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64화 (6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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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니콘 프로젝트.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무언가 위험이 느껴지면서 날카롭게 날이 서는 순간.

대원들을 멈추게 하고 주변을 살피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총알이 날아들거나 매복, 심지어 부비트랩이 연속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전화기를 들어 시간을 보니 2시 45분이었다.

‘라노크에게 얘길 해줘야 하나?’

어쩌면 강찬을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김형정의 말대로 라노크가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이 강찬이다 보니 한국과 철도가 연결되는 것을 방해하려는 나라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아프리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모두 제자리에 서게 했을 거다.

강찬은 전화기를 들었다.

[“무슈 강. 그렇지 않아도 전화할 참이었습니다. 지금 지하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갑……. 19……에서 뵙지요.”]

지하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강찬은 재빨리 일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를 알아본 직원들이 계산을 요구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빠르게 달려간 강찬은 오른쪽 안쪽에 있는 일반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쳤다.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전에 스미든을 태우고 올라오던 지하 화물 엘리베이터다.

끼익!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철제문이 비명을 질렀다.

급하게 문을 연 강찬이 계단 안쪽에 있는 통로로 달려갔을 때였다.

땡!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강찬이 통로의 입구에 손을 걸치고 몸을 틀자 두 명의 사내가 총을 꺼내 든 것을 보았다.

와락!

콰작!

티이-이잉!

앞에 있는 놈의 얼굴을 팔꿈치로 갈기며 그 옆에 있던 놈의 총을 밑으로 내렸다.

대리석 바닥에서 불꽃이 튀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쪽에서 “윽!” 하는 비명이 울려 나왔다.

강찬은 두 번째 놈에게 달려들었다.

퍼버버버벅!

전문가다.

퍼억!

심지어 강찬은 왼쪽 목덜미를 제대로 맞았다.

탁타다다닥. 타닥! 파악.

상대의 얼굴을 못 볼 정도로 빠르게 손이 부딪쳤다.

파악. 팍. 팍.

팔꿈치를 손날로 막자 엄지가 눈을 파고들었다.

타닥! 파악!

강찬은 엄지를 밀쳐내고 다시 팔꿈치로 목을 때렸다.

상대가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맞아본 놈이다.

파바바바박.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온 요원 둘과 사내 하나가 거칠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파바바박.

콰작. 콰작.

강찬이 상대의 왼쪽 눈을 팔꿈치로 때리는 순간, 똑같이 팔꿈치로 왼쪽 눈을 맞았다.

이렇게 빠른 놈은 처음이다.

근성도 강해서 맞은 표를 내지도 않는다.

파바박. 타악! 타다닥!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주먹이 오갔다.

이럴 때 호흡을 조절하는 놈, 전문가다.

놈의 숨소리가 강찬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파바바바박.

손날, 팔꿈치, 그리고 팔목,

퍼억!

상대가 강찬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찍을 때.

파바박.

강찬은 연속해서 놈의 오른쪽 눈을 때렸다.

퍼억!

그 와중에도 명치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강찬은 팔꿈치로 놈의 주먹을 밀어냈다.

처음으로 눈이 제대로 마주친 순간이다.

콰자작!

강찬이 미간을 제대로 들이받자 상대가 벽에 기대며 스르륵 넘어갔다.

뒤를 돌아봤을 때 요원 하나가 바닥에 구겨지다시피 넘어져 있었고, 다른 하나가 코를 제대로 얻어맞았다.

강찬과 놈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총을 보았다.

와락!

놈이 허리를 숙이는 순간에 강찬이 달려들었다.

콱!

강찬은 권총의 위쪽을 움켜쥐고 무릎을 올려 찼다.

파악.

상대가 팔꿈치로 무릎을 막으며 그 반동으로 일어서는 순간이다.

권총의 총구가 허공을 향한 상태였다.

탁닥. 퍼억. 타다닥. 퍽.

강찬은 오른팔로 놈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노렸고, 놈은 왼팔로 강찬의 목과 인중을 노린다.

