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59화 (5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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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뭔데 또 웃음이 그래요?

호텔에서 미쉘과 헤어진 강찬은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거실에 있었는데 표정이 심오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아들.”

유혜숙이 얼버무리듯 답을 했다.

걱정거리가 생긴 건가?

강찬이 안색을 살피자 곁에서 강대경이 입을 열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니?”

그도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그래라.”

무슨 일이지?

강찬은 서둘러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전화를 서른 번은 받은 거 같아.”

“전화요?”

“응. 아들.”

강찬이 무슨 일이냐는 투로 강대경을 보았다.

“쉬프를 사겠다는 전화가 다섯 통 정도 있었고.”

좋은 내용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빠 셔츠에 음식을 흘린 부부가 내일 중으로 백화점에서 산 셔츠를 보낸다는 전화하고.”

이런 게 저런 얼굴을 할 이유가 되나?

“자기네 애들 좀 부탁할 수 없느냔 전화가 스무 통이 넘었다.”

애들을 부탁하다니?

단체로 보육원에 보내겠다는 건 아닐 테고.

“너 혹시 디아이 대표냐?”

어떻게 알았지?

강찬의 표정을 본 강대경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고, 유혜숙은 제대로 놀란 얼굴이었다.

“미쉘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디아이 관련 기사가 뜬다더구나. 거기에 네 이름이 대표라고 나오고. 이번에 프랑스 융스에서 백억 투자받기로 했다고도 하고.”

“예.”

강대경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얼굴이었다.

“공트 자동차 일로 알게 된 분이 드라마 투자를 찾길래 미쉘과 연결해 주었어요. 양쪽 모두 투자가 끝날 때까지만 대표를 맡아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구요. 그냥 지분하고 급여 좀 나온다고 하던데 오래 할 게 아니라 말씀 안 드렸어요. 죄송합니다.”

강대경은 엄지와 검지로 눈을 꾹꾹 눌렀다.

“말을 안 했다고 죄송할 건 없지. 다만 인터넷에 시끌시끌한 드라마 제작사의 대표가 내 아들이라 놀란 건 사실이다.”

“지분하고 월급을 준다고 하던데 그걸로 보육원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건 진심이다.

“적당히 정리되면 그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아직 생긴 것도 없는데 공연히 어머니 심란하게 만들어 드리기 싫었어요.”

“어쩜! 우리 아들은 이렇게 마음 씀씀이도 예쁘니.”

“그랬구나.”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강대경은 무언가 여운이 남아 있었다. 강찬과 시선이 마주치자 강대경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네가 강남 일대의 고등학교 일진, 거 뭐냐, 어! 짱. 짱이냐?”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강찬은 “예?”하며 풀썩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제야 강대경과 유혜숙은 완전하게 안심하는 눈치였다.

“아닌 거지? 엄마 친구들이 전화해서 그런 소릴 하는데 설마 하면서도 걱정이 됐었거든. 그런 건 아니지?”

강찬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그럼요.”

강찬이 워낙 편안하게 웃자 두 사람도 제 얼굴을 찾았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어머니 친구분들이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응. 몇몇은 딸이 연기자나 가수가 되고 싶어한다고 아들한테 부탁해서 길을 좀 열어달라고 하고, 또 몇몇은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데 말 좀 해달라고 했었어.”

강찬이 또 풀썩 웃자 유혜숙이 함께 웃었다.

“아들. 저녁은?”

“낮에 너무 먹어서 아직도 배가 부른데요.”

“그럼 우리 저녁 대신에 케이크 한쪽 먹어볼까?”

“그러실래요?”

유헤숙이 주방에 있는 동안 강대경과 시선이 부딪쳤다. 자랑스러워 하는 눈빛 뒤로 염려를 넓게 펼쳐놓은 표정이었다.

“걱정되세요?”

“조금은 그렇다. 오늘 엄마를 챙겨준 걸 생각하면 가슴 뿌듯하다가도 이렇게 아빠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되는 거.”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해요. 정말 돈이 된 후에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알았다. 그리고 오늘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멋쩍은 웃음을 짓고 났을 때 유혜숙이 케이크 세 쪽을 가지고 왔다. 세 개가 모두 달라서, 셋이서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음! 이건 정말 맛있네요!”

“말도 마, 얘! 이거 사 간 엄마 친구들이 몇 개 더 살 수 없느냐고 전화도 왔었어.”

유혜숙이 왼손을 받친 채로 케이크 한 쪽을 입에 넣은 직후였다.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또 누구지?”

유혜숙이 전화를 들여다보고는 얼른 귀에 가져다 댔다.

“응, 진숙아. 그래. 우리 아들 맞대. 잠시 맡게 된 거라 정리가 될 때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건가 봐. 그래. 응?”

