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58화 (5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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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이것들이 진짜!

“차니. 이쪽 일을 원래 알고 있었어?”

뭐라는 거야?

강찬은 커피를 마시며 미쉘을 흘깃 보았다.

“워낙 멋지게 받아쳐서 그래. 쟤들 저러고 갔지만, 틀림없이 어디서 일했던 경험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인터넷에서 본 거 떠든 건데 뭘.”

흥분했던 미쉘이 강찬이 커피잔을 내려놓는 순간에 심란한 얼굴을 했다.

“왜?”

“나머지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어서. 차니가 말한 대로 하면 통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투자받아서 망하면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은소연랑 연습생 애들도 제대로 뜨기 어렵잖아.”

강찬은 폴짝거리며 좋아죽던 연습생들이 떠올랐다.

“그건 나도 좀 생각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봐.”

“알았어, 차니. 그런데 오늘 시간 좀 보낼 수 있어?”

미쉘의 눈가가 촉촉한 걸 보면서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 안쪽에 부모님 계셔서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미쉘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모았다. 주변에 힐끔거리는 놈들이 제법 있었는데 강찬만 없었다면 벌써 차 한잔 하자고 달려들 태세였다.

“그럼 나도 인사나 드리고 갈게.”

“가면 프랑스 말만 해라. 내가 한국어 배우고 있다고 했으니까 너무 오바하지 말고.”

“위이.”

미쉘이 불어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 출렁이는 금발은 정말 매력적이다.

찻값은 미쉘이 법인 카드로 계산했다.

2층에 반트리 홀이라고 들어서 두 사람은 로비 안쪽에 있는 넓은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2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는데 얼핏 보아도 부페로 점심을 먹는 것이 분명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앞을 막아섰다.

“스티커를 붙이셔야 합니다.”

이게 뭔 소리지 할 때 미쉘이 나섰다.

“잠깐 인사만 드리고 갈 거예요.”

“죄송합니다. 규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들어가도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강찬이 바라보는데도 웨이터는 모른 척 서 있을 뿐이다.

“붙여요. 둘 다.”

“알겠습니다.”

강찬의 말에 직원이 용지에서 스티커를 떼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중년의 여자 지배인이 날듯이 강찬에게 다가왔다.

어디서 봤는데?

“1층 레스토랑에서 모셨지요. 오늘 이렇게 뵈어서 영광입니다.”

“그렇군요. 안쪽에 부모님이 계셔서 인사드리려던 참입니다.”

“그럼 얼른 들어가시죠. 성함을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의 눈짓에 직원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번거로우니까 제가 가지요. 스티커는?”

“아닙니다. 직원이 몰라뵙고 실수를 한 모양인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지배인은 생긋거리며 절묘하게 고개를 숙였다.

굳이 다툴 필요 없어서 강찬은 미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한 바퀴를 휘 둘러보다가…….

강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구석 테이블에 앉은 유혜숙과 강대경을 보았다. 강대경은 가슴과 배 부분에 커피를 쏟은 것처럼 꼴이 엉망이었고, 유혜숙은 풀이 푹 죽은 얼굴이었다.

언젠가 학교 식당에서 차소연이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강찬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럴 땐 무조건 눈이 번들거린다.

강찬의 곁에서 지배인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강유모터스 대표님을 찾아오셨나요?”

“무슨 일인가요?”

여 지배인이 어색한 미소로 강찬을 보았다.

“식사를 하시던 중에 옆자리 분이 스테이크를 떨어트리셔서. 얼룩을 닦아 드렸는데도 저 이상은 어려웠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돌리자 지배인은 시킬 것이 있느냐는 투로 강찬을 대했다.

“지배인님. 솔직하게 하나만 물어볼게요. 내가 모르는 게 있나요?”

지배인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저 모습이 정상은 아니죠? 지배인님이라면 오늘 어떤 일이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는 아셨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다. 솔직하게 대해주실 것 같기도 하구요.”

지배인이 입술에 힘을 주었다가는 생긋하는 미소를 지었다.

“시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딘지 두 분을 좀 무시하는 느낌도 들었구요. 저는 못 보았습니다만, 서빙한 직원 말로는 도저히 음식을 떨어트릴 수 없는 위치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일부러 저랬다는 뜻이네요.”

“들은 대로 전해드린 겁니다.”

강찬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로 일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옷을 닦아드릴 때 들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돌아가자고 하시는데 사장님께서 끝나고 가자고 하시더군요. 중간에 몇 분이 자동차 매입 의사가 있다고 명함을 달라실 때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면 대강 알았다.

강찬은 지배인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주철범이를 이리 좀 불러주세요.”

순간 지배인의 눈가가 굳은 것을 보고 강찬이 풀썩 웃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호칭이 어색했지만, 강찬은 미쉘과 함께 강대경과 유혜숙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역시 사람 시선 끄는 대는 미쉘이 최고다.