타닥. 타다닥. 타다닥.

연속해서 팔이 부딪칠 때 요원 하나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와락.

강찬은 상대의 목을 때리는 척하면서 요원을 향해 몸을 밀었다.

콰다닥.

상대가 요원에게 발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이다.

완력이 대단했지만 넘어질 것을 아는 것과 모르고 있던 것이 차이는 있었다.

강찬은 놈의 팔목을 꺾으며 권총을 앞으로 쭉 밀었다.

티이잉. 티이잉.

“허억. 허억.”

강찬은 턱에서 피를 뿜어내는 놈의 몸에서 구르듯 내려왔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뻐근한 통증이 몰려왔고, 목과 옆구리, 허벅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후우!”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왼쪽 허벅지가 뻐근하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놈을 살펴.”

요원 하나가 권총을 들고 턱이 뚫린 놈을 살폈고, 코와 입에서 피를 잔뜩 흘리는 다른 놈이 벽에 기댄 놈을 살폈다.

“독입니다.”

벽에 기댄 놈의 얼굴이 파르스름한 것이 한눈에 보아도 이미 죽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대사님은?”

“1901호에 계십니다.”

요원들은 아예 강찬을 상관 대하듯 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 우리 쪽에서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찬은 전화를 꺼내 김형정을 찾았다.

[“강찬 씨! 호텔에서 총소리가 났어요. 일단 호텔 직원들이 그쪽으로 못 가게 막고는 있습니다.”]

“화물용 엘레베이터 1층입니다. 두 명이 죽었는데 한 명은 총상, 다른 한 명은 독을 삼킨 것 같습니다. 처리 부탁드릴게요.”

[“바로 들어갑니다. 우리 요원은 검은 양복을 입었습니다.”]

“예.”

강찬은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 여섯이 안으로 들어왔다.

“팀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이거 좀 처리해 줘.”

“맡기고 올라가십시오.”

강찬이 프랑스 요원 둘에게 고갯짓을 했다.

때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강찬이 먼저 들어갔고, 요원 둘이 그 뒤를 따랐다. 한 놈은 손수건을 꺼내 입을 틀어막았는데 피가 계속 번져 나오고 있었다.

때앵.

19층에 도착하자 요원 둘이 기다리고 있다가 강찬을 안으로 안내했다.

강찬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슈 강.”

라노크가 강찬에게 다가와 양 볼에 소리가 요란한 키스를 하고는 소파로 안내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운이 좋았지요.”

요원 하나가 차를 따라주고 담배와 라이터를 놓아준 다음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대사님.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눈을 손으로 문댄 강찬이 담배를 꺼내물자 라노크가 손을 뻗었다.

“괜찮습니다. 나도 시가를 피울 참이니까요.”

찰칵!

불을 붙이고 나자 라노크도 시가에 불을 붙였다.

“며칠 전에 한국 정보원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부탁도 있었구요. 1층에서 둘이 죽었는데 그 뒤처리도 그쪽에 맡기고 오는 길입니다.”

라노크는 덤덤하게 강찬을 보고만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고, 사물이 제대로 보였다.

“한국 정부에서 철도 이야기를 하던가요?”

“유니콘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사님께 부탁드려서 한국에 연결하게 해달라는 청도 있었구요.”

라노크가 시가의 연기를 옆으로 뱉어냈다.

“강찬 씨는 적국의 요원 둘을 상대할 실력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강찬은 답을 하지 못했다.

“프랑스어, 아! 그건 인터넷에서 배웠다고 하셨고.”

설명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는 거다.

“우리 요원 둘이 하나를 상대 못 했는데 강찬 씨는 그 둘을 이겨냈지요.”

보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는 말은 우리 정보요원 넷이나 다섯쯤을 혼자 상대한다는 말이 되는데 한국에서 그 정도 실력자는 각국의 레이더에 다 걸립니다.”

아무리 뒤를 캐봐라.

