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2 / 0419 ----------------------------------------------
4-2. 유니콘 프로젝트.
강찬은 데이빗 앞으로 걸어갔다.
“야.”
자존심이 있는지 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답을 하지 않았다.
피식.
이런 새끼는 지겹도록 봤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순간만 넘기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제 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는 놈들.
콱.
강찬은 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위로 쭉 들어 올렸다.
“아! 아아!”
“아프냐?”
“아-아아!”
데이빗이 까치발을 들듯이 몸을 위로 세우면 연신 신음을 뱉었다.
쫘아아악!
비명이 뚝 그쳤다.
“야!”
피식.
쫘아아악!
“야!”
“예!”
강찬이 피식 웃자 놈이 움찔했다.
“열심히 살려는 사람, 마지막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자. 너는 그냥 하룻밤일지 모르지만, 쟤들은 그것 때문에 평생을 아플 수도 있거든.”
쫘아아악!
데이빗의 왼쪽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술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연습생인 게 죄냐?”
“아닙니다.”
데이빗의 몸이 어설프게 떨리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야.”
“예!”
쫘아아악!
“크흡. 읍.”
데이빗이 놀라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드라마든 방송이든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승부 하고 싶다는 게, 그게 죄냐?”
“아닙니다!”
쫘아아악!
“크흑. 큭. 큭.”
“힘든 사람을 꼭 짓밟아야 되겠냐? 저 어린 애들을 술집에 불러내서 어떻게 하려고? 어?”
“그런 뜻이 아니라.”
쫘아아악. 쫘아아악. 쫘아아악. 쫘아아악.
“크윽. 끄으으.”
“조용히 안 해?”
데이빗의 몸뚱이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
강찬은 이상하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작 몇 푼 더 가졌다고,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다른 사람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하는 놈.
쫘아악. 쫘아악. 쫘아악. 쫘아악. 쫘아악.
다섯 대를 더 때리자 데이빗의 몸이 축 늘어졌다.
강찬은 움켜쥐고 있던 놈의 머리를 질질 끌고 깡패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갔다.
털썩.
오른손이 더러운 피로 범벅이었다.
연습생들 절반, 은소연, 그리고 경리 여직원이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찬은 이하연에게 걸어갔다.
피식.
꿈틀거리는 걸 봤는데도 강찬이 다가가자 꼼짝도 않고 있었다.
“지금 안 일어나면 무릎을 다 부숴버린다.”
말이 끝나자 이하연이 덜덜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하연.”
“예에.”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얼쩡거리면.”
움찔.
이하연이 강찬의 오른손을 보면서 몸을 움츠렸다.
“저쪽에 가 있어.”
불쌍할 정도로 몸을 떨면서 이하연이 깡패들 옆으로 움직였다.
허은실만큼도 깡이 없는 게.
“미쉘. 여기 물수건 없냐?”
미쉘이 대답도 못 하고 물티슈를 들고 강찬에게 왔다.
“대충 치워.”
강찬이 손을 닦으며 말을 하자 임수성과 김재태, 그리고 로드 직원들이 먼저 의자와 책상을 바로 놓았다.
정리가 대충 끝났을 때였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강찬과 깡패들을 보았는데 이미 벌어진 일이다.
“쯧! 열어주세요.”
김재태가 몸을 움직여 문을 열자 문본근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데이빗과 이하연, 그리고 깡패들을 보더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놀란 얼굴이었다.
“문 국장님.”
“예! 예!”
“이쪽으로 앉으시죠.”
강찬은 일부러 사무실 한쪽 의자를 가리켰다.
문본근이 쭈뼛거리며 앉자 강찬은 물휴지를 한 장 더 꺼내서 손을 깨끗이 닦은 다음 그 옆에 앉았다.
책상이 있는 앞이고, 미쉘과 연습생, 그리고 직원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찬은 문본근을 날카롭게 보았다.
이 새끼도 개새끼다.
기회가 되면 약자를 짓밟다가 힘에 눌리면 꼬리를 내리는 새끼.
“저, 저희 방송국에서 디아이가 제작하는 드라마를 방영하기로 했습니다. 월화든, 수목이든, 미니든, 뭐든 좋으니 결정되는 대로 알려주시고…….”
