

거절하기 어렵게 짜고 전화한 거다.

“알았다. 어디로 가냐?”

[“1층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가 가능합니다.”]

띵동. 띵동.

벨도 울렸다.

[“이따 뵙겠습니다, 형님.”]

전화를 끊고 문을 열자 남자 직원 하나가 정중하게 옷걸이 두 개와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속옷은 물론이고, 양말과 겉옷, 심지어 구두까지 있었다.

“뭐야? 이게?”

소위 명품들이다.

강찬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담배냄새 쩌는 옷들을 입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차차!

거울을 들여다본 강찬이 풀썩 웃었다.

눈이 멀쩡해 보여서였다. 아직 껌벅일 때마다 은은한 통증은 있었는데 겉보기는 그럭저럭 무난했다.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가자 엘리베이터 앞에 주철범이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쇼핑백을 받았다.

놈의 눈빛도 그렇고 주변 사람의 시선도 그렇고 옷이 날개란 말이 맞기는 한 모양이었다. 최근에 운동을 하면서 몸매가 확실하게 잡힌 것도 한몫했다.

1층에 들어서자 여 지배인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강 선생님. 오늘 정말 멋있으세요.”

앞으론 옷에 좀 신경 써야 하나?

“이쪽으로 오세요.”

지배인이 안내한 안쪽 자리에 오광택이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 일이냐?”

“가끔은 얼굴 좀 보고 살자. 여기, 식사 좀 줘.”

자리에 앉은 오광택이 강찬을 살피며 히죽 웃었다.

“지난번에 어머니 선물은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오늘 이 옷도. 하지만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마라. 난 나 편한 대로 입는 게 좋으니까.”

“알아.”

오광택이 의자에 상체를 완전히 기대고 짤막하게 답을 했다.

“이거 싸게 산 거야. 원래 그 브랜드에서 싼 종류기도 하고. 비싸면 네가 지랄할 거 같아서 가격에 신경 쓴 거다. 밑으로 쫙 깔아서.”

강찬이 풀썩 웃고 난 다음이었다.

“디아이 얘기도 들었고, 프랑스 대사도 자주 만난다면서? 운동하거나 학교 나갈 때 비싼 옷 처 입는 건 나도 반대다. 하지만 적어도 자리에 맞는 옷은 입어라. 그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깡패 새끼가 하는 말이라 그런지 맞는 말인데도 무언가 속는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사서 그런데 원래 입는 옷하고 오늘 옷을 섞어 입어도 돼. 대신 중요한 자리는 그 자리에 맞는 옷을 입는 법도 배워.”

“시끄러!”

“알았다. 알았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알아서 세일하는 가게 털다가 생각나면 하나씩 보낼게.”

강찬은 새삼 강대경과 유혜숙이 얼마나 검소하게 사는지 알았다. 어쩌면 그런 모습 때문에 무시당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겉만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좋게 느껴졌다.

“우악산 파 말이다.”

오광택이 말을 꺼낼 때 직원 둘이 정갈한 그릇에 아침 식사를 내왔다. 김치찌개와 김치가 얍삽하게 고급 그릇에 담겨 있어서 그렇게 썩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먹자.”

강찬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광택은 찌개를 먼저 맛본 후에 입을 열었다.

“우악산 파 일제 검거 들어간 거 알지?”

강찬이 힐끔 오광택을 보았다.

“그거 너랑 연관된 거냐?”

뭐라고 할까?

깡패 새끼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됐어. 내가 바란 건 아니고 다른 쪽에서 오바한 건 데 지금은 말리기도 어정쩡해. 알리온인가 하는 놈들하고 손을 잡아서 한쪽을 풀어주면 대신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

밥맛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아서 강찬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야! 밥 먹어. 먹으면서 얘기하자.”

이 새끼가 깡패만 아니면 참 좋을 텐데.

오광택이 볼이 터져라 밥을 떠 넣는 것을 보며 강찬도 밥을 떴다.

“우리 쪽에동 원로라능 것들잉 잉거등.”

“밥이나 삼키고 말해.”

오광택이 국그릇을 들어 두어 모금을 삼켰다.

“영감쟁이들이 지랄을 해서 물어본 거야.”

“강남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건 그 새끼들이야.”

“나도 그걸로 밀어붙이고는 있다.”

강찬은 남은 밥을 모조리 떠서 입에 넣는 것으로 식사를 끝냈다.

“너한텐 신세도 많이 졌고, 갚지도 못할 걸 제법 받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깡패 그만하면 안 되냐?”

오광택이 수저를 놓고 물을 마셨다.

“동생들이 있어. 나 한 몸 먹고 살려면 이 짓 그만해도 되지. 그런데 내가 물러나면 당장 이 호텔에 있는 주철범이 자리 노리는 놈부터 업소 관리하는 놈, 나이트 운영하는 놈들이 죄 무너진다. 코 흘릴 때부터 날 따르던 놈들 버리고 내가 배부르길 바라는 건 무리다.”

오광택이 제법 눈빛을 빛냈다.

“가자. 가서 담배 피우면서 얘기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오광택을 따라갈 때 석강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광택이랑 아침 먹고 있어. 끝나는 대로 학교로 갈게.”