강찬도 모르는 걸 프랑스 정보국 아니라 세상 그 어떤 정보국에서 알 수 있겠나.

“말을 바꾸죠.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강찬 씨를 나와 한국정부가 키운 비밀 요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샤흐란까지 잡았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구요.”

그럴 만도 하겠다.

강찬이 담배를 끄고 차를 입에 가져갈 때였다.

“오늘 두 사람이 저를 노린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강찬은 차를 마시다가 눈만 들어 라노크를 보았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대사님.”

“말씀하세요, 강찬 씨.”

강찬은 라노크를 똑바로 보았다.

부탁을 한다고 해서 비굴해지거나 머리를 숙일 마음은 없었으며, 의심을 받아가면서 얼굴을 맞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사람마다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냥 격투술과 프랑스어에 재능이 있을 뿐이라고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일은 운이 좋았습니다. 로비 라운지 거울로 우연히 둘을 발견한 것뿐이니까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된다니 부탁을 드릴까 했지만 역시 저는 이런 거 못 하겠습니다.”

라노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겠습니다. 대사님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기껏 살려줬더니 사람을 의심해?

어제 전화로 반가웠던 마음이 싹 사라졌으니 정이 떨어졌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라노크의 의심을 풀어줄 방법은 없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걸 믿어달라고 손가락을 자르고 맹세한들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강찬은 미련을 버렸다.

이유도 모르는 싸움을 더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슈 강.”

강찬이 일어서자 라노크가 함께 일어났다.

“서운했다면 미안합니다. 나로선 최대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그건 네 생각이고.

강찬은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비선은 강찬 씨로 생각하겠습니다. 각국에 비선이 있는데 모두 친구라 부릅니다. 이제부터 라노크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서양놈들은 꼭 이렇게 닭살 돋는 표현을 쓴다.

강찬은 그만 풀썩 웃고 말았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드리죠. 한국에 철도를 연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확정된 것은 아니니 이점은 강찬 씨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드릴 게 없는데요.”

“오늘 제 목숨을 구해준 커다란 선물을 이미 받았습니다.”

강찬이 웃자 라노크가 팔을 벌려 보였다.

프랑스 놈들은 왜 남자끼리 이런 인사를 할까.

징그럽더라도 친구 나라의 문화라니 이해해 주는 게 좋다.

“쪽! 쪽!”

소리 나게 인사를 마친 다음 라노크가 서양 가면처럼 입술 끝을 위로 들며 웃었다.

“앉읍시다. 저녁이나 함께 들지요.”

분위기 때문에라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식사를 주문하고 둘이 앉아서 담배와 시가를 물었다.

“대사님. 이런 식이라면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강찬 씨가 내일 유비캅에 오더를 내려주세요. 한국에서는 앞으로 유비캅이 경호를 맡되 지명권자는 강찬 씨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건 또 오바 아니냐?

강찬의 표정을 알아본 것처럼 라노크가 고개를 저었다.

“타국의 시선을 유비캅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진 대표 역시 제법 알려진 분이라 효과가 더욱 좋겠지요.”

“알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락은 대사관으로 하면 되나요?”

“유비캅에서 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리고 샤흐란 말입니다.”

강찬은 날이 바짝 곤두섰다.

“배후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영국 쪽과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로리암의 지하에 들어갔으니 살아서 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렇군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군부대의 지하 벙커에 갇힌 거다. 듣기로는 회색 방안에 별도의 철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일주일에 신문 한 부가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라 들었다.

2시간가량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철도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결혼했다가 사별했으며 딸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 이건 전에도 들은 것 같고. 그 외에 골프가 유일한 낙이었는데 경호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접었다는 이야기.

하여간 잡다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강찬 씨. 수일 내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때는 유니콘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전해드리지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고 말씀해주세요.”

라노크가 강찬의 왼쪽 눈을 보고 묘하게 웃었다. 깜박일 때마다 계속 뻐근하더니 부어오른 모양이었다.

“오늘 고맙습니다, 강찬 씨.”