유혜숙이 강찬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건 아직 얘기 못 했어. 그래. 내가 봐서 얘기해 볼게. 그래. 네 딸 예쁘지. 그러엄. 그래. 응.”

강대경이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유혜숙을 보았다.

이런 건 뭐라고 답을 주기 어렵다.

그런데 케이크 조각을 뜨려는 순간에 또 클래식 음악이 울려 나왔다.

“어! 그래. 응. 맞대. 어? 아니야. 그러지 마, 얘! 아니라니까. 괜찮아. 그래. 옷 샀잖아. 아니야. 나나 우리 그이나 그거 벌써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말고 내가 꼭 얘기해볼게. 내일? 아니. 내가 이번 주는 일이 좀 있어. 정말이야. 그래. 그래, 또 통화하자.”

전화를 끊자 강대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살면서 당신 전화 이렇게 많이 울리는 거 처음 본다?”

“이이는! 사람 곤란해 죽겠구만. 다음 주에 만나자는 거야. 음식 흘려놓고 딸 애 부탁하기 미안했나 봐. 다음 주에 언제고 내가 괜찮다고 할 때 온다고 난리네. 당신 셔츠도 벌써 다섯 장이나 사놨대.”

강대경이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어머니. 케이크 드세요.”

“그래, 아들.”

강찬이 보기에 유혜숙은 흐뭇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귀엽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몰라도 유혜숙의 얼굴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 디아이가 드러난 마당이다.

양파 껍질 까듯 하나씩 밝혀지는 것보다는 이번에 아예 다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강대경과 유혜숙이 살짝 긴장하는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유비캅이라는 경호회사가 있는데요.”

“그 회사는 알지. 이번에 프랑스 공식 행사 담당이라는, 너……?”

“예. 거기 지분도 받기로 했어요.”

강대경은 아예 웃음부터 터트렸다.

“그리고 아버지.”

“또 있냐?”

강찬이 유혜숙을 슬쩍 보았다.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 공트 자동차 주식이 있어요. 이걸로 보육원 아이들을 도울 순 없을까요? 제 생각엔 적당히 이자를 받을 수 있게 해 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공트 자동차 주식?”

“예. 지난번에 고맙다고 통역비 받은 것 외에 본사에서 따로 보내준다고 하더니 이번에 보냈더라구요.”

“주식으로 이자를 받는 방법이 있나? 그래, 몇 주나 되니?”

유혜숙이 가운데 앉아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 주식 수는 모르겠구요. 팔면 40억쯤 된다고 하던데요?”

강대경의 얼굴이 워낙 딱딱하게 굳어서 혹시 심장마비를 일으킨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유혜숙은 아예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흐른 뒤에 강대경이 눈을 깜박였다.

“40억이라고 그랬니?”

“예. 증권사 직원이 그랬으니까 맞을 거예요.”

“공트에서 그걸 너에게 줬다는 거지?”

“예. 서정모터스같은 회사 대신 강유처럼 좋은 회사 소개해 줬다고요.”

“그걸 지금 보육원 돕는데 내놓겠다구?”

“아버지와 어머니도 하시는 일이잖아요? 전 그런 돈 필요도 없고, 대신 어머니가 아이들 못 도와서 마음 아파하시지만 않으면 그게 더 기분 좋아요.”

“푸흐흐.”

강대경이 석강호처럼 웃음을 터트리며 유혜숙을 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할래?”

“뭘?”

“아들이 말한 거.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난 몰라, 여보. 정말 모르겠어.”

“제가 내일 증권사 직원보고 전화드리라고 할게요. 그 정도면 돕고 싶으신 곳은 다 도울 수 있는 건가요?”

강대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금 손 안 대고 이자로도 충분히 도울 수 있지. 그런데 그 정도 규모라면 엄마 이름으로 재단을 만드는 게 낫겠구나. 이건 내일 확인되면 아빠가 좀 더 알아본 다음에 다시 의논하자.”

“예. 어차피 어머니 드리려고 했던 거니까 편안하게 결정하세요.”

“후우.”

강대경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더 나올 건 없는 거지?”

“없어요.”

강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털어놓는 김에 통장에 20억쯤 있다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40억도 실감하지 못하는 지금의 반응을 생각하면 그건 너무 달려가는 일이다.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졌는데 시간이 해결할 문제였다. 강찬은 대강 자리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혜숙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여보? 이거 꿈 아니지?”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인데?”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유혜숙의 어깨를 강대경이 쓸어주었다.

“내일 확인하고 얘기하자. 너무 황당해서 어안이 벙벙하니까. 저 녀석, 우리 아들이 맞긴 맞는 거지?”

“이이는?”