부페식당의 절반 정도가 강찬과 미쉘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머니!”

강찬이 부르자 유혜숙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이어서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강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미쉘 아시죠?”

강대경과 유혜숙이 일어나 미쉘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미쉘입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미쉘은 이 와중에도 한국어에 절묘한 프랑스어 억양을 집어넣었다.

“금방 늘었네요. 정말 반가워요.”

유혜숙이 먼저 악수를 했고 강대경은 웃으며 고개만 숙였다.

“음식을 흘리셨나 보네요.”

“응. 그렇게 됐어.”

유혜숙이 안타까운 얼굴로 돌아보자 강대경이 어색하게 웃으며 셔츠를 쓸어댔다.

“어머니가 새로 산 옷인데 아쉽다.”

“집에 가서 세탁하면 되지. 점심 먹었니? 안 먹었으면 우리랑 같이 먹자.”

“그럴까요?”

강찬은 프랑스어로 점심을 먹겠냐고 물었고, 미쉘은 누가 들어도 다 알아들을 만큼 만족스럽게 “위이.”라고 대답했다.

강찬의 주변으로 다섯 쌍이 넘는 부부가 찾아와 누구냐고 물었고, 그럴 때마다 강찬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미쉘이 신기해서인지 강찬 때문인지 테이블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관심을 보일 때였다.

“찾으셨습니까?”

주철범이 눈치껏 형님 소리를 빼고 강찬의 앞에 나타났다.

“셔츠에 얼룩이 떨어져서 그런데 여기 셔츠 구할 곳이 있냐?”

“지하에 양복점이 있습니다. 제가 연락해서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점심을 이곳에서 드십니까?”

“응. 왜?”

“아닙니다. 셔츠는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주철범이 과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몸을 움직였다.

유혜숙과 강대경이 얼이 빠진 얼굴이었으니 구경 왔던 이들의 표정은 아예 무언가에 홀린 표정들이었다.

그런데도 다들 어떤 관계인지는 묻지 않았다.

“점심 먹죠.”

강찬이 말을 할 때 이번에는 지배인이 직원 둘과 나타났다.

“이곳에서 점심을 드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됐네요. 스티커, 그거 붙여야지요.”

“제가 모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지배인이 눈짓을 하자 직원 둘이 능숙하게 그릇들을 비롯해 식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치우고 새로운 식탁보를 깔았으며 다시 그릇과 포크 등을 세팅해 주었다.

마치 마술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배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직원이 내민 포도주를 보이고는 강대경과 유혜숙, 그리고 강찬과 미쉘의 잔에 채워주었다.

“두 분이 강찬 선생님 부모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모시게 돼서 영광이고, 앞으로도 호텔을 이용하실 때면 부담 갖지 마시고 찾아주세요.”

강대경은 물론이고, 유혜숙은 연타로 따귀를 맞은 얼굴이었다. 뷔페에 있는 이들이 모두 힐끔거리는 가운데 이번에는 입구로 여러 색의 셔츠가 가득 걸린 헹거가 들어왔다.

주철범이 먼저 달려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급하게 준비해서 마음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얼추 20벌은 넘을 셔츠가 탁자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지하 양복점에서 왔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내가 슬쩍 강대경을 보았다.

“다행히 선생님께 맞으실만한 셔츠가 있습니다. 이건 어떠신지요?”

사내는 헹거에서 세 벌의 셔츠를 꺼내 두 손으로 유혜숙의 앞에 펼쳐 보였다.

“어머.”

유혜숙이 감탄하자 만족한 듯 사내가 가운데 있는 것을 골랐다.

“제가 한번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이걸 입어 보시죠. 색상 안목이 대단하셔서 같은 색으로 골라봤습니다.”

사내가 골라준 것도 옅은 하늘색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예. 그렇긴 하네요.”

“그럼 입어보시지요.”

강대경이 강찬을 보았다.

“입어보세요. 어디서 갈아입으면 되죠?”

사내가 눈짓을 하자 헹거를 끌고 온 직원 둘이 접혀 있던 판을 펼쳤다.

“안쪽에서 입으시면 됩니다.”

이건 좀 오바인데?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주철범이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앞쪽만 주시하고 있었다.

강대경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계산은 제가 내려가는 길에 할게요.”

“이미 세 벌 값을 받았습니다.”

사내가 고급스러운 쇼핑백에 강대경이 벗은 셔츠를 담았다.

“별도로 세 벌을 더 넣었습니다. 입고 계신 것은 제 성의로 받아주십시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사내가 직원들을 데리고 돌아가자 주철범이 또 커다랗게 인사하고 그 뒤를 따랐다.

“아들?”