은소연과 연습생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얼굴을 하는 순간이었다.
“저기.”
강찬은 문본근의 말을 잘랐다.
“제가 실무를 잘 모르니까 그 이상은 미쉘 이사와 의논하는 게 좋겠는데 괜찮겠습니까?”
“그게 좋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본근은 오히려 커다란 은혜를 얻은 얼굴이었다.
“미쉘. 방에 들어가서 따로 의논해. 혹시 우리 조건과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주고.”
“오케이, 보스.”
미쉘 역시 겁먹고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연습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쉘과 문본근이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연습생들은 위에 휴게실 있지?”
“예.”
전에 쓰던 사무실을 휴게실로 만들기로 했었다.
“그럼 올라가서 쉬어.”
“예.”
늑대를 만난 양 떼처럼 연습생들이 바싹 붙어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은소연.”
“예!”
“너도 여직원들하고 일단 위에 휴게실에 가 있어.”
“네.”
은소연이 코디, 그리고 경리직원과 사무실을 나갔다.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나요?”
“제가 타겠습니다.”
로드 직원 하나가 얼른 정수기 앞으로 움직였다.
잠시 뒤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담배 하나 드릴까요?”
“같이 피울 거면 주시고, 아니면 놔두세요.”
임수성은 제법 강단이 있어 보였다. 하기야 그렇지 않다면 깡패 뒷목을 때려서 기절시키지도 않았을 거다.
그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네주고 강찬의 앞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잔뜩 올랐던 독기가 한결 빠져나갔다.
“이하연. 거기 깨워서 이제 나가.”
강찬의 말이 있자 데이빗이 부스스 일어났다.
무식한 새끼들.
한쪽 무릎이 깨지면 한발로도 걷기가 어렵다.
껑충거리면 뼈가 울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깨를 잡고 끌어줘야 하는데 쇄골을 부숴놔서 그마저도 쉽지 않을 거다.
깡패들은 바닥을 처참하게 기어서 사무실을 나갔다.
개새끼들 때문에 깨끗한 카펫만 갈게 생겼다.
담배를 다 피우고 잠시 있자니 미쉘과 문본근이 밖으로 나왔다.
“가보겠습니다.”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시선을 돌리자 미쉘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좋은 작품을 방송할 수 있게 돼서 저희가 더 기쁩니다.”
문본근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앉아.”
강찬이 자리에 앉자 미쉘이 쓰러지는 것처럼 옆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이 잘게 떨렸다.
“미쉘.”
미쉘이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난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
강찬은 이참에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미쉘을 믿고 따르는 사람만큼은 무슨 수를 쓰든지 지켜.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곁에 두지 말고.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이 사업 접어. 더럽게 돈 벌 생각 없다. 대신 망할 때 망하더라도 내 사람만은 지켜라. 그것만 지켜준다면 아무리 큰 손해가 생겨도 절대 미쉘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거다.”
미쉘이 강찬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고. 방송은 이제 문제없는 거지?”
“예쓰, 보스.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할 수 있어?”
“그래.”
강찬이 허락하자 미쉘이 몸을 일으켰다.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
이미 대답한 마당이라 강찬은 미쉘을 따라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세련된 책상과 그에 맞는 소파가 있는 방이었다.
문을 닫은 미쉘은 대뜸 강찬의 허리를 안았다.
강찬은 풀썩 웃고는 미쉘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태연한 척 버티더니 지금은 얼음물 뒤집어쓴 치와와처럼 떨고 있었다.
5분쯤 그렇게 있자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대신 미쉘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도 느껴졌다.
“이제 좀 괜찮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럼 좀 앉자.”
“응.”
미쉘이 몸을 떼고는 그나마 자연스럽게 웃었다.
둘이 소파에 앉았다.
“여기가 차니 방이야. 마음에 들어?”
“잘해놨네. 후회 안 돼?”
미쉘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하고 싶었던 일이야.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너무 커져 버렸지만 내겐 행운 같은 일인걸. 아까 사무실에서 차니가 해준 말 명심할게. 그리고 더는 드라마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 없도록 할게. 고마워, 차니.”