“그래! 난 그냥 우리 아들 눈을 믿을란다. 당신이 기뻐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40억을 내놓는 고등학생 아들로만 생각할랜다.”

“여보. 우리 아들 괜찮은 거겠지?”

강대경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인터넷 기사 봤잖아. 정상적인 투자고, 대단한 일이라고 다들 떠드는 거. 우리 아들 능력이 우리 상상을 넘을 만큼 대단한 거겠지. 가능하면 우리가 덤덤하게 받아주자. 찬이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우리에겐 고등학생 아들인 거니까.”

어깨에 놓인 강대경의 손등을 유혜숙이 쓰다듬었다.

“고마워, 여보. 그렇게 말해주니까 가슴이 좀 놓여.”

“그래.”

유혜숙의 안색이 풀리는 순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그래!”

전화를 받는 유혜숙의 곁에서 강대경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강찬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숨기고 있던 것을 훌훌 털어버려서 시원하기까지 했다.

책상에 앉았는데 김미영의 문자가 왔다.

대략 10분간 통화하고 월요일 저녁에 잠깐 얼굴을 보기로 했다.

‘내일은 디아이 사무실에 가봐야 하고.’

강찬은 미쉘을 만나 유혜숙에게 들어온 부탁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를 알아볼 참이었다.

배가 아직도 든든했다.

‘이놈은 뭐 하고 있지?’

석강호 생각이 났는데 이사하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강찬이 누워볼까 하고 침대를 보았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석강호였다.

“여보세요?”

[“뭐하쇼?”]

“그냥.”

[“가서 차나 한잔 사정없이 때려주고 옵시다.”]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빨리 나오쇼.”]

“알았다.”

강찬은 간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

영동 사거리 근처의 쥴리아나 호텔은 지하에 룸살롱이 있는 중급 규모였다.

커피숍의 소파가 천으로 된 으리으리한 형태였는데 오래된 티가 역력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년들 나오겠냐?”

“마음이 여려서 일단 나오긴 할 거예요.”

데이빗 최와 이하연이 구석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눈 말이었다. 이하연은 편한 복장에 스카프를 머리띠처럼 둘렀고, 얼굴의 절반이 가려질 만큼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었다.

“오늘 편성 국장만 둘 나와. 그것들 술 진탕 먹여서 방에 밀어 넣으면 우린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지. 은소연은 우리 회사로 데려오면 되고, 지연희는 어떻게 하지?”

“조연 하나 줘요. 그럼 내가 알아서 다독일게요.”

데이빗이 두툼한 입술 끝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닥에서 배경 없고, 돈 없으면 그렇게 크는 거지. 은소연 그년이 마음만 잡으면 크게 될 건데 표시 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리 유난을 떨고 그런지.”

“오늘 대표님이 인생을 가르쳐 주면 되는 거죠.”

소파에 파묻히듯 앉은 이하연이 손을 길게 뻗어 찻잔을 잡았다.

“걔들 술은 어때?”

“폭탄주 석 잔이면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를 걸요?”

“후우. 그럼 그건 됐고. 남은 건 그 싸가지없는 어린놈인데.”

“대표님. 액션 중에 아는 사람 없어요?”

“액션?”

“깡패 말이에요.”

데이빗이 가소롭다는 투로 이하연을 봤다.

“강남이 아니라 전국에서 먹어주는 애들로 쫙 있다. 왜? 걔들 시켜서 어떻게 하자고?”

“그럼 내가 오늘 일을 슬쩍 흘려서 불러낼 테니까 아예 제대로 손을 봐주죠?”

데이빗이 고개를 갸웃했다.

“호텔에서 그러면 위험해. 그러다 국장들 밝혀지면 내가 더 곤란해지는 거고.”

“흥.”

이하연의 반응에 데이빗이 인상을 찌푸렸다.

“함부로 까불지 마.”

“그게 아니구요. 걔는 남산 호텔에서도 대놓고 주먹질하는데 전국에 유명한 깡패를 안다는 대표님이 주저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그놈이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니까.”

“알았어요.”

이하연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데이빗이 볼을 씰룩였다.

***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미사리에서 커피를 마셨다.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먼저 말해주고 수련회 일정에 대해서 잠시 의논했다.

“공트 주식은 어머니 드리기로 했다. 보육원에 도움 주는 길이 있다고 해서. 돈도 드리려고 했는데 충격이 커 보여서 그건 다음 기회를 노려보려고.”

“보육원? 지난번에 다녀왔다는 그 보육원 말이오?”

“응. 가보니까 먹는 게 형편 없더라구.”

석강호가 담배를 꺼내다가 강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내 몫으로 받은 주식도 그리 넘깁시다.”