유혜숙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배고파요. 여기 뭐가 맛있어요?”

강대경의 표정이 무척 복잡해서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우리 건배하고 얼른 밥 먹어요. 전에 프랑스에서 오셨던 분이 워낙 이곳의 VIP라 그때 인사한 거예요. 언짢으셨다면 죄송해요.”

“언짢기는.”

“그래. 우리 찬이가 이렇게 해줬으니까 오늘 점심은 더 맛있겠다. 자! 우리 건배하자.”

강대경이 나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강찬과 함께 넷이 포도주를 한모금 마셨다.

강찬은 시종일관 유혜숙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다녔다.

“저건 어때요?”

“아후! 기름이 너무 많아.”

“갈비 먹을까요?”

강찬이 유혜숙과 갔을 때였다.

“사모님. 이 부위가 정말 맛있는 곳입니다.”

갈비를 굽던 요리사가 먹음직한 고기를 유혜숙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회 코너를 지나는데 “사모님! 마침 도미가 훌륭한데 한 점 올려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직원이 유혜숙을 위해 특별하게 회를 떠서 접시에 올려주었다.

유혜숙의 곁을 지키며 강찬이 테이블로 움직였다.

미쉘이 시종일관 종알거리고, 강찬이 통역하고, 다시 강대경과 유혜숙의 말을 강찬이 프랑스어로 전했다.

미쉘은 잡지사 기자답게 이런저런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했다.

“한국말 해 볼게요.”

음식을 삼킨 직후에 미쉘이 유혜숙을 똑바로 보았다.

“어머니. 정말 미인이세요.”

“어머. 미쉘. 정말 고마워요.”

영악한 년.

오늘 모임의 주인공은 단연코 유혜숙이었다.

돌아가면서 부부들이 다가 와 강찬과 미쉘, 두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고, 인사를 나눴다.

강찬은 식사 중간에 지배인에게 부탁을 하나 더 했다.

식사를 하며 한참 웃고 있을 때였다.

새하얀 파티쉐 복장에 높다란 모자를 쓴 프랑스인이 홀에 들어섰다.

“마담.”

그는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유혜숙에서 멋지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니?”

“제 선물이요. 아버지껜 셔츠, 어머니는 서운하지만 이거.”

유혜숙이 서 있는 파티쉐와 지배인의 눈치를 살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어머!”

뚜껑을 열었을 때 강찬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예쁜 케이크 조각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강찬이 고맙다고 하자 파티쉐가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들. 엄마 너무 행복해.”

유혜숙이 울 것 같아서 강찬이 웃기만 했다.

옆 테이블에서 자기들도 저렇게 주문이 되냐고 물었는데 지배인이 정중하게 거절하는 소리도 들렸다.

“마음에 드시는 거죠?”

“그럼!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드세요. 어머니가 드시고 싶다면 언제든 제가 사 드릴게요.”

유혜숙이 상자를 살짝 내밀자 미쉘이 웃으며 거절했다.

“저기, 혜숙아.”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아줌마 한 명이 유혜숙에게 다가왔다.

“미안한데 우리 딸 생각이 나서 그러거든. 우리도 그런 거 하나 주문해 주면 안 되니? 부탁하자.”

“이거? 우리 아들이 해준 거라 난 잘 몰라.”

아줌마가 강찬을 보며 어색하고 웃고는 다시 유혜숙을 보았다.

“그러지 말고. 네가 부탁해 줘.”

이번에는 애교도 섞였다.

강찬은 유혜숙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

“아들. 이거 주문해 줄 수 있어?”

강대경의 난처한 표정도 보았다.

강찬은 고개를 돌려 지배인을 찾았다.

“찾으셨습니까?”

“미안한데 저걸 몇 개 사고 싶은데 따로 주문이 가능할까요?”

“강찬 선생님 오더시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몇 개나 준비할까요?”

아줌마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지켜보던 아줌마 네댓이 우르르 달려 나와 자기들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분들 주문대로 좀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지배인이 깍듯이 인사하고 물러나자 아줌마들이 피리 소리를 들은 아이들처럼 그 뒤를 졸졸 따라 움직였다.

“아! 배부르다.”

“그러게요. 아들 덕분에 너무 잘 먹었어요.”

강대경과 유혜숙만큼 강찬도 많이 먹었다.

넷이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주철범이 깔끔하게 생긴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꾸벅.

또다시 시선이 다 달려들었다.

“사모님께 드리는 제 성의입니다.”

놈이 유혜숙의 앞에 조심스럽게 쇼핑백을 올려놓았다. 이전까지가 딱 좋았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거절하면 분위기가 망가질 판이다.

“뭔지 저도 궁금한데요? 한번 열어보세요.”

강찬의 말에 유혜숙이 도마 크기의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연 유혜숙의 표정이 딱 굳었다.