미쉘의 커다란 눈동자에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위층에 가봐. 애들 많이 놀랐을 테니까 달래줘야지.”
“예쓰, 차니.”
미쉘이 방을 나간 후에도 강찬은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되지도 않는 놈들과 드잡이질을 해서인지 기분이 영 별로였다. 거기다 몸 상태가 완벽하게 잡혀서 어설픈 깡패들과 싸움이 나면 오히려 악당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를 들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강찬 씨. 김형정입니다.”]
“아, 예.”
[“내일 혹시 라노크 대사를 만나기로 했습니까?”]
“예. 한국에 들어오는 대로 장소와 시간을 알려준다더군요.”
[“강찬 씨. 혹시 라노크 대사를 만나고 나서 저희 쪽에도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왕 하기로 한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절박한 일이라는데 저녁 시간 좀 내주는 것이 그렇게 번거로울 것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끝나는 대로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고맙습니다. 강찬 씨.”]
김형정은 커다란 소원을 이룬 듯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강찬 씨 덕분에 승진됐습니다.”]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무슨 놈의 국가정보원이 고등학생에게 카드 건네주었다고 승진씩이나.
[“팀장이 되었으니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으면 바로 전화주십시오.”]
“팀장님.”
[“말씀하세요, 강찬 씨.”]
강찬의 음성이 가라앉아서 김형정은 긴장한 느낌이었다.
“김태진 대표님이 후회 없이 믿는 분과 일하는 겁니다. 저에게 팀장님은 그런 분입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남자끼리 제대로 한번 해보죠.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 그러지 마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신음 같은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강찬 씨와 일하고 싶으면 어쭙잖은 조건보다 강찬 씨가 아끼는 사람을 먼저 챙기라고. 알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저를 믿어주는 친구를 실망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찬 씨.”]
통화가 끝났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
들어선 사람은 미쉘이었다.
“연습생까지 전부 사무실에 내려왔어. 잠깐 보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대.”
다 들어오기에 방이 좁긴 하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미쉘을 따라 방을 나섰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강찬이 보이는 순간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과 연습생이 한꺼번에 한 인사였다.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유치하기도 하고 낯 간지럽기도 한데 저 사람들 나름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연습생과 직원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어?”
미쉘은 이제 여유를 갖고 웃고 있었다.
“솔직히 드라마 편성까지 끝났잖아. 그냥 다들 엄청나게 기쁜 데 무섭기도 하고, 이럴 때 보스와 함께 있으면 든든할 것 같다고 해서 함께 내려왔어.”
여자아이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싸우는 걸 처음 봤을 수도 있다.
“앉자. 오늘 회식은 그렇고, 우리 간식이라도 사다 먹으면 어때?”
미쉘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로드 직원 둘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책상에 있던 의자, 회의실에 있던 의자들을 죄 가지고 와서 사무실에 둥그렇게 앉았다.
“우리 연습생들은 다 출연하는 거야?”
“물론이지, 보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부 3회 이상, 대사도 다 있어.”
연습생들의 얼굴에 흥분이 스쳐 가는 것을 본 강찬이 또 한 번 웃었다.
“편성이 확정됐으니까 남주도 문제없을 거야. 표 감독이 추천하고 싶은 애도 있다고 하고.”
미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은소연도 흥분한 얼굴이었다.
처음이다.
은소연이 강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무서운 것을 견디는 눈빛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로드 직원 둘이 가게 하나를 털어온 듯한 커다란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연습생들이 함께 달려가 간식거리를 펼쳐놓았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펼쳐 놓자 진심으로 분식집과 제과점 하나를 털어온 듯한 양이었다.
커피, 쥬스, 그 외에 몇 가지 음료수를 놓고 편하게 음식을 먹었다. 처음엔 깨작대던 연습생들이 전에 일식집에서 보여주던 식성을 서서히 발휘했다.
강찬은 미쉘과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적당히 먹었구나 싶었을 때,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가기 전에 부탁 하나 하자.”
강찬이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시선이 달려왔다. 다들 뭔가 한마디쯤 해주길 기대했던 모양이다.