“뵙게 돼서 좋았는걸요. 선물 감사합니다.”

강찬은 라노크의 방을 나섰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쪽의 거울을 보자 권투선수처럼 눈이 부어 있었다.

젠장!

오늘 같은 놈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에 내려와서 현관으로 나서며 강찬은 전화를 걸었다.

[“강찬 씨.”]

“현관으로 나가는 길인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현관에 계시면 됩니다.”]

강찬은 현관을 나서 호텔의 입구에 섰다.

잠시 뒤에 검은 승용차가 서더니 조수석에서 직원 하나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터라 강찬은 얼른 차에 올라탔다.

“고생했습니다.”

운전석 쪽 뒷좌석에 있던 김형정의 말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죽은 둘은 아예 신원 파악이 안 됩니다. 혹시 다른 여권을 사용했나 싶어서 공항과 항만의 사진 검증 작업을 거쳤는데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밀입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남산 호텔을 나온 차는 바로 왼편으로 돌아내려 가다 개인 미술관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강찬은 일단 차에서 내렸다.

미술관의 현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중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양복 왼쪽에 신분증을 단 직원들이 가득 있었다.

“이쪽입니다, 강찬 씨.”

김형정도 어느새 신분증을 가슴에 걸었다.

복도를 돌아가자 벽을 타고 그림들이 가득 걸려있는 가운데 소파가 있었다.

하얀 머리에 나이가 제법 있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찬을 맞았다. 그의 곁에서 비서관인 듯한 사내가 정중한 태도로 서 있었다.

“강찬 씨?”

“예, 제가 강찬입니다.”

무시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그는 강찬의 왼쪽 눈에 시선을 두었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고건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찬은 정중한 태도로 악수를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우리 김 팀장님도 앉으시지?”

“괜찮습니다, 총리님.”

총리? 국무총리?

강찬이 김형정을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고건우는 보기 좋은 웃음을 달고 있었다.

“내가 국무총리 맞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모르는 분들이 많지요. 사실 정치인이나 정부 각료를 국민들이 모르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때는 이 정부가 그래도 잘하고 있구나 싶으니까요.”

고건우가 시원하게 웃는 동안 강찬의 앞에 차가 놓였다.

“흐흠. 솔직하게는 강찬 씨에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웃음을 그친 고건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국가가 일어설 절대적인 기회에 제대로 된 외교채널 하나를 만들지 못해서 강찬 씨를 번거롭게 했으니까요.”

모르는 곳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고건우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도와주신다니 고맙고, 라노크가 러시아의 초대를 거절하고 강찬 씨를 먼저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나라 전체를 위한 일이거니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이미 결심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다른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습니까? 원래는 오늘 국가정보원 원장도 함께 나올 예정이었는데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나만 참석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다면.”

고건우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명함 하나를 강찬의 앞에 놓아주었다.

“거기 적힌 번호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강찬 씨의 전화만 받습니다. 24시간 대기할 것이고, 국내에서 강찬 씨가 필요로 하는 행정적인 모든 사안이 선조치 후, 바로 제게 올라옵니다. 그 외에 사안은 여기 김 팀장이 알아서 할 겁니다. 특히, 오늘 같은 일들은요.”

“감사합니다.”

강찬이 명함을 내려다보자 고건우가 차를 권했다. 배가 부르지만,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을 때였다.

“라노크가 특별한 말은 않던가요?”

고건우가 정말 하고 싶었을 질문이리라.

강찬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솔직하기로 했다.

“저를 한국 쪽 비선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오!”

노인네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비선을 정할 때 라노크가 꼭 하는 말이 있다던데 혹시 들었습니까?”

“친구라는 말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강찬 씨.”

염병. 친구가 된 것을 이렇게나 기뻐할 줄은 몰랐다.

“한국에 철도를 연결해보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확정된 다음에 발표하는 것으로 하고 그렇게 추진하겠답니다.”

강찬은 고건우가 심장마비를 일으킨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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