샤넬 손지갑이 담겨 있었다.

“호텔 최고급 VIP 선물용입니다.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이건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한정품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아주머니들이 벌떼처럼 달려왔다.

심지어 강찬과 미쉘이 자리를 비켜주느라 일어서야 했다.

“저건 뭐냐?”

강찬이 구석에서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는데 눈빛이 번들거렸다.

“저, 광택이 형님이 꼭 전해드리라고 급히 보내신 겁니다.”

“그 새끼.”

강찬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새끼가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어?”

“신영동파와 분위기가 안 좋아서 아래 애들이 일단 전화를 드렸던 모양입니다.”

강찬은 입술을 찌푸렸다.

여기서 돌려주자고 할 수도 없고.

“오늘 계산도 분명히 하자.”

“알겠습니다, 형님. 대신 지갑값은 제가 모릅니다.”

이건 뭐라고 할 수 없는 거라서 강찬은 고개만 끄덕였다.

10분쯤 난리 비슷한 일을 겪은 후에야 자리가 정리되었는데 구경한 아줌마들의 절반쯤이 눈에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 이거 받아도 되는 거야?”

“그러세요. 오늘만요.”

유혜숙이 얼떨떨한 얼굴로 강대경을 보았다.

“받자. 당신, 그런 거 들고 있는 거 보니까 난 정말 좋다.”

“고마워, 여보.”

강대경이 등을 다독여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침내 자리가 끝났다.

다 같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부페 식당 지배인이 작은 백을 건네주었다.

“이건 뭐예요?”

“강찬 선생님 부모님을 모신 기념으로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지배인이 마지막까지 부담을 팍 주었다.

“이곳에 정말 좋은 스테이크 고기가 있어서 따로 준비한 겁니다. 댁에서 프라이팬에 구워 드셔 보세요.”

유혜숙이 강찬을 보았다가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하고는 고기를 받았다.

로비에 나왔다.

“같이 갈래?”

“아뇨. 여기저기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갈게요. 미쉘하고 차도 한잔 하고요.”

“그래. 그럼 우리 먼저 간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미쉘과 인사를 나눴는데 유혜숙은 허그를 할 정도로 그녀를 편하게 대했다.

“아들!”

강찬은 유혜숙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

호텔에 남은 강찬은 한 사람씩 모두 찾아가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특히 부페 식당의 지배인은 부모님을 챙기는 모습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와인 값을 끝내 받지 않았다.

“대신 강 선생님. 나중에 제가 아쉬울 때 편하게 부탁 같은 거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강찬은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 “알았다.”고만 했다.

로비 라운지에 앉았을 때 미쉘이 촉촉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부담스럽다.”

“차니. 오늘 모습 보고 나니까 나, 차니를 닮은 예쁜 딸을 낳아보고 싶어.”

강찬은 빨리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여겼다.

***

은소연은 아침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일요일 오전에 알리온과 협상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 결과를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새로 온 어린 사장에게 몸을 대줬다느니, 프랑스에서 온 투자자와 돌아가면서 잤다느니 하는 소문도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정말 잘 되었으면 싶었다.

주연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믿고 투자해준 미쉘과 강찬을 위해서라도, 일이 잘 풀리고 드라마 역시 잘 되길 바랐다.

약속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화가 울렸다.

이하연이었다.

“여보세요?”

[“이제 인사도 안 하네?”]

“아니에요, 언니. 잘 지내셨어요?”

[“흥. 비꼬는 거니?”]

“그런 거 아니에요, 언니.”

[“알리온하고 협상 깨졌어. 그리고 디아이는 절대 한국에서 방송 못 나가는 걸로 얘기 끝났고.”]

은소연은 한 가닥 희망과 기대가 유리처럼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널 생각하는 마음은 있잖니. 거기 연습하는 애들은 또 어떻고.”]

이하연의 말에 뭔가 담겨 있어서 은소연은 듣기만 했다.

[“오늘 밤에 문 국장님이랑 술자리 있어. 거기 나와서 사과하고 기분 좀 풀어드려. 그럼 내가 다시 얘기해 볼게. 연습생 애 중에 지연희 있지? 걔랑 둘이 나와. 오늘 잘 풀면 드라마 할 길이 있을지 몰라.”]

은소연은 입을 막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잘 생각해. 미쉘 언니는 너 때문에 또 무슨 죄니? 나니까 이 정도 하는 거야. 나오기 싫음 말고. 오늘 문 국장님 안 풀어주면 디아이 정말 끝난다. 그러니까 알아서 잘 판단해라. 8시야. 장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통화가 끝나자 은소연은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일을 하지 말자고 미쉘과 손을 잡은 건데.

‘언니.’

은소연은 미쉘을 떠올리며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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