“드라마 제작, 방송, 연기. 난 그런 건 잘 몰라. 하지만 남들이 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까지 비겁하게 살진 말자. 나중에 스타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다 바라보는 위치에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고 부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싶다. 계약 조건에 붙잡지 않겠다고 한 의미가 꼭 이런 건 아니지만, 혹시 내 말과 다르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고 나가도 좋다.”
강찬의 말에 고개를 젓는 연습생들도 있었다.
“대신 이 회사에 있는 동안은 비겁한 짓은 생각하지 마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미쉘에게 얘기해. 그런 의미로 이번에 은소연하고 지연희에게 고맙다. 적어도 저 두 사람은 미쉘과 회사를 믿어 준거니까.”
저년이 왜 저러지?
은소연이 또 뚜렷하게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찬은 미쉘에게 고개를 돌렸다.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회식 한번 하지?”
“대표님! 저희 이제부터 다이어트 해야 돼요. 그러니까 회식은 드라마 끝나고 해주세요!”
그런데 연습생 하나가 장난처럼 말을 던졌는데 다른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맞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동조를 했다.
강찬과 미쉘이 웃으며 받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강찬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비가 장난이 아닌데?’
통장에 돈이 들어있는 것과 택시비가 많이 나가는 건 별개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가 보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김미영과는 저녁때 보기로 한 터라 강찬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카드 키를 누르고 문을 열자 유혜숙이 맞아 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힘들지?”
“아니요. 오늘은 별로 힘든 게 없었어요.”
되먹지 않은 깡패 다섯쯤이야. 하지만 이런 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이다.
“과일 좀 줄까?”
“좀 전에 간식을 먹어서 배가 든든해요.”
“잘했다.”
유혜숙은 강찬이 내놓은 40억을 이해하려 애쓰는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전화하셨었나 보네요.”
“응. 아들.”
어색하게 웃는 웃음이다.
“아무래도 재단을 만들어서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주식이 있다고 아버지도 많이 놀라시는 눈치였어.”
“차 한잔 하실래요? 제가 탈게요.”
“그럴래?”
강찬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녹차와 잔을 두 개 꺼냈다.
“자! 이게 어머니 거.”
유혜숙이 내려준 잔을 편한 위치로 옮겨놓았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그 돈이 마음에 걸리시는 거죠?”
“응. 아들.”
이런 모습과 대답은 김미영과 비슷하다.
강찬이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유혜숙이 정말 예뻐 보였다.
“저한테 해가 될까 봐서요?”
“정말 괜찮은 거니?”
유혜숙의 질문에 강찬이 “예.”하고 길게 대답했다.
“스미든 지사장도 받았대요. 서정모터스보다 강유모터스를 선택한 것이 훌륭한 판단이었다구요. 우리에겐 엄청 큰돈이지만, 공트자동차 규모에선 정말 별거 아니라던데요?”
“아빠랑 이해하기로 했는데 막상 주식이 확인되고 재단을 만든다니까 자꾸 걱정되고 긴장돼서 그래. 엄마랑 아빠는 이렇게 큰돈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가봐.”
“설마요!”
강찬이 웃으며 유혜숙을 달래주었다.
“그냥 좋은 일 하시려고 하니까 하늘이 도운 거라고 생각하세요.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머니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던 일인데 오히려 걱정 끼쳐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들.”
유혜숙이 급하게 강찬의 말을 받았다.
“아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는 건지 그게 걱정됐어. 전에 다쳐서 들어온 게 자꾸 떠올라서.”
강찬이 웃자 유혜숙이 따라 웃었다.
이렇게 푸는 게 맞다.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는 거지, 한 번에 풀리지도 않는다.
유혜숙과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방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김미영의 전화인 줄 알고 들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강찬 씨?”]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요?”
[“강남경찰서 형사과 반장 양정묵이요. 폭행 사건 고소가 들어왔는데 사건은 짐작하지?”]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한 건지 대놓고 반말이 나왔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강남경찰서 형사과로 나와. 그렇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게 돼.”]
“알겠습니다. 내일 나가죠.”
듣기에도 적대감이 가득 찬 음성이었다.
‘아후! 피곤한데?’
강찬은 침대에 털썩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