[“다른 일 없는 거요?”]

“담배 피우러 간다.”

[“푸흐흐. 알았소.”]

통화를 끝냈을 때는 클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석 선생이냐?”

“응.”

오광택은 “에효!”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클럽은 불을 환하게 켜놓자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적당한 자리에 앉자 사내놈 하나가 커피를 놓고 커다랗게 인사를 하고 갔다.

오광택이 건네주는 담배를 물고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말인데 나 한번 도와주라.”

뜬금없이 뭔 소리야?

강찬이 힐끔 보았을 때 오광택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내가 챙겨야 할 식구가 대략 백 명쯤 된다.”

“더럽게 많네.”

“푸훕!”

오광택이 커피를 뿜어서 강찬이 “에이! 더러운 새끼.” 하고 욕을 퍼부었는데 그래서인지 오광택은 커피를 줄줄 흘려댔다.

깡패 새끼 하나가 와서 급하게 바닥을 닦았다.

“하여간 내 앞에서 너처럼 얘기하는 놈은 처음이다.”

오광택도 그렇지만 바닥을 닦는 놈은 아예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시끄럽고. 부탁이나 말해.”

“우리 동생 놈들하고 싹 넘어갈 만한 회사 하나 구해주라.”

이게 뭐라는 소리야?

“너 움직이는 거 철범이 놈한테 다 들었어. 회계사니 증권사 직원이니 똑똑한 척하는 새끼들한테서 회사 두어 개 사봤는데 다 말아먹었거든. 애새끼들이 든 게 있어야지.”

오광택이 검지와 중지로 제 놈의 대가리를 툭툭 쳐댔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까 해서 김태진 대표와도 의논해 봤는데 너도 알지만, 회칼로 싸우는 거랑 경호는 또 이게 다르더라구.”

“알아듣게 얘기해.”

“야! 정부에서 밀어주는 일 있을 거 아냐? 한 십 년만 매출 보장받는 일. 그런 거 하나만 구해주라. 그럼 동생들 데리고 싹 넘어갈란다.”

이 새끼가 진심인가?

“내 또래는 다 망가졌다. 칼질해서 번 돈, 말 밥 주러 다니다 망가지고, 카드 치다 부러지고, 친한 놈 중에 자살한 새끼만 반이 넘는다. 자존심이 있어서 동생들한테 수모당하는 건 싫은 거지.”

깡패 놈 하나가 오광택 앞에 새 커피를 놓아주었다.

“네가 싫어하는 일진 짓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고, 또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아무튼, 나도 사람답게 좀 살아보자.”

“병원에 가봤냐?”

“병원? 왜? 유 원장한테 뭔 일 있냐?”

강찬이 피식 웃었다.

“안 하던 짓 하면 뭔 일이 있단다.”

“에이! 재수 없게.”

오광택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껐다.

“애가 아빠라고 부른다. 그때 마침 신영동파, 우악산 파와 날카롭게 된 거지. 나라고 배에 칼이 안 박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제대로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진심일까?

척 보기에는 진심처럼 보였다.

“씨발! 네가 깡패가 아니라서 얘기할 수 있는 거야. 말이 밖으로 새 나갈 이유도 없고. 만약 이 얘길 다른 곳이나 다른 놈에게 하면 당장 내 구역 넘보려고 난리 난다.”

“네가 빠지면 또 다른 놈이 덤벼들 거 아냐?”

“구역은 지키지. 대신 내가 버는 돈으로 제대로 된 영업장 관리하면서. 이 바닥도 이제 돈이 형님이다. 옛날처럼 의리로 따라가는 놈? 아서라. 1년이나 2년은 되지. 서도석이나 주철범이 정도는 남을 거고. 다른 놈들은 아니라고 보면 돼. 이젠 대학교 나와서 깡패 하는 새끼들도 생겨서 그놈들 얍삽한 건 따라가기도 어렵다.”

강찬은 남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지금은 모르겠고 한번 알아보자. 그런데 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냐?”

“도석이 아직도 의식을 못 차렸어. 강남 바닥에 알아봐라. 난 지금껏 형님들이 그렇게 꼬드겼지만, 카드나 말꼬리 잡은 적 없다. 과거에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딸자식은 제대로 키우고 싶은 거니까 그렇게 이해해주라.”

오광택의 말을 알았다. 그러나 강찬은 한 가지가 빠졌다고 느꼈다.

“만약 네가 정말 깡패짓 안 하고 살고 싶다면 지금껏 번 돈 전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냐?”

뜻밖의 제안이어서 오광택이 날카롭게 강찬을 보았다.

“지난 잘못을 알면서도 가진 것은 다 쥔 채로 새로 출발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그따위 생각이라면 지금처럼 살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가로 얻은 돈을 쥐고 있는 한 너는 그냥 딸에게 좋은 명함 가진 깡패일 뿐이니까.”

오광택은 따귀라도 맞은 표정이었다.

“네가 결심한다면 나도 한번 알아보마.”

진심이다.

이 새끼가 깡패짓을 안 한다면 한 번쯤 돕고 좀 더 편하게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