“아서라. 뜻은 좋은데 내가 받은 주식도 억지로 넘어갔는데 너까지 주식을 내놔봐라. 그건 뭐라고 설명할 거냐?”

“그건 또 그러네.”

강찬도 담배를 꺼내 들었다.

“아직도 좀 혼란스럽다. 내가 죽을 때 나이가 스물아홉이니까 2010년이면 서른둘이잖아. 그런데 몸뚱이가 고등어인 것도 그렇고. 집에 가서 얘기하다 보면 아차 내가 고등학생이지 싶을 때가 아직도 있다.”

“대장은 어려지기나 했지, 난 뭐요? 갑자기 마흔이요. 이것도 적응하기 쉽지 않습디다. 요즘에야 딸내미가 내 새끼 같은데 전에는 그거 안기도 힘들었어요.”

석강호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그나마 너니까 다행이지. 스미든, 그 새끼였으면 끔찍한 사고 났다.”

석강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는 그러고도 남을 거요. 그나저나 잘 지내고 있나?”

“통화했는데 어학당 끊는다고 그러더라.”

“날 잡아서 밥 한번 먹읍시다.”

강찬이 “그러자.”하고 대답한 다음이었다.

“저기…….”

석강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새끼가 이럴 일이 뭐가 있지?

“우리 집에 한번 왔다 가면 어떻겠소?”

강찬이 풀썩 웃었다.

“마누라가 집을 옮긴 김에 집들이 겸해서 고맙다는 인사나 하자고 합디다. 이번 주에는 학교 선생들 집들이하고 친척들이 온다니까 다음 주쯤. 어떻소?”

“그걸 뭘 그렇게 어렵게 그래?”

“생각만 해도 뻑뻑해서 그렇소.”

“가자. 아니게 아니라 얼굴이라도 알아야 오가며 마주쳤을 때 인사라도 하고 살지. 날 정하면 알려줘.”

“그럽시다.”

석강호가 안심한 듯 의자에 털썩 기댔다.

“집에 필요한 건 없냐?”

“없소.”

시원한 대답이 이상하게 웃겨서 강찬이 “푸흐흐.”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해가 길어져서 이제야 도로와 카페 주변으로 가로등이 켜졌다.

“우리 둘이 이렇게 다른 몸으로 태어난 이유가 뭔지나 알았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다른 놈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남은 커피를 모두 털어 넣으며 강찬이 강을 보았다.

“요즘은 아프리카 꿈을 꿀 때도 있수. 솔직히 미친놈처럼 이리저리 치고받으며 살다가 대장 만나고 나서부터 세상 사는 재미를 처음 느꼈었거든요.”

두들겨 맞고 나서 사람 됐다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 할 줄은 몰랐다.

“힘으로 안 되는 사람, 처음이었소. 보통 세 번쯤 달려들면 기가 질려서라도 꺾이던데, 마지막 싸움 기억나쇼?”

강찬이 피식 웃자 석강호가 어두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날 죽는구나 싶습디다. 그러고 나니까 이상하게 이 사람하고 끝까지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그 날 처음으로 따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게 맞을 거요.”

“안 어울려, 인마.”

“푸흐흐. 오늘은 술도 한잔 땡기네. 망갈라 때 생각도 나고. 야! 그때 대장 진짜 멋있었는데.”

석강호가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하나 건네주고 저도 입에 물었다.

“피투성이가 돼서 밧줄 끊어줄 때 이 사람은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간다 싶었소.”

석강호가 커피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이미 다 마셔서 남은 것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이야기였다.

웅웅웅. 웅웅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어. 미쉘.”

[“차니. 소연이가 전화했는데 이하연이 오늘 술집으로 나오라고 했대. 연습생 중에 지연희 데리고. 그게 디아이 살리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안 나가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한데 편성 국장이 나온다고 하니까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야.”]

“미쉘. 은소연이 전화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걱정하는 건 미쉘답지 않아. 정당하게 가자. 그러자고 나보고 이 일 맡아달라고 했던 거 아냐? 그럼 이럴 땐 미쉘이 중심을 잡아야지.”

미쉘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차니. 자꾸만 차니가 투자한 돈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흔들렸나 봐. 앞으로 제대로 할게. 고마워, 차니.”]

“그래. 그게 너답다. 은소연하고 지연희 어딨어?”

[“방배동으로 오라고 했어. 우리 처음 만난 가게.”]

“잘했다. 당당하자. 알았지?”

[“오케이, 차니. 내가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할게.”]

“수고해라.”

전화를 끊고 난 강찬이 피식 웃었다.

역시 마무리를 대충하면 늘 문제가 생긴다.

“뭔데 또 웃음이 그래요?”

강찬은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이하연?

마무리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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